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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붕당의 폐해와 시정~탄수 원두표 선생
날짜 2011-11-03 11:24:38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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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당의 폐해와 시정~탄수 원두표 선생

 

오늘날 우리나라의 정치하는 모습이 1649년도의 아래 모습보다 무엇이 좋아 졌는지 잘 모를 지경이다.

 

요즈음 한미 FTA를 놓고 국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앞으로 국민들 개개인의 의식수준의 고양(高揚)만이 개선책으로 생각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성은 자기를 넘어서서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한 것같이, 이웃들 나아가 원수까지도 자기 몸처럼 사랑하며 실천한데서 나온다.

 

이러한 도(道)를 배우는 사람들이 참된 현세와 내세의 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아래의 원두표 선생의 말씀도 오늘날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된다.

 

************ 아 래 ************************************************

 

 

효종실록 > 효종 즉위년(1649년) > 효종 즉위년 6월 > 효종 즉위년 6월 4일

 

 

 

효종 1권, 즉위년(1649 기축 / 청 순치(順治) 6년) 6월 4일(임진) 1번째기사

호조 판서 원두표가 붕당의 폐해와 이의 시정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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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 판서 원두표(元斗杓)가 상소하기를,

 

“아, 오늘날 조정의 폐단을 말로 하자면 끝이 없어서 수없이 많은 폐단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위망을 취하게 될 매우 중요한 것만을 골라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조정이나 사부(士夫)들 사이에는 풍습이 무너지고 지취(志趣)가 더러워져서 직무(職務)는 관계 없는 일인양 버려 두고 오직 분경(奔競)만을 일삼으므로 사의(私意)가 공공연히 행해지고 염치는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중외의 관직에 있는 대소 신료들이 단지 제몸의 이익만을 알 뿐 공의(公議)는 생각지 않아 모든 시정(施政)과 조치(措置)에 있어서도 한결같이 일신의 사욕만을 따를 뿐이므로 국가의 온갖 일이 사적으로 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 형편입니다.

사람 등용하는 일을 가지고 말할 것 같으면, 관직 한 자리를 제수하는 데에도 집정자의 사인(私人)이 아니면 고관의 청탁에 따라 제수하기 때문에 빈 자리가 하나 생기면 온갖 청탁이 모여들어서 정관(政官)도 취사(取捨)하기가 곤란하여 먼저 그 청탁한 자의 지위의 고하와 자신과의 친분을 따져 주의(注擬)의 등급을 정합니다. 안으로 모든 관사의 여러 관직에서부터 밖으로 주현(州縣)의 수령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이와 같고 청현직의 의망에는 경쟁이 더욱 크고 사를 쓰는 것이 더욱 심하니, 인재를 얻지 못하여 백직(百職)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는 것은 괴이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래도 탐오(貪汚)에까지는 이르지 않은 자들을 들어 말씀드린 것입니다. 염치없이 이익만 좋아하는 무리들로 말할 것 같으면 뇌물을 바치는 무리들이 문을 가득 메우는데 뇌물의 다소에 따라 벼슬자리가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합니다. 처첩이나 자제가 전형(銓衡)의 권한을 멋대로 휘두르면서 각기 제 욕심을 채우는 데 전혀 기탄하는 바가 없습니다. 아, 어떤 자는 사의(私意)로써 공도(公道)를 무시하고 어떤 자는 뇌물로써 욕망을 이루는 데에만 급급하니 어느 겨를에 현재(賢才)를 찾아 나라를 위하여 인재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저 현덕(賢德)과 재능을 가지고서 깊이 은거하며 자신을 지키고 있는 자들이 어찌 이런 무리가 끌어낸다 해서 나오겠습니까. 사(私)를 행하여 나라를 병들게 한 것이 이토록 극에 도달하였습니다.

또 붕당의 화가 깊이 뿌리를 내린 지가 이미 60∼70년이나 되었으니 오늘날의 고질적인 폐단은 이보다 심한 것이 없습니다. 아, 선비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조정에 함께 있으면서 한 임금을 함께 섬긴다면 모든 정신(廷臣)의 도리는 임금을 아비처럼 섬기고 동렬(同列)을 형제처럼 보아 동료끼리 서로 공경하고 화합하여 한몸의 이해는 돌아보지 않고 밤낮으로 국사에 전념해야 마땅한 것인데, 어찌하여 사심을 버리지 못하고서 붕당의 색목(色目)을 세워 서로 미워하고 훼방하여 나라를 결단내고 백성을 병들게 하면서 전혀 걱정도 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그들 또한 어질지 못하다고 하겠습니다.

