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참여마당 > 참여게시판
 
 
 
제목  마음을 다스림 (백강 이경여 선생)
날짜 2010-08-24 18:01:35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866
첨부파일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동서고금에 마음을 바르게 다스리는일의 중대함은 많은 현인, 성인들이 말하여 왔고, 이는 참다운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래는 효종 7년(1656년) 3월 7일 백강 선생이 올린 "재변에 대해 임금의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 대한 상차문으로 오늘날 우리들의 인격수련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영중추부사 이경여(李敬輿)가 상차하기를,
 
“하늘이 재앙을 내리는 것은 그 이유가 심원하여 알기 어려우니 어찌 감히 아무 재앙은 아무 일의 반응이라고 하겠으며, 온갖 일이 지극히 번잡한 것이니 또 어찌 잘잘못에 따라 낱낱이 열거할 수 있겠습니까. 신이 지난번 탑전에서 망령되이 임금의 마음은 정치를 하는 근본이 된다고 논하였는데, 이는 실로 늘상 입에 오르내리는 말로 성상께서도 반드시 사정에 어두운 말이라고 여겨 유의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또한 신이 이 학문에는 실로 소경이 단청에 대하여 말하고 귀머거리가 오음(五音)을 논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삼가 예로부터 지금까지의 제왕(帝王)들을 보건대 이 도를 편안히 행하면 당(唐)·우(虞)가 되고 힘써 행하면 삼대(三代)가 되며 빌려 행하더라도 또한 한(漢)·당(唐)의 훌륭한 임금 정도는 되었습니다. 이와 상반되게 다른 길에 종사하면 허명(虛明)한 본체(本體)가 날로 어두워지고 간사한 길이 날로 열려 그 마음에서 발하여 그 정사에 해를 끼쳤습니다. 이에 끝내는 전도되고 사리에 어긋나 하는 일마다 하늘의 법칙을 어기는 데까지 이르러, 백성들은 괴로움을 쌓아가고 곧은 선비는 자취를 감추며 상하가 서로 막혀 언로가 두절되고 호오(好惡)가 이미 나타나 사람마다 엿보아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마음을 좀먹는 해(害)와 나라를 병들게 하는 화(禍)는 고금이 똑같아 서로 잇따르니, 이것은 어찌 임금이 성의 정심(誠意正心)해야 한다는 것을 평범한 말처럼 보고서 사공(事功)을 급선무로 삼아, 근본을 바르게 하여 정치를 하지 못하고 스스로 건극(建極)의 근본을 잃음으로써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날의 일도 다른 곳에서 구할 것이 없고 오직 전하께서 마음에 돌이켜 구하고 남들이 알지 못하고 자신만 홀로 아는 은미한 바를 성찰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위로 성왕(聖王)으로부터 아래로 다소 정치를 잘한 임금과 나라를 망하게 한 임금에 이르기까지 마음속에 발하여 정사에 시행한 것 가운데 치도(治道)와 길을 함께 한 것이 얼마나 되며 혼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 얼마입니까. 내가 마음먹은 것이 어떠하기에 하늘의 노여움이 이와 같으며 내가 일을 처리한 것이 어떠하기에 백성의 노여움이 이와 같은가 하고 반성하고, 치도로 나아간 것에 대하여 내가 힘써 그것을 법으로 삼고 혼란시키는 방향으로 해 나간 것에 대해서 준엄히 배척하고 힘써 다스린다면, 수성(修省)하는 도에 어찌 조그마한 도움이 없다 하겠습니까.

