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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문화의 나아갈 길
날짜 2011-12-26 17:20:59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206
첨부파일 우리문화의 나아갈 길.hwp    

우리문화의 나아갈 길

 

 

 

아래의 글(韓國文化와 西洋文化)은 우리 전래의 문화와 서양문화 그리고 서양문화의 우리나라에로의 유입 등에 대한 고찰이다.

 

 

서양문화의 유입에 크게 힘입어 우리는 과거의 생존을 위협받았던 빈곤의 처지를 이제는 극복하고 먹고 살만하여졌다고 하겠는데, 앞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의 인간다운 행복과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는 우리문화의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심도 있는 연구와 이를 바탕으로 한 각고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사실상 서양의 문화는 거의 절대적으로 기독교 문화에 기초를 두고 발전하여 와서 오늘날의 서구문명 나아가 세계문명으로 이끌어 왔으나, 그 과정에서 세월과 더불어 인간들의 죄성(罪性)으로 인하여 많은 부분 변질되고 타락하여 오늘날 서구 선진사회에도 많은 문제점을 노정(露呈)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앞으로는 우리가 선진화의 미명에 현혹되어 무작정 지나치게 세속화되고 물질화된 오늘날의 서구 문명을 검토 없이 그대로 받아드리는 자세를 止揚해야 할 이유이다.

 

우리는 타락된 서구문명 이전에 있었던 서구문명의 원동력(소프트웨어) 예를 들면 희랍문화의 합리주의, 기독교의 아가페(Agape)적 사랑정신, 인권사상, 평등사상, 민주주의, 근검절약정신, 근로정신 등의 소프트웨어를 몸으로 체득하여 우리들의 인격을 함양하는 데에 주력하여야 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나라에 들어와 먼저 토착화되어진 유교 불교문화 등의 좋은 면모들을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자세로 깊이 찾아 살려가고 발전시켜나가는 자세를 부단히 견지 하여야할 것이다. 예를 들면 자연을 사랑하고 아끼는 정신, 충효의 정신, 인경(仁敬)의 정신, 禮를 숭상하며 남을 배려하는 정신 등이 생각난다. 세종대왕시대의 愛民정신 학문숭상, 문화주의 등은 거의 그대로 되살려도 세계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선조님들의 정신과 삶이 담긴 한문서적들의 번역이 너무 미진한 것이 현실인데 이는 급선무이다.

 

이러한 우리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리 나름의 바람직하고 독창적인 종교, 철학, 문학의 발전을 지속적으로 도모하여 가야 할 것이다. 우리 나름의 차원 높은 문화철학을 창조하여 나아가야 할 것이며 또 이를 널리 펴 국민들이 두루 널리 실천하여 가야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들 자신은 물론 우리자손들에게 행복한 삶을 물려주게 될 뿐 아니라 나아가 세계 인류의 나아갈 바를 비추고 이끄는 등불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남북통일을 이루는 저력(底力)은 저절로 길러질 것이다.

 

 

2011.12.26.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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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文化와 西洋文化

 

孫 鳳 鎬

 

 

머리말

 

문화란 "집단의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이 비유전적(非遺傳的)으로 획득하고 생산한 것의 총체"를 뜻한다. 문화는 인간 집단적 의식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문화는 의식의 내용을 거의 절대적으로 결정하므로 문화와 의식의 내용사이에는 끊임없는 교류가 이루어지고, 양자는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여 양자의 동일한 정체성을 형성한다. 한 문화는 끊임없는 변화와 타문화와의 교류에다 개인들의 창조활동과 자유의지의 결과가 개입되므로 어떤 자연적 법칙에도 얽매이지 않고, 미래의 예측을 가능하게 할만한 법칙도 보이지 않은체 계속 변화하고 발전한다. 그러므로 불변한 문화적 정체성이나 정체성을 절대적으로 결정하는 요소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문화 내부적 사건과 외부의 영향은 정도의 차이를 두고 문화에 그 자취를 남기며 그 다음의 발전에 영향을 끼치므로, 매우 일반적이고 형식적인 것들을 제외하고는 문화에서 고유한 것이나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우리 문화를 영원히 "우리" 것으로 만들고 서양문화를 영원히 "서양" 것으로 만드는 본질적 요소는 아무 것도 없다.

