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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조대왕의 탕평비(蕩平碑)
날짜 2011-11-23 13:05:08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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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국회에서 통과된 한미 FTA등과 관련한 한 논객의 글이다.

 

오늘날의 우리 정치상황과 정치인의 자질이 질적인 면에서 오히려 오래 전 선조님들 시대보다 못함을 알 수 있다.

 

우리 정치인은 물론  우리 국민들의 자질과 심성을 개발하여 가야함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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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이해득실만 있고 국익·실익 없어

 

국민 우롱하는 그들만의 국회에 탄식 절로

 

 

 

 

억지로 둘러대는 말 ‘수석침류’

 

중국 진(晉)나라 초기에 손초(孫楚)라는 사람이 있었다. 벼슬길에 나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지만 인맥이나 학맥이 부실해 초야에 묻힌 채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진나라 초기는 정세도 인심도 흉흉한 때였다. 불과 50여년 사이에 한·위·진 세 왕조가 명멸했으니 백성의 삶은 곤궁하고 식자 층 인사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글줄이나 읽은 선비들은 현실 정치를 외면하고 죽림에 모여들어 노장(老莊)의 철리를 놓고 담론하는, 이른바 청담(淸談)이 유행하던 시대였다. 손초는 벼슬 자리를 얻고자 했지만 번번히 실패하자 죽림에 들어가 청담이나 즐기기로 마음먹고 친구인 왕제에게 마음을 털어놓았다. 문재(文才)가 뛰어났던 손초는 왕제에게 이런 말로 자신의 뜻을 전했다. “돌로 양치질을 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겠다(漱石枕流).” 하지만 이 말은 ‘돌을 베개로 삼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을 하겠다(枕石漱流).’고 해야 할 말을 잘못한 것이었다. 자연 속에 파묻혀 욕심없이 살겠다는 뜻이다. 왕제가 손초의 잘못된 말을 지적하자 자존심 강하고 임기응변에 능한 손초는 이렇게 둘러댔다.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겠다는 말은 옛날의 은사(隱士) 허유(許由)처럼 쓸데없는 말을 들었을 때 귀를 씻겠다는 뜻이고 돌로 양치질한다는 말은 이를 깨끗이 닦겠다는 뜻일세.” 진서(晉書) 손초전(孫楚傳)에 보이는 고사다. 수석침류(漱石枕流), 자기가 저지른 잘못이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억지를 부리며 말을 둘러대는 궤변을 이른다.

 

 

 

 

여·야 국익 없는 비방전

 

 

그 수석침류식 말 바꾸기, 말 둘러대기가 요즘 정치판에서 경연하듯 펼쳐진다.

 

10·26 재보선 과정에서 터져나온 궤변과 막말들이 한동안 세상을 휘젓고 퍼지면서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더니 그 파장이 조금 가라앉자 이번엔 한미FTA 비준을 둘러싸고 여와 야의 창과 방패가 세차게 부딪치며 날카로운 금속성을 낸다. 자고 나면 싸움이요 돌아서면 헐뜯기라, 그 꼴이 이익을 두고 다투는 시정잡배들의 멱살잡이와 다를 바 없다. 그들 공방전의 압권이 바로 교묘한 수사법이다. 선거판에서 당사자들이 치고받는 말이나 대변인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들은 그야말로 교언(巧言)이다. 대기업의 홍보담당이나 내노라 하는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도 짜내기 힘든 언어의 조합으로 절묘하게 교직한 말, 이지적인 듯하면서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듯 하면서 감정(憾情)적이다. 점잖은 것 같으면서 부뚜막에 오른 개같고 한껏 예의를 차린 것 같으면서 한 꺼풀 벗겨 들으면 무례하기 짝이 없다. 결국 그들이 정치 공방전에서 쉴 새 없이 쏟아내는 말들이 아무리 덧칠하고 꾸며댔어도 그 울림은 날선 비방이고 지저분한 험담이며 비열한 흑색선전일 뿐이다.

 

재보선 과정에서 쏟아져 나온 말들이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험담이라면 한미FTA 비준 공방전에서 흘러넘치는 말들은 단연 국가경제에 관련된 용어들이 주를 이룬다. 국익을 전제로 한 국민경제 서민생활 농촌문제 중소기업 심지어 구멍가게 얘기까지 오가지만 여야 정치인들이 토론이랍시고 주고 받는 얘기들을 비틀고 까뒤집어 보면 국익은 간 데 없고 당리와 당략만 있을 뿐이다. 자료를 흔들며 언성을 높이고 때로는 비분강개한 어조로 나라와 국민의 앞날을 걱정하며 격정과 울분을 못참아 책상을 치고 삿대질까지 하지만 그걸 보고 듣는 사람들은 그들의 진정한 우국지정(憂國之情)을 느끼지 못한다. 말의 갈피갈피에서 번져나오는 정치적 정략적 술수와 꼼수가 모락모락 연기처럼 피어오르기 때문이다.

