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참여마당 > 참여게시판
 
 
 
제목  애민정신[愛民精神]
날짜 2011-12-08 15:38:15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638
첨부파일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애민정신[愛民精神]

 

 

근래의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의 흐름 속에는 심원(深遠)한 애민의 정신 보다는 시류에 영합하고 인기에 영합하며 개인의 목전 이해에 쏠리는 포퓰리즘(populism)에 가까운 정신의 흐름이 많이 감지된다.

 

 

좀 모질게 말하면 천박스러운 사회문화로 흘러들어가는 경향으로 느낀다.

 

 

미국의 저명한 Rick Warren 목사는 오늘날 미국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인들이 심원한 진리는 뒤로한 체 “천박한 시민의식(shallow minded culture)”에 빠져가고 있는데 있다고 말하였다.

 

 

이에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자세로 세종대왕과 백강 이경여 선생의 깊은 애민정신의 세계를 뒤돌아 보고 오늘날의 세태를 개선하여 가는데 하나의 지표로 생각하여보고자 한다.

 

 

이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도 궤도(軌道)를 같이하는 정신이다.

 

 

 

1. 세종대왕의 애민정신

 

 

 

한 나라의 통치자가 당대에 자신이 평가받을 치적보다는 100년 300년, 천년 후를 생각하며 온전히 백성을 위해, 백성을 위한 정책을 입안하고 펼친다면 그 통치자는 제왕을 넘어 신이라 불러도 무방하리라.

 

 

최근 한글창제의 위대함을 일깨워주고 있는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가 그동안 잊고 있던 세종대왕의 치적들을 새삼스럽게 떠올리게 해 준다. 그리고 그의 업적들이 이 시대에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지를 돌아보게 한다.

 

 

폭력은 약한자들의 통치수단

 

 

드라마 속에서 세종은 한글창제를 거세게 반대하는 사대부들과 끊임없이 토론하고 대화한다. 세종이 아닌 역대의, 혹은 오늘날의 다른 왕이었다면 왕의 의견에 반대하는 신하들에게 대화와 토론이 아닌 물대포나 칼로서 단숨에 저지하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그 대화와 토론 속에 세종의 통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왜 폭력은 안 되는 것인지. 왜 백성들에게 배우기 쉬운 글자가 필요한 것인지.

 

 

그는 아버지 태종이 물리적인 힘을 이용해 백성과 신하들을 규합하고 다스리는 일에 깊은 죄의식을 느낀다. 권력을 갖기 위해 피비린내 나는 폭력을 이용하는 아버지에 대해 분노하면서 군주로서 자신만의 조선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뼈아프게 고민한다.

 

그가 생각하는 ‘폭력’은 가장 쉬운 통치방법이다. 그는 그 쉬운 방법을 과감하게 버리는 것에서 부터 출발한다. 그는 잠을 자지 않으며 책을 읽고 농사, 과학, 음악, 조세, 법률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 연구를 직접 진두지휘한다. 그가 연구한 많은 학문들은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실제 생활에 응용하고 적용하며 쓰이도록 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신하들의 반발에 부딪치지만 그는 대화와 토론의 시간을 주기적으로 가지며 신하들을 설득한다. 자신의 정책을 반대한다고 신하들을 벌하지 않는다. 그는 서둘지 않는다. 한번 설득해서 되지 않으면 두 번 세 번이고 반복해서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그의 이러한 정신은 공정함에서 출발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고 다른 생각을 펼칠 수 있다는 것. 인간을 상하의 개념이 아닌 평등의 개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폭력은 오히려 약한 자들의, 우둔한 자들의 야만스러운 행동일 뿐이다.

 

 

그런 세종대왕은 백성을 다스리는 마음가짐도 다르다. 힘없고 가난하고 불쌍한 백성이 평생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원치 않는다.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며 불행하게 살기 보다는 옳고 그른 것을 말할 수 있고 자신들의 행복과 발전을 추구하기를 바란다. 서로 싸우고 토론하고 경쟁하더라도 정체돼 있는 삶 보다는 한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가 현재 보다는 미래가 더 나은 삶이 돼 주기를 바란다.