 

 

 

1. 文化와 宗敎

 

 

문화의 성격을 결정하는 요소들은 무한히 많다고 할 수 있다. 지리적 조건이나 기후등의 풍토, 그 이전의 문화적 전통, 정치및 사회제도, 교육제도, 주변 문화와의 교류, 종교, 경제적 상황, 창조적 두뇌등 온갖 조건들이 다 문화의 특징과 발전속도등에 영향을 준다. 그 중에 어느 한가지가 어느 시대, 어느 문화를 막론하고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고대사회에서는 역시 종교가 문화의 내용과 특색을 결정하고 심지어 그 발전의 방향과 속도까지도 상당할 정도로 지배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자연조건, 인종과 언어, 심지어 그 이전의 문화적 배경이 달랐어도 같은 종교를 공유하면 상당할 정도의 문화적 요소들을 공유하게 되었고, 다시 새로운 종교가 상당한 기간동안 지배하면 전혀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었다. 오늘 날 애집트에서 고대 애집트 문명의 흔적은 몇 가지 물질적 유적만 남았을 뿐 그 문화의 정신적 유산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그동안 애집트가 이슬람교란 전혀 새로운 종교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며, 바벨론, 페르시아, 잉카문명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늘의 그리스가 유럽의 다른나라에 비해 고대 그리스 문화의 요소를 더 가지고 있다고 하기가 힘든 것은 그리스가 고대 그리스도인이 전혀 몰랐던 기독교를 받아 들였기 때문이다. 반면, 현대의 인도와 중국은 그들의 고대문화 요소들을 상당할 정도로 유지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그 시대의 종교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문화를 논의할 때도 불교와 유교의 영향에 주된 관심을 기우리는 것은 당연하다. 비록 그 두 종교가 모두 외래 종교이긴 하지만 지금 우리 국민의 대부분이 두 종교의 영향아래 형성된 문화를 "우리" 문화로 의 식하고 있는 것은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외래적인 것이라도 그것이 오랜 세월을 걸쳐 사람들의 의식생활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치면 그것은 토착화될 수 밖에 없고, 그 기초위에 그 다음의 문화적 발전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이미 "우리" 문화로 정착된 것이다. 그러므로 심지어는 그 이전에 토착적인 것으로 받아 들여졌던 것이 오히려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고대 애집트 문명은 현대 애집트인들에게 아주 생소한 것으로 인식될 것이다.

 

 

불교와 유교다음으로 우리 문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서양문화다. 그런데 서양문화의 영향에 대해서도 불교와 유교가 우리 문화에 끼친 영향을 논의할 때와 같은 관점과 벙법으로 접근할 수 있는가? 여러가지 이유에서 같이 취급될 수 없음이 들어난다.

 

 

오늘날 우리는 이미 종교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꽁트의 역사발전 모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더라도, 종교나 형이상학적 이론이 문화의 특징을 결정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현대사회에서 과거 종교가 차지했던 자리에 서게 된 것은 물리적 혹은 경제적 힘의 증대이며 그것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서의 과학기술이다. 과거에 영혼 구원을 위하여 기우렸던 노력을 현대인은 물리적 혹은 경제적 힘의 증대에 기우리고 있고, 그것이 문화의 특징을 결정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바로 이 사실이 우리나라에 미친 서양문화의 영향과 불교나 유교의 영향의 유사성과 근본적인 차이를 결정한다. 서양문화의 도입은 현대의 종교로 부상한 물리적 힘의 증대와 관계해서 고찰해야 그 의의를 바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가 한다.

 

 

2. 우리에게 傳來된 西洋文化와 그 傳來過程의 性格

 

 

(1) 世俗化된 西洋文化

 

 

오늘의 우리 문화가 형성되는 과정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외래문화를 논의할 때 우리는 불교, 유교는 언급하면서 그와 함께 '기독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기독교' 대신 구태여 '서양문화'를 거론한다면 왜 '인도문화', '중국문화'는 거론하지 않는가?

 

 

그것은 아마도 우리에게 전래된 서양문화를 기독교 문화라 하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서양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종교는 말할 것도 없이 기독교였고, 기독교적 요소를 빼고 서양문화를 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비록 지금의 서양문화에서 기독교적 성격이 많이 제거되었다 하더라도, 기독교적 요소는 아직도 그 뿌리에 남아 있고, 심지어 기독교적 성격을 제거한 요인도 기독교에 있다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서양문화를 기독교 문화라 해도 큰 잘못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전래된 서양문화를 기독교 문화로 부르기를 꺼려하는 이유는 그 서양문화가 이미 하나의 종교문화라기보다는 상당할 정도로 종교적 요소를 제거한 세속화된 문화였고, 그 전래 과정에 있어서도 불교문화나 유교문화처럼 어떤 특정한 종교를 매개로 도입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문화에 끼친 서양문화에 대해서 논의할 때는 유교나 불교의 영향에 대해서 논하는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다.

