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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임사화"의 교훈
날짜 2010-10-29 17:54:27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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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무고하게 많은 생명들을 앗아간 참혹했던 "신임사화"의 개요라 할 수 있겠다.

 

저의 10대조이신 소재 이이명 선생과 한포재 이건명 선생등이 이로 인한 참화를 당하시고 나라의 많은 인재를 잃었다.

 

오늘날에는  기독교 사상에 뿌리를 둔 민주주의가 널리 펴져나가고 있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도 꽤 성숙해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아직도 무고한 생명을 파리목숨처럼 대하는 것이 현실이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효시와 모범은 아무래도 영국과 미국의 정치제도에서 찾지않을 수 없는데, 이들 나라에서는 정치적인 사유로 인하여 인명을 무고하게 빼앗는 일은 자행되지를 아니한다. 그 무엇보다도 생명을 중시하는 사상이 철저한데 이는 성경에 근거한 "천부인명사상"에 기인한다고 보겠다.

 

우리의 성리학의 후학들은 이러한 인명중시사상을 고양시켜나가는 연구에 더욱 진력하여, 전세계인류의 인간다운 삶의 회복에 앞서가는 역할을 하면 매우 좋을 것이다.

 

우리 선현들의 말씀과 행적을 찾아보면 이러한 예는 많이 발견될 것으로 생각된다.

 

 한예로 조선시대 우리나라에서도 사형은 삼삼제로  하고 최종심은 임금이 직접주재하시었다고 한다.

 

또 성군이신 세종대왕께서는 이문제를 어찌 다루셨는지 연구해보면, 세종께서는극진히 백성의 생명을 사랑하시고 아끼셨을 것이며, 이러한 선례들로부터 우리는 서구 민주주의를 넘어 우리 스스로의 더 훌륭한 민주주의를 이루어 갈 수도 있을 것이다 .

 

백강 이경여 선생이 1657년(효종 8년) 5월5일 상차하신내용중에 다음은 이에 참조가 된다.

 

"또 근년 이래로 법의 뜻이 점점 무너져서 악을 징계하는 법은 너무 무겁고 생명을 중시하는 인애(仁愛)는 미덥지 못하여, 한 여름에 사람을 죽여도 유사는 왕명을 받들어 이행할 뿐 간쟁하지 않고 전하께서는 한 마디로 결단하고 의심이 없습니다. 공경이 삼복(三覆 중죄인을 세 번 심리하는 일)할 때 임금이 풍악을 듣지 않는 것은 선왕의 훌륭한 뜻인데 오늘에 이르러 실추될까 염려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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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사화에 대하여 2008/07/10

 

 

조선조의 사색당쟁(四色黨爭)을 말할 때 신임사화(辛壬士禍)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사화야말로 당쟁이 낳은 정치적 사건 가운데에서도 가장 악명이 높기 때문이다. 조선의 당쟁은 이 신임사화에서 그 절정을 이루었던 느낌이다. 이 신임사화를 이야기할 때 김일경(金一鏡)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 이 사화의 주역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주지하는 바 그 김일경이 우리 광김 출신이었다. 그의 파계를 만성대동보에서 살펴보면 사계(沙溪)의 증조대에서 갈리었으므로 사계파의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숙종 28년 문과에 장원(壯元)하고 동 33년 중시(重試)에 또한 장원을 한 바 있는 영재였다.

 

경종 초에 노론 정권이 왕의 병약을 이유로 왕세제(王世弟, 延仍君, 후에 英祖)의 대리청정(代理聽政)을 주장하여 실시케 되자 소론(少論)으로서 당시 이조참판이던 김일경(金一鏡)이 소론의 영수 조태구(趙泰耈) 등과 함께 왕세제의 대리청정을 철회케 하는 데 성공하고 뒤이어 노론사대신(老論四大臣-金昌集, 李頤命, 李健命, 趙泰采)을 탄핵 귀양보냈다.

 

이에 조태구가 영의정이 되어 소론 정권이 성립되면서 대사헌을 거쳐 형조참판에 이른 김일경은 노론의 대거 숙청에 앞장을 섰다. 경종 2년(1722) 그는 노론 숙청의 구실을 만들기 위하여 노론파에 속한 목호룡(睦虎龍)을 매수하는 데 성공, 노론이 경종을 시해(弑害)하고 왕위를 빼앗으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무고(誣告)하게 했다. 경종은 즉시 목호룡이 지목한 혐의자 60여 명을 국문(鞠問)하니, 이들은 왕세제를 모함하기 위한 소론 및 남인들의 조작극임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로써 노론사대신은 차례로 죽음을 당하고 200여 명이 화를 입는 참극이 벌어졌다. 이 옥사(獄事)는 경종 1년 신축년에서 동 2년 임인년에 걸쳐 일어났기 때문에 신임사화(辛壬士禍)라고 한다.

 

이 사화 뒤에 김일경은 우참찬에 승진했으나 경종이 불과 4년만에 죽고 영조가 즉위(1724)하니 사태는 반전(反轉)되었다. 영조는 왕세제 시절부터 소론측의 배척을 받아온 데다가 목호룡의 무고로 한때 생명마저 위협을 받았던 터이라 김일경, 목호룡은 즉각 체포되어 김일경은 일단 귀양을 갔다가 처형되었고, 목호룡은 참형을 받아 효수(梟首)되었다. 이 때 김일경의 아들들도 4자개교살(四子皆絞殺)이라 했으니 아마도 그의 자손은 절손이 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정의와 진실은 영원히 가려지지 아니한다.  [박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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