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참여마당 > 참여게시판
 
 
 
제목  분노(憤怒, Anger)의 節制
날짜 2011-07-19 17:49:18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306
첨부파일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오늘날은 거의 모든 成人들은 가정에서 직장에서 기타 모임 등에서 관리자(Manager)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관리자로서 무엇보다도 경계해야 할 일은 바로 갑작스런 분노이다. 아랫사람에 대하여 버럭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는 것은 예로부터 관리자의 가장 경계해야 할 일로 여겨졌다.

 

이러한 맥락은 효종8년(1657년) 5월5일 백강 이경여(李敬輿)선생이 분노의 절제가 중요함을 아래와 같이 강조하신 데에도 잘 나타나 있다.

 

“전하께서는 남달리 총명하시며, 기쁘거나 노한 감정을 절제하지 않습니다. 남달리 총명하면 아랫사람을 경시하는 병통이 있으며, 기쁘거나 노한 감정을 절제하지 않으면 상벌에서 당연한 원칙을 잃게 됩니다. 이 때문에 아랫사람들이 기가 죽어 물러나 귀에 거슬리는 바른 말이 날로 전하에게서 멀어져 가는 것입니다. 이전에 죄를 지은 언관은 진실로 크게 거슬린 것도 없는데, 억측을 너무 심하게 하여 바람과 우레 같이 갑자기 진노하였으며, 한마디 말이 뜻에 거슬리자 형벌과 출척이 잇따랐던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 백강 선생 上箚文에서)“

 

인성교과서 <小學>에는 갑작스런 분노에 대하여 이렇게 경계하고 있다. ‘관직에 있는 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갑작스런 분노다(當官者는 必以暴怒爲戒라!). 만약 아랫사람이 일처리 못마땅한 것이 있다면(事有不可어든), 마땅히 자세히 일을 살펴서 대처해야 한다(當詳處之라). 그러면 어떤 일이든 사리에 적중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必無不中이라!). 만약 책임자가 먼저 갑작스런 분노를 표출한다면(若先暴怒면) 이것은 다만 자신에게 손해가 될 뿐이다(只能自害라!).’ 예 여기서 폭노(暴怒)란 버럭 화를 내는 ‘갑작스런 분노’이다. 분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버럭 화를 내는 갑작스런 분노가 관직자로서 조심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사실 분노를 포함한 인간의 감정 그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기에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이 있을 수 있다. 다만 그것이 때를 잃고 명분을 잃었을 때 중용의 원칙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중국 자금성이나 덕수궁에는 중화전(中和殿)이 있다. 중화(中和)는 군왕이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는 경계의 뜻을 갖고 있다. 다음은 중용에 나오는 중화(中和)의 의미이다. ‘희노애락의 감정이 가슴 속에서 표출 되지 않았을 때를 중(中)의 상태라 한다(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그것이 밖으로 적절히 표출되어 원칙에 맞을 때를 화(和)의 상태라고 한다(發而皆中節 謂之和). 중화(中和)는 군왕이 천하를 다스리는 대본(大本)이며 천하를 통치하는 달도(達道)인 것이다(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니라).’ 기쁨과 분노, 슬픔과 즐거움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적절히 표출되었을 때 오히려 중화(中和)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기쁨과 즐거움이 지나치면 음란해지고, 슬픔과 분노가 지나치면 상처가 난다. 그래서 너무 기쁜 것이나, 너무 슬픈 것이나 인간에게는 씻을 수 없는 후유증을 남긴다. 적절한 분노는 오히려 조직을 긴장시키고 자신을 생존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맹자에는 분노를 두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있다. 하나의 필부(匹夫)의 사적 분노며, 다른 하나는 대장부(大丈夫)의 공적 분노이다. ‘필부의 분노는 한 사람만 대적할 수 있는 분노다(匹夫之勇은 敵一人者也라) 그러나 대장부의 분노는 천하의 모든 백성들을 안정시킬 수 있는 분노다(安天下之民이라!).’ 리더는 한 사람에 대한 개인의 감정으로 분노해서는 안 되며 천하를 안정시킬 공적인 분노를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리더는 때로 화를 낼 때가 있다. 조직의 생존을 위해서 뼈를 깎는 결정을 내리거나, 조직의 긴장감을 높이기 위하여 심기일전 분노를 발휘할 때가 있는 것이다.

