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참여마당 > 참여게시판
 
 
 
제목  근정(勤政)의 자세와 무상시리즈
날짜 2011-01-21 09:55:18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719
첨부파일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근정(勤政)의 자세와 무상시리즈

 

1. 근정(勤政)에 대하여

 

효종 4년(1653년) 7월 2일 백강 이경여 선생이 올린 상차문에는 아래의 구절이 있어 임금이라도 열심히 일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이른바 근정(勤政)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위사(衛士)에게 음식을 먹이라 명하거나 날마다 입계한 문서의 일정한 양을 스스로 재결하는 것만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운행은 씩씩하여 쉬지 않으니, 이를 몸받는 자가 조금이라도 간단(間斷)이 있으면 만화(萬化)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주 문왕(周文王)이 해가 중천에서 기울 때까지 밥먹을 겨를이 없었고, 상탕(商湯)이 어둑한 새벽에 일어나 날이 밝기를 기다린 것이 어찌 일할 것이 없어서 그랬겠습니까. 조무(趙武)가 진(晋)나라의 경(卿)이었을 때에 일영(日影)을 보며 탐하니, 군자(君子)는 그가 마침내 잘 끝내지 못할 것을 알았습니다.765) 더구나 존귀한 임금이겠습니까. 《예기(禮記)》에 ‘장엄하고 경건하면 날로 강해지고 안일하고 방자하면 날로 투박해진다.’ 하였습니다.”

 

[註 765]조무(趙武)가 진(晋)나라의 경(卿)이었을 때에 일영(日影)을 보며 탐하니, 군자(君子)는 그가 마침내 잘 끝내지 못할 것을 알았습니다. : 조무는 일명 조맹(趙孟), 진(秦)나라의 후자(后子) 침(鍼)이 조맹과 함께 진 나라 임금의 무도(無道)함을 이야기할 때에 진나라 임금은 일찍 죽되 5 년은 갈 것이라 하니, 조맹이 일영(日影)을 보며 “아침저녁이 서로 달라지는데 누가 능히 5 년을 기다리겠는가.” 하였는데, 후자가 나가서 남에게 말하기를 “조맹이 곧 죽을 것이다. 백성을 맡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한 해를 탐하고 하루를 탐하니, 더불어 얼마나 가겠는가.” 하였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昭公) 원년(元年). ☞

 

 

 

2. 무상 시리즈와 거지 근성

.

요즈음 정치권에서 무상(無償) 시리즈가 펼쳐지고 있다. 무상급식에서 시작하더니 무상의료, 무상보육에까지 번지고 있다. 지난 해 선거에서 무상급식으로 재미를 본 터라 더욱 기세를 올리고 있는 듯하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논란은 재정을 감당할 능력이 있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더 깊은 곳에 있다.

 

재정능력보다 무상 시리즈로 인하여 발생할 국민들의 생각과 행동에 미칠 도덕적 해이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병원에 누워있는 것이 일하는 것보다 편한데 병원이 공짜라면 안 아파도 아프다 할 사람들이 있게 된다. 병원에서는 어차피 정부에서 비용이 나올 것이기에 환자에게 정성을 들이지 않게 된다. 나라 전체로서는 복지 지출이 늘어나도 서비스의 질은 떨어진다. 일하는 사람은 줄어들고 복지에 의존하여 사는 사람은 늘어난다. 그래서 무상 시리즈는 거지근성을 길러주어 거지문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우리 사회는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됨에 따라 복지 수요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이런 때에 우리나라에 맞는 복지제도를 정착시키려면 국민정신과 문화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앞서야 한다. 공짜시리즈인 무상 시리즈는 거지문화를 확산시킬 것이다. 중남미의 경우에서 보듯이 포퓰리즘(populism)을 토대로 한 무상복지의 확대는 경제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복지가 중요하지만 복지를 제대로 하기 위해선 경제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그러나 경제보다도 앞서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안보다. 경제는 무너져도 힘써서 다시 일으키면 되지만 안보는 무너지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그러기에 안보가 없으면 경제가 없고 경제가 없으면 복지도 없다. 반대로 과잉복지는 경제를 죽이고 경제가 약해지면 안보능력 역시 떨어진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 이런 사실을 국민들에게 잘 알려 무상 시리즈의 실천을 막아야 한다. (뉴라이트 전국연합 회장 김진홍)

 

 

 

 

3. 기독교의 노동관

 

 

전 동아건설그룹 회장 최원석씨는 회사가 부도로 넘어간 후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출근할 곳이 있다면 부러운 일입니다. 저는 출근할 곳이 없으니 아침에 눈을 뜨고 싶지 않습니다.(2001.7.2자 조선일보에서)” 라고 하였습니다. 노동도 행복이 됨을 느끼게 합니다.

