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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섬김의 리더쉽(Leadership)
날짜 2011-06-25 15:08:17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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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의 리더쉽(Leadership)

 

 

 

지난 2007년 12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第一聲이 국민을 섬기는 정부가 되겠다는 것이었는데 初心이 변화되지 아니하기를 바랍니다.

 

 

저의 선조가 되시므로 제가 우선적으로 공부하는 세종대왕이나 백강 이경여 선생, 한포재 이건명 선생, 소재 이이명 선생 등도 당시 성리학의 정신을 근거로 하여 모두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섬기는 삶을 살아감으로서 후세에 큰 德을 남겨 역사에 남는 임금이요 충신이 되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마가복음10: 43∼44)

다윗 왕에게는 압살롬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의 아름다움을 성경은 이렇게 칭찬했습니다.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삼하 14: 25).” 그러나 압살롬은 아버지를 대신하여 자신이 왕이 되려는 소원을 품었습니다. 많은 왕자들 중에서 홀로 높아지려고 한 것입니다. 이 소원을 이루기 위해 그는 아버지를 속이고 백성들의 마음을 도적질하였습니다. 압살롬의 그릇된 소원 때문에 아버지 다윗은 죽을 고생을 했고, 압살롬 자신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제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품은 소원은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실 때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열두 사도들 중에서 자기들 형제가 좌의정과 우의정을 다 하겠다는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이 듣고 화를 냈습니다. “너희들이 1·2등을 다 해먹으면 우리는 뭐하라는 것이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품었던 소원은 바른 소원이 아니었습니다. 자기들이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구했습니다. 그 결과 동료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고 공동체의 질서를 무너뜨렸습니다. 화를 낸 다른 제자들도 1·2등을 원했다는 점에서는 야고보와 요한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주 철이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조금 전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수난을 당하시고 죽어야 한다는 심각한 말씀을 하셨는데도 말귀를 못 알아들은 것입니다. 예수께서 수난을 세 번이나 예고하셨는데도 전혀 감을 못 잡았습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러 가시는 줄 착각했습니다.

 

이 철부지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나라의 지도력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나라의 지도력은 세상의 권력자처럼 높다고 권세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42절). 하나님나라의 지도력은 섬김의 지도력이라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43∼44절).” 그리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밝히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45절).”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모든 사람은 다 같이 귀한 생명입니다. 스스로의 헛된 욕심과 교만을 버리고 겸손히 살고자합니다. 교만한 마음은 패망의 선봉으로 마침내 불행을 가져오고 맙니다. 겸손(Humility)과 절제(Self Control)는 人德의 요체로 우리들의 삶을 福되게 이끌어 갑니다.

 

 

 

아래의 소재 선생의 상소문에서 보시듯이 효종대왕께서는 백강 이경여 선생을 “대인선생(大人先生)‘이라고 부르시며 존중하여 나라를 다스려 가는 섬김의 리더쉽을 일찍이 실천하시었습니다. 지난 왕조시대에도 이러하시었으니 민주주의인 오늘날에 이르러는 언급할 필요조차 없어 보이는 마땅한 본보기입니다.

 

숙종 실록 45권, 33년(1707 정해 / 청 강희(康熙) 46년) 8월 8일(정해)

우의정 이이명(李頤命)의 상소 중에 아래의 내용이 있습니다.

 

 

“신의 할아비 이경여(李敬輿)는 효묘(孝廟)께 어수 지계(魚水之契)가 있어 일찍이 지극히 원통함이 마음에 있다는 하교가 있었으며, 또 「대인 선생(大人先生)」이라고 일컬으셨으니, 단지 신의 집안 자손만이 영광으로 느낄 뿐만이 아닙니다. 이는 황분 제전(皇墳帝典)14001) 과 함께 같이 천지에 빛나는 것이니, 저하(邸下)께서도 또한 이 의리를 일찍 아시지 않으면 안됩니다. 등본(謄本)을 올리고자 하오니 써서 내려주시기를 바라옵니다.’ 하자, 동궁께서 즉시 올리라고 명하시므로 신이 소매 속에서 꺼내어 올렸습니다. 대개 우리 효묘께서 비록 큰 뜻을 품으시기는 하였지만, 밀물(密勿)한 유위(猷爲)14002) 외에는 일찍이 문자로써 아랫사람에게 조유(詔諭)하신 적이 없었고, 말년에 와서야 이 하교가 신의 할아비에게 비로소 미쳤던 것입니다.

