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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태극도설 (우암 송시열 선생)
날짜 2011-09-23 13:18:04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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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본질, 인생의 본질에 대한 논의와 연구는 인류역사와 함께 가장 핵심적인 과제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세계 종교 철학에서 영향력이 큰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유대교 등의 설명과는 다른 우리 성리학적 관점의 태극도설도 진리로 나아감에 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를 통하여 우리가 세계 인류를 향하여 기여하여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세워나감에 하나의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숙종 10권, 6년(1680 경신 / 청 강희(康熙) 19년) 10월 14일(기해) 3번째기사
송시열이 태극도설과 서명에 관해 진강하다


옥당관(玉堂官)을 소대(召對)하였다.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송시열(宋時烈)이 같이 입시(入侍)하였는데, 임금이 임영(林泳)에게 명하여 ‘태극도설(太極圖說)’을 진강(進講)하게 하니, 송시열이 그 문의(問義)를 해석하기를,
태극(太極)은 곧 음양(陰陽)의 본체(本體)인데, 동(動)하여 양(陽)이 되고 정(靜)하여 음(陰)이 되는 것입니다. 《중용(中庸)》에서 첫머리에 말하기를, ‘하늘이 명하는 것을 성(性)이라고 이른다.’ 하였는데, 이것은 태극을 말하는 것이니, 곧 하늘 위에 또 한 층(層)이 있다는 논리입니다. 소강절(邵康節)2817) 이 말하기를, ‘천지(天地)로 만물(萬物)을 보면, 만물이 만물을 만들지만, 도(道)로써 만물을 보면 천지도 또한 만물의 하나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태극도설》과 한 가지입니다. 무극(無極)이면서 태극이라는 것은 오로지 이(理)로써 말하는 것이니, 이(理)에 무슨 소리와 냄새가 있겠습니까? 대개 상천(上天)이 실리어도 본래 소리와 냄새가 없지만 실로 조화(造化)의 요체(要諦)이며, 만물의 온갖 종류의 근저(根柢)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극이면서 태극이라.’고 하는 것이니, 태극 이외에 다시 무극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였다. 임영이 또 ‘태극이 동(動)하여 양(陽)을 낳는다.’라는 대목을 강(講)하니, 송시열이 말하기를,
“이것은 동(動)과 정(靜)이 서로 근본이 되는 묘(妙)를 말한 것인데, 태극에 동·이 있는 것은 천명(天命)의 유행(流行)입니다. 천명은 곧 《중용(中庸)》에서 말하는 천명입니다. 동이 극(極)하면 이 되고, 이 극하면 다시 동이 되는데, 한번 동하고 한번 정하는 것이 서로 그 근본이 된다는 것은 명(命)이 유행하여 그치지 않는 것입니다. 동하여 양(陽)이 되고 정하여 음(陰)이 되므로, 음으로 나누고 양으로 나누어져 양의(兩儀)가 세워지는데, 나눈 것이 한번 정해져서 옮겨가지 않는 것입니다. 대개 태극이란 것은 본연(本然)의 묘(妙)이고, 동·정이란 것은 상승(相乘)하는 기(機)입니다. 이것이 한번 음이 되고 한번 양이 되는 것을 도(道)라고 하는데, 이를 음이 되게 만들고 양이 되게 만드는 것이 바로 태극인 것입니다. 만물로 하여금 시작하게 하는 것은 양이요, 만물로 하여금 이룩하게 하는 것은 음입니다. 봄·여름은 양이 되고 가을·겨울은 음이 되며, 형체가 없으면 ‘도(道)’라고 하고 형체가 있으면 ‘형(形)’이라고 합니다. 