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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름다운 後孫들
날짜 2011-07-27 12:09:40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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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을 보면서 우리 인생들의 사람다운 삶의 길이 어찌도 이리 어려운지 또다시 시름에 잠긴다.

 

그러나 긴 세월이 흘러갔어도 언제나 진리와 정의는 드러나고 승리하게 됨을 다시보게 된다.

 

아래의 글 가운데의 소재 이이명 선생은 신임사화의 4충신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약을 받으신지 오랜 세월 끝에 다시 복원되시어 나라에서도 四忠書院을 세워 기리는 등 만인의 추앙을 받으시게 되었는데,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남해 유배지에서 같이 사시던 분들의 후손들이 선생의 크신 德을 잊지 아니하고 이처럼 기리니 이보다 더 아름다운일이 있겠는가! 참으로 사람이 해야 할 도리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예수그리스도는 동족의 모함을 받아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인류 구원의 불씨를 당기었고, 석가모니를 향하여도 침을 뱉고 모욕하는 이들이 있었다고 하며, 공자도 도를 펴실 때 “상가 집의 개”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우리는 부족할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의 구구한 행태에 연연하기보다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심원한 진리에 찾아가 이에 터를 두고 몸과 마음과 영혼을 닦아, 아래의 사도 바울(Saint Paul) 과 같은 높은 道의 경지를 바라보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상황과 일(in any and every situation)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 등에도 처할 줄(secret of being content)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립보서 4장12절"

 

 

******** 아 래********************************************

 

 

유배문학의 두 큰 별

 

 

감충효 시조시인 namhae111@hanmail.net

 

 

우리 남해에 적객으로 와서 유배문학을 남기신 분은 여섯 분을 꼽을 수 있으니 자암 김구 선생, 약천 남구만 선생, 서포 김만중 선생, 소재 이이명 선생, 후송 유의양 선생, 태소 김용 선생이다. 이 여섯 분의 업적들 중 조선 성리학의 중추를 이루는 분들로, 정치일선에서도 훌륭한 업적과 충절의 모범을 보이시며, 가장 먼저 실사구시의 정신을 존중하신 분으로는 아마도 서포 김만중 선생과 소재 이이명 선생이 아닌가 생각된다.

 

특히 이이명 선생의 문집인 『소재집』에 서포 김만중 선생과의 애틋하고 도타운 인연이 닿아있는『매부(梅賻)』를 남김으로써 유배문학관을 보유하고 있는 남해인들은 무엇보다도 인문학적인 면과 국문학적인 면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이러한 실사구시의 정신의 발현으로 서포 김만중 선생은 우리나라 국문학에 큰 족적을 남기시었고 소재 이이명 선생은 기독교(천주교)를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 하는 등 서양의 앞선 문물을 들여와 우리나라의 선진화를 위한 노력에 많은 힘을 쏟으셨다. 특히 소재 이이명 선생은 남해에 두 번씩이나 유배되어온 인물로서 이 곳 사람들과는 크나큰 인연을 맺고 호흡을 같이 하면서 많은 추앙을 받던 인물이다.

 

역사에서 가정이란 것은 큰 의미가 없는 일이지만 이분들과 그 자손들이 기사환국, 신임사화로 누명을 쓰고 참화를 당하는 일이 없었다면, 우리나라에 실학적 사고와 서양문물의 도입은 더욱 빨리 이루어 졌을 것이니, 나라의 늦은 개화로 인하여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약소국의 설움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며 구한말 일본에게 국권을 침탈당하여 36년간이나 나라 잃은 뼈아픈 설움이 닥치지 않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사로이는 장인과 사위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그 시대 당쟁의 역사에서 항상 정의의 편에서 선비정신을 죽음으로 지켰던 충절의 인물이었기도 한, 두 분은 우리 고장 남해와 특별한 인연을 가진 당대의 걸출한 인물이었다.

