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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生活가운데의 學問
날짜 2011-07-23 17:32:06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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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학문이라 하면 사물의 원리 등을 깊이 연구하는 범주의 것을 이른다고 일견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더구나 전통의 유학(儒學) 또는 성리학에서 말하는 학문이란 더욱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아래의 율곡 이이 선생의 언급에서와 같이 유학(또는 성리학)에서 말하는 학문이란 우리들이 일상생활에서 하는 모든 일들이 이치에 합당하게 수행되도록 노력하여 가는 과정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이는 오늘날 세계의 사상적인 潮流를 크게 先導하고 있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진리(聖經)공부 즉 학문이 단지 성경말씀을 묵상, 기도하는데 그치지 아니하고 사람들의 실제생활 속에서 이 말씀들이 잘 적용되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가도록 노력하여 가는 바와 다르지 아니하다.

 

 

“이어 율곡선생이 상에게 묻기를, “일찍이 전하께서 시신(侍臣)에게 이르기를, ‘내가 학문을 하고 싶으나 많은 일에 얽매여 틈이 없다.’ 하셨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이런 일이 진실로 있으셨습니까?” 하니, 상이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였다. 선생이 아뢰기를, “신이 이 말씀을 듣고 한편으로는 기뻐하였고 한편으로는 근심스러웠습니다. 기뻐한 것은 전하께서 학문에 뜻이 있는 것을 기뻐한 것이고, 근심한 것은 전하께서 학문의 이치를 자세히 알지 못하시는가 근심한 것입니다. 학문은 혼자 단정히 앉아서 종일 글만 읽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일상생활 속의 하는 일이 하나하나 이치에 맞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오직 그 이치에 맞고 맞지 않은 것을 스스로 알 수 없기 때문에 글을 읽어서 그 이치를 찾는 것입니다. 만일 글 읽는 것만을 학문이라 하고 날마다 하는 일이 이치에 합당한가를 찾아보지 않으신다면 어찌 학문이라 하겠습니까. 지금 전하께서 일상생활하시는 가운데 매사가 이치에 합당한가 깊이 찾아보시되 조금이라도 잘못이 없으면 이것이 곧 학문입니다. 전하께서는 타고난 자질이 훌륭하고 욕심이 적으니, 학문을 스스로 하지 않으시는 것이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하였다“ ~ 율곡 이이 선생 行狀(사계 김장생 선생 遺稿)중에서

 

 

또한 백강 이경여 선생은 그의 上箚文에서 학문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말씀하였는데, 그 핵심은 학문은 만물의 주체인 마음을 開發하는 일과 아울러 모든 행동의 바른 지취(旨趣)를 밝혀 그대로 행하여 나아도록 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는 상기의 율곡 이이 선생의 생활 속의 학문이란 견해에 同意하면서 이에 더하여 마음의 修養을 강조하신 것이다. 성경에서도 마음을 생명의 근원으로 본 바이니(잠언 4장23절: 모든 지킬만한 중에서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이점에서도 성경과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이른바 성학(聖學)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덕을 밝히려는 옛사람이 마음을 바루는 것을 근본으로 삼기는 하였으나, 본심의 착함은 그 체가 지극히 작은 반면 이욕(利欲)이 공격하는 것은 번잡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성색(聲色) 취미(臭味)와 완호(玩好) 복용(服用)과 토목(土木)을 화려하게 하고 화리(貨利)를 불리는 일이 잡다하게 앞에 나와 거기에 빠지는 것이 날로 심해집니다. 그 사이에 착한 꼬투리가 드러나 마음과 몸이 고요한 때는 대개 열흘 추운 중에 하루 볕 쬐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 학문을 강명(講明)하여 이 마음을 개발(開發)하지 않으면, 또한 어떻게 이 마음의 바른 것을 회복하고 이욕의 사사로운 것을 이겨 만화(萬化)의 주재가 되고 끝이 없는 사변(事變)에 대응하겠습니까.

이른바 강학(講學)은 장구(章句)나 구독(口讀)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성인의 가르침을 깊이 몸받고 그 지취(旨趣)를 밝혀서, 자신에게 돌이켜 의리의 당연한 것을 찾고 일에 비추어 잘잘못의 기틀을 증험함으로써,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참으로 아는 동시에 미리 생각하여 익히 강구하고 평소부터 대책을 세워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경중을 재제(裁制)하는 일을 거론하여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신기한 것만 일삼고 고원(高遠)하기를 힘쓰며 몸과 마음에 절실한 생각이 없이 옆으로 굽은 길을 달려간다면, 버려두고 게을리 하는 자와는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이치가 이미 밝지 못하니, 어찌 정치에 보탬이 있겠습니까“~효종 4년 7월2일재변 극복을 위한 백강 이경여 선생 상차문중에서

 

제가 이렇게 생각하여보는 주된 이유는 우리 선조들이 성경이 전래되기 이전에 치열하게 연구하여 오신 바 들이 이후 전래된 성경의 기본 가르침에서 벋어나지 아니하는 점들을 많이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단 하나님을 전제로 永生까지를 추구하는 기독교와 神이나 來世에 대하여는 유보적인 입장인 유학(또는 성리학)의 다른 점 등은 있으나 서로 全的으로 배타적인 것으로 생각하여갈 바는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유학이나 성리학에서 말하는 학문이라고 하면 일본의 植民史觀에 誤導된 탓인지 많은 이들이 고리타분하고 형식에 얽매이는 시대에 뒤진 思想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 사실을 밝히어 나아가고자 함이다.

 

우리는 세계학문과 사상의 潮流와 아울러 “溫故而知新”의 자세로 우리선조님들의 깊은 사색과 사상과 삶들도 연구하여 나아가 우리들의 정체성을 찾아 나가고 이로부터 세계인류에 기여할 갈을 열어 나아가며,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이 바른 진리를 찾아 나아가 이에 견고히 서서 참된 행복을 누려가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2011. 7.23.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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