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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갈등의 극복
날짜 2010-12-04 11:45:20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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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극복

 

 

최근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으로 온 나라가 한마음으로 매사에 임하여 이난국을 타개하여가야 할 것임에도, 국회와 서울시의회에서의 분열과 이로 인한 추악한 몸싸움을 개탄하는 글이 유력일간지에 실렸다.

 

 

우리나라 국민성이 좋은 점이 많으나 시정해야할 점이라면 손꼽히는 것이 아마도 서로 화합히지 못하고 스스로 분열 반목하여 내부로부터 무너지는 폐단일 것이다.

 

 

이에 대한 경계의 글들이 있어 아래에 싣는다.

우리 성리학의 후학들이 이에 대해서도  더 좋은 견해를 밝히고  실천하여감으로 나라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으면 좋겠다.

 

 

 

1. 백강 이경여 선생의 견해

 

 

효종 4년(1653년) 7월 2일 선생의 “재난극복을 위한 상차문”에는 다음의 대목이 있다.

 

 

이른바 붕당을 없애야 한다[去朋黨]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는 뿌리박은 것이 이미 굳고 여파가 점점 퍼지므로 본디 쉽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한갓 그 이름을 미워하여 모두 없애려 하면 백마청류(白馬淸流)의 화(禍)769) 가 될 것이고, 양편을 다 보존하면서 조정하려 하면 우이(牛李)가 서로 반목한 일770) 이 될 것입니다. 오직 옳은 것을 옳게 여기고 그른 것을 그르게 여기며 어진 자를 어질게 여기고 악한 자를 악하게 여기며 덕을 헤아려 지위를 주고 재능을 헤아려 벼슬을 맡기며 죄가 있는 자는 형벌하고 착한 일을 한 자는 상주어 공정하고 밝은 것이 다 지극하고 피차가 모두 잊을 수 있다면 사물이 각각 마땅한 데로 돌아갈 것이니, 어찌 사사로이 붕당을 맺을 걱정이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고 피차를 견주어 먼저 색목(色目)을 나눈다면, 군자는 그 뜻을 행할 수 없고 소인은 그 사사로운 것을 들일 수 있으므로 혐의스러운 것을 염려하여 자취를 감추거나 아부하여 더러워질 것이니, 또한 나라에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

《서경(書經)》에 ‘백성에 간사한 무리가 없고 관리가 사욕에 치우친 덕을 가진 자가 없는 것은 임금이 표준을 세우기 때문이다.’ 하였고, ‘치우침이 없고 기욺이 없으면 표준에 모여 표준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였는데, 어찌 다른 뜻이 있겠습니까. 평탄하며 기울지 않고 넓고 멀어서 사사로운 것을 끼우지 않는 것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전하께서 자신을 삼가서 조림(照臨)하신 지 이미 5년이 지났으니, 조신(朝臣)의 사정(邪正)·현우(賢愚)와 논의의 시비·곡직을 어찌 통촉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전하께서 사정(邪正)이나 시비에 대하여 반드시 다 그 정상을 알지 못하여 혹 서로 어그러지게 하는 점이 있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붕당을 미워하는 일념에 먼저 가려져서 사람들이 엿보고 헤아려 그 자취를 감출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훤히 크게 공정하여 사심이 없게 하여 시비를 판별하는 본체를 잃지 않으시어, 미추(美醜)와 경중(輕重)이 각각 그 바른 것을 얻게 하셔야 할 것입니다.

 

 

 

 

 

[註 769]백마청류(白馬淸流)의 화(禍) : 당 애제(唐哀帝) 때에 주전충(朱全忠:뒤에 후량 태조(後梁太祖)가 됨)이 장정범(張廷範)을 태상경(太常卿)으로 삼는 것을 배추(裴樞)가 반대하다가 좌천되어 활주(滑州)로 가는데 주전충이 백마역(白馬驛)에 사람을 보내어 배추를 죽여 시체를 황하(黃河)에 던져 넣게 하였다. 당초에 주전충의 좌리(佐吏) 이진(李振)이 “이들은 스스로 청류(淸流)라 하니 황하에 던져 영구히 탁류가 되게 해야 하겠습니다.” 하였다. 《당서(唐書)》 권140 배구전(裴樞傳). ☞