한번 붕당이 갈라져 파벌이 생긴 이후로 모두 명색(名色)이 있어 대대로 자기 당의 의논을 전하였으므로 위로 공경(公卿) 서료(庶僚)에서부터 아래로 민간의 선비들에 이르기까지 당을 갖지 않은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와 당이 같은 자는 도와주고 당이 다른 자는 배척하여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오직 자기 편을 무조건 돕고 반대 편은 무조건 공격하기만을 일삼습니다. 이러므로 온 조정 안의 사람들이 오로지 저희 편끼리 어울리기만을 힘쓰고 나랏일은 생각지 않습니다. 비록 재주와 식견이 뛰어난 자가 있다 하더라도 저희 당이 아니면 온갖 방법으로 배척하여 용납할 수 없게 하고, 비록 성품과 행실이 용렬하고 비굴한 자라 하더라도 저희 당에 붙으면 모두 함께 추켜세워 반드시 높은 벼슬에 오르게 합니다. 같은 패거리를 모아 직무는 돌아보지 않고 밤낮으로 붕당만을 일삼습니다. 전형(銓衡)을 맡은 관원이 이 당에서 나오면 저 당이 기가 죽고 저 당에서 나오면 이 당이 상심합니다. 그래서 온갖 방법으로 틈을 파고들어 악착같이 계획하는 것이 오직 상대 당을 억누르고 자기 당이 올라서는 데 있을 뿐이고 국가가 위태로워지거나 백성들이 고생하는 것은 전혀 자기들과 관계없는 일로 여깁니다. 이것은 온 세상 사람이 보고 들은 바이니 어찌 신이 자세히 말한 뒤에야 알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일찍이 선조(先朝)에서도 이 붕당의 폐단을 매우 미워하여 힘써 타파하려고 엄한 말씀과 중한 벌이 계속되었으나 그 폐단이 여전히 남아 있으니, 신은 삼가 한스럽게 여깁니다. 사(私)만을 따르는 해와 붕당의 폐단이 서로 이어져서 풍교(風敎)를 파괴하고 있으니, 우뚝하게 뛰어난 선비가 아니라면 누가 이런 풍습을 벗어나 물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인심이 날로 비하(卑下)하고 점점 나약해져서 구차하게 작위만을 보전하고 스스로 떨치지를 못합니다. 아비가 자식을 가르치고 형이 아우를 권면하는 데에도 오직 유속(流俗)에 휩쓸리고 세상의 온갖 더러움과 타협하여 시속(時俗)을 거스리지 않는 것으로 처신(處身)의 묘계(妙計)로 삼도록 하니, 비록 패륜의 행동과 사나운 행위가 눈앞에 펼쳐지더라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으레 그런 것으로 생각하며, 심지어 스스로 청류(淸流)라고 하는 무리들까지 권문 세가에 붙으면서도 부끄러움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조정에는 강직한 말이 들리지 않고 아래에는 주저하는 작태가 이루어졌습니다. 간혹 고지식한 사람이 있어 조금이라도 모난 행동이 드러나면 많은 사람이 떼지어 비난하고 배척하는 소리가 떠들썩합니다. 대체로 바른 말과 곧은 의논은 고금에 듣기 어려운 바이니 상을 주어가며 말하게 하더라도 오히려 어려울 것인데, 하물며 그 벼슬을 깎아서 기를 꺾는 데이겠습니까. 설령 조정이 불행하여 정권을 훔치려는 크게 간악하고 교활한 자가 있다 하더라도 누가 옛날 광형(匡衡)이나 급암(汲黯)처럼 거리낌없이 말하려 하겠습니까. 예로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도는 강직한 기상을 배양하는 것으로써 우선을 삼았으니, 조정에 강직한 말이 없는 것은 국가의 복이 아닙니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한심한 생각이 간절합니다.

