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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정과 나라가 興하려면
날짜 2011-06-22 18:23:23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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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강 이경여 선생은 일찍이 인조(仁祖)임금께 아래와 같이 상언(上言)하시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는 반드시 규모(規模)를 정하고 기강(紀綱)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인주(人主)의 한 마음으로 주장을 삼아, 안으로 남이 알지 못하는 지극히 은미한 곳으로부터 계구(戒懼 경계하고 두려워함)하고 근독(謹獨 혼자 있을 때를 삼가는 일)하기를 더욱 엄격히 하고 더욱 긴밀히 하여 인욕(人欲)은 물러가고 천리(天理)가 밝게 드러나도록 한 뒤에야 가정과 나라를 다스리는 두 가지 일이 근본한 바가 있어서 정립(定立)될 것입니다. 도(道)를 행하는 데는 가인(家人 한집안사람)에게서 가장 먼저 행해야 하는 것이니, 스스로 반성하여 위의(威儀)를 가진다면 집안을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리는 효험이 드러날 것입니다.” ~~ 우암 송시열 선생이 쓰신 백강 선생 神道碑銘 중에서.

 

이러한 백강 선생의 말씀은 기본적으로 구약(Old Testament)시대의 偉人 느헤미야의 개혁과 그 정신과 자세가 같아 느헤미야의 개혁에 대하여 아래로 소개한다.

 

구약성경 느헤미야서의 주인공인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1세 때에 왕의 술을 맡은 관원이었다. 이 직책은 왕의 생명과 직결되는 중요한 직책이었기에 성실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맡을 수 없는 자리였다.

 

BC 445년 그는 조국 이스라엘이 직면한 어려운 처지를 듣고는 자신이 모시고 있는 왕에게 간청하여 예루살렘 총독직을 맡게 되었다. 총독직에 부임한 그는 먼저 허물어진 성벽을 쌓는 일로부터 역사를 개혁하는 일에 착수하였다. 당시에 성(城)이란 국가의 상징이자 주권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느헤미야가 허물어진 성을 재건한것은 허물어진 조국의 역사를 재건하였음을 뜻하는 일이였다.

 

 

느헤미야는 최악의 조건에서 시작하였다. 객관적인 조건으로는 그가 성공할 확률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뜨거운 조국애와 투철한 사명감 그리고 남다른 신앙심을 바탕으로 하여 개혁운동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그의 개혁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첫째로 그가 금식하고 기도하며 자신의 죄와 조상들의 죄를 회개한 일에서부터 시작하였던 점이다. 예나 지금이나 진정한 변화 바람직한 개혁은 먼저 자신과 공동체의 그릇된 습관 관행, 체질을 회개하여 바로 잡는 데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을 탓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자신이 고칠 것은 고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변할 것을 요구하는 데에 시간과 정력을 소모한다. 여기서부터 개혁운동은 그릇되기 시작한다.

 

느헤미야의 개혁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두 번째는 철저한 준비였다. 예나 지금이나 역사는 준비된 사람을 필요로 한다. 느헤미야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를 성취함에 있어 먼저 기도로 준비하고 나아가 개혁작업을 진행함에 필요한 모든 조건들을 하나하나 철저하게 준비하였다. 이러한 철저한 사전 준비가 그의 개혁운동이 성공에 이르는 길을 열어 주었다.

 

역사는 준비된 사람을 필요로 한다. 모세는 쓰임 받기 위하여 40세에서 80세에 이르기까지 40년의 긴 세월을 호렙산 기슭에서 준비하였다. 바울도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 위에서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 후에 3년간 아라비아 사막으로 들어가 자신의 깊은 영성을 준비한 후에야 사역을 시작하였다.

 

 

지금 이 나라에도 모든 분야에 준비된 사람들이 필요하다. 준비되지 못한 사람들이 중요한 자리에 오르게 될 때에 백성들에게 재난이 따르게 된다. 느헤미야는 그런 점에서는 우리들에게 모범이 될 일꾼이다. 느헤미야는 개혁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깊은 기도로 시작하였을 뿐 아니라 철저한 자기관리와 준비로 일에 임하였다. 그리하여 전 국민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래서 성공할 수 있었다.

 

느헤미야가 주도하였던 개혁운동이 불가능하게 보이는 조건들을 극복하고 성공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또 하나의 사유는 그 참모들이 지녔던 청렴무사(淸廉無私)한 처신 때문이었다. 느헤미야서 5장에서 그 사정을 다음같이 밝히고 있다.

 

“내가 유다 땅 총독으로 세움을 받은 때 곧 아닥사스다 왕 이십 년부터 삼십 이 년까지 십 이 년 동안은 나와 내 형제가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전 총독들은 백성에게 토색하여 양식과 포도주와 또 은 사십 세겔을 취하였고 그 종자들도 백성들을 압제하였으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이같이 행치 아니하고 도리어 이 성 역사에 힘을 다하여 땅을 사지 아니하였고 나의 모든 종자도 모여서 역사를 하였으며”(느헤미야 5장 14, 15절)

 

 

위에 인용한 말씀에서 우리는 느헤미야와 그의 형제들과 그의 일꾼들이 부정부패에서 벗어나려고 어떻게 처신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한 국가나 한 사회를 무너뜨리는 두가지 원인 가운데 그 한 가지는 외부로부터의 침략이다. 다른 한 가지는 안으로부터의 부패이다. 부패에 물들지 않는 투명한 정권이나 지도자는 기적을 낳는다. 그러나 부패한 정권이나 지도자는 다른 조건들을 다 갖추었어도 부패한 사실로 인하여 실패의 역사를 만들게 된다.

 

여기에서 제가 무엇보다 깊이 깨닫는 점은 지극히 은미한 곳으로부터 계구(戒懼 경계하고 두려워함)하고 근독(謹獨 혼자 있을 때를 삼가는 일)하는 자세와 느헤미야의 철저한 자기반성과 회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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