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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언로(言路)의 중요성 (병산 이관명 선생)
날짜 2012-01-10 16:05:30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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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임금을 향한 병산 이관명 선생의 아래의 정의로운 인도의 말씀은, 오늘날 마치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Eroica)”을 듣는 것처럼 마음에 당당한 울림이 매우 커서 정의를 향한 용기를 북돋운다.

 

 

이처럼 하늘아래 정의로운 자세와 아울러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주변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아가페(Agape)의 사랑정신이다.

 

 

이들이 함께할 때에 우리는 스스로의 참 행복을 누릴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이웃을 감화시키며 세상을 개선하여 나가게 될 것이다.

 

 

조선시대의 당쟁은 본질적으로는 철학의 논쟁으로 오늘날 우리정치의 사적이해가 깔린 이전투구의 양상보다는 오히려 나은 점이 있다고 생각되나, 그러나 아쉬운 것은 바로 이러한 아가페의 사랑의 정신이 적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도 아가페의 사랑인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은 우리인류에게 바르게 나아갈 길을 보여준 것으로 생각된다.

 

 

병산 이관명 선생의 사촌형제인 소재 이이명 선생과 그의 아들 일암 이기지 선생은 일찍이 열린 자세로 중국의 서양선교사들과 교유하며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천주교를 알리고 천문 지리 과학 등 서양의 앞선 문물을 이 땅에 알리기도 하셨지만 신임사화로 화를 당하며 당대에 그 열매를 거두지는 못하시었다. 이로 인하여 우리나라의 실학사상은 한 백년 늦게 도래하게 되었다.

 

 

이러한 쓰라린 과거역사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어 우리의 소중한 가치를 유지, 발전 시켜가면서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여 국론의 분열을 막고 화합해서 우리나라를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야 하겠다. 이제는 과거 투쟁적 정치이념을 넘어 이러한 도덕적 비젼을 제시하는 리더가 꼭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오늘날 혼란스러운 우리정치에서 무엇보다 국민각자의 깊은 성찰과 인식과 바른 행동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정치수준은 국민들의 의식수준을 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12. 1.10.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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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 숙종 35년(1709년) > 숙종 35년 1월 > 숙종 35년 1월 18일

 

 

 

숙종 47권, 35년(1709 기축 / 청 강희(康熙) 48년) 1월 18일(경인) 2번째기사

동부승지 이관명이 당초 사간으로서 바친 상소를 계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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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승지 이관명(李觀命)이 당초에 사간(司諫)으로서 치론(治論)에 관한 상소를 승정원에 바쳤었는데, 마침 승정원으로 승직(陞職)하게 되었고, 상소 내용에 말이 당로(當路)를 간절하게 기롱한 것이 많으므로 따라서 기각하게 되매 당시의 공론이 그르게 여겼었다. 이에 이르러 이관명이 비로소 그 때의 상소를 임금께 계문(啓聞)했는데, 대략 이르기를,

 

 

