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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죽음(死亡)을 넘어서
날짜 2010-11-13 07:08:52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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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死亡)을 넘어서

 

 

우리들이 분주한 일상생활에 묻혀 잊고 지내다가도 끝내 되돌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중대한 일이 앞으로 맞을 죽음에 대한 생각이다.

 

 

흔히 죽음을 福되게 맞는 것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관심사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무엇보다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떠한 死亡觀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 삶의 궁극적인 가치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된다.

 

 

이에 죽음에 대한 불교적인 관점과 기독교적인 관점 그리고 유교적인 관점을 정리해 보았는데, 우리 성리학의 후학들이 이를 더욱 심화 발전시켜 많은 이들에게 큰 유익을 가져다 줄 수 있기를 바란다.

 

 

 

 

1. 불교의 死亡觀

 

 

천지의 죽음은 곧 우리들 한 부분의 죽음을 뜻한다. 그리고 우리들 차례에 대한 예행연습이며 현재의 삶에 대한 반성이다. 삶은 불확실한 인생의 과정이지만 죽음만은 틀림없는 인생의 매듭이기 때문에 보다 엄숙할 수밖에 없다. 삶에는 한두 차례의 시행착오가 용납될 수 있다. 그러나 죽음에는 그럴 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그러니 잘 죽는 일은 바로 잘사는 일과 직결되어 있다. [본생경]

 

 

태어난 것은 죽음을 피할 길이 없다. 늙으면 죽음이 온다. 실로 생이 있는 자의 운명은 이런 것이다. 익은 과일은 빨리 떨어질 위험이 있다. 그와 같이 태어난 자는 모두 죽지 않으면 안된다. 그들에게는 항상 죽음의 두려움이 있다. 젊은이도, 노인도, 어리석은 이도, 지혜로운 이도, 모두 죽음에는 굴복해 버린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그들은 죽음에 붙잡혀 저 세상으로 가지만 부모도 그 자식을 구하지 못하고 어느 누구도 죽음으로 가는 이들을 구하지는 못한다. 보라, 모든 이들이 애타는 마음으로 지켜보지만 그들은 하나씩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사라져 간다. [숫타니파타]

 

 

 

 

2. 기독교의 死亡觀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the image of the heavenly)을 입으리라”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썩지 아니하고 영광스럽고 능력이 있는 神靈한 몸으로 復活 한다는 의미임 (고린도 전서 15장49절)

 

 

마케도니아의 필립 왕이 고정된 임무를 맡긴 한 노예가 있었다. 그의 임무는, 필립 왕이 살아 있는 동안, 매일아침 왕에게 나아가 왕이 무엇을 하고 있든지 간에 커다란 목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필립이여, 그대는 죽어야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사망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아직 경험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반드시 경험할 일이다. 기독교인이라고 할지라도 육체적인 사망으로부터 구원할 될 수는 없다. 살아있는 만물은 언젠가는 꼭 죽어야 한다.

 

 

예수님도 죽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을 통하여 사망에 대한 승리를 성취하셨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망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제시 하셨다. 사람들은 생명이 끝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생명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예수님은 永生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신 것인데, 부활로 罪(하나님을 떠남)와 그로 인한 사망을 타파하셨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42-44절) 죽음의 때에 사망하는 것은 육의 것으로 이는 썩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는 썩지 않을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것, 신령한 몸이 있음을 안다.

 

 

죽음은 우리를 하나님으로 부터 분리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보다 확고하고 영원한 하나님과의 교제의 자리로 우리를 인도한다. 예수님은 사망에 승리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CBS방송 QT, 2010.10.19 자]

 

 

 

 

3. 유교인의 死亡觀

 

 

공자님은 사후에 세계는 스스로 알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에 유교인의 사망관을 대변하여 백강 이경여 선생의 유차(遺箚)를 조선왕조실록에서 인용 소개한다. 백강공은 “하늘을 섬기는 도리”와 “마음의 수양”을 조정에서 누누이 강조하시며 정사에 임하여 나가신 분이다.

 

 

효종 8년(1657년) 8월 8일

 

 

대광보국 숭록대부 영중추부사 이경여(李敬輿)가 죽었다. 그의 유차(遺箚)에,

 

 

“신이 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받았으나 티끌만큼의 도움도 드리지 못한 채 지금 미천한 신의 병세가 위독해져 하찮은 목숨이 곧 끊어지게 되어 다시금 상의 모습을 우러러 뵙지 못하고서 밝은 시대를 영원히 결별하게 되었으니 이 점을 땅속에 들어가면서 구구하게 한하고 있습니다. 오직 원하건데, 전하께서는 지나치게 기뻐하거나 성내는 것을 경계하고 편견을 끊으시고 착한 사람을 가까이 하고 벡성의 힘을 양성하여 원대한 업을 공고하게 다져 죽음을 눈앞에 둔 신하의 소원에 부응해 주소서, 신의 정신이 이미 흩어져 직접 초안을 잡지 못하고 신의 자식에게 구두로 불러 주어 죽은 뒤에 올리도록 하였습니다.” 하였는데, 상이 정원에 하교하기를,

 

 

막 원로를 잃고 내 몹시 슬퍼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이어 유소를 받고 보니 경계해 가르침이 더없이 절실하고 내용이 깊고 멀어 간절한 충성과 연연해하는 정성이 말에 넘쳐 흘렀으므로 더욱 슬퍼서 마음을 진정할 수 없다. 띠에다 써서 가슴이 새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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