지금 진언하는 자들은 모두 ‘희로(喜怒)가 중도에 맞지 않고 사기(辭氣)가 너무 드러나며, 언로가 막혔고 성의가 돈독하지 않으며, 의리(義利)의 분별이 정밀하지 않고 병민(兵民)의 본말(本末)이 도치되었으며, 백성들이 고달프고 어진 선비들이 날로 멀어지며, 궁장(宮庄)이 너무 넓은 땅을 차지하였고 공주의 저택이 제도를 넘으며, 형옥(刑獄)이 남용되고 법령이 번거롭다.’고 합니다. 이는 실로 오늘날의 고질이고 병폐를 바로 지적한 것인데, 사람마다 모두 말할 뿐만 아니라 신도 침이 마르도록 전후로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즉위하신 이래로 지금 여러해가 되었는데 예전의 병폐가 제거되지 않고 새로운 걱정이 더 생기니, 비유하자면 마치 병든 사람에게 원래의 증상이 남아 있는데 다른 병이 다시 더해지고 계속 심해져 오한과 고열이 번갈아 일어나는 것과 같으니, 어찌 전하께서 본원을 바루고 맑게 함에 있어 지극하지 않음이 있어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진실로 이 마음을 정일(精一)하게 하고 사욕을 제거하여 광대한 지역에 두고 날로 고명한 곳에 나아간다면, 이치를 살펴 시비를 판단함에 사사로움은 관여함이 없을 것이니 어찌 희로(喜怒)가 중도에 맞지 않음이 있겠으며, 독실히 공경하고 말하지 않아도 백성들이 부월처럼 두려워할 것이니 어찌 사기(辭氣)가 너무 드러남이 있겠습니까. 또 남의 좋은 점을 취해 자신도 그렇게 하려고 하여 간하지 않아도 본받으려 할 것이니 어찌 언로가 막힘이 있겠으며, 마음을 미루어 아랫사람을 살펴 신의로 선비를 대할 것이니 어찌 성의가 돈독하지 않음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당연히 의(義)를 취하기를 실로 여색을 좋아하는 것처럼 하고 당연히 이(利)를 버리기를 실로 악취를 싫어하는 것처럼 할 것이니 어찌 의리의 분별이 정밀하지 않음이 있겠으며, 백성의 농사철을 빼앗지 않아 백성으로 하여금 항산(恒産)이 있게 하고 전리(田里)에 편히 살아 근심과 원망이 없게 할 것이니 어찌 병민(兵民)의 본말(本末)이 도치됨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어린아이를 보호하듯 하는 인(仁)을 체득한다면 백성들이 자연 고달프지 않을 것이고, 목이 말라 물을 구하듯 하는 성의를 가진다면 어진 선비가 자연 멀리하지 않을 것입니다. 기산(岐山)의 연못과 주(周)나라의 동산도 오히려 백성들과 함께 즐겼는데 더구나 궁장(宮庄)을 넓게 점거할 수 있겠습니까. 또 낮은 궁궐과 헤어진 옷도 오히려 만족하게 여겼는데 더구나 공주의 저택을 제도에 지나치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살리기 좋아하는 덕을 한껏 지니고 의심스러운 죄는 경한 벌을 주면 형벌이 남용되지 않을 것이며, 근거없는 말을 듣지 말고 의논하지 않은 계책을 사용하지 말며 선왕(先王)을 따르고 세세한 법령들을 번거롭게 고치지 말면 법령이 번거롭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모두 마음을 바루는 데에서 미루어 나간 것이고 성인이 여가에 하는 일이므로 굳이 굽은 길에서 어려움을 겪지 않더라도 치도(治道)가 저절로 이루어짐을 볼 수 있을 것이니, 어찌 상께서 수고롭게도 거듭 생각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옛날 주 선왕(周宣王)은 가뭄의 재앙을 만났을 때에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며 수행하였고 중종(中宗)은 요망한 뽕나무가 생겨난 이변이 있었을 때에 덕을 닦아 불길한 징조를 이겨냈으니, 두 임금이 행한 일을 우리 임금도 행하기를 마음속 깊이 바랍니다.