태극은 어디 가든지 있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양이 변한 뒤에 음이 합하고, 음양이 변하여 합한 뒤에 수(水)·화(火)·금(金)·목(木)·토(土)가 생성되는 것입니다. 수는 음이 성(盛)하기 때문에 오른쪽에 있고 화는 양이 성하기 때문에 왼쪽에 있고, 목은 양이 약하기 때문에 화의 다음에 있고, 금은 음이 약하기 때문에 수의 다음에 있으며, 토는 기(氣)가 조화되기 때문에 가운데 있습니다. 기로써 말한다면 오기(五氣)요, 시(時)로써 말한다면 사시(四時)인데, 토기(土氣)는 어디에 가든지 운행하지 않음이 없으니, 목(木)은 봄을 말하고 화(火)는 여름을 말하고 금(金)은 가을을 말하고 수(水)는 겨울을 말하나, 토(土)는 사시에 붙어서 왕성(旺盛)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였다. 임영이 ‘오행(五行)은 하나의 음양(陰陽)이라.’는 대목을 강(講)하니, 송시열이 말하기를,
“처음에 음양 오행(陰陽五行)을 말하고, 이것에서부터 또한 차례로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대개 오행이 구비(具備)되면 조화(造化)와 발육(發育)의 내용을 갖추지 아니함이 없는 법인데, 그러나 그 근본을 유추하면 또한 무극(無極)의 묘(妙)가 아닌 것이 없으니, 무극의 묘는 또한 일찍이 한 가지 물건 속에 각각 구비하지 않은 적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행의 생성은 그 기질(氣質)에 따르는데, 그 부여받는 바가 같지 아니한 것은 이른바 각각 그 성(性)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하고, 이어서 차례로 해석하기를,
“대저 무극은 2(二)2818) ·5(五)2819) 가 섞여서 융합하여 간격이 없기 때문에 이른바 ‘묘(妙)하게 합(合)한다.’는 것입니다. 진(眞)은 이(理)로써 말하는 것이요, 정(精)2820) 은 기(氣)로써 말하는 것인데, ‘망령됨이 없는 자는 헛되지 아니한다.’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중용》에서 이른바 ‘둘이 아니고 섞이지 아니한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하였다. 송시열이 말하기를,
“성(性)은 이 때문에 음양을 주장하고 오행은 이 때문에 경위(經緯)가 되는데, 경(經)은 남북(南北)으로 말하는 것이고 위(緯)는 동서(東西)로 말하는 것입니다. 대개 이기(二氣)가 교감(交感)하여 만물을 화생(化生)하는 것인데, 양건(陽健)한 것은 남(男)이 되니 부(父)의 도(道)요, 음순(陰順)한 것은 여(女)가 되니 모(母)의 도인 것입니다. 대개 천하 만물이 각각 남·여가 있는데, 초목(草木)도 또한 모두 남·여가 있으니, 삼[麻]을 가지고 말한다면 꽃이 피는 것이 수컷[雄]이 되고 열매를 맺는 것이 암컷[雌]이 되며, 대나무[竹]도 또한 남·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하에서 성(性)이 없는 물건이 없으며 성(性)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이로써 남·여 만물이 각각 하나의 태극을 구비하기 때문에 옛말이 이르기를, ‘만물 전체가 하나의 태극이라.’고 하는 것은 이것을 이르는 것입니다.”
하였다. 임영이 ‘오로지 사람만이 그 빼어남을 얻은 것이다.’라는 대목을 강(講)하니, 송시열이 또 이를 해석하기를,
“인물(人物)이 생기는 것은 태극의 도(道)에 있지 아니하는 것이 없는데, 사람이 부여받는 것은 오로지 그 빼어난 것만을 얻는 것이기 때문에 그 마음이 가장 영검한 것입니다. 오성(五性)은 곧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이요, 형(形)은 곧 귀[耳]·눈[目]·입[口]·코[鼻]인데, 입은 음식을 먹고자 하고 눈은 색(色)을 보고자 하기 때문에 오성(五性)이 감동(感動)하여서 선악(善惡)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선악이 생기므로 만사(萬事)가 나오게 되는데, 만약 욕심(慾心)이 동(動)하여 감정(感情)이 앞서게 되어서 이해(利害)가 서로 침공(侵攻)하게 되면, 인극(人極)이 세워지지 못하여 금수(禽獸)와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또 임영이 ‘성인(聖人)이 정(靜)을 주장한다.’는 대목을 강(講)하니, 송시열이 말하기를,
