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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經典解釋의 重要性
날짜 2012-03-26 15:39:40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170
첨부파일 경전해석의 중요성.hwp    

 

改新敎(프로테스탄트)에서 소위 말하는 異端(사이비 종파)들은 성경의 구절을 해석함에 있어서 마틴 루터, 죤 칼빈, 마틴 로이드 죤스 등 역사적으로 인정받는 신학자들의 정통 해석을 멀리하고, 자의적으로 지엽적인부분들의 확대해석에 치우쳐 결과적으로 다른 의미를 도출하여 내는 데에 근거하곤 한다.

 

 

성경의 말씀은 마치 큰 자재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무수한 자재들과 같아 이들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통일적이고 일관성 있게 해석하는가는 매우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여 보는 식견, 즉 안목을 길러야하는데, 이는 오랜 세월동안에 정통신학을 바탕으로 하는 공부를 통하여서 형성되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조선 숙종시대 명곡 최석정 선생이 유학의 경전을 주자, 정자 등 예전 성현들의 해석을 사사로이 왜곡 멀리하고 사실상 양명학의 영향, 사견 등으로 시대에 편승하여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일들을 하므로 이를 지적하는 병산 이관명 선생의 상소와 이에 대한 당시 사관의 견해가 있어 이에 소개한다.

 

 

 

1. 경전해석에 관한 병산 이관명 선생과 당시 사관의 견해

 

숙종 47권, 35년(1709 기축 / 청 강희(康熙) 48년) 1월 18일(경인)

동부승지 이관명이 당초 사간으로서 바친 상소를 계문하다

 

 

 

동부승지 이관명(李觀命)이 당초에 사간(司諫)으로서 치론(治論)에 관한 상소를 승정원에 바쳤었는데, 마침 승정원으로 승직(陞職)하게 되었고, 상소 내용에 말이 당로(當路)를 간절하게 기롱한 것이 많으므로 따라서 기각하게 되매 당시의 공론이 그르게 여겼었다. 이에 이르러 이관명이 비로소 그 때의 상소를 임금께 계문(啓聞)했는데, 대략 이르기를,

 

 

 

~~~ 중략(中略)~~~

 

 

세상이 쇠퇴해지고 풍속이 희미해져서 정학(正學)이 점점 어두워지니 정도(正道)를 좇아 궤철(軌轍)14629) 을 지키는 것을 사법(死法)이라고 손가락질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지능(智能)을 넓혀서 사사로움을 펼치는 것을 스스로 초오(招悟)했다고 여기며, 더러는 주자(朱子)의 성설(成說)을 어기는 데에 태연히 하여 괴이하게 여기지 않으므로, 식견있는 사람들이 우려해 온 지 진실로 이미 오래입니다.

 

이번에 듣건대 최석정이 찬집(纂輯)한《예기유편(禮記類編)》을 인출(引出)하여 궁중(宮中)에 바치고서 장차 법연(法筵)에서 진강(進講)하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신(臣)이 그 해설(解說)해 놓은 것을 가져다가 고찰해 보니, 주자와 다르게 하려고 한 것을 진실로 이루 들 수가 없었습니다.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에 있어서는 주자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의 한 평생 정력이 모두 이 글에 들어 있다.’고 한 것으로서, 세밀한 말과 오묘한 뜻을 유감스러운 데가 없도록 천명(闡明)해 놓은 것이고 보면 이를 어찌 뒷 사람들이 평의(評議)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런데 《대학》 제4장(章)을 빼내어 제3장에다 합쳐 놓고서 통틀어 말하기를, ‘우(右)는 지어지선(止於至善)을 풀이한 것이다.’라고 하였고, ‘석본말(釋本末)’ 한 장은 없애버렸습니다. 《중용》에 있어서도 제28장과 제29장의 정문(正文)을 어구(語句)를 잘라내고 여러 줄을 분열(分裂)하여 이 쪽으로 옮겼다 저 쪽으로 넘겼다 하고 아래로 보냈다 위로 가져갔다 하였고, ‘비은(費隱)’ 한 장에 이르러서는 의리(義理)가 가장 깊은 것으로서, 장구(章句)에 해석해 놓은 것이 지극하고도 극진하게 되어 있는데, 이번의 부주(附註) 2조목은 현저하게 본지(本旨)를 멋대로 하려고 한 뜻이 있었습니다. 또 정자(程子)가 《중용》과 《대학》을 표장(表章)하여 따로 내놓은 것은 우연(偶然)한 뜻으로 한 것이 아니거늘, 이번의 《유편(類編)》이란 것은 열람하기 편리하도록 분류(分類)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체제(體制)에 있어서도 또한 경서(經書)와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인데, 이에 다시 《중용》과 《대학》을 그 속에다 도로 편집해 놓아 선현(先賢)과 표장(表章)해 놓은 본의가 어두워지고 명백하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효경(孝經)》의 한 책에 있어서도 본래 대씨(戴氏)14630) 가 기술한 것이 아닌데, 서슴없이 편입(編入)하고서 주자가 간오(刊誤)14631) 해 놓은 의의(意義)를 일소(一掃)해 버렸습니다. 이미 분리(分離)되어 있던 것을 도로 합쳐 놓고 당초에 없던 것을 억지로 붙여 놓은 것은 그의 뜻이 어디에 있는 것이겠습니까? 어찌 이에 의해 의논을 세워 놓고 스스로 고명하게 혼자만이 얻어낸 체하며 이 세상에 우뚝 나타나게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말세(末世)이기에 총명하고 재변(才辯)있는 인사들이 기꺼이 성현을 독신(篤信)하며 성법(成法)을 신중하게 지켜 가려고 하지 않고, 사사로이 언뜻 한순간에 보잘것없는 생각을 포착(捕捉)하게 되면 오만(傲慢)하게 자신을 과대하며 밝은 일월(日月)과 광채를 다투려고 하는 사람이 가끔 있게 되어 스스로 그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고 있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데, 결과의 폐해가 성인들을 모함하고 현인들을 업신여기는 과죄를 면하지 못하게 되니, 신은 그윽이 애석하게 여깁니다.

 

신이 지난해에 성상의 분부를 받들고서 박세당(朴世堂)이 저술한 《사변록(思卞錄)》을 변파(辨破)할 적에 전하께서 도(道)를 호위(護衛)하고 성현을 존숭하시는 지극한 뜻을 흠앙(欽仰)했었기에, 진실로 이 《유편》이란 글이 성상의 뜻을 흔들게 되지도 못하고 성상의 총명을 어지럽히게 되지도 못할 줄을 알고는 있습니다마는, 이미 간행(刊行)하도록 명하셨고, 또 장차 진강(進講)하게 된다면, 사방 사람들이 듣고서 반드시 경솔하게 괴이한 말을 믿으시는 것이라고 여겨 망령되이 전하를 회의하게 될 것이므로, 진실로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옛사람의 말이 ‘경서(經書)의 글은 글자 하나만 잘못 풀어도 천리(千里)가 피를 흘리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주자도 또한 일찍이 ‘무극(無極)14632) ’ 두 글자를 사책(史冊)에다 써 놓으려고 했었습니다. 이번에 경서의 글자를 번잡하게 고치고 뜻대로 증산(增刪)하는 짓은 특히 한둘의 글자를 그르치거나 빠뜨리게 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니,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 더욱 성의(聖意)를 굳게 가지시면서 엄격하게 통쾌한 배척을 가하시어, 주자와 배치(背馳)되는 이런 말들이 다시는 세상에 생겨나지 않게 하소서.”하였다.

 

 