또 신이 듣건대 영남의 흉년은 근고에 없었던 바로 가을과 겨울부터 이미 떠돌며 빌어먹는 자가 있고 이 지역의 백성들은 모두 마치 수레바퀴 자욱에 고인 물에 고기가 입을 쳐들고 오물거리는 것과 같으니, 나라에서 비록 구원하려고 하나 형세상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습니다. 이번 신사(信使)의 행차에 오랑캐가 바친 것을 공무목(公貿木) 3백 동(同)과 바꾼다면 이는 거저 얻는 많은 재화이니, 한 지방의 위급한 고통을 구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령 굶주린 백성의 입에 들어가야 할 것을 가지고 빚을 갚도록 독촉한다면 반드시 한 지방의 조그마한 바람마저도 저버리게 될 것입니다. 유사(有司)가 어떻게 처분할지 모르겠으나 특별히 1년의 상납분(常納分)을 감면해준다면 작은 보살핌으로 큰 은혜를 베푸는 것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목(稅木)과 공목(公木)을 각읍에 나누어 배정하되 재앙을 입은 주군(州郡)에도 그 정도의 차이가 있으니, 참작하여 고루 나누어 주는 것은 또한 관찰사에게 달려 있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뜻으로는 성상께서 마음으로 결정하여 빨리 시행하고 의심치 않으시면 70주(州)의 백성들이 누가 성상의 은택을 감사히 여기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나라가 재앙을 구제하는 도는 마땅히 이러한 비용을 아깝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옛날 명(明)나라 인종 황제(仁宗皇帝)가 사신의 복명(復命)을 인하여 강회(江淮)에 기근이 심하다는 말을 듣고 특별히 수백만의 곡식을 내어주고 급히 조서를 내려 나누어 주게 하자, 각신(閣臣)이 무상으로 줄 것인가의 여부를 물으니, 인종 황제가 이르기를 ‘자식의 위급함을 구제해주면서 뒷날 갚으라고 하는 것이 될 일인가.’라고 하였습니다. 아, 제왕(帝王)의 한 마디 말은 실로 천지(天地)의 마음인지라 사기에 기록되어 미담으로 전하고 있으니, 훌륭한 덕을 지니신 전하께서 어찌 유독 이번 일에 아끼시렵니까.

또 근래 인심이 좋지 않아 공곡(公穀)을 바닷길로 운반하는 자가 가끔 상하여 냄새가 난다고 거짓말을 하고 빼내어 자기 물건으로 삼으니, 정상이 몹시 통탄스러워 실로 용서할 수 없는 죄입니다. 그러나 파도가 치는 험난한 수천리 길을 마치 잠자리 위를 왕래하듯 하니, 하나도 손실되지 않는다는 것도 어찌 이치에 닿는 일이겠습니까. 유사(有司)가 일찍이 허실을 명확히 조사하지 않고 패선(敗船)에 관련된 모든 자는 처자식과 일가를 모두 감옥에 가두고 갚도록 독촉하여 혹은 수년이 지났으니, 고아와 과부가 상복을 입은 채로 원통해 울며 하늘을 부릅니다. 신의 어리석은 뜻으로는 배도 부서지고 사람도 모두 죽은 경우는 불문에 부치고, 한 척의 배에서 한 사람이 죽은 경우와 해안에 이르러 패몰된 경우는 법대로 엄히 징수하는 것이 공정할 듯합니다. 그러나 꼭 옳다고는 하지 못하겠으니, 해조로 하여금 참작하여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 또한 원통함을 풀어주는 한 가지 방도일 것입니다.