 

국익보다 먼저 당리를 생각해 정치적 이해 득실을 계산하는 주판 알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지난 정권에서 가장 잘 한 일이 한미FTA를 체결한 일이라고 말했던 사람들이 그 말을 뒤집어 지금 정권의 한미 FTA는 지난 정권에서 추진한 한미FTA의 짝퉁이라며 국회 비준을 결사반대한다. 심지어 을사늑약에 비유하며 ‘국익을 위해’ 저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국민여러분, 오로지 경제적 실익을 놓고 협상을 진행했습니다. …FTA를 하는 나라들은 잘 살고 하지 않는 나라들은 못 삽니다”라는 전 정권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현 정권에서 한미FTA 광고에 활용하자 전 정권 인사들이 사생결단해 이 광고를 가로막고 나섰다. ‘돌아가신 분까지 내세워 홍보를 하고 있으니 염치없는 행태가 가증스럽다’며 ‘이익 균형을 깨뜨린 MB FTA는 불량 부품을 여기저기 끼워놓은 불량상품’이라고 주장하면서 허위 광고를 계속할 경우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장군에 멍군이요 멍군에 외통수인 장기판을 보는 느낌이다.

 

무엇이 국익인가. 어떻게 해야 민복(民福)을 이룰 수 있는가. 고도의 국제 정치적 감각과 경륜을 지닌 사람들만이 그 시대 국제 관계와 국내 경제 상황을 통찰하고 면밀주도한 대책을 세워 국리민복을 꾀할 수 있다. 정파의 이익을 우선하거나 단견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섣불리 결정할 일이 아니다. 국리와 민복을 최우선으로 꼽는다 하더라도 그릇된 신념이나 주장을 앞세운다면 이 또한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조선왕조 인조 임금 때 당한 참혹한 국난, 병자호란에서 그 교훈을 얻는다.

 

 

 

 

최명길·김상헌 병자호란 대처

 

 

임금과 조정 대신들이 명분에만 집착해 신흥 강국 청나라와의 외교관계를 악화시킨 것이 병자호란의 화근이었다. 청나라 황제 홍타이지가 직접 10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입해 인조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하고 죄 없는 백성들이 도륙당할 때 조정에선 척화파(斥和派)와 주화파(主和派)가 서로 결사 항전과 항복을 주장하며 대립하고 있었다. 척화파는 대의와 명분을 내세웠고 주화파는 우선 나라와 백성부터 구하고 보자는 실리를 내세웠다. 두 파가 갑론을박 옥신각신한 끝에 주화파의 주장이 세를 얻어 이조판서 최명길이 항서(降書)를 썼다. 하지만 치욕적인 항복을 거부하는 척화파 김상헌이 항서를 찢어버렸다. 침통한 얼굴로 지켜보던 주화파 최명길이 찢어진 항서를 다시 주워모았고 한겨울 혹한 속에 인조는 맨땅에서 청나라 황제 앞에 무릎 꿇고 항복의 예를 올려야 했다.

 

한 때 사람들은 최명길을 망국의 원흉으로 규탄했고 김상헌을 우국지사로 떠받들었다. 하지만 나라와 백성을 구한 것은 결국 화친을 주장한 최명길이었다. 김상헌은 최명길과 함께 청나라 심양으로 끌려가 문초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최명길 역시 조선 대신의 직분과 기개를 잃지 않았다.

 

최명길을 미워하던 김상헌은 죽음 앞에서도 의연한 자세를 보이는 최명길을 보고 그의 화친 주장이 오직 나라와 백성을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야 그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의심을 풀게 되었다”는 김상헌의 말에 최명길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대 마음은 바위 같아서 돌리기 어렵고 나는 고리와 같아서 때에 따라 돌기도 하지.” 이들과 함께 청나라에 끌려가 고초를 겪고 돌아와 후일 영의정으로 효종을 보필한 백강(白江) 이경여(李敬輿)는 시 한 편을 지어 두사람을 기렸다. “두 어른 나라 위한 마음 같으니/한 분의 절개가 하늘을 떠받들고/한 분의 큰 공이 한 시대를 건졌네/이제야 마음이 하나 된 곳/두 노인 모두 백발이 성성해라”

 

 

 

 

정치인 흑백논리 없어져야

 

 

치열한 싸움판 재보선에 이어 곧바로 한미FTA 비준을 놓고 새 싸움을 벌인 정치판은 글자 그대로 난장판이다. 병자호란 때 주전파와 주화파의 대립은 명분과 실리를 건 줄다리기였다. 그러나 지금 정치판의 한 치 양보도 없는 싸움에서 명분도 실리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들의 머릿 속엔 오직 내년 총선과 대선이 있을 뿐이다. 내년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마침내 승리해 권력을 휘두르기 위해 그들은 총력전을 펼치고 잇는 것이다. 토론도 협상도 없는 정쟁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막막할 따름이다.

 

끝없는 당쟁의 소용돌이에 진저리가 난 조선의 영조 임금은 1742년 봄 친필로 다음과 같은 글을 써서 비석에 새겨 성균관 뜰에 세웠다.

 

 

“성심으로 사귀면서 편당을 짓지 않는 것은 군자의 공심(公心)이요, 편당을 지으면서 성심이 없는 것은 소인의 사심이라.(周而弗比乃君子之公心 比而弗周寔所人之私心)” 영조는 탕평비(蕩平碑)를 세우면서 장차 국가의 동량이 될 성균관 학생들에게 당쟁에 말려들지 말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편당을 짓고 흑백논리로 정쟁을 일삼는 소인배들의 유전자가 면면히 이어져 지금도 잘난 청치인들 핏줄에 녹아 흐르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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