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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음의 수양(修養)
날짜 2012-02-20 17:56:52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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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수양(修養)

 

 

삶이란 참으로 복잡하고 아슬아슬합니다. 걱정이 없는 날이 없고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어느 것 하나 결정하거나 결심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내일을 알 수 없고 늘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힘든 이야기입니다. 말로는 쉽게 "행복하다", "기쁘다"고 하지만, 과연 얼마만큼 행복하고 어느 정도 기쁘게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그저 막막합니다. 이러면서 나이가 더 들고 건강을 잃으면 "아! 이게 아닌데..."하는 후회의 한숨을 쉬겠지요.

 

그런데도 왜 이렇게 열심히 살까요? 어디를 향해 이렇게 바쁘게 갈까요? 무엇을 찾고 있는 걸까요?

 

결국, 나는 나 자신 속의 특별한 나를 찾고 있습니다. 내 마음이 나를 찾아서 다니는 것입니다.

 

그 고통, 갈등 ,불안, 허전함은 모두 나를 찾아서 다니는 내 마음의 과정에서 만나는 것들입니다. 참 나를 알기 위해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 이유를 알기 위해서, 나만의 특별함을 선포하기 위해서 이렇게 바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 치고 아무런 할일, 목적 없이 태어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자기만의 독특한 가치, 고유의 의미와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내 마음이 이것을 찾으면 그날부터 그의 삶은 고통에서 기쁨으로, 좌절에서 열정으로, 복잡함에서 단순함으로, 불안에서 평안으로 바뀝니다. 이것이야말로 각자의 인생에서 만나는 가장 극적이 순간이요, 가장 큰 기쁨인데, 이를 찾는 것은 결국 우리들 각자의 마음수양에 달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아무리 화려해도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불편하여 오래 입지 못하듯이, 아무리 멋진 풍경도 마음이 다른데 있으면 눈에 들어오지 않듯이, 내 마음속의 내가 아닌 남의 삶을 살고 있으면 늘 불안하고 흔들립니다. 내 마음에 흡족하지 아니하고 평안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하지만 자기마음속에서 자기를 발견하고 자신의 길을 찾으면, 그때부터 그의 인생은 아주 멋진 환희의 파노라마가 펼쳐지게 되고 행복과 기쁨도 이때 찾아옵니다. 결국 행복과 기쁨도 스스로의 마음을 갈고 닦아 어떻게 가져가는가에, 세상만사를 어떤 차원에서 해석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마음의 수양이 매우 중요한 까닭입니다. 평양감사도 제 마음에 기쁘고 좋아야 정말 좋은 것이지요.

 

 

2. 마음의 중심과 성심(聖心)

 

이처럼 우리들의 마음을 갈고 닦는 것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 마음을 수양하여 가야할까요.

 

 

2-1.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중심’을 훤히 다 아신다! 아무리 겉치장을 해도 소용없다.

 

기독교를 ‘마음의 종교(heart religion)‘라고 부를 때, ‘마음’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처럼 한 인간의 중심이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단지 머리의 문제나 지적인 것에 불과하지 않고, 실제로 우리의 중심을 차지하며, 우리를 빚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지배한다는 뜻입니다.

 

시편 51편의 다윗(David)을 아십니까? 다윗은 부하의 아내를 간통하고 부하를 살해하는 무서운 죄를 지었으며 자신의 죄가 얼마나 악한지 잘 압니다. 그러나 실제로 다윗을 괴롭히는 문제는 이것이 아닙니다. 다윗을 괴롭히는 진짜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십니다.

 

다윗은 종교적 삶을 살았으며, 종교의 외형에 순응했습니다. 끔찍한 죄를 짓기 전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죄를 지을 때에도, 죄를 짓고 난 후에도 그랬으나 무엇이 잘못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회개의 자리로 인도되고 나서야 모든 것을 깨닫습니다.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시편 51:6

 

이것을 아는 순간, 우리는 생명수를 구하기 시작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신 다음의 메시지에 마음을 엽니다. 우리는 더는 외형과 껍데기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중심이 진실함’ 우리는 이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것을 주려고 하십니다.

 

“…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복음 4:14

 

이에 상응하는 다윗의 기도를 보십시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편 51:10

 

다윗은 자신의 문제가 마음에 있음을 깨달았으며,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면에 죄악이 하나라도 있으면, 겉을 아무리 꾸며도 소용이 없습니다. 오염된 샘이 내 모든 행동을 지배한다면, 외부의 그 무엇도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지’ 못하며,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지’ 못합니다.

 

해결책은 여기 있습니다. 우리 내면의 중심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있어야 합니다. 바깥이나 주변이 아니라 중심을 살펴야 합니다.