“사람은 이(二)·오(五)의 빼어난 기(氣)를 부여받아서 생겨나는데, 성인(聖人)은 또 그 빼어난 기(氣) 중에서 가장 빼어난 기(氣)를 얻은 자입니다. 대개 정(靜)이란 것은 성(誠)의 회복이요 성(性)의 진(眞)인데, 이러한 마음이 반드시 고요한 상태로 동(動)하지 아니한 다음에야 사물(事物)의 변화에 수작(酬酢)하여 천하(天下)의 동함에 합일(合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은 중(中)·정(正)·인(仁)·의(義)로써 반드시 정(靜)을 주장하는 것이니, 이것이 중심(中心)에 자리를 이루는 까닭인데, 천지(天地)·일월(日月)·사시(四時)·귀신(鬼神)도 능히 이에 어긋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니, 임영이 말하기를,
“정(正)과 의(義)는 정(靜)의 가장자리를 말하는 것이요, 중(中)과 인(仁)은 동(動)의 가장자리를 말하는 것인데, 사람의 마음이 정하지 아니하면 근본(根本)을 세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하는 때에는 반드시 을 가지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였다. 송시열이 또 차례로 아랫 문장을 해석하기를,
“이것은 성인(聖人)·군자(君子)·소인(小人)의 3자를 들어서 차례로 말한 것입니다. 군자는 태극(太極)을 닦고 소인을 태극을 거스르며, 군자는 경(敬)을 지키는데, 소인은 망령된 행위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니, 이것이 길흉(吉凶)이 현격하게 달라지는 까닭입니다. 닦는다느니 거스른다느니 하는 것은 오로지 경과 사(肆)의 사이에 있을 뿐입니다. 경은 욕심이 적고 이(理)가 밝아지므로, 정(靜)할 때 허(虛)하고 동(動)할 때 곧아져 성학(聖學)을 배울 수가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하였다. 임영이 또 ‘하늘의 도(道)를 세운다.’는 대목을 강(講)하니, 송시열이 말하기를,
“천(天)·지(地)·인(人) 삼재(三才)는 각각 체(體)·용(用)의 나눔이 있는데, 그 실체는 하나의 태극인 것이니, 천도(天道)의 음과 양, 지도(地道)의 강(剛)과 유(柔), 인도(人道)의 인(仁)과 의(義)는 곧 물(物)의 시종(始從)인 것입니다. 능히 그 처음[始]을 살펴보아서 물(物)의 생겨나는 까닭을 알 수가 있으면, 그 끝[終]을 돌이켜 보아서 물(物)의 죽는 까닭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천지(天地) 사이에 조화(造化)하는 요체(要諦)요, 고금(古今)에 유행(流行)하는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신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역(周易)》의 도(道)가 비록 크다고 하지만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정(二程)2821) 이 일찍이 주염계(周濂溪)에게 도(道)를 물었더니, 주염계가 손수 그림을 그려서 이들에게 주었던 것인데, 이정(二程)이 끝내 이 그림을 남에게 보여 밝히지 아니하였던 것입니다.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반드시 은미(隱微)한 뜻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대개 그 정자(程子)의 문인(門人) 가운데 이를 능히 전수받을 만한 자가 있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끝내 남에게 전수시키지 아니하였던 게 아닌가 의심하였다고 합니다.”