 

 

 

우선, 불교와 유교의 전래에 있어서는 그 동기와 통로로 종교가 주된 것이었고, 그 종교의 배경이 되었던 인도문화 혹은 중국문화는 오히려 종교에 종속적이었고 부차적이었다. 따라서 그들 종교의 전래에 있어 그 배경이었던 문화적 요소가 결정적인 방해나 도움을 주지 않았고, 그 문화적 배경을 반드시 종교와 함께 같이 수용해야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도입했을 때의 서양문화는 이미 상당할 정도로 기독교적 색체를 상실한 세속문화였다. 서양문물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이미 4세기전이나, 본격적으로 우리 문화에 영향을 끼친 것은 開港 이후 100년동안이고, 특히 해방이후로부터다. 正祖와 高宗초 사이의 100년동안 천주교를 통하여 서양문물이 전래되었으나, 그 때는 이미 서양에서 개몽사상이 꽃을 피운때였고 기독교 세력이 근본적으로 쇠퇴하기 시작된 때였으며, 제2차대전 이후의 서양문화는 세속화 과정이 훨씬 더 진행된 문화였다. 기독교적 신학이나 신앙의 관점에서보다는 자연과학적 관점에서 인간과 세계를 보는데 훨씬 익숙해진 문화였고, 특히 정치, 경제, 학문등 삶의 가장 중요한 영역에서는 종교가 영향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2) 導入의 世俗的 動機

 

도입된 서양문화 그 자체가 이미 종교적인 것으로 특징지워질 수 없는 것이었을 뿐 아니라, 그 도입과정도 불교나 유교처럼 종교가 주된 역할을 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천주교와 기독교가 서양문화 도입에 어느 정도 작용한 것은 사실이다. 천주교는 적어도 實學思想을 보강하고 尊華思想에 비판적인 안목을 심음으로 서양문물 수용에 긍정적 풍토를 조성하는데 어느 정도 공헌하였고, 개신교의 전래는 서양의학, 서양식 교육, 평등사상과 민주주의 사상을 심는데 상당한 공헌을 하였다. 지금도 천주교와 기독교 신자들이 의식구조나 생활방식에 있어서 평균적인 한국민들보다 더 서양적이란 사실과 일제시대와 해방후에 기독교인들이 비기독교인들보다 훨씬 많이 그리고 쉽게 서양인과 접촉했다는 사실은 이들 종교가 서양문화도입에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이들 종교가 우리나라의 서양문화 전래에 감당한 역할은 미미하다 하겠다. 종교보다는 오히려 우리나라의 상황과 정치와 경제에 있어서 국제적 관계가 더 중요한 역할을 했고, 최근에는 서양사상의 영향아래 형성된 문화적 분위기가 다시 서양문화 수입을 가속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서양문화의 전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서양문화의 기독교적 성격이 아니라 그 문화가 생산하고 소유한 물리적 힘이었다. 물론 서양이 소유했던 물리적 힘은 16세기에 시작된 현대과학과 그 과학의 응용인 과학기술에 의한 것이고, 그 과학을 발전시키는데는 기독교가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서양문화를 수입하게 된 가장 중요한 동기와 배경은 기독교가 아니라 서양의 과학기술에 의한 물리적 힘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서양에 대한 중국의 태도에 대하여 크릴은 "총기에 대한 유교적 원칙의 대응은 의심할 여지 없이 고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효과적인 대응이 되지 못했다. 중국인들이 서양인들과 그들의 모든 문물을 아무리 싫어했더라도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서양인들의 과학기술을 배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화기사용은 그 전형적인 예였는데, 17세기에 중국인은 예수잇 선교사들로 하여금 그들을 위하여 대포를 만들도록 하였다. 수학과 자연과학의 가치를 일찍부터 인정하였다"고 쓰고 있다.

 

 