 

 

과거에 응할 수 없다고 그것에 순응하며 살기 보다는 자신들도 공부해서 그들의 권리를 스스로 쟁취해 나가기를 바란다. 그것이 당장은 어렵겠지만 세월이 흘러 백성 스스로에게 자신들만의 고유한 자아가 생긴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가 백성을 불쌍히 여겨 오랜 세월 밤잠 못 자가며 만든 글자, 한글의 창제 목적이다.

 

 

세종대왕은 한글이 반포된다 해도 당장 백성의 삶이 달라질 것이라 바라지 않았다. 그는 당대의 눈에 보이는 성과를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100년 후, 300년 후, 천년 후를 기대했다. 백성들이 한글을 통해 자신들의 삶을 변화시키게 될 것이라 믿었다. 당장은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세월이 흘러 모든 백성들이 쉬운 한글을 쓰고 익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면, 모든 백성이 글을 읽고 생각을 표현하는 날이 온다면, 백성의 세상이 달라질 것이라 믿었다.

 

 

보이는 업적보다 깊이 느껴져

 

 

그가 그토록 원했던 것은 신분차별과 가난의 대물림과 모든 불공평에서 백성이 비로소 평등하게 기회를 가질 수 있는 백성의 세상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그의 꿈이었고 그 꿈은 당대에 이뤄지기 보다는 후대를 기약한 것이다. 이것이 세종대왕과 다른 모든 통치자들과 다른 점이다. 과연 어느 통치자가 자신의 공적을 당장 내세우지 않고 천년 후를 기약할 수 있단 말인가. 5년, 혹은 7년이라는 짧은 재임기간 동안 수많은 업적을 남겨 그 공적을 인정받고 싶은 오늘날의 통치자들을 생각하면 비교조차 되지 않는 일이다. 그가 남긴 엄청난 눈에 보이는 업적보다도,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마음으로만 느껴볼 수 있는 그의 애민정신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눈물겹다.

 

 

2011.12.04. 김정애 논설위원

충청매일(http://www.ccdn.co.kr) webmaster@ccdn.co.kr

 

 

 

 

2. 백강 이경여 선생의 애민정신

 