하였다. 홍만용(洪萬嶺)이 말하기를,
“‘태극도(太極圖)’와 ‘서명(西銘)’은 또한 《성학십도(聖學十圖)》안에 있으니, 옥당관(玉堂官)으로 하여금 병풍(屛風)을 만들어 어전(御前)에 바치게 하여 예람(睿覽)에 대비하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송시열이 말하기를,
“어제 들으니, 성후(聖候)가 편찮으시다는데, 오늘 눈바람이 좀 차가우니, 오래도록 전각(殿閣)에 납시었다가 옥체(玉體)가 상(傷)하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서명(西銘)’은 내일 개강(開講)하는 게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종일 강론(講論)하여도 피로한 줄 모르겠으니, 이어서 ‘서명’을 다 강(講)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임영이 또 ‘서명(西銘)’을 진강(進講)하니, 송시열이 또 그 문의(文義)를 해석하기를,
서명(西銘)의 주된 뜻은 인(仁)인데, 곧 장횡거(張橫渠)가 지은 것입니다. 일찍이 학당(學堂)의 두 들창[牖]에다 왼쪽에는 폄우(砭憂)2822) 를 쓰고 오른쪽에는 정완(訂頑)2823) 을 썼습니다. 정이천(程伊川)2824) 이 말하기를, ‘이것이 논쟁(論爭)의 단서(端緖)를 열어주는 것이라.’고 하고 동명(東銘)·서명(西銘)이라고 고쳤던 것인데, 동명(東銘)은 그 사의(詞義)가 가리키는 바와 기상(氣象)이 미치는 바가 대개 미진(未盡)한 점이 있어서 서명(西銘)의 위로 통하고 아래로 통하는 일이관지(一以貫之)의 뜻과는 같지 아니하기 때문에 정문(程門)에서는 오로지 ‘서명(西銘)’만을 가지고 배우는 자에게 개시(開示)하였고 동명(東銘)에 대해서는 일찍이 이를 언급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대개 하늘[天]은 양(陽)으로서 부(父)의 도(道)요 땅[地]은 음(陰)으로서 모(母)의 도(道)이니, 사람[人]이 하늘에서 기(氣)를 부여받고 땅에서 형(形)을 부여받아서 조그마한 몸[身]이 혼연히 만물과 섞여서 중간에 자리한 것이 자(子)의 도(道)입니다.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자(子)가 생겨나는 것은 비록 부모(父母)의 기(氣)를 몸받는다고 하지만, 천지(天地)의 기(氣)를 받는 것이 가장 많으니, 순(舜)임금이 거룩하게 된 것이 고수(瞽瞍)의 기(氣)를 받은 것은 적었고 천지의 기(氣)를 받은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지라고 하지 아니하고 건곤(乾坤)이라고 하는 것은 천지는 형체이고 건곤은 성정(性情)인데 성정이 사람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천지의 기(氣)가 하늘과 땅 양쪽 사이에 가득 찼는데[塞] 인물(人物)이 이것을 자용(資用)하여 체(體)가 되는 것이므로, ‘내가 이 체(體)가 된다.’ 하였고, 건(乾)은 굳세고 곤(坤)은 순하므로 ‘내가 이 성(性)이 된다.’고 합니다. 대개 ‘가득찬다[塞]’라는 글자는 곧 《맹자(孟子)》의 호연장(浩然章)에서 ‘천지(天地) 사이에 가득찬다[塞乎天地間]’라는 말에서 나온 것인데, 곧 기(氣)입니다. ‘주재[帥]’라는 글자는 《맹자(孟子)》에서 ‘지(志)는 기(氣)의 주재이다[夫志氣之帥也]’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니, 곧 이(理)입니다.”
하고, 또 말하기를,
“백성은 모두 나의 동포(同胞)인 사람들인데, 천지(天地)의 기(氣)를 같이 받은 것이기 때문에 ‘동포(同胞)’라고 하는 것입니다. 동포(同胞)란 곧 같이 태어난 사람이니, 말하자면 ‘내가 남을 볼 적에 모두 자기의 형제(兄弟)와 같이 본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物)이 되는 것은 대저 형(形)과 기(氣)가 치우친 것인데, 나와는 비록 유(類)가 같지 아니하다고 하더라도 그 체(體)와 성(性)이 비롯된 곳을 살펴보면, 이것도 또한 천지(天地)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 같지 아니함이 일찍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것들을 볼 적에 또한 자기의 제배(儕輩)와 같이 본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대개 물(物)과 아(我)가 비록 친소(親疏)의 구분은 있지만 똑같이 하나의 기(氣)인 것이므로, 마땅히 사랑하고 아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버이를 친애(親愛)하고 백성들에게 인(仁)하게 하며 백성들에게 인(仁)하고 물(物)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이 뜻입니다.”