 

에스겔이 이것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보십시오.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에스겔 36:25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stony heart)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a heart of flesh)을 줄 것이며…”에스겔 36:26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수는 우리의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줍니다. 생명수는 체험적입니다. 생명수는 우리의 내면에 있고, 살아 있으며, 생기가 넘칩니다.

 

우리는 도덕, 우리 밖에 있는 종교, 돌비에 새겨진 율법, 여기에 순응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그 무엇,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있습니다.

 

우리의 종교는 ‘마음’의 종교입니까? 아니면 ‘머리’나 ‘의지’의 종교일 뿐입니까? 우리의 종교는 우리 안에서 솟아나는 샘물이며, 우리 전인격의 근원이자 중심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제안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그 사람 안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한복음 4:14

 

[ 마틴 로이드 존스(Martin Lioyd Jones) 저, “생명수”중에서 ]

 

 

 

하나님은 무엇보다 우리 마음의 중심이 이 생명수를 받아 누리는, 내면 깊숙한 곳으로 부터의 진실함이기를 원하십니다. 겉치장을 벗어버리기 원하십니다. 이는 우리를 기쁨과 평안, 영생의 길로 인도합니다.

 

 

 

2-2. 성심(聖心)

 

 

백강 이경여 선생은 병자호란으로 인한 피폐함을 극복하고자 나라에 올린 재변을 이겨내는데 힘써야할 21개항의 건의 사항들 중의 하나로 다음과 같이 ‘마음의 수양’을 말씀하였습니다.

 

 

 

" 대개 본심이 지켜지지 않으면 덥지 않아도 답답하고 춥지 않아도 떨리며 미워할 것이 없어도 노엽고 좋아할 것이 없어도 기쁜 법이니, 이 때문에 군자에게는 그 마음을 바로 하는 것보다 중대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君子莫大於正其心). 이 마음이 바로 잡히고 나면 덥더라도 답답하지 않고 춥더라도 떨리지 않으며 기뻐할 만해야 기뻐하고 노여울 만해야 노여우니, 주자(朱子)가 이른바 대 근본(大根本)이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함양하는 방도도 불씨(佛氏)처럼 면벽(面壁)하거나 도가(道家)처럼 청정(淸淨)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발동되기 전에 지키고 발동된 뒤에 살피며 미리 기필(期必)하지 말고 잊지도 말아 보존해 마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텅 비고 밝은 한 조각 마음이 그 속에 거두어져 있어 북돋는 것이 깊고 두터우며 이(理)가 밝고 의(義)가 정(精)하여 경계하고 삼가고 두렵게 여기는 것이 잠시도 떠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근본이 이미 굳어져서 어느 것을 취하여도 본원(本源)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지키고 버리는 사이에서 주재(主宰)하는 것이 없으면 마음이 이미 없는 것이니, 어찌 외물(外物)에 대응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인(仁)을 숙련하는 공부가 어찌 일조일석에 되는 것이겠습니까.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천덕(天德)·왕도(王道)는 그 요체가 홀로 있을 때에 삼가는데 있을 뿐이다’고 하였습니다(程子以爲: “天德 王道, 其要只在槿獨”). 홀로 있을 때를 삼가지 않아서 유암(幽暗)하고 은미(隱微)한 데에 문득 간단(間斷)되는 곳이 있다면 어떻게 날로 고명(高明)한데에 오르겠습니까.

 

 

당 태종(唐太宗)이 일찍이 ‘임금의 한마음(一心)은 공격을 많이 받는다. 조금이라도 게을리 하여 그 하나만이라도 받아들여지는 날이면 위망(危亡)이 따른다.’ 하였는데, 이는 대개 그 자성(資性)이 밝고 트여 이 마음이 희미한 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인(聖人)의 극치(極致)라는 것도 결국은 이길 외에 따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 중주(中主)의 소강(少康)도 이를 빌려서 다스렸으니, 다니기가 험한 산길에서 애쓰고 초목이 무성한 곳에서 배회하는 것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

 

[이는 효종 4년 백강 이경여 선생이 임금에게 올린 재변을 이겨내는데 힘써야할 21항의 상차문 건의 사항중 하나로, 원전은 조선왕조실록임]

 

백강 선생의 말씀을 줄이면 성인의 극치는 결국 ‘마음의 수양’ 특히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데(槿獨)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 백강 이경여 선생의 말씀과 같은 취지를 미국의 세계적인 릭 워렌(Rick Warren)목사가 말한바 있어 아래로 소개합니다.