“신은 듣건대 임금이 한 번 좋아하는 것이 있게 되면 아랫사람들이 반드시 그 좋아하는 것을 올리게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전하께서 원만한 것을 좋아하고 방정(方正)한 것을 싫어하시므로 군하(群下)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으로 꾀어 내는 것이요, 전하께서 공리(功利)를 가까이 하시는 데에 마음을 두시므로 공리에 관한 말을 날마다 경연(經筵)에서 진언(進言)하는 것이며, 미리 위험한 것을 대비함에 있어서도 예념(睿念)14622) 에 바야흐로 시급하게 여기고 계시므로, 판삽(版鍤)14623) 의 역사가 중외(中外)에 시끄럽게 잇달고 진보(鎭堡)의 설치가 잡다하게 변경되고 있는 것입니다. 방외(方外)의 경보(警報)가 이르지도 않아서 온 강토 안의 근심이 바야흐로 커지고 있는데도 전하께서는 본말(本末)과 경중(輕重)을 생각해 보지 않고 다시금 자문(諮問)과 요량도 해보지 않고서, 예의(銳意)하게 담당하는 사람의 말만 신임하고 들어주시어 순서가 없이 공사를 일으키므로 국가의 힘이 장차 고갈되게 되었으니, 전하께서 오늘날 좋아하고 계시는 것이 올바름을 얻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아! 언로(言路)가 막힌 지 오래입니다. 명기(名器)가 혼란해지고 관방(官方)이 문란해진 것이 진실로 이런 때문인데도 진신(搢紳)들의 사이에 하나도 전하를 위해 말을 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등영(登瀛)14624) 의 선발(選拔)은 온 세상이 중요하게 여기는 바인데도 경박한 이정제(李廷濟), 비굴한 김시환(金始煥), 용렬한 정찬선(鄭纘先)이 또 참여하게 되었고, 괴원(槐院)14625) 과 주사(籌司)14626) 를 갑옷 입은 사람이 둘 다 겸임하는 것은 근세(近世)에 드문 일인데도 평소에 자격과 인망(人望)이 가벼우며 세도(勢道)있는 사람에게나 잘 쫓아다니는 자가 그만 외람하게도 먼저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또 역적은 엄중하게 다스려야 하는 것이 국가의 막중한 법으로 되어 있는 것인데도 그 방한(防限)이 점점 해이(解弛)해지니 한원(翰苑)14627) 의 문신(文臣)과 곤수(閫帥)14628) 인 무신(武臣)은 모두가 극도로 가려야 하는 것인데 흉역(凶逆)의 생질을 추천하기도 하고 의망(擬望)하기도 하였으며, 가부를 말해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함묵(緘默)하여 한 마디 말도 않고 전주(銓注)할 때에도 조금도 의난(疑難)하지 않았으니, 어떻게 국가의 법이 엄중해지고 사람들의 마음이 복종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이 쇠퇴해지고 풍속이 희미해져서 정학(正學)이 점점 어두워지니 정도(正道)를 좇아 궤철(軌轍)14629) 을 지키는 것을 사법(死法)이라고 손가락질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지능(智能)을 넓혀서 사사로움을 펼치는 것을 스스로 초오(招悟)했다고 여기며, 더러는 주자(朱子)의 성설(成說)을 어기는 데에 태연히 하여 괴이하게 여기지 않으므로, 식견있는 사람들이 우려해 온 지 진실로 이미 오래입니다.

 