하니, 임영이 말하기를,
“물(物)은 동류(同類)가 되지는 못하지만, 또한 천지(天地)의 기(氣)를 같이 받았기 때문에, 마땅히 제배(儕輩)의 친구와 같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情)이 있는 물(物)과 정(情)이 없는 물(物)이 각각 제자리를 얻은 뒤에야 천지에 참여하여 화육(化育)을 도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였다. 송시열이 또 차례로 아래 문장을 해석하기를,
“대저 천하(天下)의 사람들은 모두 천지(天地)의 자(子)인 것입니다. 그러나 한 왕가(王家)로 말한다면, 천지(天地)는 곧 부모(父母)요, 인군(人君)은 곧 부모의 종자(宗子)이요, 대신(大臣)은 곧 종자의 가상(家相)인데, 이른바 ‘가상(家相)’이란 것은 속칭 마름[舍音]과 같은 것입니다. 성인(聖人)은 형제(兄弟) 가운데 부모(父母)에게 덕(德)이 합일(合一)하는 자이요, 어진 자[賢者]는 형제 가운데 동배[等夷] 중에서 가장 빼어난 자입니다. 그렇다면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하여도 나의 형제(兄弟) 가운데 홀로 하소연할 데가 없는 자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무릇 인군(人君)이 대신(大臣)을 대우하기를 백성들이 항상 골육(骨肉)을 대하는 것과 같이 보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하였다. 임영이 또 ‘하늘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때로 이를 보존한다.’는 대목을 강(講)하니, 송시열이 말하기를,
“인군(人君)이 항상 하늘에 죄를 지을까봐 두려워하는 것은 곧 자(子)가 부모(父母)를 두려워하는 도(道)인 것입니다. 여기부터 그 이하에는 모두 자(子)가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뜻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늘을 어기는 것을 패덕(悖德)이라고 하는데 패덕(悖德)은 곧 《효경(孝經)》에서 이른바 ‘자기 어버이를 사랑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하고, 이어서 차례로 아랫 문장을 해석하기를,
숭백(崇伯)의 아들2825) 은 부모의 봉양(奉養)을 돌보았고, 영고숙(穎考叔)2826) 은 자손에 선량한 자가 있었고, 순(舜)임금은 어버이를 기쁘게 하기에 이르렀고, 신생(申生)2827) 팽형(烹刑)2828) 을 기다렸으며, 증자(曾子)2829) 는 온전한 몸으로 돌아갔으며, 백기(伯奇)2830) 는 부모의 명령을 용감히 따랐는데, 이들은 어버이를 섬기고 효도를 다하는 도리를 하지 않음이 없었기 때문에 ‘서명(西銘)’에서 이들을 인용하여 하늘을 섬기는 상도(常道)를 밝히려고 하였으니, 이것이 천지(天地)가 부모(父母)되는 이유이니 곧 하늘을 섬기는 것이 어버이를 섬기는 것과 같은 경우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아계셔서는 순하게 섬기고 돌아가셔서는 정신을 편안케 해드린다.[存順沒寧]’고 글을 끝마쳤는데, 대개 효자(孝子)와 인인(仁人)이 어버이를 섬기고 하늘을 섬기는 것은 살아계실 적에는 그 뜻을 어기지 않고 그 이치를 거스르지 않으며, 돌아가셔서는 어버이에게 부끄러운 점이 없고 또한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아침에 도(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것인데, 내가 바르게 죽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주자(朱子)가 암자(菴子)에 게시(揭示)하는 글을 지어서 ‘순녕(順寧)’이라고 이름붙인 것도 대개 이러한 뜻을 취(取)한 것입니다. 기해년2831) 효종(孝宗)의 대상(大喪) 때에 고(故) 상신(相臣) 정태화(鄭太和)가 대간(臺諫)의 우두머리로 있으면서 ‘편안할 영(寧)자로써 능호(陵號)를 정하자’고 상의(相議)하였던 것이니, 무왕(武王)도 또한 영왕(寧王)이라고 부른 것은 모두 이러한 뜻에서였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경이 계속해서 잇달아 개진(開陳)하니, 내 마음이 확 트여지는 것 같다. 옥당(玉堂)으로 하여금 정성스레 베껴서 현토(懸吐)해서 바치도록 해야 한다.”
하였다. 송시열이 장차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뜻을 가졌기 때문에 임금이 만류하기를 매우 지극히 하고, 이어서 초피(貂皮) 모자(帽子)를 내려 주었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38책 492면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사급(賜給) / *사상-유학(儒學) / *인물(人物)











[註 2826]영고숙(穎考叔) : 영봉인(穎封人).




[註 2830]백기(伯奇) : 주(周)나라 윤길보(尹吉甫)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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