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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포재공 절필시(寒圃齋公 絶筆詩)
날짜 2011-09-23 13:15:04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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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포재공 절필시(寒圃齋公 絶筆詩)

 

 

한포재 이건명 선생은 신임사화때에 노론사충신의 한분으로 선왕인 숙종대왕의 유지를 따라 사실상 가장 강력하게 영조대왕의 즉위를 추진하시어 청나라의 승인을 몸소 얻어내시었다. 이로 인하여 신임사화 때에는 가장 참혹하게 돌아가시었는데 아래의 시는 유배지 전남 나로도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지으신 시이다.

 

 

허국단심재 (許國丹心在) 나라를 위한 일편단심은 여전하니

사생임피창 (死生任彼蒼) 죽고 사는 것은 저 하늘에 맡기노라

고신금일통 (孤臣今日慟) 외로운 신하가 오늘도 애통하니

무면배선왕 (無面拜先王) 선왕을 뵈올 면목이 없네

 

한포재 선생께서 1722년 8월 억울한 누명으로 참혹하게 凶變을 당하여 원통하게 돌아가시니, 홀연 하얀 기색이 목중에서 나와 하늘로 올라가 무지개를 이루고 大風이 일어 났다고 하며 앞바다의 물이 사흘을 불거졌다고 한다.

 

1725년 영조대왕 즉위 하신후 신원(伸寃)되시어 충민공(忠愍公)의 시호를 내리셨으며 四忠書院을 세워 봉안하시고 국왕의 여러차례의 치제(致祭)가 있었다.

 

노론사충신은 사실상 이로써 영조대왕 정조대왕의 조선 르네쌍스시대의 기틀을 열어 놓으신 것이다.

 

한포재공은 돌아가시기 전 자손들에게 공부하고 몸을 닦아 忠孝의 家門風度를 이어갈 것을 당부하시었다. 공은 자손들에게 과거에는 뜻을 두지 말라 하시었으나, 그 후손들 중에는 국헌 이헌구 선생을 위시한 다수의 충신들이 조선 말기까지 내내 배출되어 조선 최고 명문가의 대를 이어갔다. 그의 손자이신 이연상 선생은 공의 유언에 따라 이조판서 호조판서를 겸하시고 정조대왕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정승의 반열을 피하여 사직하신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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