이번에 듣건대 《예기유편(禮記類編)》을 인출(引出)하여 궁중(宮中)에 바치고서 장차 법연(法筵)에서 진강(進講)하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신(臣)이 그 해설(解說)해 놓은 것을 가져다가 고찰해 보니, 주자와 다르게 하려고 한 것을 진실로 이루 들 수가 없었습니다.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에 있어서는 주자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의 한 평생 정력이 모두 이 글에 들어 있다.’고 한 것으로서, 세밀한 말과 오묘한 뜻을 유감스러운 데가 없도록 천명(闡明)해 놓은 것이고 보면 이를 어찌 뒷 사람들이 평의(評議)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런데 《대학》 제4장(章)을 빼내어 제3장에다 합쳐 놓고서 통틀어 말하기를, ‘우(右)는 지어지선(止於至善)을 풀이한 것이다.’라고 하였고, ‘석본말(釋本末)’ 한 장은 없애버렸습니다. 《중용》에 있어서도 제28장과 제29장의 정문(正文)을 어구(語句)를 잘라내고 여러 줄을 분열(分裂)하여 이 쪽으로 옮겼다 저 쪽으로 넘겼다 하고 아래로 보냈다 위로 가져갔다 하였고, ‘비은(費隱)’ 한 장에 이르러서는 의리(義理)가 가장 깊은 것으로서, 장구(章句)에 해석해 놓은 것이 지극하고도 극진하게 되어 있는데, 이번의 부주(附註) 2조목은 현저하게 본지(本旨)를 멋대로 하려고 한 뜻이 있었습니다. 또 정자(程子)가 《중용》과 《대학》을 표장(表章)하여 따로 내놓은 것은 우연(偶然)한 뜻으로 한 것이 아니거늘, 이번의 《유편(類編)》이란 것은 열람하기 편리하도록 분류(分類)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체제(體制)에 있어서도 또한 경서(經書)와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인데, 이에 다시 《중용》과 《대학》을 그 속에다 도로 편집해 놓아 선현(先賢)과 표장(表章)해 놓은 본의가 어두워지고 명백하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효경(孝經)》의 한 책에 있어서도 본래 대씨(戴氏)14630) 가 기술한 것이 아닌데, 서슴없이 편입(編入)하고서 주자가 간오(刊誤)14631) 해 놓은 의의(意義)를 일소(一掃)해 버렸습니다. 이미 분리(分離)되어 있던 것을 도로 합쳐 놓고 당초에 없던 것을 억지로 붙여 놓은 것은 그의 뜻이 어디에 있는 것이겠습니까? 어찌 이에 의해 의논을 세워 놓고 스스로 고명하게 혼자만이 얻어낸 체하며 이 세상에 우뚝 나타나게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말세(末世)이기에 총명하고 재변(才辯)있는 인사들이 기꺼이 성현을 독신(篤信)하며 성법(成法)을 신중하게 지켜 가려고 하지 않고, 사사로이 언뜻 한순간에 보잘것없는 생각을 포착(捕捉)하게 되면 오만(傲慢)하게 자신을 과대하며 밝은 일월(日月)과 광채를 다투려고 하는 사람이 가끔 있게 되어 스스로 그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고 있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데, 결과의 폐해가 성인들을 모함하고 현인들을 업신여기는 과죄를 면하지 못하게 되니, 신은 그윽이 애석하게 여깁니다.

 

신이 지난해에 성상의 분부를 받들고서 박세당(朴世堂)이 저술한 《사변록(思卞錄)》을 변파(辨破)할 적에 전하께서 도(道)를 호위(護衛)하고 성현을 존숭하시는 지극한 뜻을 흠앙(欽仰)했었기에, 진실로 이 《유편》이란 글이 성상의 뜻을 흔들게 되지도 못하고 성상의 총명을 어지럽히게 되지도 못할 줄을 알고는 있습니다마는, 이미 간행(刊行)하도록 명하셨고, 또 장차 진강(進講)하게 된다면, 사방 사람들이 듣고서 반드시 경솔하게 괴이한 말을 믿으시는 것이라고 여겨 망령되이 전하를 회의하게 될 것이므로, 진실로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옛사람의 말이 ‘경서(經書)의 글은 글자 하나만 잘못 풀어도 천리(千里)가 피를 흘리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주자도 또한 일찍이 ‘무극(無極)14632) ’ 두 글자를 사책(史冊)에다 써 놓으려고 했었습니다. 이번에 경서의 글자를 번잡하게 고치고 뜻대로 증산(增刪)하는 짓은 특히 한둘의 글자를 그르치거나 빠뜨리게 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니,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 더욱 성의(聖意)를 굳게 가지시면서 엄격하게 통쾌한 배척을 가하시어, 주자와 배치(背馳)되는 이런 말들이 다시는 세상에 생겨나지 않게 하소서.”하니,【괴원(槐院)·주사(籌司)는 이제(李濟)를 가리키고, 한원(翰苑)은 이남(李栴)의 생질 조익명(趙翼命)을 가리키고, 제곤(制閫)은 민암(閔黯)의 생질 김숙(金淑)을 가리킨다고 한다.】

 

 

임금이 답하기를,

 