문화란 자연의 횡포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인간공동체의 노력과 그 결과의 총체라 할 수 있다. 자연의 이치를 발견하여 자신을 거기에 순응함으로 자연과의 갈등을 최소하려는 인위적인 노력도 문화활동이요,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여 그것을 이용하여 자연을 정복하는 것도 문화활동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전자는 종교를 중심으로 한 정신문화요, 후자는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한 물질문화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자연을 정복하는 문화가 자연에 순응하는 문화에 비해서 더 큰 물리적 인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므로 두 문화가 갈등관계에 서게 될 때에는 역시 물질적 하부구조에 치명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물질문화가 우세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리 고상한 인격이라도 총알앞에서는 무력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서양문화를 수입한 경우도 거의 같은 말로 표현할 할 수 있지 않을가 한다. 개화기에 우리 지식인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서양사상은 윤리학, 논리학, 형이상학이 아니라 사회진화론이었다는 사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것은 그 이론 자체의 이론적 설득력보다는 생존경쟁, 적자생존등의 개념들이 그 시대에 우리 사회가 처한 상황을 잘 설명할 수 있는 것 것 같았기 때문이고, 나라를 강하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강한 정치의식을 불러 일으키고, 새로운 서양의 실리적인 문물제도를 받아 들이는 이론적 배경을 제공해 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우주와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 고귀한 인격수양, 그리고 아름다운 예술의 창작은 분명 문화의 가장 고상한 부분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런 정신적 상부구조는 물질적 하부구조를 떠나 존재하고 발전할 수 없는 것이다. 생물적 생존이 위협을 당하는 상황에서 그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을 찾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만약 우리도 서양못지 않은 물리적 힘을 가졌거나 열강과 일본의 물리적 힘에 의한 위협과 침입을 받지 않았고 우리의 삶이 경제적으로 풍부하고 편리했더라면 서양문화의 매력을 그렇게 크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우리를 노략한 일본이 서양의 어떤 기독교국가가 아니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일본이 서양의 몇나라와 적대관계에 있었고 기독교를 탄압했다는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기독교와 서양문물을 도입하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비서양 여러나라 가운데서 한국에 기독교가 서양 종교란 의식이 제일 적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해 준다. 원수의 원수는 동지란 등식이 작용한 것이다. 그 때문에 동남아나 아프리카의 약소국가들이 서양문화를 도입한 과정에 비하면 우리의 경우는 훨씬 더 자율적이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에 의한 강점이 타율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응은 비록 그 자체로는 자율적이라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타율적인 면을 가졌다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도입은 좀 더 구체적으로는 산업화를 위한 것이었다. 학문적 혹은 어느 다른 동기보다 더 강하게 작용한 것은 경제적인 동기였다. 그리고 그것은 최근 영토나 군사력보다 경제력이 국력을 대표하는 상황이 되자 더욱 더 강하게 나타났고, 교통, 통신의 발달로 세계의 모든 나라와 경쟁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동기로 작용하고 있다. 경제적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서양화가 한 층 더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서양문화와 그 도입에 대해서 아무리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사람이라도 우리의 서양문화 도입에 대해서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이 불가피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서양의 과학기술문명은 자신을 배태한 어미를 죽였다 할 수 있다. 기독교가 형성한 문화적 배경에서 과학은 태어났으나, 그 과학이 기독교를 약화시키고 서양문화를 종교로부터 세속화시켰다. 18세기에 일어난 개몽사상은 자연과학의 발달에 자극받은 것이고 개몽사상은 무엇보다도 기독교로부터 이성활동의 해방을 위한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개몽사상이 주류가 된 서양문화는 우리나라에서도 서양에서와 비슷한 작용을 수행하고 있다. 즉 종교가 핵심이 되어 있는 전통문화를 세속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불교및 유교적 배경에서 형성된 자연관, 인간관, 가치관 뿐 아니라 심지어 기독교적 관점들도 그 파괴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세속적인 동기에서 유입된 세속화된 문화는 우리 문화를 세속화시키고 세속화된 문화는 세속화를 가속시켜 사회를 점점 더 물질주의적으로 만들고 있다.

 

 

물론 이것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오늘날 서양에서 발원된 과학적 물질문화는 세계의 모든 사회를 우리 사회를 세속화시킨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세속화시키고 물질주의적으로 변모시키고 있고, 그런 점에서 세계문화로 등장하고 있다. 세계 모든 사회에서 현대화 과정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현대화는 곧 서양화로 이해되고 있다. 이제 과학기술은 그 태생지인 서양의 지리적 태두리를 벗어나 세계 문화의 한가운데 자리잡게 되었고, 문화의 여타 영역에 결정적인 영향을 행사하기에 이르렀다. 세계 모든 다른 사회와 함께 우리는 서양화를 통하여 세계화되는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이다.

 

 

(3) 形式的인 土着化

 

이렇게 다소 타율적으로 전래된 외래문화는 종교를 매개로 한 도입된 외래문화와 여러가지 면에서 다른 양상을 나타낼 수 밖에 없다.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가운데 하나는 이렇게 물질적 절박성에 의하여 수입된 문화는 내면적인 종교적 확신에 입각해서 도입된 문화에 비해서 인간관, 가치관등 정신적 토착화과정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시간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그 한 이유가 되겠지만, 서양문화적 요소가 외형적인 제도나 형식에 주로 나타나고 내면적인 가치관과 확신으로는 아직 충분히 정착하지 않고 있다. 자동차를 제조하는데는 서양에 손색이 없으나, 그것을 질서있게 운전하지는 못하고, 서양의 관료제도는 도입했으나, 봉사의식보다는 지배의식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즉 외부적 형식과 제도는 서양적인 반면에 내면적 의식구조는 전통적으로 남아 있는 불균형이 우리 문화의 큰 문제거리가 되고 있다.

