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참여마당 > 참여게시판
 
 
 
제목  지혜로운 삶
날짜 2012-02-25 11:50:25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200
첨부파일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지혜로운 삶

 

 

 

1. 지혜로운 삶은 ‘무위의 삶’…자비·봉사 몸소 실천해야

 

 

 

단오음법 정사지혜(斷五陰法 靜思智慧)

불반입연 기의기명(不反入淵 棄猗其明)

억제정욕 절락무위(抑制情欲 絶樂無爲)

능자증제 사의위혜(能自拯濟 使意爲慧)

 

- <법구경>(87~88) 중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오음법을 단절하고, 조용히 지혜를 생각하면서, 집을 떠나 멀리 깊은 곳으로 들어가, 즐기기 어려운 즐겁고 밝은 것도 포기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정욕을 버리고, 즐거움도 끊고 무위한다네. 스스로 자기를 증제(拯濟)하려 하면서 의도(意圖)하는 것은 지혜로움이라네.

 

역시 지혜로워지려면 필요조건이 확실하다. 우선 오음법(五陰法)을 단절해야 한다. 치열한 행자수행 당시 이를 체득됐다. 당시 <법구경>을 강원 중강 스님이 들려주며 이를 바로 선정(禪定)이라 가르쳤다.

 

지금도 북한산 자락에 앉아 고요히 자연을 관조(觀照)하며 내재돼 있는 불성을 향하는 깊은 선정이 필요함을 느낄 때마다 이 경구를 떠올린다. 사회가 점점 더 거칠어지고 들떠있는 분위기를 보일수록 이 경구는 더욱 빛난다.

 

결코 같이 들뜨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지혜로운 삶을 영위할 수 없다. 그래서 선정하며 조용히 내면을 관조하기 위해 끝없이 적멸함으로 무쇠의 뿔처럼 들어간다. 여기에 <법구경>은 정욕을 버리라고 첨가한다. 이는 감정과 욕망을 버리는 것이다.

 

북한산 자락에 앉아 고요히 자연 관조하며

내재돼있는 불성 향해 선정의 시간 가져본다

사회가 거칠어질수록 들떠있는 분위기에

이 경구는 더 빛난다

 

감정과 욕망은 자기를 어디에 얽어매는 작업이므로 정견(正見)을 가지지 못한다. 정견은 유위와 무위도 떠나고 일체의 분별의식마저 떠나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자기를 영원히 증제(拯濟)할 수가 있다. 요즘 종단 안팎에서 입만 열면 ‘자비와 봉사 몸소 실천하는 사람’이란 자랑을 보면 이 경구의 진면목이 더해진다. 더구나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면 이 경우는 더더욱 지혜에서 욕망과의 관련성을 목도하게 된다.

 

정견은 결국 ‘나는 누구인가’의 화두 해결점이다. 지혜로워져야 삶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종교간의 충돌도 이를 통해 접점을 찾는다. 기본권을 최대화하면서 공공복리를 훼손하지 않고 증득할 수 있는 것이 그 답이며 지혜의 소산이다.

 

어차피 다종교의 사회는 더욱 혼돈스러워질 것이다. 불교의 지위도 상대적으로 더욱 낮아지는 것이 현실이다. 종교간 경쟁은 당연시되고, 경쟁 속에 종교의 자유가 비집고 들어설 것이다. 다만 종교인들이 경쟁을 자율적으로 구사할 지혜를 갖춰야 한다.

 

타종교의 패쇄성에 맞서는 불교의 지혜는 역시 정견과 자기증제이다. 이로써 타종교인의 편견과 아집이 사회에서 사라지는 생리적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종교간 갈등이 거칠어질수록 <법구경>의 이 경구는 더욱 빛난다.

 

[불교신문 2793호/ 2월22일자, 혜일스님,서울 혜림정사 주지]

 

 

 

2. 정견(正見)과 자기증제(拯濟)

 

 

 

‘정견’과 ‘자기증제’는 참으로 좋은 지혜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능력으로는 결국 공허함과 모름과 없음과 혼돈이 그 귀결점으로 다가오고 말지요. 알 수가 없습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시 “알 수 없어요” 처럼~~~.

 

 

알 수 없어요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波紋)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 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탑(塔)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기늘게 흐르는 적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같은 발꿈치로 갓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 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배우고 알면 그분이 편견과 아집이 아닐 것입니다. 물론 미성숙 예수교인들이 부족한 행태를 보이는 경우는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보다 성숙해가야만 합니다.

 

정견과 자기증제의 자세로 수많은 영혼이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를 한번 깊이 바라보는 것도 같이 시도하여 보아야하겠습니다.

 

물론 유학(儒學)도 깊이 바라보고 이슬람교도 깊이 바라보고 다른 동서양의 철학들도 깊이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들 모두 훌륭할 것이나, 참 진리는 이 과정을 통하여 들어날 것 이라는 생각입니다.

 

 

2012. 2.25. 이 주 관

 

 

 

 
번호 작성자 제목 등록일 조회수
167 이주관 經典解釋의 重要性 2012-03-26 1170
166 이주관 朝鮮時代의 民主思想 2012-03-15 1243
165 이주관 君子 求諸己 小人 求諸人 2012-03-06 1309
164 이주관 지혜로운 삶 2012-02-25 1201
163 이주관 死後世界에 對한 論議 2012-02-22 1102
162 이주관 마음의 수양(修養) 2012-02-20 1301
161 이주관 리더십, 인격의 성숙 2012-02-14 1285
160 이주관 歸天 2012-02-09 1034
159 이주관 '광한루'에서 2012-02-08 1153
158 이주관 理氣論議와 眞理 2012-02-06 1054
157 이주관 행복의 으뜸조건 2012-02-03 1011
156 이주관 삶을 세우는 기본 질문 2012-01-26 1180
155 이주관 하늘의 攝理를 본받는 道 2012-01-20 1525
154 이주관 스토리텔링 교육 2012-01-14 1292
153 이주관 언로(言路)의 중요성 (병산 이관명 선생) 2012-01-10 1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