 

버럭 화를 내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이치를 깨달지 못해서 쏟아져 나오는 감정덩어리라고 한다. 명심보감에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분노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어리석고 성품이 탁한 사람이 버럭 화를 내며 진노(嗔怒)한다. 이것은 모두 자신의 감정에 통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갑작스런 분노가 일면 마음 위에 화내는 것을 그만 두어야 한다. 누군가 나의 분노를 일으키면 그저 귓가를 스치는 바람처럼 여겨야 한다.’

 

병중에 가장 큰 병이 화병(火病)이라고 한다. 가슴 속에서 불이 나고 화가 치미는 병으로 어떤 약으로도 치료가 쉽지 않은 병이다. 오직 치료약이 있다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밖에는 없다. 분노는 상대방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일 뿐이다. 내 가슴 안에서 폭발하는 분노는 오랫동안 나와 타인에게 상처를 입혀 회복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분노, 인생을 힘들게 만드는 가장 큰 고질병이다. (중국철학자 박재희)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분노를 스스로 다스리고 절제(self control)하여 나아가 극복 할 수가 있을까?

 

나의 오랜 생각, 노력의 결과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인간이 지닌 生來的인 한계로 본다. 그러나 우리와 늘 동행하는 친구이신 예수그리스도와의 만남과 대화에서 그의 성품(character)을 닮아가는 과정에서 그 길을 발견하였다고 말씀드릴 수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상상할 수없는 고통을 우리에 대한 사랑(아가페의 사랑)으로 이겨내었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평안을 얻으리니 Take My yoke upon you, and learn from Me, for I am gentle and humble in heart; and YOU SHALL FIND REST FOR YOUR SOULS.” (마태복음 11장 29절)

 

아래에서는 성경에서 제시된 화를 절제하는 방법에 관한 말씀들을 소개한다.

 

성경의 말씀도 기본적으로 급히 화를 내지 말라는 취지이다.

 

"Do not be quickly provoked in your spirit, for anger resides in the lap of fools. 급하게 화내지 말라. 분노는 어리석은 사람의 품에 머무는 것이다 ~ 전도서 7장9절“ "Love . . . is not easily angered 사랑은 쉽게 화를 내지 아니합니다 ~ 고린도 전서 13장5절

 

예수 그리스도도 하나님의 성전에서 상행위를 하여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에게 화를 내신 적이 있으며, 우리들도 사랑하기 때문에 오히려 깊은 관심에서 화를 낼 수도 있다. 화를 내는 것 그 자체는 죄가 아니다. 다만 화가 우리를 파괴적인 행동으로 몰아갈 때에 죄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화를 조정하고 절제하여 극복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 우리들이 다른 사람과 심히 다투어 언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전화가 오면 우리는 분노를 절제하고 전화를 받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분노를 절제할 수가 있다. (Rick Warren 목사)

 

일단 물러서서 돌아보자.

 

"A rebel shouts in anger; a wise man holds his temper in and cools it 미련한 사람은 화를 있는대로 다 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화가 나도 참는다“ ~ 잠언 29장11절

 

화가 났을 때 즉각 충동적인 반응은 자제하기 바란다. 하루 종일 자제하라는 것이 아니라 한 5분정도 시간을 가지고 한발짝 물러서서 두루 돌아보기 바란다.