 

 

그리고 서양문화의 도입이 주로 세속적 혹은 물질주의적인 동기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그 수용정도도 역시 물질적인 것과 관계된 영역에 더 커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서양문화가 가진 특성가운데 한 중요한 요소인 합리성은 주로 도구적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고, 그것은 경제분야에 가장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기업계의 합리성이 정치계나 심지어 대학에서보다 더 크게 강조되고 있을 뿐 아니라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주로 물질주의적인 동기에 의하여 도입된 서양문화이기 때문에 역시 물질적인 것과 관계되는 영역에서 더 빨리 그리고 강하게 정착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4) 進行되고 있는 導入

 

외래문화로서의 불교문화나 유교문화의 도입은 오래 전에 이미 종결된 반면 서양문화의 도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또 하나의 다른 점이다. 불교나 유교의 경우에는 우리에게 새로운 영향을 줄 수 있는 강력한 외부의 불교문화나 유교문화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도입이 계속될 가능성이 없고, 충분히 토착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제는 그것을 바탕으로 한 재창조가 오래 전부터 이루어지고 있다. 한 문화가 상당할 정도의 재생산을 수행한다면 그것을 외래문화로 취급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우리가 불교문화나 유교문화를 외래문화로 의식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영향아래 우리의 제도와 의식이 형성되고 그 바탕위에서 재생산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능동적인 재창조가 이룩되면 그것은 이미 '한국적'이 된 것이다.

 

 

물론 서양의 과학문화도 어느 정도 토착화되었고, 상당할 정도의 재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가 만든 양복이 서양에 수출되고 있으며, 우리가 만든 자동차를 서양인들이 타고 다닌다. 심지어는 우리가 서양인들보다 더 서양적인 경우조차도 있다. 그러나, 아직도 서양문화, 특히 우리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요소들의 토착화는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더구나 새로운 서양문물은 계속 도입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그럴 가능성이 없는 유교와 불교와는 전혀 다른 상황에 처해있다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서양문화에 대한 평가는 유교나 불교문화에 대한 모든 반성과 평가와는 달리 잠정적일 수 밖에 없다.

 

 

 

3. 文化發展에 影響을 미친 西洋文化的 要素들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외면적이고 형식적으로 정착화되고 있지만 과학기술은 그 자체로만 따로 떨어져 다른 문화에 이식될 수는 없다. 역시 그것을 배태하고 유지하는 문화적 배경을 동반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연적으로 동반될 뿐 아니라 상응하는 배경이 없이는 과학기술도 본래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으며, 문화적 현상으로서의 과학기술은 반드시 일반적인 사고방식과 제도에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서양문화가 우리나라에 심은 문화적 요소는 광범위하다. 민주주의 정치 제도, 학문및 교육제도, 경제제도등 사회전반에 엄청나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들뿐 아니라 교통, 통신, 의식주, 심지어 결혼제도에 이르기까지 서양문화는 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것들을 다 열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서양문화적 요소들 가운데서 상당할 정도로 우리 것으로 정착한 것들가운데는 계속되는 문화의 재생산, 혹은 재창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있다. 제도적인 것들로서는 우리가 체택한 민주주의와 공교육이 그런 것이고, 우리가 사용하는 교통및 통신수단도 그런 문화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결정적인 것은 문화에 대한 몇 가지 근본적인 시각이 서양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연관, 역사관, 그리고 보편문화관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것들도 정치및 경제제도나 과학기술과 같은 물질적이고 제도적인 변화가 만들어 낸 산물이라 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들 변화를 가능하게 하고 촉진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들에 대해서 반성해 보는 것은 우리 문화에 미친 서양문화의 영향을 이해하고 평가하는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동시에 오늘의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1) 世俗化된 自然觀

 

 

서양문화는 우리들의 신관, 인간관, 가치관등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나 가장 급진적으로 바꾸어 놓은 것은 우리의 자연관이다.

 

 

우리는 대부분의 다른 동양사회와 같이 유기적 자연관을 가지고 있었다. 자연이 곧 하늘이요 그 자체로 신성하여 인간의 숭배의 대상은 될 수 있을지언정 결코 이용과 조작의 대상은 될 수 없었다. 인간은 그 거대한 자연의 한부분이었고 문화도 자연의 연장이었으며,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이 중요한 당위일 뿐 아니라 행복의 조건이었다. 그것은 종교 혹은 철학사상, 詩歌, 繪畵에 잘 반영되었으며, 그보다 사람들의 의식구조와 일상생활의 방식에도 표현되었다.

