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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용돌이 구름 (이인상 선생)
날짜 2011-01-20 13:11:17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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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보면 무슨 그림인지 모른다. 넘실거리는 파도인가, 노후 차량이 내뿜는 매연인가. 둘 다 아니다. 소용돌이치는 먹장구름이다. 세상에, 거세게 휘감기는 구름덩어리로 화면 온 곳을 다 채우다니, 조선 그림에 이런 장면은 일찍이 없었다.

기법 또한 별나다. 전후(戰後) 추상표현주의 작가 잭슨 폴록이 선보인 드리핑(물감 흘리기)을 연상시킨다. 재빠르게 붓을 놀린 품새하며 신명나게 먹물을 짓이겨 놓은 꼴이 형상보다는 행위에 방점이 찍힌 액션 페인팅 같다. 18세기 조선에 20세기 기법이라니, 씨알도 안 먹힐 소리다. 하지만 어떤가, 착안과 구성이 현대작가 뺨치지 않는가.

먹구름을 그린 화가는 짐짓 딴소리 한다. 그림에 이렇게 적었다. ‘…시를 생각했는데 술 취해 쓰려다 구름뭉치가 되었소. 이 모양이 되었으니 그저 웃음거리외다.’ 시를 쓰려고 맘먹었는데 술김에 구름이 되어버렸다? 변명인즉 구름 잡는 소리다. 제 아무리 술 핑계를 댄들 저 흉흉한 구름은 화가의 숨겨진 속내가 분명하다. 울혈이 지지 않고서야 저런 그림 나올 턱이 없다.

화가는 문자속 깊기로 유명한 이인상이다. 완산 이씨 번듯한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서출 신분에 묶여 겨우 고을 원님 자리를 맴돈 비운의 선비다.

그는 말했다. “세상이 혼탁해서 나를 알아주지 못함이여, 잃고 얻는 것이 아침저녁에 달렸구나.” 우레와 벼락이 치고 세찬 장맛비가 금방 쏟아질 것 같은 그림은 불우했던 그의 일생을 대변한다. 그림이 인생이고 인생이 그림이란 말은 괜한 말이 아니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학고재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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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호관 이인상선생은 당대 최고의 명문 백강이경여 선생의 현손이었으나 서출자손이라는 신분의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인품이 고매하고 학문을 사랑하였으며, 미술과 서예에 탁월한 경지에 이르러 오늘날 조선 최고의 문인화가로 평가되며 그의서체인 원령체("원령"은 이인상 선생의 다른 아호임)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신분상의 제약이 이러한 걸출한 작품을 낳게 하였다고 생각되나, 그의 삶이 얼마나 회한에 차있었을 것인지 가늠할 수가있다.
오늘날의 세상은 인권을 존중하는 기독교사상 등의 영향으로 많은 개선이 있다고 하나, 우리 성리학의 후학들이 더욱 정진하여 이러한 억울함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할 수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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