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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종대왕과 溫故而知新
날짜 2011-03-17 14:12:41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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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위대함은 이미 익히 아는 바이나, 대왕께서 아래의 설명처럼 옛 부터 내려오는 우리민족전통을 연구해서 국민이 필요한 새것들로 발전시켰왔다는 점은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아니한 것같다.

 

우리도 아래 필자의 주장처럼 세종대왕의 정신과 그가 이룬 문화를 우리의 문화로 전세계에 널리 펴고 전세계인류에 기여하는 바를 더욱 도모하여 갈 필요가 있다. 우리가 예전부터 서구등 선진국에 뒤지지 아니하는 문화선진국임을 고양시켜가야할 것이다.

 

세종대왕께서는 유교의 이상정치를 구현하신 것이므로, 아울러 우리 성리학의 좋은 면모들을 같이 전세계에 널리 알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디딤돌로 하여 우리가 앞으로의 세계문화발전에 기여하는 길을 열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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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세계에 자랑합시다

[기고] 림관헌 환태평양문화재단 회장
[0호] 2011년 03월 17일 (목) 10:22:34림관헌 dongponews@hanmail.net

  

림관헌 회장

우리가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하면 링컨을 떠 올리듯, 한국에서는 세종을 떠 올린다.

세종은 1397년에 태어나서 1418년부터 1450년 죽을 때까지 왕위에 있으면서 31년 간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였다.

대왕이라 부르기에 합당한 위대한 업적을 남기신 세종은 “국민은 먹는 것을 하늘”로 안다며 조세제도를 정비했다. 농산물 증산에 도움을 주기 위해 농사계절을 서울(경복궁)을 중심으로 계측하도록 장영실 이천 등 과학자를 기용, 최고의 해시계, 혼천의 축우기 같은 천문관측기구를 만들었다.

또한 민생을 위해 이종무를 시켜 왜구를 발본(拔本)한 왜관을 열어 통상하고, 김종서로 여진을 정벌하여 육진을 개척 북방의 국경을 안정시켰다.

박연은 악기, 악곡, 악보 등을 다듬어 전통 아악 뿐 아니라 일반백성을 위한 향악을 정리하였으며, 집현전을 두어 학문을 연구하며,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쓰기 29년 전인 1421년에 활자공방-주자소를, 그리고 1443년에는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1450년에 세워진, 세계적 모범이라 할 왕립 싱크탱크인 집현전을 설치,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하도록 하여 마침내 1443년 12월 “임금께서 몸소 28자를 고전(古篆)을 본떠” 한글을 만들었다. 이는 동 시대를 거쳐 살았던 생육신 김시습이 그의 저서 ‘징심록 추기’에서 신라 박재상저 ‘징심록’ 고본 정음(正音)중에서 채자한 것이라고 했다.

세종의 위대함은 이렇게 옛 부터 내려오는 민족전통을 연구해서 국민이 필요한 새것으로 발전시켰다는데 있다.

그 당시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 조정중신들과 사대하던 일부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을 위해 이를 뿌리치는 의연함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집현전 젊은 학자들의 연구와 실험을 거쳐 1446년 9월 상순 ‘훈민정음 해례본(解例本)’을 만들고 많은 고전 진서를 정음으로 번역 반포하여 서민문화를 크게 진화·발전시켰다.

특히 훈민정음 28자의 제정은 우리나라 역사상 세 번째 글자로 바위에 새겨져 역사에 남아있을 뿐, 사라져버린 녹도문(BC38C 신지-현덕문자)과 가림다문자(BC2181 삼랑 을보록의 38자)을 다듬은 것이다. 1928년 주시경 선생이 24자 한글로 개명 현재에 이르고, 지금은 세계적으로 과학적이고 쓰기편한 글로, IT시대의 제1의 표기법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 자랑스러운 글이 되었다.

2004년부터 시카고에서는 세종문화회(회장 김호범)가 주관, 매년 음악, 작문, 시조경연대회를 열어 세종대왕이 그의 시민들을 위해 창조적으로 발전시킨 음악, 글, 천문, 지리, 군사 등 훌륭한 전통문화를 연결 미국 각급학교에 알리고 있다.

지금 이러한 세종의 전통과 업적을 기리고 이 시대에 알맞고 미국주류사회에서도 필요한 문화적 봉사를 펼쳐가는 세종문화회는 개개인의 힘만으로는 너무도 크고 벅찬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세종문화회가 하는 일이 우리정통문화를 외국에 널리 알려, 같이 누리는 것은 우리 동포 후세들에게 조국에 대한 긍정적인 정체성 인식과 스스로에 자긍심을 심어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국제친선과 다문화 협력을 경쟁적으로 늘려가는 마당에 중국이 공자 이름만 내세운 중국문화원을 하듯 세종문화회의 이름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조국의 문화원역할까지 하는 본회에 동포사회와 한국정부의 지원이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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