 

 

서양 과학문명의 도입은 이런 자연관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 왔다. 지금 유기적 자연관은 우리의 의식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말았고 자연은 단순히 이용과 경제적인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그에 대해서 많은 문헌을 찾아 볼 필요가 없다. 지금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자연환경 오염은 다른 무엇보다 그 사실을 웅변적으로 그리고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해 주고 있다. 일부 부유층의 묘지 擇地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연에 대한 어떤 신비감 혹은 경외감의 자취도 찾아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그 정도는 기계적 자연관을 가장 먼저 가지게 된 서양보다 오히려 더 심각하다 할 수 있다.

 

 

세속화된 서양문화와 동양문화의 가장 핵심적인 차이가 바로 자연관의 차이에 있었고, 전통적인 자연관이 우리 문화에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이런 자연관의 변화가 문화전체에 미치는 영향과 그 의의는 엄청나게 크다 하겠다. 전통적 자연관을 잃어버린 문화를 과연 동양문화라 부를 수 있는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자연에 대한 태도의 변화는 곧 문화자체에 대한 태도변화를 뜻하므로 문화의 자기이해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하겠다. 가능한 한 자연으로 돌아가고 자연에 순응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의 과정과 결과로서의 문화이해가 자연을 정복하고 이용하려는 노력의 과정과 결과로서의 문화이해로 바꾸어진 것이다.

 

 

(2) 未來志向的 歷史觀

 

 

자연관 못지않게 문화발전에 중요한 근본적인 태도는 역사관이라 할 수 있고, 역사관은 자연관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유기적 자연관은 순환적 역사관과 연결되어 있고 일반적으로 과거지향적이며, 기계적 자연관은 線的 역사관과 연결되어 있으며, 미래지향적이다.

 

 

기독교의 창조및 종말론의 영향으로 서양문화는 16세기에 이르러 전통과 실체론의 압제로부터 해방되어 발전이 가능하다는 분위기를 형성하였고, 그것은 그 이후의 문화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세계의 대부분의 다른 문화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전통문화는 과거지향적이었으며 순환적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역사관도 분명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가 있었겠지만,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문화발전에는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19세기말에 우리나라에서 선교활동을 한 Gale은 우리 사회가 고정되고 부동적인 조건에 빠져 있었으며 "'어제와 같이, 오늘도, 그리고 항상 그와 같이'가 한국적인 모든 것에 크게 그려져 있었다"라고 관찰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우리의 의식이 압도적으로 과거지향적이었고 보수적이었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불과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세계에서도 가장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역사관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할 수 있고, 그것은 자연관의 변화와 더부러 앞으로의 문화발전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물론 이런 변화는 우리나라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거의 모든 비서양 사회에서 다 같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서양문화의 영향아래 일어나고 있음은 부인할 수가 없다.

 

 

(3) 西洋文化의 普遍文化 取扱

 

외래문화적 요소들이 내면화되어 "우리 것"으로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그것에 대한 무의식적 평가 혹은 태도라 할 수 있다. 그것이 긍정적이고 우월하다고 생각하여 부러워하면 그것의 수용이 쉬어질 것은 당연하다. 서양문화의 많은 측면은 우리에게 무의식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되어 왔고, 그것은 모든 비서양 사회에 공통적인 현상일 뿐 아니라 우리에게는 그 정도에 있어 좀 독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서양의 식민지였던 많은 사회들과는 달리 우리가 서양문화를 수입하게 된 것은 우리 자신의 필요때문이었다. 서양 문물을 일찍 수용하여 강대해진 일본에 의하여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그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힘이 필요했고, 그 힘은 일본이 도입한 서양문물에서 찾을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서양은 우리의 적이 아니었고 오히려 적의 적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동양문화권에 속한 일본이나 중국보다는 우리를 제국주의 지배로부터 해방되는데 도움을 준 서양에 더 친근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서양문화에 대한 우리의 긍정적 태도는 이런 역사적 배경을 무시하고 설명될 수 없을 것이다.

 

 

그와 관계되어 있는 현상으로서, 우리 사회의 지도층, 즉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상당 수가 서양에 유학한 사람들이거나 서양식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란 사실도 서양문화 수용에 크게 작용했다. 해방후 우리의 교육제도와 교육내용이 서양의 것을 거의 그대로 도입한 것이어서 서양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유리한 입장에 설 수 밖에 없었고 그들의 영향력도 자연스럽게 커졌던 것이다.

