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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人格의 成熟을 바라보고
날짜 2011-07-31 13:45:03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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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강 이경여 선생은 우리 삶에서 “마음의 수양”을 “하늘을 섬기는 도리”와 더불어 가장 중히 여기셨는데, 아래의 말씀에서처럼 홀로 있을 때도 삼가서 마음이 유암(幽暗)하고 은미(隱微)한데, 문득 간단(間斷)되는 곳까지도 발생하지 아니하도록 精進하여 나아 갈 것을 말씀하였다.

 

 

“이른바 성심(聖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대개 본심이 지켜지지 않으면 덥지 않아도 답답하고 춥지 않아도 떨리며 미워할 것이 없어도 노엽고 좋아할 것이 없어도 기쁜 법이니, 이 때문에 군자에게는 그 마음을 바루는 것보다 중대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바로 잡히고 나면 덥더라도 답답하지 않고 춥더라도 떨리지 않으며 기뻐할 만해야 기뻐하고 노여울 만해야 노여우니, 주자(朱子)가 이른바 대근본(大根本)이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함양하는 방도도 불씨(佛氏)처럼 면벽(面壁)하거나 도가(道家)처럼 청정(淸淨)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발동되기 전에 지키고 발동된 뒤에 살피며 미리 기필하지 말고 잊지도 말아 보존해 마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비고 밝은 한 조각 마음이 그 속에 거두어져 있어 북돋는 것이 깊고 두터우며 이(理)가 밝고 의(義)가 정(精)하여 경계하고 삼가고 두렵게 여기는 것이 잠시도 떠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근본이 이미 굳어져서 어느 것을 취하여도 본원(本源)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지키고 버리는 사이에서 주재(主宰)하는 것이 없으면 마음이 이미 없는 것이니, 어찌 외물(外物)에 대응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인(仁)을 숙련하는 공부가 어찌 일조일석에 되는 것이겠습니까.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천덕(天德)·왕도(王道)는 그 요체가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데에 있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홀로 있을 때를 삼가지 않아서 유암(幽暗)하고 은미(隱微)한 데에 문득 간단(間斷)되는 곳이 있다면 어떻게 날로 고명(高明)한 데에 오르겠습니까. 당 태 종(唐太宗)이 일찍이 ‘임금의 한 마음은 공격받는 것이 많다. 조금이라도 게을리하여 그 하나만 받아들이는 날이면 위망(危亡)이 따른다.’ 하였는데, 이는 대개 그 자성(資性)이 밝고 트여 이 마음이 희미한 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인(聖人)의 극치(極治)라는 것도 결국은 이 길 외에 따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중주(中主)의 소강(小康)도 이를 빌려서 다스렸을 것이니, 다니기가 험한 산길에서 애쓰고 초목이 무성한 곳에서 배회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 효종 4년(1653) 7월 2일(을축) 백강 이경여 선생의 재변을 이겨내는데 힘써야할 21항의 상차문 중에서

 

 

위에 기록한 백강 이경여 선생의 지극한 마음이 20세기 초 스코트랜드의 저명한 신학자 Oswald Chambers의 저서 “My Utmost for His Highest" 가운데 ”Becoming Entirely His"라는 글에서도 심도 있게 다루어져 아래로 소개한다.

 

 

“Let patience have its perfect work, that you may be perfect and complete, lacking nothing ~ James1:4 : 그러므로 끝까지 참고 견디어 부족함이 없는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 ~ 야고보서 1장4절”

 

 

“우리 중의 많은 사람들이 일견 보기에는 모두 바른생활을 하는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아직도 부주의하고 게으른 면들이 있다. 이는 우리들의 죄악으로 인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의 육체적인 삶의 찌꺼기들이 남아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들의 이런 부주의함도 聖靈에 대한 모독이 된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데에는 물론, 일상생활의 먹고 마시는 일에서 조차도 부주의한 면들이 없어야한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바른 자세 뿐 만이 아니라, 이를 실생활에 적용하여 감에 있어서도 바른 자세를 견지하여야한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우리들의 모든 면을 살펴보시며 우리들은 아무 것도 그에게는 감출 수가 없다. 하나님은 수많은 방편을 통하여서 거듭하여 우리를 하나의 진리에 이르도록 인도하시고 되돌려 놓으신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완전히 성숙한 사람으로 만드는 데에 있으므로 이 일로 인하여 절대로 피곤해 하지 아니하신다.

 

 

이러한 문제가 우리들의 충동적인 性情에서 올 수가 있지만, 하나님은 지극한 인내심으로 우리를 완전히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려는 한 목표를 향해 우리들을 지속적으로 인도하시고 되돌려 놓으신다. 혹은 이러한 문제가 우리들의 나태하고 방황하는 思考 또는 독자적인 성격, 자기중심주의에서 유발될 수도 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도의 과정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우리들의 삶이 완전히 바르지는 못하다는 점을 환기 시키시며 우리를 더 높은 수준으로 인도하신다.

 

 

We have been having a wonderful time in our studies over the revealed truth of God's redemption, and our hearts are perfect toward Him. And His wonderful work in us makes us know that overall we are right with Him. 우리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익히며 그의 구원하심을 믿어 우리들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바르게 놓여있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놀라우신 役事가 우리에게 임하여 우리는 스스로도 이를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성령은 야고보를 통하여 ”인내를 다하여 끝내 완성된 인격에 이르도록 하라“ 라고 말한다. 우리들의 일상에서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교정하며 나아가라. 하나님은 인내심을 가지고 우리를 인도하시어 우리들이 그의 완전히 성숙한 동반자, 친구가 되기를 바라신다.”

 

 

 

 

위에서의 백강 이경여 선생의 말씀이나 오스왈드 체임버스(Oswald Chambers)가 해석한 성경의 말씀이나 기본취지는 모두 같다 할 것(매우 사소한 부분에 까지도 완전히 진리에 부합하여 완전한 인격의 성숙을 이루라)인데, 다만 백강 선생은 그 뿌리를 天理와 正義에 두어 이를 우리가 스스로 배우고 찾아 나아가야하는 것이며, 성경의 말씀은 그 뿌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미 구체화 되어 있어 이를 그대로 익히고 따르면 영원한 생명에 까지 이르게 된다(인간의 능력으로는 스스로는 모두 알고 이를 수 없는 경지)는 데에 차이점이 있을 뿐으로 생각된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완전한 인격성숙의 단계에 이르러서야 이 세상에서 또는 來世에서 우리의 바른 뜻을 제대로 완전하게 이루어 갈 수가 있다고 하는 점이다.

 

 

2011. 7.31, 이 주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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