 

 

[註 770]우이(牛李)가 서로 반목한 일 : 당(唐)나라 목종(穆宗) 때부터 무종(武宗) 때까지 약 40년 동안 우승유(牛僧孺)·이종민(李宗閔) 등과 이길보(李吉甫)·이덕유(李德裕) 등이 서로 붕당을 만들어 반목한 일. ☞

 

 

 

 

2. 성경(Testament)에서의 교훈

 

예루살렘교회는 역사에 등장하는 첫 번째 교회이다.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 성령강림이 있은 이후 시작된 교회이다. 교회가 시작되는 즈음에 은혜와 사랑이 넘치는 교회로 시작하였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그러하듯이 예루살렘 교회에도 불평불만이 쌓이고 갈등이 일어나더니 급기야는 파당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그 사정을 사도행전 6장이 시작되면서 다음 같이 쓰고 있다.

 

"그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 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사도행전 6장 1절)

 

예루살렘 교회에 교인 수가 많아지게 되면서 은연중에 두 파벌이 생겨나게 되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과 헬라 파 유대인이란 양대 파벌이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사도들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가 시작되는 초창기에서부터 모인 주류에 해당한다. 헬라 파 유대인이란 늦게 전도 받고 들어온 사람들이다. 이들 중에는 젊고 유식한 인재들이 많았을 것이다. 갈등의 시작은 교회에 들어오는 헌금으로 가난한 교인들을 돕는 일에서 시작되었다.

 

신주류격인 헬라 파 유대인들이 볼 때에 구주류격인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하는 처사가 도무지 공평하지를 못한 것처럼 보였다. 헌금으로 과부들을 구제하는데 자신들과 가까운 과부들만 돕고 나중 들어온 헬라 파 유대인에 속한 과부들은 번번이 도움에서 제외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하여 불만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야 이것 봐라! 사랑, 사랑 하면서 자기들끼리만 사랑이지 나중 들어온 우리는 완전히 찬밥신세이잖나!" 하는 불만이었다. 이런 불만이 그릇된 방향으로 자라게 되면 분쟁과 분열의 씨앗이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런 정황에서 사도들이 정말 성숙된 자세로 처리하였다. 지혜로운 처신으로 교인들 사이에 일어난 갈등과 분열의 분위기를 완전히 극복하고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았다. 사도들은 세 가지 원칙으로 접근하여 갈등을 극복할 수 있게 하였다.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사도행전 6장 2~4절)

 

첫번째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에 갈등이 일어나고 파벌이 생겨지자 사도들은 참으로 지혜롭게 처신하였다. 그런 갈등이 오히려 단합과 성장의 기회로 삼아 전화위복이 되게 하는 전기를 삼았다. 사도들이 갈등을 극복하는 데에 적용한 방법은 세 가지였다.

 

첫째는 민주적인 절차를 밟아 해결하였다.

둘째는 개방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접근하였다.

셋째는 본질적이고 영적인 해결을 하였다.

 

사도들이 훌륭하였던 것은 갈등이 일어나게 된 원인에 대한 이해를 올바르게 하였다. 갈등을 일으키는 당사자들에게 책임을 물으려들지를 않고 사도들 자신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교회가 급작스럽게 부흥하여 관리 접대 구제 등에 일이 많아지자 지도자들인 사도들은 그런 일들에 대한 행정처리에 매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말씀을 전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소홀히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일어났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에 오는 것은 은혜를 사모하고 말씀을 사모하여 오는 것인데 사도들이 행정 관리 잡무에 매이게 되니 그런 영적인 본질에 채움을 받지 못한 교인들이 불평이 일어나게 된 것이었다. 사도들은 문제의 본질을 그렇게 이해하였다. 그래서 교인들을 모두 한 자리에 모이게 하고 개방적으로 공개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갔다.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두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사도행전 6장 2~4절)

 

역사상 첫 번째 교회였던 예루살렘 교회가 신도수가 늘어나면서 갈등이 일어나고 파벌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에 사도들은 이런 정황에 대하여 지혜롭게, 성숙한 자세로 대처하였다. 먼저 문제가 일어난 원인을 불평을 하는 사람들에게로 돌리지를 않고 지도자들인 사도들 자신들에게로 돌렸다. 자신들이 영적 본질인 말씀 전하는 일에 전념치를 못하고 행정 관리 접대에 열중하다 보니 신도들 사이에 영적인 배고픔으로 인하여 이런 사태가 일어나게 된 것으로 인식 하였다.