 

 

서양문화에 대한 우호적이고 긍정적 태도는 서양문화를 보편문화로 취급하는 경향을 촉진하였다. 우리는 우리 자신도 분명하게 의식하지 못한체 합리적 사고, 과학적 세계관, 효율적인 경영, 민주적인 정치제도, 정의로운 분배, 평등한 인간관계등 수많은 이념들을 서양적인 것으로라기 보다는 인류의 보편적인 이상들로 받아 들이고 있다. 그래서 우리 문화에도 비록 잠재적으로나마 이런 이상이 없지 않았다고 역사를 재해석하려는 시도까지 일어나고 있다. 즉 그런 이상의 잣대에 ꁹ추어 우리 것을 평가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런 이념들이 과연 인류의 보편적인 이상들인지 전형적으로 서양적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와 비판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이런 태도는 19세기에 서구에서 유행하던 서양문화우월주의(ethnocentricism)와 그 내용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서양화와 선진화를 동일시하고 있으며, 선진화는 우리가 마땅히 추구해야 할 과제로 전제하고 있다. 이런 태도가 우리 문화의 서양화를 촉진시키는데 크게 작용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물론 이것도 오늘날 모든 비서양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고, 그런 점에서 보편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물리적 힘에 대한 보편적 추구가 서양문화의 도입을 촉진시키고, 그 서양문화가 전통적인 종교문화를 세속화함으로 서양문화의 도입이 가속화되는 현상은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그와 함께 발달된 과학기술은 전 세계를 서양문화를 중심으로 하나의 문화권으로 형성하고 있다.

 

 

4. 展望과 評價

 

(1) 深化될 西洋化

 

한국인들은 지금 두루마기보다는 양복에 더 익숙해져 있고 양복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한 부분이 되고 말았다. 그 대신 한복은 명절때나 의식때만 입는 예복의 위치로 밀려 나갔다. 서양인들이 중요한 의식에 연미복을 입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 하겠다. 전통적인 것은 일상적인 것이 아니라 특수한 것이 되고 말았고, 삶의 변두리로 밀려 나간 샘이다. 일상적인 삶에 있어서는 그렇게 중요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다만 감정적으로만 중요한 위치를 차지 하게 되었음을 뜻한다. 마치 현대인에게 종교가 삶에 있어서 하나의 사치품이 되어 있는 것과 비슷하다.

 

 

이것은 물론 우리에게 국한 된 것은 아니다. 다행이든, 불행이든, 서양문화는 오늘 날 세계문화가 되고 말았다. 교통, 통신기술의 발달과 우루과이 라운도와 같은 국제관계로 이제 세계문화에서 따로 떨어져 있는 문화의 섬은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문화란 의식에 의하여 결정되고, 의식은 물처럼 흐르며 섞이기 때문에 통로가 여럿 있다면 인위적으로 그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물은 낮은대로 흐르고 문화의 흐름은 수요가 있는대로 향할 수 밖에 없다. 우리 문화의 수위를 높히지 않고는 서양문화든 일본문화든 억지로 막을 수는 없다.

 

 

우리의 가치관, 인간관, 그리고 사고방식의 상당한 부분은 아직 외형적인 생활방식처럼 서양화되지 않았지만, 문화전체의 서양화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한국인이 만든 반도체를 서양인들이 사용하고, 한국인 지휘자가 프랑스 오페라단의 상임 지휘자가 된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 교통, 통신기술이 계속 발달됨에 따라 서양문화와의 접촉은 점점 더 쉬어질 것이고 서양문화를 선진문화로 보는 시각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 문화의 서양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거기다가 우루과이 라운드가 형성된 후 이제 우리도 세계의 모든 나라와 경쟁하지 않으면 단되고, 경제적 경쟁에 있어서는 역시 서양문화가 유리한 강점들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서양화는 가속화될 가능성이 있다. 전통문화를 지키려면 경제적 국제경쟁에 있어서 서양문화의 요소들보다 더 우수한 요소들을 전통문화에서 발굴하든지 아니면 경제적 생존경쟁에서 한 발 물러 서는 길 밖에 없을 것이다.

 

 

(2) 意識과 形式間의 乖離

 

 

우리가 우리 문화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의식할 때, 우리 문화의 서양화를 전적으로 긍정적이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실 우리 문화의 서양화는 수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고 심지어 비극적인 면까지 가지고 있다.