 

"Above all else guard your heart for it is the wellspring of life" ~ Proverbs 4:23(NIV) 그 무엇보다도 너는 네 마음을 지켜라. 그 마음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 잠언 4장23절

 

Maintaining the daily walk with the Lord is absolutely imperative. 매일 매일 하나님과 늘 동행하고 대화하는 삶의 자세는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I find that in temptation of any kind, I need to continually remind myself of God's omniscience and omnipresence. God see everything in my life, and he is always with me. 나는 삶의 다양한 현장에서 닥치는 수많은 유혹들 속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언제 어디에서도 계심을 되 뇌이며 이들을 극복하여 간다. 하나님은 나의 생활 모두를 살펴보고 계시며 항상 나와 함께하신다.

 

"I discipline my body like an athlete, training it to do what it should. Otherwise, I fear that after preaching to others I myself might be disqualified."~ 1 Corinthians 9:27 (NLT) 나는 내 몸을 쳐서 굴복시킵니다. 그것은, 내가 남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나서, 도리어 나 스스로가 이를 어겨 버림을 받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9장27절

 

(원전 : Maintaining moral Integrity in the ministry, Rick Warren 저)

 

 

 

3. 마음 수양의 실제(實際)

 

3-1. 우리국민의 마음수양과 기초예절

 

한국인은 민첩하고 상냥하고 진취적인 기상을 지닌 국민입니다. 세계의 많고 많은 민족, 국민들 사이에서 두드러지게 장점을 지닌 국민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가 부족하여 선진 국민의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데, 곧 마음수양과 기초훈련이 부족한 점입니다. 여기서 마음수양과 훈련이라 함은 고난도의 훈련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기초생활에 필요한 단순한 마음수양과 훈련을 일컫습니다. 예를 들어 정직한 언행, 교통질서 지키기, 줄 서서 기다리기, 담배꽁초 버리지 않기, 휴지는 휴지통에 버리기 등과 같은 기초적인 훈련이다.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생활에는 공중도덕이 대단히 중요하지요. 국민의 도덕심은 결국 나라의 품격을 결정합니다. 그런 공중도덕 지키기는 하루아침에 습득되어지는 것이 아니며, 어린 시절부터 가정에서, 유치원에서, 교회 등에서 온 몸과 마음으로 익혀가게 됩니다. 서양이나 일본 같은 선진사회에서는 가정교육이나 유치원 교육에서부터 정직한 언행, 기본 질서 지키기를 습관이 되도록 일깨워 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초등학교에서부터 충효(忠孝)니 애국애족, 홍익인간(弘益人間)이니 하며 어렵고 추상적인 윤리를 강조하며 사회생활에 꼭 필요한 기초를 가르치는 일에 소홀합니다.

 

그래서 고등교육을 받은 후에 기초예절을 지키지 못합니다.

 

지난날 백강 이경여 선생이 ‘마음의 수양’을, 사계 김장생 선생이 ‘예(禮)세우기’를 그토록 강조한 이유를 알겠습니다.

 

훈련을 쌓으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몸에 베이면 성품까지 달라집니다. 그렇게 달라진 성품이 그 인생 전체를 가치 있는 삶, 진정한 성공의 길로 이끌어 주게 됩니다.

 

 

 

3-2. 변심 (變心)을 경계함

 

국내 굴지의 A그룹 회장이 사석에서 참석자들한테 물었던 얘기입니다. 회사에서 쫓겨나거나 퇴직하면 누가 회사욕을 많이 할 것 같으냐고. 모두 어물어물거리자 회장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사원, 부장, 상무, 사장, 부회장 등 직급 순이라고.

 

사원은 하루만 욕하면 그만인데, 부회장쯤 되면 죽을 때까지 욕한다는 것입니다. 회사 주인으로선 기가 찰 일이지만 한 직장에 평생 몸을 바친 부회장으로서는 미련 때문인지 서운함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얼마 전 횡령 혐의로 사법처리된 B 그룹 회장, 내부 폭로로 한때 일선에서 물러났던 C그룹 회장 등도 모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사람들입니다.

 

믿었던 사람이 적이 되고 원수가 되는 건 조직사회에만 있는 건 아니지요. 친구, 형제, 부모·자식, 부부, 연인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수롭지 않게 툭 던진 말 한마디에 서운하고 괘씸한 마음이 들면 한순간에 마음이 돌아서는데, 그게 사람입니다.

 

그래서 가깝고 친한 사이일수록 예의를 갖추고 말조심하라는 옛말이 귀에 쏙 들어옵니다.(서울신문 2012. 1.29 주병철 논설위원)

 

나의 마음 수양과 그에 따른 바른 행실로 스스로의 가치, 행복을 찾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하여 다른 주변 사람들의 마음도 감화시켜가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2012. 2. 20.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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