 

 

동물에게는 생존을 위한 노동은 있지마는 의미를 갖게 하는 노동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들의 노동은 의미를 갖고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서의 노동의 의미는 아래와 같습니다.(이동원 목사)

 

첫째로 노동은 刑罰이 아닙니다. 인간이 犯罪하여 타락하기 이전에도 노동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즉 창세기 2장 15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Then the Lord took the man and put him into the Garden of Eden to cultivate it and keep it. NASB)"라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아담을 지어 만드시고 그로 하여금 에덴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신 것으로, 정확하게는 아담이 Cultivating 즉 경작하게 하시었다 노동하게 하시었다는 의미입니다(이동원 목사). 그러므로 인간의 墮落 이전에도 노동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인간타락이 노동에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즐거워해야 할 노동이 괴로운 노동으로 변화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인류역사, 문화 발전에 대한 주요한 寄與중 하나는 노동의 神聖함을 강조해온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가 뿌리를 내리는 곳 마다 문화와 사회가 발전하여 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성경에서의 하나님은 언제나 일하시는 하나님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시었고 사도 바울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하시었습니다.

 

둘째로 노동은 하나님의 召命입니다. 성경은 노동하는 自體를 귀하게 여기지만 그렇다고 노동 그 자체에 목적이 있다고는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榮光을 위하여 사는 것이므로 우리의 노동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할 때에 그 진정한 의미가 발견됩니다. 고린도전서10장31절에는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노동을 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요? 성실하게 일하는 것은 기본이라 할 것이고 나아가 일을 잘 해야 되고 또 좋아하는 일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일을 잘하지 못하면 세상에서는 비난을 받으니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어렵고 또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좋은 成果를 지속적으로 내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우리의 직업일 개연성(蓋然性)이 아주 높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믿는 사람들의 삶에 干涉하시고 또 우리들을 攝理하시므로 우리들의 직업도 인도 하십니다.

 

창세기2장15절을 잘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직접 지으시고 에덴동산을 경작하고 개발하고 관리하는 일을 직접 아담에게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접 일을 맡기셨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것이 소명(calling)이요 우리의 직업(vocation)입니다. Vocation이란 단어의 뜻도 본래 소명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예전에 기독교가 전래되기 전에 직업을 천직(天職)이라고 하였는데, 이를 보면 우리나라에도 하나님이 주신 어떤 일반계시 같은 감동이 있었다고 보기도 합니다(이동원 목사).

 

우리들이 직업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발견하고 일할 수 있다면 우리는 매우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셋째로 노동은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설계된 것입니다. 창세기1장28절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blessed them)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subdue the earth),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rule over)하시니라.”

 

하나님은 복을 주시면서 생육하고 번성하라고만 하신 것이 아니고 땅을 정복하라(開墾하라)고 하셨습니다. 즉 땅을 잘 경작하고 개발하고 관리하라고 하시니 이는 노동행위이며 그러므로 노동은 주신 자녀와 같이 우리에게 축복이 됩니다.

 

노동을 통하여 우리는 생계를 꾸리고 질적인 삶을 누리기도 하므로 축복이 되지만 기독교의 노동관은 여기서 더 나아가 노동의 결과로 나 뿐만이 아니라 이웃 까지도 복되게 합니다. 에베소서4장28절에는 “빈궁한자를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고 善한 일을 하라.”고 한 것이 그것입니다. 구제하기위하여도 일하여야하고 또 宣敎(mission evangelism)하기 위하여도 일하여야 할 것입니다.

 

 

 
번호 작성자 제목 등록일 조회수
92 이주관 독서에 대한 소견 2011-04-24 1589
91 이주관 분노의 극복 2011-03-29 1408
90 이주관 3대 대제학 가문의 精氣 2011-03-28 2470
89 이주관 公人의 자세 (정조대왕) 2011-03-23 1554
88 이주관 鳴梁大捷碑 - 서하 이민서 선생 2011-03-21 1561
87 이주관 세종대왕과 溫故而知新 2011-03-17 1884
86 이주관 전래(傳來)의 교육이념 2011-03-11 1463
85 이주관 형체(形體)가 없는 도(道) 2011-03-05 1566
84 이주관 소현세자와 백강 이경여 선생 2011-02-28 2039
83 이주관 相公何事未忘憂 2011-02-24 1614
82 이주관 기다림의 세월 2011-02-11 1448
81 이주관 벗은 멀리 있는데 故人多憶在天涯 2011-02-09 1790
80 이주관 연륜(年輪)의 덕(德) 2011-02-07 1486
79 이주관 경(經)과 권(權) 2011-01-29 1694
78 이주관 근정(勤政)의 자세와 무상시리즈 2011-01-21 1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