 

 

근원적인 문제는 서양문화의 도입이 종교적인 동기에서가 아니라 물질적인 힘에 대한 필요성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것이 주로 형식적이고 외형적이었다는 사실이다. 비록 항상 의식되고 있지는 않더라도 서양문화의 배경에는 그리스 문화의 합리주의와 기독교의 인간존중사상, 평등사상, 정의, 박애주의등 물질적인 힘과 관계없는 정신적인 요소가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문화의 형식적이고 외형적인 것들, 즉 물질적 힘의 창출과 사용에 도움이 되는 것들의 도입에 너무 급급하여 그 배경이 되는 정신적인 것을 내면화하는데는 관심을 기우리지 못하였다. 그런데 그 무관심이 엄청나게 많고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떤 제도라도 그것이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거기에 적합한 의식구조를 필요로 하는데, 서양으로부터 외형적인 제도는 도입하고 그것의 정상적인 운용이 필요로 하는 의식은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온갖 괴리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세계 제일의 자동차 사고에서도 그것을 볼 수 있고, 파행적인 정치문화도 그 하나의 결과다. 제도는 민주주의나 아직도 전통적인 정치문화의 권위주의와 혈연, 지연, 학연등이 그대로 남아 있어 온갖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3) 버려진 것들에 대한 相互 魅力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비극적인 것은 서양인들 자신들이 싫증을 내고 있는 문화를 우리가 즐거히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이한 종류의 文化遲進現象(culture lag)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서양문화는 지금 서서히 붕괴하고 있다는 징후가 여기 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사회질서를 위하여 필수적인 기본적인 가치를 지탱하고 있던 기독교적 뿌리를 전면 부정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든가, 포스트모던이즘의 상대주의가 점점 강해지고 사회기강이 흩으러진다든가, 경제나 문화활동이 자신감을 상실하고 침체되고 있는 등, 적어도 우리가 아는 한 건전하고 창조적인 문화의 모습에서 멀어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이 버리고 있는 것을 가치있는 것으로 추구하고 그것을 유지.보존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역설적인 것은 최근 서양인들가운데 동양의 전통적인 문화에서 새로운 창조적 계기를 찾으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대중문화에서 나타나고 있는 뉴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에는 범신론적 신비주의의 요소가 짙게 침투되어 있고, 기독교가 약해지고 있는 반면 禪佛敎, 힌두교, 이슬람등 동양종교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고 있다. 우리가 서양문화를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하고 수용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비슷하게 서양인들도 동양이 버린 것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려고 애쓰고 있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인류문화의 변천역사에서 자연과학의 태동이후 가장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4) 自然環境汚染과 物質文明의 危機

 

 

이런 태도의 변화는 무엇보다도 자연환경의 오염이 촉진시켰다 할 수 있다. 자연을 지배하고 착취함으로 엄청난 힘을 획득하는 물질문화가 세계문화로 확대된 것이 생태계의 위기를 몰고 왔고, 그것은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이용할 수 있는 자연이 얼마 남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인간의 착취에 대한 자연의 보복은 인간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이 들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인식과 위기감이 자연을 지배하는 것을 바탕으로 한 과학기술 중심의 문화에 회의를 느끼게 하고 인간 자신을 극복하여 자연에 순응하는 것을 핵으로 하는 종교문화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 번 물질문화의 힘과 쾌락 맛들인 인류가 과연 다시 자신을 다스리며 절제하는 종교문화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결코 그렇게 쉽지 않을 것이다. 모든 개인이 그렇게 지혜롭게 되지도 않았고 인류전체의 생존과 행복에 대해서 책임을 느낄만큼 도덕적이 되지도 않았다. 특히 최근에야 겨우 물질문화의 혜택을 맛본 한국인들이 그렇게 지혜롭고 도덕적이 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지금 자연환경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이 물질주의 문화를 일으킨 서양인에 비해서 더 적은 것은 역설적이면서도 비극적이다. 과거 물질적인 풍요를 누렸던 서양인들이 이제 절제하는 것은 공평하거니와 물질적으로 궁핍했고 그 때문에 온갖 불이익을 참아야 했던 우리는 풍요를 맛보기가 무섭게 또 다시 그 쾌락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이다. 우리가 물질주의 문화를 받아들인 것이 거의 불가피했던 것 같이 그것을 극복하고 포기해야 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비극적이고 역설적이지만 우리에게 다른 선택이 주어지지 않았다.

 

 

이제 기본적인 생존이 어느 정도 보장된 이상,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무분별한 서양화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비판이 이루어져야 한다. 자연과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서양의 물질문화를 계속 도입, 유지하고 발전시킬 것인가 아니면 종교 혹은 다른 정신적인 것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보면 이것은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 보면 후자를 택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생존의 문제는 선택의 문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선택이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우리 사회 구성원들을 설득시키는 것이 한국 철학계가 감당해야 할 중요한 책임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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