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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름다운 사직 [이연상 선생]
날짜 2010-07-30 16:07:27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2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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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6년, 한포재 이건명 선생의 손자이신 이조판서 겸 호조판서 이연상 선생의 간곡한 사직 요청에 따라 부득이 정조 대왕은 그의 사직을 허락한다.
 
이는 이연상 선생의 조부 한포재 선생과 그의 부친 이술지 선생이 신임사화때 역적들의 준동으로 화를 당하시었는데, 이제 다시 손자인 그가 높은 벼슬자리에 있음에, 이는 한포재 선생의 유언(한포재선생은 죽음을 앞두고 높은 벼슬을 목표로 하지말고 바른 충효의 자손이 될 것을 유언함)을 충실히 받드는 것이 아니라고 여긴 것으로,  아름다운 효의 실천을 우선하고자 극구 사직을 청한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들은 바른 도리를 따르기 보다는 높은 자리, 많은 것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심하여, 결국에는 스스로의 황폐화를 자초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된다. 공자는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아니하여도 이에 구애되지 아니하고 스스로 도를 닦고 실천하여나가는 것은 성인의 경지에 이른 것이라고 하였고, 예수 그리스도는 참으로 큰자는 낮은 자리에서 남을 섬기고 아가페(Agape)의 사랑을 실천하는 자라고 하였는데, 우리들의 인생에서 참된 승리요 높은 가치는 스스로 추구하는 바른 자아의 실현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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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6년 (1782년) 2월5일
 
이조 판서 이연상(李衍祥)이 면직되었다. 처음 경묘(景廟) 임인년3109) 에 흉당(凶黨)이 큰 무옥(誣獄)을 일으켜 충성되고 진실한 이들을 죄에 얽어넣어 죽였는데, 이연상의 조부(祖父) 충민공(忠愍公) 이건명(李健命)이 제일 먼저 참화(慘禍)를 당하였고 이연상의 아버지 이술지(李述之)도 함께 피살(被殺)되었다. 이때에 이르러 이연상이 바야흐로 호조 판서의 직임을 띠고 있으면서 상소하여 사직(辭職)하기를,
“신은 천하에 지극히 궁박한 사람입니다. 복멸(覆滅)당한 집의 여생(餘生)으로 갑자기 구갑(舊甲)이 거듭 이르름을 보게 되었는데, 이런 때 갓끈을 휘날리면서 큰길로 왕래하는 것은 결단코 항정(恒情)에 벗어난 일입니다. 신이 어떻게 차마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본직과 겸직의 여러 직임을 면하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이어 장기간의 휴가를 내려 주시어 여년(餘年)을 끝마치게 하여 주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정상은 고통스럽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예법은 본디 한정이 있는 것이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이조 판서로 옮기기에 이르러 임금이 누차 칙교(飭敎)를 내려 돈박(敦迫)하였으나, 이연상이 금오(金吾)에 나아가 서명(胥命)3110) 하고 나서 도성(都城) 밖으로 달려 나아갔었다. 입시(入侍)하라고 명하니, 이연상이 전석(前席)으로 나아와 눈물을 흘리면서 간곡히 진달하는 것이 매우 간절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처음에 나는 단지 경의 조부만이 국사(國事)에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을 뿐, 경의 아버지도 또한 〈피살을〉 면치 못한 줄은 몰랐었다. 그때의 문자(文字)를 상세히 조사하여 보니, 경도 또한 모진 운명을 겪은 사람이다.”
하고, 이어 하교하기를,
“중신(重臣)의 정리(情理)가 안스럽고 측은할 뿐만이 아니라, 연석(筵席)에 나와서의 거조를 보니 사람을 감동시키게 한다. 일찍이 이런 줄 알았다면 어찌 아름다움을 이루어 주는 것을 소홀히 했겠는가? 효(孝)로 다스리는 정사에 있어 의당 체량(體諒)하는 뜻을 미루어야 한다. 이조 판서 이연상의 본직과 겸임을 아울러 우선 체차할 것을 허락한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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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상(李衍祥) 선생
1719년(숙종 45)∼1782년(정조 6).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좌의정 건명(健命)의 손자로, 술지(述之)의 아들이며, 족숙 성지(性之)에게 입양되었다.

1770년(영조 46) 반감시(頒柑試)에 장원하여 이듬해 식년문과 전시에 직부, 을과로 급제하였다. 급제 전에 이미 신령현감에 임명되었고, 1772년 정언을 거쳐 홍문관에 들어갔다.

1776년 승지가 되었고 그해 정조가 즉위하면서 경상도관찰사에 임명되었다.

1778년 대사헌이 되어 벽파의 영수 김구주(金龜柱)를 정조시해음모의 조종자로 탄핵하였다. 그해 대사성을 거쳐 이듬해 한성판윤, 1780년 병조판서·이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극구 사양하여 파직되었다.

전서(篆書)에 능하여 진종비(眞宗枇)의 옥책문 서사관(書寫官)으로 뽑혔다. 성품이 개결(介潔), 청빈하여 가난하게 살았고 벼슬을 즐겨하지 않아 정조의 존경을 받았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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