고(故) 문정공(文正公) 신(臣) 송시열(宋時烈)이 일찍이 신의 할아비의 묘지명(墓誌銘)에 이르기를, ‘「지극히 원통함이 마음에 있다.」는 하교를 유독 공(公)에게만 명백하게 말씀하셨으니, 어찌 성문(聖門)14003) 의 3천 명 제자 가운데 유독 단목씨(端木氏)만이 다른 사람이 듣지 못했던 것을 들었던 경우와 같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또 일찍이 ‘지극히 원통함이 마음에 있는데,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다.[至痛在心日暮途遠]’란 여덟 글자를 크게 쓰고 그 아래에 쓰기를, ‘위는 우리 효종 대왕께서 백강(白江) 이상국(李相國)에게 내린 비사(批辭)인데, 원래의 비사에서는 상국을 대인 선생이라고 일컬었다.’고 하였으니, 백강은 곧 신의 할아비의 호입니다. 〈이것을〉 신의 집안으로 보내 오랫동안 간직하도록 하였는데, 송시열은 이 의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욱 잊혀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신의 집안 자손으로 하여금 더욱 그 의리를 잊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뜻을 의탁한 것이 감개(感慨)하고 쓴 글씨가 기건(奇健)하여 신은 일찍이 오랫동안 전할 계획을 세웠고, 또 일찍이 들으니 중국 사람들은 무릇 조칙(詔勅)을 얻으면 반드시 금석(金石)에 새겨 문려(門閭)에 세워 둔다고 하였습니다. 또 들으니 가평(加平) 조종현(朝宗縣)의 사람으로서 의리를 좋아하는 자가 이 여덟 글자를 산벽(山壁)에다 새겼다고 하였는데, 대개 그 지명에 이 의리가 있음을 감격하였던 것입니다. 신이 이에 온 집안과 계획하여 송시열의 글씨를 모탑(模榻)하여 신의 할아비가 일찍이 거처하던 부여현(扶餘縣) 백마강(白馬江) 위의 서실(書室) 동쪽 바위에다 새겼습니다. 그런데 신의 어리석은 뜻으로는 ‘성조(聖祖)의 의리는 우주를 버틸 수 있고 군신(君臣)의 제우(際遇)가 또한 고금에 크게 뛰어나니, 단지 사가(私家)의 영총(榮寵)일 뿐만이 아니다. 천추(千秋)의 지사(志士)로 하여금 당일의 의리에 느낌을 갖게 할 수 있을 것이다.’고 여겼고, 또 생각하기에 여덟 글자를 비록 돌에다 새기기는 하였지만, 전문(全文)을 오랫동안 전하는 것만 같지 못하였으므로, 매번 당세(當世)의 명필을 구해 다시 돌에다 새기고자 하였습니다. 신의 이 하교(下敎)에 대한 감격과 영광이 본래 지성(至誠)에서 나왔음이 이와 같았으므로, 주연(胄筵)에서 글씨를 청하며 이에 그 일을 언급하였던 것인데, 스스로 그것이 마침내 참월(僭越)로 돌아감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신은 또한 일찍이 이 비사로써 전하를 위하여 연석(筵席)에서 외웠고, 또 장차(章箚)에 써 넣기도 하였으니, 엎드려 생각하건대, 성명(聖明)께서도 또한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도 신의 생부(生父) 대사헌(大司憲) 신(臣) 이민적(李敏迪)이 일찍이 효묘 때 책문(策問)에 대답하여 성조의 ‘동심(動心)’과 ‘인성(忍性)’을 논하면서 이르기를, ‘십년을 이역(異域)에서 보내셨으니, 만리(萬里)나 되는 사막이로다. 호드기 소리 북소리에 정(情)이 맺히고 산과 강은 눈에 슬프게 뵈이도다. 친히 융마(戎馬)를 따라 달리시며 눈으로 천지가 무너지고 찢어짐을 보셨으니 그 「동심」, 「인성」이 어찌 진후(晋侯)의 간난(艱難)에만 그치겠는가?’라고 하였는데, 효묘께서 고시관(考試官)과 대신(大臣)에게 이르시기를, ‘그 글이 사람을 크게 감동시킨다.’고 하셨습니다. 성조의 지극히 원통하심을 신의 아비가 능히 말하였기 때문에 성심을 감동시킴이 이와 같았던 것입니다. 신이 지난해 사명(使明)을 받들어 요동(遼東)·심양(瀋陽)을 지나며, 성조께서 엄휼(淹恤)14004) 하신 땅을 보았는데, 세월이 또 한 주기(周期)를 넘었으므로 크게 성교(聖敎)와 신의 아비의 글을 외며 얼굴을 가리며 울고 슬픈 감정에 젖었습니다. 더욱이 우리 성상께서 단(壇)을 쌓고 향사(亨祀)하신 거사는 앞 세상이나 뒷임금의 있지 아니한 바이며, 지극한 정성과 대의(大義)는 천고에 아득히 뛰어나신 것이니, 열조(烈祖)의 큰 뜻을 빛낼 수 있고 천하 후세에 찬사가 있을 것입니다. 신과 같이 둔하고 못난 사람은 비록 능히 위로 소술(紹述)한 성덕을 기리고 아래로 부조(父祖)가 남긴 뜻을 따라가지 못하나, 진실로 우리 동궁으로 하여금 깊이 연익(燕翼)14005) 의 계획을 알도록 하고 문조(文祖)14006) 에 상밀(詳密)한 의리에 그으기 붙이고자 하였으며, 신의 사사로운 분수에 있어서도 또한 빛이 있는 것입니다. 구구한 정성은 실로 이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나, 거조(擧措)의 전망(顚妄)됨을 신 또한 스스로 책망하여 일찍이 뒤미쳐 뉘우치고 두려워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잘못을 바로잡고자 하는 논의를 어찌 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유신(儒臣)의 말이 지금 또 거듭 배척하므로 감히 끝내 입을 다물지 못하고 실로 본정(本情)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40책 267면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왕실-종친(宗親) / *역사-사학(史學) / *역사-전사(前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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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4001]황분 제전(皇墳帝典) : 삼황(三皇)의 삼분서(三墳書)를 이름. ☞

[註 14002]유위(猷爲) : 계획. ☞

[註 14003]성문(聖門) : 공자의 문하. ☞

[註 14004]엄휼(淹恤) : 오랫동안 타향에 머물러 걱정함. ☞

[註 14005]연익(燕翼) : 조상이 자손을 도와 편안하게 함. 또는 그 계책. ☞

[註 14006]문조(文祖) : 요제(堯帝)의 시조(始祖). ☞

 

 

2011. 6.25.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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