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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현세자와 백강 이경여 선생
날짜 2011-02-28 09:57:43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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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가 최초의 의문사 - 누가 소현세자를 죽였는가
인조의 맏아들 소현세자가 사망했다. 그의 나이 34세.
소현세자는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아버지 인조와 함께 삼전도의 치욕을 겪고 8년 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던 비운의 왕세자이다. 이 소현세자가 청나라 볼모생활을 끝내고 귀국한 지 2달 만에 갑자기 병에 걸려 실제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사망한 것이다.
 
    세부설명
 1. 소현세자의 시신

그의 시신은 보통사람이 사망했을 때와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소현세자의 시신은 급사에 의한 죽음으로 보여지지만 그의 공식 사망원인은 학질로 인하여 죽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대 최고의 의술을 인정 받았던 조선의 어의들이 흔한 질병이었던 학질을 치료하지 못했던 것일까. 또한 시신의 상태는 소현세자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더하고 있다.


2. 그의 죽음의 원인은?

약물중독의 의혹이 점점 커지는 소현세자의 죽음. 하지만 궁궐 내에서, 그것도 임금 다음으로 귀한 존재였던 세자를 독살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었을까.


3. 누가 소현세자를 죽였나?

당시, 소현세자가 독살 당해 죽었을 것이라는 의심이 궁궐 내에서 분분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인조는 소현세자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확인도 하지 않았고, 담당 어의에게 그 어떤 책임도 추궁하지 않았다. 진상을 캐고 있던 세자빈 강씨는 죽음을 당하고, 그 이후 진상규명을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왜 인조는 자신의 아들의 죽음에 그런 태도를 보였던 것일까.


4. 심양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조선시대, 세간의 풍문을 적어놓은 한 야사집에서는 소현의 죽음을 두고 청나라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로 인하여 죽음을 맞이했다고 전한다. 이 야사에는 인조가 소현세자를 죽였을 거라는 심증이 담겨있다. 또한 그런 심증과 그의 죽음이 청나라와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소현세자는 볼모로 잡혀 있었던 중국 심양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5. 새로운 혁명을 꿈꾼 소현세자

숭명반청을 고수하는 인조와 집권 사대부, 그리고 심양에서 새로운 현실에 눈을 뜨고 태도를 바꾼 소현세자. 보수와 개혁의 갈래에서 그들은 갈등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소현세자는 성리학 중심의 조선사회가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귀국한다. 그리고 조선 사회는 그를 사악한 것에 빠진 반역자로 몰아 세운다.


6. 그의 죽음 이후...

백성을 위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 명분보다는 실용적인 학문과 과학기술의 도입을 시도했던 소현세자. 그가 새롭게 바꾸려 했던 노력은 박탈되었고 의문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그 이후의 역사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이상은 "KBS역사 스페셜 100선" 중의 자료임]  

 

백강 이경여 선생은 소현세자가 돌아가신후 인조임금이 추진한 소현세자빈 강빈에게 누명을 씌워 사사하려는 시도에 생명을 걸고 반대하시어 북쪽 끝 삼수에 3년간 위리안치 되시었다. 이후 선생은  효종임금이 등극하시고 풀려나시고 영의정에 오르시어 북벌 계획을 추진하시게 된다.

 

오늘날 돌이켜보면 참으로 애석한 일이었으며 백강 선생의 앞날을 내다보는 탁견과 크고 유연한 사고를 읽을 수 있는데 이는 선조이신 세종대왕을 닮은 점이 있다고 하겠다.

 

백강 선생의 손자이신 소재 이이명 선생, 그의 아들 일암 이기지 선생이 중국에 나와있던 서양의 선교사 들과 교류하며 천주교를 이땅에 처음으로 소개하시고 천문 역사 지리등 서구의 앞선문물들을 이땅에 들여오신 것이 모두 같은 맥락의 열린사고 앞을 내다보는 탁견에 근거하신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날의 시대는 과학, 문명, 정보통신등의 발달로 더욱 세계가 점점더 좁아져가고 있는데, 우리에게는 열린사고로 먼저 세계의 흐름을 읽고 이에 대처하고 선도하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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