“나라를 위하는 도리는 편안할 적에도 위태함을 잊지 않아야 하는 법인데, 음우(陰雨)의 대비를 어찌 그만둘 수 있는 것이겠는가? 공리(功利)란 말들은 내가 진실로 알지 못하겠다. 한원이니 제곤이니 한 말들도 누구를 가리켜 한 말인지 알지 못하겠으며, 옥당(玉堂)의 신록(新錄) 세 신하도 나는 합당하지 못함을 깨닫지 못하겠으니, 상소한 말이 공정하지 못한 것임을 대체로 알 수 있는데, 양사(兩司)가 제거(提擧)하여 비상하게 기롱하고 비난하는 것은 떳떳지 못하다. 아! 척리(戚里) 형제가【곧 민진후(閔鎭厚) 형제를 가리킨다.】 모두 추밀(樞密)의 직을 띠고 있으니 이는 진실로 조정의 정사가 온당하지 못하게 된 데이기는 하다마는, 급급하게 자기 편이 아닌 사람을 공격하기만 함은 또한 유독 무슨 마음이었는가?

 

새로 간행한 《예기유편》에 있어서는 내가 이미 열람해 보았지마는, 이를 어찌 《사변록》과 비교해서 논할 수 있겠는가? 그 말한 바가 지극히 심각하게 마음을 쓴 것이다. 아! 그 《유편》의 서문(序文) 가운데 말하기를, ‘그 규모(規模)나 의례(義例)를 모두 주자(朱子)의 《통해(通解)》를 모방하고 한 마디의 말이나 한 대문의 구절도 감히 망령되이 산삭(刪削)하는 데가 있지 않았다.’고 했었다. 이것이 과연 상소 내용에 말한 것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데가 있는 것이겠는가? 아! 너희들이 기필코 영상(領相)을 마음대로 하려고 한 지가 진실로 이미 오래인데, 이번에는 또한 성인을 모함하고 현인을 업신여겼다는 죄를 영상에게 돌리고 있으니, 내가 진실로 놀랍고 한탄스럽게 여긴다. 아! 편당하는 버릇이 날로 고질이 되어서 구료(救療)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는데, 이번에 일을 벌이기 좋아하는 상소가 한 번 나오자 낭묘(廊廟)14633) 가 비어버리고 옥서(玉署)14634) 가 비어버리게 되었다. 국가의 사세가 날로 더욱 위태해져 진실로 멈출 바를 알지 못하게 되었다. 본직(本職)을 체개(遞改)하라.” 하였다.

 

 

당초에 최석정(崔錫鼎)이 예서(禮書)를 찬집(纂輯)하여 《유편》이라고 이름했는데, 모든 예경(禮經)의 장구(章句)를 거개 분류(分類)하여 모아, 이 쪽에서 끊어다가 저 쪽에다 보충하고 위에서 잘라다가 아래로 옮기곤 하였으되, 되도록이면 번잡하고 중복된 것들을 없애어 고열(考閱)하기 편리하게 하였다. 또 《중용》과 《대학》을 가져다가 도로 그전의 자리에 편차(編次)하되 편제(篇題)를 첨산(添刪)하기도 하고 장단(章段)을 없애버리기도 하였고, 주자의 설명은 전부 없애고 단지 주설(註說)만 남긴 것도 있고, 정자(程子)의 해설을 끊어내고 자기의 설명으로 대신한 것도 있고, 아랫 장(章)을 위에다 넣고서 그 장의 끝에 있는 해석을 삭제해버린 것도 있고, 딴 주(註)를 새로 붙이어 본주(本註)의 뜻을 어지럽힌 것도 있어, 대개 조목(條目)의 배치는 교묘하게 되었지만 큰 본령(本領)은 깎이어 버리게 되었다.