선비들의 풍습이 사치와 안일에 빠져서 곧은 기상이 없어지면 이익을 좋아하고 재물을 좋아하는 것은 인정의 본연인데 다시 무엇을 꺼려 탐욕스럽고 비루한 짓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대부들 사이에 사치가 풍속을 이루어 좋은 옷 입고 맛난 음식 먹으며 술잔으로 세월을 보내면서 오로지 재물만을 숭상하여 남에게 뒤지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혹 장엄하고 화려한 궁실이 한 마을 전체에 뻗쳐 있고 넓은 땅을 점령한 전원(田園)이 주현(州縣)에 두루 차 있으며 진기한 보화가 창고에 가득하기도 합니다. 신하의 사치와 부(富)가 이에 이르렀는데 이것을 어느 곳에서 취하였겠습니까. 백성의 고혈을 짜서 저희 집으로 실어들인 것이라는 것은 따져보지 않고도 알 수 있습니다. 뇌물 짐을 수레나 배에 싣고 와서 진취(進取)의 길을 도모하는 번진(藩鎭)이나 읍재(邑宰)들이 날마다 세력가의 문으로 모이니 백성들이 어찌 수척해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권세 있는 집안이 더욱 부자가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신이 위망(危亡)의 단서가 진실로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나 다만 이 몇 가지만을 서둘러 말한 것은, 오늘의 폐단 중에 이보다 큰 것이 없고, 변혁(變革) 경장(更張)할 기틀이 오로지 오늘에 있기 때문입니다. 맹자(孟子)의 말에 ‘아무리 지혜가 있어도 형세를 타는 것만 못하다.’ 하였고, 《서경(書經)》에 또 ‘새로 천명을 받았으니 덕을 새롭게 하라.’ 하였으니, 천명이 위에서 돌보아주고 인심이 아래에서 기원해 향모(向慕)하는 지금이야말로 바로 전하께서 크게 분발하시어 형세를 타고 훌륭한 정치를 하여 인심을 경동(驚動)시키고 천명에 보답할 때입니다. 만약 구습을 따라 고식적으로 세월만 보내면서 기회를 놓친다면 모든 일이 흐트러지고 분란스럽게 되어 날로 위망으로 치달아 후회해도 미칠 수 없고 다시 어찌해 볼 수 없어 아무리 분발하여 떨쳐 일어나고자 해도 끝내 될 수 없을 것인데, 어떻게 백성들의 바람을 위로하고 하늘의 도움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전하께서는 놀라고 두려운 마음으로 한번 세도(世道)를 변혁하시어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마소서.

이른바 크게 훌륭한 일을 한다는 것이 어찌 아득하여 헤아릴 수 없는 곳에서 기이한 술책을 찾는 것이겠습니까. 시의(時宜)에 적합한 중요한 도를 찾아서 힘써 행하는 데 불과할 뿐입니다. 조정에서 현사(賢邪)를 분별하고 시비를 밝게 분별하여 선한 무리가 그 뜻을 펴게 하고 소인들이 간악함을 행하지 못하게 하면 됩니다. 그 현사 시비를 살펴 고르는 방법은 그 언행(言行)을 살펴서 취사(取捨)하는 것뿐입니다. 벼슬을 맡아 직분을 다하고 멸사 봉공하여 한결같은 마음으로 왕실을 섬겨 죽고 사는 것도 개의치 않는 자는 양신(良臣)인데, 이런 사람은 시세에 붙좇는 무리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 당연한 형세이니 비록 참소하는 자가 있더라도 전하께서는 믿고서 의심치 마소서. 아첨으로 잘보여 임금의 뜻만을 따르고 자신의 의사는 굽히고 남의 비위만을 맞추어 시망(時望)16) 을 구하는 자는 비부(鄙夫)인데, 이런 사람은 시속(時俗)에 잘보인 것이 예로부터 그러하였으니 비록 칭찬하는 자가 있더라도 물리치고 등용하지 마소서.

탐욕스럽고 더러워 이익만을 좋아하여 남의 말은 돌아보지도 않고 오직 제몸 살찌우기만을 일삼는 자와 의리도 없고 행동이 나빠 뻔뻔스럽게 부끄러움을 모르고 감히 멋대로 악을 하는 자는 사람들이 다 알고 있을뿐더러 드러난 사실을 은폐하기 어려우니 분별하기가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사람의 충사(忠邪) 선악에 대해 이미 그 내용을 자세히 아셨다면 거취(去就)와 종위(從違)를 흑백을 분별하듯이 용단을 내려 조금도 우물쭈물하심이 없이 하여,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선을 좋게 여기고 악을 미워하는 전하의 성심을 우러러서 감히 간사한 마음을 품고 전하의 총명을 속이지 못하게 하며 전하의 강의(剛毅) 영렬(英烈)을 알아 감히 나약하게 남에게만 미루고 고식적으로 옛것만을 따르는 풍습을 따르지 않게 하여,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을 바꾸어 각기 맡은 직분을 다하게 하소서. 그러면 앞에서 거론한 사를 따르는 풍습이 거의 개혁될 것이며 탐욕스런 풍습과 주저하는 폐단도 족히 걱정할 것이 없게 될 것입니다.