또 옛 사람이 이르기를 ‘관리가 그 직책을 잘 수행하면 백성들이 자기 업무에 안정한다.’고 하였으니, 수령이 적격자가 아닌 것이 가장 심하게 백성을 해치는 것이지만, 사소한 잘못으로 자주 체직시키는 것이 더욱 큰 민폐가 됩니다. 작년 이래로 여러 도의 수령 가운데 일로 인하여 파직 당한 경우가 적어도 60, 70읍이나 되어 신관(新官)과 구관(舊官)의 영송(迎送)이 도로에 서로 교차되고 있습니다. 이에 비록 능력이 있더라도 일을 해나가기 어려운 형편이고 법 조목이 많아 머리만 돌려도 저촉되니 바늘 방석에 앉은 것과 같아 눈앞의 일만 구차히 모면하려 하고 백성의 근심 걱정에 대해서는 생각이 미치지 못합니다. 비록 급암(汲黯)을 회양 태수(淮陽太守)로 삼고 양성(陽城)을 도주 자사(道州刺史)로 삼더라도 관사에 누워 있으면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이고 법 조목에 눌려 정사가 졸렬해질 것이니, 하루라도 그 직책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맞이하고 전송하는 폐단은 말할 수도 없습니다. 나라의 규정에 주·부(州府)는 20바리[駄]이고 군·현(郡縣)은 15바리라고 하니, 비록 원근(遠近)의 차이는 있으나 미루어 계산하면 60, 70고을 인마(人馬)의 값이 거의 1천 동(同)에 가깝고, 노자와 수리하는 비용이 또 얼마인지 모르며, 부서(簿書)를 훔치고 관청 물건을 도둑질함에 따른 피해는 이 안에 들어있지 않습니다. 이어 오는 자도 다 어진 것은 아닌데다가 전의 일을 징계삼아 오로지 독촉만을 일삼으니, 여러 읍은 날로 쇠퇴해지고 백성들은 날로 피해를 당합니다. 오늘날의 폐단은 작은 일이 아니니, 신의 어리석은 뜻으로는 장부 회계하는 법을 다소 완화시키고 조그마한 잘못은 용서하여 그 직책에 오래 있게 하고 그로 하여금 능력을 펴게 하며, 그가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보아 내쫓거나 승진시키면 능력 있는 자는 그 능력을 발휘하고 백성들은 생활을 보전할 것이니, 이보다 나은 방법이 없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신은 죄가 있던 없던 구차하게 그대로 두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죄에는 혹 과오도 있고 혹 어쩔 수 없어 저지른 경우도 있고 혹 사세(事勢)가 그렇게 만든 것도 있으니, 어찌 일정하게 벌을 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서경》에서 과오로 지은 죄와 고의로 지은 죄를 구별하여 말하고 법률에 공죄(公罪)와 사죄(私罪)의 구별이 있게 된 까닭입니다. 전하께서 오늘날의 일을 시험삼아 보건대, 형관(刑官)이 조율(照律)함에 있어 공죄(公罪)라 하여 정당하게 의논하는 자가 있으며, 수령 중에 잘 다스린다 하여 포상받는 자가 있습니까. 이는 다름이 아니라 중외(中外)의 신하들이, 성상의 마음이 퇴폐한 것을 진작시키는 데 있다고 망령되이 헤아리고서는 실정과 형세를 헤아리지 않고 점점 더 심하게 법을 남용하여, 전하께서 죄수를 신중히 심리하는 성덕(盛德)을 도와 펴지 못하고 진(秦)나라 말기의 독촉하던 풍습으로 바꾸어 나가니, 이것이 신이 매우 애석하게 여기는 바입니다.

또 주현(州縣)의 창고 곡식은 수재와 한재를 대비하고 군량을 비축하기 위한 것이니, 비록 한 되나 한 말이 축났더라도 관리가 마땅히 그 책임을 져야 하고 납입하지 않는 자는 실로 그에 해당한 죄가 있습니다. 그러나 수년간 포흠(逋欠)한 것은 한 관리의 책임이 아니며 정처없이 떠돌아 없어진 집에 대해서는 징수할 곳이 없기 때문에 오랜 기간 동안을 한갓 헛 문서만 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관리가 도배(徒配)의 형벌을 받은 뒤로부터는 수령들이 각자 자신을 보호하려고 이웃과 친족까지 침해하고 끝내는 다른 사람의 친족이라고 하여 혹 민결(民結)에 두루 징수하는 경우까지도 있는데, 그중 황해도와 평안도가 더욱 심합니다. 재물을 긁어 모으면 백성이 흩어진다고 한 성인의 훈계가 간절하고 이미 포흠된 것에 관한 정사는 《강목(綱目)》에 특서(特書)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1년치의 비축도 없고 사방에 걱정거리가 있으니 실로 달리 변통할 수 없습니다.