 

~~~효종 4년 (1653년) 7월2일 백강 이경여 선생의 “재변극복을 위한 상차문” 중에서~~~

 

 

이른바 애민(愛民)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임금이 백성을 대하는 것은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것과 같은데, 자식이 굶주리고 추우면 부모로서 예사로 여기는 자가 있겠습니까. 신은 아직도 경인년762) 의 수교(手敎)를 기억합니다. 송(宋)나라 조후(曺后)가 ‘천하에 이롭다면 내가 어찌 머리털이나 피부를 아끼겠느냐’고 한 말을 인용하셨으니, 본말과 경중의 구분을 전하께서 이미 스스로 아셨다고 하겠습니다. 예전에 명(明)나라 인종 황제(仁宗皇帝) 때 봉사(奉使)하고 강회(江淮)에서 돌아온 자가 기근을 말하니, 드디어 강관(江關)의 수백만 섬의 쌀을 내어 구제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사농(司農)과 의논하기를 청하였으나, 인종이 ‘유사(有司)가 걱정하는 것은 경비(經費)이니, 함께 의논하면 일이 시행되지 않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참으로 선인(宣仁)763) 의 마음으로 인종의 정치를 행한다면 어찌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하동(河東)에서 곡식을 옮기는 것으로 마음을 다하였다고 생각한다면 문제는 심각한데 해결책은 미미해서 구제하는 것이 없을 듯합니다. 해마다 잇따라 흉년을 만나 홍수와 가뭄이 서로 이었는데 다행히 이제 씨뿌리는 시기를 잃지 않고 비도 조금 내려서 추수할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생각건대 해묵은 기근 끝에 미납된 조세가 참으로 많고 공사(公私)가 곤궁하여 곡식을 화매(和賣)한 것이 필시 배로 늘어났을 것이니, 옛사람이 풍년의 폐해가 흉년보다 심하다고 한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신이 지금 미리 아뢰는 것은 전하께서 이 점에 유의하여 유사의 청에 대비하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가난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는 정사가 위에 달려 있는 것이기는 하나 봉행하는 책임은 실로 백성을 기르는 수령에게 있습니다. 한 선제(漢宣帝)는 이천석(二千石)764) 이 나와 함께 다스린다 하였고 당 태종(唐太宗)은 영장(令長)의 이름을 병풍에 써 두고 늘 보았으니, 백성을 사랑하는 요체를 알았다 하겠습니다. 더구나 대읍(大邑)·대도(大都)는 나라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호남(湖南)의 전주(全州)·나주(羅州)·영암(靈巖)·남원(南原)과, 호서(湖西)의 충주(忠州)·청주(淸州)·공주(公州)·홍주(洪州)와, 영남(嶺南)의 경주(慶州)·상주(尙州)·진주(晋州)·안동(安東)과, 기타 제로(諸路)에 있는 각각 번요(煩要)한 곳은 마땅한 사람이 아니면 백성이 그 폐해를 받을 뿐더러 불행히 변을 당할 경우 어디를 믿겠습니까. 신중히 선임하는 법을 더욱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묘당(廟堂)을 시켜 전관(銓官)과 함께 의논하여, 반드시 시종(侍從)에 출입하고 명성과 공적을 이미 나타내고 꼿꼿하고 재국(才局)이 있는 선비를 가려서 반드시 의의(擬議)하게 하고, 해조로 하여금 정사 때에 가려 차임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단 마땅한 사람을 얻은 뒤에는 인재를 양육하기를 아울러 요구하여 반드시 호령(湖嶺)이 예전처럼 번성하도록 한다면, 반드시 정사 때에 임박하여 구차하게 채우는 식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태백산사고본】【영인본】 35책 633면

 

【분류】 *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 / *왕실(王室) / *윤리(倫理) / *역사-고사(故事) / *역사-전사(前史) / *인사-관리(管理)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군사-군정(軍政) / *신분(身分) / *재정(財政) / *농업(農業) / *구휼(救恤)

 

--------------------------------------------------------------------

 

[註 762]경인년 : 1650 효종 원년. ☞

[註 763]선인(宣仁) : 송 조후(宋曺后)의 시호. ☞

[註 764]이천석(二千石) : 자사(刺史). ☞

 
번호 작성자 제목 등록일 조회수
152 이주관 주자학(朱子學)의 미래 2012-01-06 1382
151 이주관 임사이구 (臨事而懼) ~ 세종대왕 2012-01-03 1275
150 이주관 우리문화의 나아갈 길 2011-12-26 1206
149 이주관 병자호란과 삼전도비 2011-12-24 1366
148 이주관 고독의 의미와 사가독서(賜暇讀書) 2011-12-22 1404
147 이주관 우리 문화의 저력(底力) 2011-12-15 1096
146 이주관 고집스런 생각 2011-12-13 1098
145 이주관 건전한 언어문화의 중요성 2011-12-08 1233
144 이주관 애민정신[愛民精神] 2011-12-08 1639
143 이주관 조종암~자주독립정신 2011-11-26 1482
142 이주관 祈禱와 冥想의 시간 2011-11-24 1202
141 이주관 영조대왕의 탕평비(蕩平碑) 2011-11-23 1519
140 이주관 전서체 (능호관 이인상 선생) 2011-11-21 3019
139 이주관 殺身殉國 君子曰仁 2011-11-16 1214
138 이주관 萬世之基의 삶 2011-11-15 1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