 

그리고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민주적으로, 개방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극복하여 나가는 길을 제시하였다. 모든 제자들을 한 곳에 모이게 하고는 말하였다.

 

“우리 사도들이 행정 접대에 매여 말씀 전하는 일에 게을리 하여 일어난 일이니, 이런 처지를 함께 극복하여 나가자. 여러분들이 일곱 사람의 일꾼을 민주적으로 뽑아 달라. 우리가 행정 접대하는 일들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본연의 임무인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전념하겠노라.”

 

이렇게 이르고는 그 일곱 사람을 뽑는 기준으로 두 가지를 제시하였다. 

첫째,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영적으로 바로 선 사람.

둘째, 사람들에게도 인정받고 칭찬 받는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

 

이 두 가지 기준을 따라 신도들이 일곱 일꾼을 뽑으니 이들이 바로 교회사상 첫 번째 집사인 일곱 집사들이었다. 이런 절차를 밟는 동안에 신도들 중에 도사리고 있었던 오해와 불신, 갈등과 분열은 말끔히 사라지고 무리가 기쁨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사도행전 6장 7절)

 

사도행전 6장이 시작할 때에는 예루살렘 교회 안에 불평과 갈등이 가득하였다. 그러나 사도들이 지혜롭게 일을 처리하고 난 후에는 오히려 기쁨과 화합이 성도들 사이에 가득하게 되었다. 사도들이 그렇게 지혜롭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3년간 예수님을 모시고 지나면서 배운 영적 지도력이 그 비결이었을 것이다.

 

그런 영적 지도력에 대하여 예수께서 친히 이르신 말씀이 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마가복음 10장 42절 ~45절)

 

제자들은 교회 안에 갈등이 일어나게 되었을 때에 스승으로부터 배운 섬기는 지도력, 희생하는 지도력을 실천하였다. 그래서 문제발단의 원인을 자신들에게서 찾고 자신들을 낮추는 위치에서 민주적으로 개방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인 접근으로 해결하니 온 회중이 기쁨으로 따르게 되었다. 그래서 공동체 안에 화합과 부흥의 기운이 솟구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사도행전6장 7절)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한국교회는 자랑스러운 교회이다.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성공한 교회요, 이 겨레의 근대화와 민주화를 앞장서서 이끄는데 헌신하여 온 교회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통일한국시대의 민족복음화와 아세아 복음화에 크게 쓰임 받을 교회이다.

 

그럼에도 한국교회에 몇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치병기복신앙을 지나치게 앞세우는 샤머니즘적인 바탕, 물량주의적인 사고, 결핍된 역사의식 등이 그런 취약점들에 속한다.

 

그에 덧붙여 비민주적인 운영구조 역시 한국교회의 취약점들 중의 하나이다. 그런 점에서 사도행전 6장에 나오는 예루살렘교회의 사례는 우리들에게 바람직한 본보기가 된다. 예루살렘교회에 신도수가 늘어나면서 행정관리에 난맥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로 인하여 신도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고 파별이 생겨나 분열의 조짐이 나타나게까지 되었다. 이런 대에 지도자들인 사도들이 현명한 조치들을 취하여 갈등과 분열이 극복되어지고 오히려 교회가 더욱 단합되어지고 부흥하게 되었다.

 

그런 결과로 세 가지 열매가 맺어졌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케 되었다. 6장이 시작하는 때에는 불평과 불만이 가득하였는데 사도들의 민주적이고도 영적인 조치에 힘입어 말씀이 왕성케 되었다.  

둘째는 제자의 수가 더 많아지게 되었다. 제자들 사이에 싹이 트려던 갈등과 분열이 사라지고 한 마음이 되면서 제자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셋째는 허다한 무리도 ‘십자가의 도’에 복종케 되었다. 갈등과 분열이 변하여 큰 부흥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예루살렘교회 갈등극복의 예는 오늘날 우리들의 모든 조직생활에서의 갈등극복에 교과서이자 본보기가 된다. [2010.11. 뉴라이트 전국연합회장 김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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