신이 일찍이 정승 자리에 있으면서 영흥(永興)의 공사(公事)를 인하여 그 포흠한 숫자를 계산하여, 풍년에는 그 반을 봉납하고 사소한 흉년에는 그 숫자를 등급에 따라 삭감하고 큰 흉년에는 징수를 면제하고 1백 석 이상은 또 차등을 두어 삭감하며 기간을 따지지 말고 준만(準滿)으로 기한을 하되, 여러 도에 똑같이 시행하자는 뜻으로 회계하여 윤허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신이 오래된 체증을 앓는 중이어서 정신이 혼미하여 그 조목을 상세하게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그후 그 일이 이미 성명(成命)이 되어 팔도에 반포되었는데 지금까지 시행하지 않고 장부만을 살펴 징수하기를 독촉하니, 혹 조정에서 달리 뒤따라 처분한 일이 있습니까? 신의 어리석은 뜻으로는 그 문서가 반드시 해당 부서에 있을 것이니,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가져다 살펴보도록 하되 꼭 신의 말처럼 할 필요는 없으며 참작하고 가감하여 반드시 시행하게 한다면 민폐를 조금이나마 풀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생각건대 옛 일을 그대로 따른 지 오래되어 새 것과 옛 것을 판단하기 어렵고 폐단이 해마다 불어나 그칠 때가 없으니, 이는 다름이 아니라 새로 부임한 수령이 전임 관원을 적발하는 일에는 어렵게 여기고 조정에 거짓으로 보고하는 죄에는 편안히 여겨 봉납하지 않은 것을 이미 봉납한 것으로 만들고 하나도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들며 하는 일 없이 세월만 보내 이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조정이 만약 새로 부임한 관원으로 하여금 즉시 감사에게 보고하고 차사원(差使員)을 요청하여 현존하는 곡식을 자세히 조사하고 사실대로 기록하여 보고한 뒤에야 비로소 창고의 문을 여닫게 한다면 해부(該部)는 문서만을 가지고 사방에 저축된 곡식이 얼마이며 포흠이 얼마인가를 두루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가령 잘못이 있을 경우 앞에 간 자도 요행으로 모면하는 폐단이 없을 것이고 뒤를 이은 자도 뒤섞여 죄를 당하는 걱정이 없을 것이니, 해조로 하여금 가능한지를 시험토록 하는 것이 어떠할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이보다 더 큰일이 있습니다. 조종(祖宗)의 자손은 비록 소척(疎戚)과 귀천(貴賤)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한 근원에서 나왔으니, 열성(列聖)들이 비호하던 뜻과 현재 돈독히 하는 정은 반드시 길가는 사람을 대우하듯 하는 것과는 다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예와 같이 강등되는 일은 나라가 존재하는 한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추쇄 사목(推刷事目)에 ‘종성(宗姓)의 얼파(孼派)로서 6대(代) 이후에는 속면(贖免)을 허락치 않는다.’고 되어 있다고 들은 듯한데, 그렇습니까? 어찌 그렇겠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나라가 보첩(譜牒)을 밝히고 은의(恩意)를 넓히는 도가 아닌 듯싶습니다. 다소의 종예(宗裔)들이 원통하게 여길 뿐 아니라 여론도 또한 탄식하고 슬퍼합니다. 군오(軍伍)에 정역(定役)하는 것도 오히려 타당치 않은데 더구나 각사(各司)의 천례(賤隷)이겠습니까. 신의 어리석은 뜻으로는 종부시로 하여금 종파의 진위를 조사하게 하여 대수(代數)를 논하지 말고 모두 속(贖)을 바치고 천인의 신분을 면하도록 허락한다면 은혜를 미루어 널리 베푸는 데에 만에 하나라도 도움이 있을 듯합니다.”

하니, 상이 답하기를,

“올라온 차자를 살펴보니 모두가 약석(藥石)과 같은 말이고 서로 대한 듯하니 매우 기쁘고 위안이 되었다. 경의 지극한 충성이 아니면 어떻게 이에 이르렀겠는가. 진달한 일은 마땅히 묘당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처리하도록 하겠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36책 48면
 
【분류】 *신분-천인(賤人) / *호구-이동(移動)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정론-정론(政論) / *과학-천기(天氣) / *구휼(救恤) / *교통-수운(水運) / *인사-임면(任免)     

 
번호 작성자 제목 등록일 조회수
62 이주관 이인상선생 탄신3백주년 기념전시회 2010-10-09 2136
61 이주관 마음의 수양 [백강 이경여 선생] 2010-10-07 1826
60 이주관 공직의 기강 [이병문 선생] 2010-09-10 1828
59 이주관 우리역사를 바로 알자 2010-08-27 1997
58 이주관 마음을 다스림 (백강 이경여 선생) 2010-08-24 1867
57 이주관 나태함의 극복 (서하 이민서 선생) 2010-08-21 1717
56 이주관 충효 정신 [한포재 이건명 선생] 2010-08-18 1772
55 이주관 세종대왕의 한글창제와 우리문화의 발전 2010-08-10 1850
54 이주관 아름다운 사직 [이연상 선생] 2010-07-30 2078
53 이주관 "음악"에 대하여 2010-07-26 2093
52 이주관 인생무상 [병산 이관명 선생] 2010-07-24 1934
51 이주관 풍요로운 정신세계를 위하여 2010-07-14 1887
50 이주관 사람다운 삶을 추구하며 2010-07-01 1752
49 이주관 하늘의 뜻을 어기지 않으니 2010-06-28 1868
48 이주관 계지술사(繼志述事)의 정신 2010-06-11 2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