붕당의 화는 고질적인 폐단이 된 지 이미 오래여서 실로 제거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임금이 선악을 밝히고 시비를 분별하는 데에서 벗어나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선악 시비를 변별하는 요령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전하께서 진실로 뛰어나게 자임(自任)17) 하시어 지치(至治)에 이르기를 기약하신다면, 아래에서 받들어 따르는 신하들도 감히 다시 전일의 상규(常規)나 잘못된 풍습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정치에 호응하여, 각각 자신을 갈고 닦아 깨끗한 일념으로, 묘당에 있는 자는 묘당의 책임을 다하고 대각(臺閣)에 있는 자는 대각의 임무를 다할 것이고, 백료(百僚)나 서관(庶官)까지도 각각 힘써 자신의 힘을 다할 것이며, 재주나 덕이 없어 직임(職任)을 감당할 수 없는 자는 장차 직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일을 망치어 형벌을 받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감히 전에 하던 것처럼 엽관 운동이나 권문에 붙는 짓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제 한 몸을 건사하기에도 오히려 이러한데, 어느 겨를에 패거리를 모아 자격도 없는 자를 함부로 천거해서 스스로 죄에 빠지려 하겠습니까.

진실로 이렇게 된다면 현인은 나오기를 기대하지 않아도 스스로 나아올 것이고 소인은 물러나기를 기약하지 않아도 스스로 물러갈 것인데 붕당의 풍습이 무슨 걱정이 되겠습니까. 어질고 재능있는 자들이 조정에 많이 모여 절로 하나의 당이 된다면 이것이 바로 이른바 군자의 당은 많은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한갓 붕당의 명색을 미워하여 힘써 제거하고자 해서 이 당과 저 당 사이에 억누르기도 하고 떠받쳐 올리기도 하여 양쪽 모두가 성해지지 못하게 할 뿐이라면, 비록 성상의 심려를 갑절로 수고롭혀 밤낮으로 부지런히 힘쓰시더라도 끝내 효과는 조금도 없고 도리어 그 형세만을 격렬하게 할 뿐입니다. 궁내(宮內)를 엄히 다스리고 척리(戚里)를 멀리하여 먼저 왕가(王家)를 바르게 함으로써 조정을 바르게 하는 것은 예로부터 밝은 임금들이 힘쓴 바입니다. 바야흐로 단본 정시(端本正始)18) 하는 날을 당하여 이런 문제들까지 염려할 것은 없겠습니다만, 그러나 인정이란 쉽게 이끌리고 가까운 사람들은 막기가 어려우니 경계를 엄하게 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이 몇가지 일들은 세도(世道)를 일신하기 위하여 지금껏 해오던 바를 따르지 않으려는 것인데 세속에서는 처음 봄으로 반드시 괴이하게 여겨 분분히 옛것을 고치려는 것이라고 지목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은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요(堯) 순(舜)은 대성(大聖)으로서 읍양(揖讓)으로 선위(禪位)하고 받았으니 변개(變改)할 바가 없었을 듯한데도 거조(擧措) 사이에 경장(更張)한 것이 많았습니다. 그중에서 큰 것을 가지고 말할 것 같으면, 팔원(八元)과 팔개(八凱)를 등용한 것과 사흉(四凶)을 제거한 것인데, 이는 모두 요가 미처 등용하거나 제거하지 못했던 바이니, 이들을 등용하고 제거했다 해서 계승의 의리에 무슨 혐의가 되겠습니까. 따르고 개혁한 것과 덜고 보탠 것은 시세(時勢)가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또 신이 옛 성현의 말씀을 듣건대, 정치를 하는 도는 반드시 근본이 있으니 성학(聖學)을 강명(講明)해서 먼저 근본을 세운 뒤에야 정령(政令)과 시조(施措)가 사리에 맞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먼저 근본을 세우지 않고서 한갓 사업을 하는 말(末)에 간절해 하는 것은 정치를 아는 의논이 아닙니다. 그러나 신은 이에 대해 본래 어두우므로 감히 망령되이 진술하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수천 리나 되는 우리 나라에 어찌 글을 읽어 학문이 밝은 선비가 없겠습니까. 전하께서는 그 사람을 맞아다가 그와 더불어 강론하신다면 반드시 깊이 터득한 효과가 있어 신의 말로는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닐 것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시대의 병폐를 논한 것과 근본을 다스리는 도가 모두 절실하니 깊이 유념치 않을 수 있겠는가. 경은 계속 상소하여 이런 풍습을 구제하라.”

하였다. 또 하교하기를,

“특별히 호피(虎皮)를 주어서 가상히 여겨 장려하는 뜻을 표하라.”

하였다.【원소(原疏)를 궁중에 머물려 두고 내리지 않았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35책 368면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윤리(倫理)

 

-------------------------------------------------------------------[註 16]시망(時望) : 시대의 명망. ☞

[註 17]자임(自任) : 자신의 임무로 여김. ☞

[註 18]단본 정시(端本正始) : 정가(正家)의 근본이 몸에 있으므로 근본인 몸을 단정히 하고, 정국(正國)의 시초가 정가(正家)에 있으므로 시초인 가정을 바르게 하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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