 

또 《혹문(或問)》을 저술하되 딴 사람이 한 말을 빌어다가 자신이 그 말을 과장하여 놓았다. 대저 자기가 편정(編定)해 놓은 것이 성현들의 지의(旨意)에 부합된다고 여겼는데, 한때의 조정 진신(搢紳)들과 초야(草野)의 선비들 중에 남구만(南九萬)·박세채(朴世采)·윤증(尹拯)·박세당(朴世堂)·임영(林泳)·민이승(閔以升)·이세귀(李世龜)·서종태(徐宗泰)·오도일(吳道一)·최규서(崔奎瑞)·이인엽(李寅燁)·박태보(朴泰輔)·이세필(李世弼)·정제두(鄭齊斗)·박심(朴鐔)·나양좌(羅良佐) 등 여러 사람들이 참고한 증거가 정확하게 강구(講究)되었다고 칭찬하며 아울러 표시하여 열거(列擧)하였다. 서종태는 본래 별호(別號)가 없었는데, 최석정이 사사로이 그의 호를 만들어 써 놓았다. 책이 완성되어 인출(印出)해서 발행하게 되어서야 서종태가 보고서 부끄럽게 여겼다. 이때에 숙유(宿儒)들은 거의 모두 조락(凋落)14635) 해 버리고, 세속의 선비들은 명예와 이익만 추종하게 되었으며, 새로 배우는 사람들은 장구(章句)에만 전력하게 되므로, 최석정이 더욱 자신을 가지고 대항하게 되었고, 경연(經筵)에서 《예기(禮記)》를 계속 진강(進講)하기에 미쳐 옥당(玉堂) 관원 권상유(權尙游) 등이 이 책을 간행하여 참고에 대비하도록 주청(奏請)하니, 임금이 윤허하였고, 드디어 《유편》이 간행되니 식견있는 사람들이 저으기 우려하게 되고, 사림(士林)들의 논란이 차차 일어나게 되었다.

 

새로 중국 사람 이패림(李沛霖)이 저술한 《사서동이조변(四書同異條辨)》을 노중(虜中)14636) 에서 가져온 것이 있었는데, 《대학》의 강령(綱領)과 조목(條目)을 분변하여 놓은 것이 모두 주자(朱子)의 주(註)대로 했으므로, 처사(處士) 김창흡(金昌翕)이 한탄하기를, ‘어찌 예의를 지키는 우리 동방이 멸망해버린 고장만도 못한 것인가?’라고 하였다.

 

 

승정원에서 이관명(李觀命)의 체개(遞改)를 도로 거두도록 계청(啓請)하기를,

“말한 것이 비록 과격하기는 하지만 그 상소는 대간(臺諫)일 때에 진달한 것이므로, 갑자기 좌절(挫折)을 더하여서 이이(訑訑)14637) 한 기색을 보임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하였으나, 임금이 들어주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태백산사고본】

【영인본】 40책 315면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상-유학(儒學) / *출판-서책(書冊) / *군사-관방(關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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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4622]예념(睿念) : 임금의 마음. ☞

[註 14623]판삽(版鍤) : 담장 쌓는 틀과 가래. ☞

[註 14624]등영(登瀛) : 영예스러운 지위에 오름. ☞

[註 14625]괴원(槐院) : 승문원(承文院). ☞

[註 14626]주사(籌司) : 비변사(備邊司). ☞

[註 14627]한원(翰苑) : 예문관(藝文館). ☞

[註 14628]곤수(閫帥) : 병사(兵使)와 수사(水使). ☞

[註 14629]궤철(軌轍) : 법도. ☞

[註 14630]대씨(戴氏) : 전한(前漢) 시대 사람 대덕(戴德)과 대성(戴聖). 대덕은 85편의 예(禮)를 전승(傳承)하고, 대성은 49편의 예를 전승했음. ☞

[註 14631]간오(刊誤) : 교정(校正). ☞

[註 14632]무극(無極) : 한없음. ☞

[註 14633]낭묘(廊廟) : 조정. ☞

[註 14634]옥서(玉署) : 홍문관(弘文館). ☞

[註 14635]조락(凋落) : 죽음. ☞

[註 14636]노중(虜中) : 청나라를 뜻한 것. ☞

[註 14637]이이(訑訑) : 으쓱거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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