 

미국독립선언서의 작가인 Thomas Jefferson은 말하기를 화가 나면 말하기 전에 열을 세고, 매우 화가 나면 말하기 전에 백을 세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시간동안에 내가 왜 화가 났는지, 내가 정말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또 그를 얻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바란다. 이를 통하여 화를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화를 풀어갈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찾자.

 

"If you become angry, do not let your anger lead you into sin 화가 나면, 이로 인하여 죄악으로 빠지지 말도록 하라“ ~ 에베소서 4장26절

 

화가 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며, 화가 난 것을 인정하지 아니하는 것이 죄이다. 문제는 이를 잘 풀어내어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아니하도록 하는 것이다.

 

 

화가 나는 것 자체가 근본적인 문제는 아니며, 그 이면에는 상처, 두려움, 좌절감등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좀 시간을 가지고 돌아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원인을 스스로 이해하게 될 때에 우리는 화로 인하여 파괴적인 행태를 일으켜 결국은 죄에 이르지 않게 하는 방법들을 찾아 갈 수가 있을 것이다.

 

화를 잘 절제하는 사람들과 가까이 하자.

 

"Don't hang out with angry people; don't keep company with hotheads. Bad temper is contagious - don't get infected 성급한 사람과 사귀지 말고, 성을 잘내는 사람과 함께 다니지 마라. 네가 그 행위를 본받아서 그 올무에 걸려들까 염려된다“ ~ 잠언 22장24~25절

 

화를 내는 것도 전염성이 있다. 큰 소리로 떠드는 자 들같이 있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목소리도 커지게 된다.

 

그러므로 분노를 잘 다루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습관이 필요한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는 그 품성이 스스로 겸손하고(humble) 온유하다(gentle)하다고 하였으니 그를 따르는 제자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부모들이 이러한 절제의 방법을 실천하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좋은 모델이 됨은 말할 나위가 없다.

 

James Dobson은 성공적인 결혼이란 충돌이나 분노가 없는 결혼이 아니며, 이러한 분노나 충돌을 어떻게 잘 풀어가는 가를 익힐 수 있는 결혼이라고 하였다.

한마디로 줄이면, 성경이 제시하는 방안은 예수 그리스도를 친구로 늘 가까이하고 동행하며 그의 성품 즉 사랑, 겸손, 온유, 절제, 오래참음(patience)의 성품을 배워가라는 것으로 집약될 수 있겠다. 예수그리스도는 모두에게 德이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화를 내어본 적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한 사랑으로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택한 바를 생각하며 이웃사랑을 실천하고자 할때 사사롭게 분노할 일들은 사라질 것이다.

그와 동행하는 길은 나아가 우리들이 이 세상을 넘어 永生(eternal life)으로 나아가는 참 기쁨의 길이 된다는 것이다.

 
번호 작성자 제목 등록일 조회수
122 이주관 무너진 기초를 다시 쌓토록 2011-09-23 1408
121 이주관 태극도설 (우암 송시열 선생) 2011-09-23 1462
120 이주관 한포재공 절필시(寒圃齋公 絶筆詩) 2011-09-23 1162
119 이주관 남해문학 : 소재선생의 혼 2011-09-23 1364
118 이주관 正義로운 政治를 위해 2011-08-10 1295
117 이주관 인륜(人倫)을 밝힘 2011-08-01 1687
116 이주관 人格의 成熟을 바라보고 2011-07-31 1054
115 이주관 사랑의 송가(頌歌) 2011-07-31 1448
114 이주관 無爲其所不爲 無欲其所不欲 2011-07-29 1192
113 이주관 시험 (試驗) 2011-07-28 1143
112 이주관 아름다운 後孫들 2011-07-27 1124
111 이주관 生活가운데의 學問 2011-07-23 1075
110 이주관 4충신의 고난과 공헌 2011-07-22 1363
109 이주관 정신소양함양의 교육을 2011-07-22 1087
108 이주관 분노(憤怒, Anger)의 節制 2011-07-19 1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