 

 

서포 김만중 선생이 남해의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한 그해, 소재 이이명 선생이 남해로 유배왔다. 그러나 이미 서포 김만중 선생의 널은 북으로 떠난 뒤였고 적소에는 서포 김만중 선생이 심어 가꾸었던 매화 두 그루만 주인을 잃고 쓸쓸히 죽어가고 있었다. 이 매화나무 두 그 루를 거두어 살려 키우면서 매부(梅賻)를 지어 소재집에 남긴다.

 

봉천사 묘정비에 새겨져있는 소재 이이명 선생의 빛나는 업적은 정녕 보국안민의 거울이 되어 오늘에 더욱 빛나고 있다. 더구나 남해읍 죽산 마을의 동쪽 봉천변에 마련된 그의 적소에 후학들을 가르치면서 처음 편액 할 때『지감재(止坎齋)』라 하였는데 이는 전한(前漢) 시대 유명한 시인이며 정치인이었던 가의(賈誼)가 장사(長沙)에 귀양 가서 쓴 『복조부(鵬鳥賦)』에 나오는 말을 취하였다고 봉천사 묘정비에 기록되어 있다.

 

 

두 번째로 귀양와서 다시 그 적소에 『습감재(習止齋)』로 새롭게 편액하니 다시 남해의 유생들은 물론 인근의 진양 사천 유생들이 『습감재(習止齋)』에 들어와 소재 이이명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고자 하였다. 일찌기 서포 김만중 선생과 함께 후에 실학사상이라 할 수 있는 실사구시의 정신을 지녔던 소재 이이명 선생은 이 고장의 농민과 뱃사람들은 물론 불량배들까지도 교화하는 당시 성리학의 공리공론이 세상을 지배할 때 좀처럼 시도하기 힘든 민초들에게의 교육사업에 열과 성을 다하였다.

 

어쩌면 이러한 그의 활동이 ‘남해에서 왕이 되려고 역모를 꾀하고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반대세력의 목호룡에 의한 고변에 빌미를 제공했는지도 모른다. 당시의 당쟁은 각종 고변으로 반대파를 도륙하는 일에 혈안이 되어 민생과는 전혀 다른 피바람을 많이 일으키던 숙종 시대를 전후한 사색당파의 시대였다. 이 당파싸움에서 아까운 인물들이 많이 희생되었는데 소재 이이명 선생도 그 중의 한 분이었다. 소재 이이명 선생을 고변한 목호룡은 무고한 고변의 죄로 당고개에서 참수되어 그의 목은 3일간 거리에 매달리는 일을 당하였고 김일경도 귀양보내졌다가 곧 사약을 받았다.

 

 

소재 이이명 선생은 서포 김만중 선생이 노도 적소에서 키우던 매화 두 그루가 죽어감에 이를 거두어 소재 선생의 적소인 봉천 지감재(止坎齋)에 옮겨와 심어 살렸으며 꽃이 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했다. 그리고 이를 감응(感應)의 이치로 여기면서 매부(梅賦)를 지어 칭송하였다.

 

 

저 먼 명부의 별에서 서포 김만중 선생은 소재 이이명 선생의 매부를 읽고 계실까? 아니면 나란히 같이 앉아 같은 남해 땅인 노도와 죽산 봉천사이에서 이루지 못한 해후를 안타까워하며 세월을 건너 뛴 그 옛날 지척의 징검다리를 놓고 계실까?

 

 

오늘도 노도의 벼랑 끝 파도는 한 많은 유배객의 못다 한 충언인양 노도의 가슴팍을 무섭게도 때리고, 봉천의 습감제에 깃들인 매화 두 그루의 소식을 들으려는 듯, 앵강만과 강진바다의 도도한 일렁임으로 봉천물을 거슬러 오른다.

 

 

그리고 소재 선생의 혼백은 유유히 배타고, 매화꽃잎 어리는 봉천의 물을 밀어내며 매화 꽃 수놓은 비단 폭에다 혈서처럼 새겨 넣은 매부를 품속에 품고 봉천을 흘러 강진바다로 마중 나간다.

 

[인터넷신문 남해안시대 2011.7.25자 www.namhaea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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