~~~ 중략(中略)~~~

 

 

 

당초에 최석정(崔錫鼎)이 예서(禮書)를 찬집(纂輯)하여 《유편》이라고 이름했는데, 모든 예경(禮經)의 장구(章句)를 거개 분류(分類)하여 모아, 이 쪽에서 끊어다가 저 쪽에다 보충하고 위에서 잘라다가 아래로 옮기곤 하였으되, 되도록이면 번잡하고 중복된 것들을 없애어 고열(考閱)하기 편리하게 하였다. 또 《중용》과 《대학》을 가져다가 도로 그전의 자리에 편차(編次)하되 편제(篇題)를 첨산(添刪)하기도 하고 장단(章段)을 없애버리기도 하였고, 주자의 설명은 전부 없애고 단지 주설(註說)만 남긴 것도 있고, 정자(程子)의 해설을 끊어내고 자기의 설명으로 대신한 것도 있고, 아랫 장(章)을 위에다 넣고서 그 장의 끝에 있는 해석을 삭제해버린 것도 있고, 딴 주(註)를 새로 붙이어 본주(本註)의 뜻을 어지럽힌 것도 있어, 대개 조목(條目)의 배치는 교묘하게 되었지만 큰 본령(本領)은 깎이어 버리게 되었다.

 

또 《혹문(或問)》을 저술하되 딴 사람이 한 말을 빌어다가 자신이 그 말을 과장하여 놓았다. 대저 자기가 편정(編定)해 놓은 것이 성현들의 지의(旨意)에 부합된다고 여겼는데, 한때의 조정 진신(搢紳)들과 초야(草野)의 선비들 중에 남구만(南九萬)·박세채(朴世采)·윤증(尹拯)·박세당(朴世堂)·임영(林泳)·민이승(閔以升)·이세귀(李世龜)·서종태(徐宗泰)·오도일(吳道一)·최규서(崔奎瑞)·이인엽(李寅燁)·박태보(朴泰輔)·이세필(李世弼)·정제두(鄭齊斗)·박심(朴鐔)·나양좌(羅良佐) 등 여러 사람들이 참고한 증거가 정확하게 강구(講究)되었다고 칭찬하며 아울러 표시하여 열거(列擧)하였다. 서종태는 본래 별호(別號)가 없었는데, 최석정이 사사로이 그의 호를 만들어 써 놓았다. 책이 완성되어 인출(印出)해서 발행하게 되어서야 서종태가 보고서 부끄럽게 여겼다. 이때에 숙유(宿儒)들은 거의 모두 조락(凋落)14635) 해 버리고, 세속의 선비들은 명예와 이익만 추종하게 되었으며, 새로 배우는 사람들은 장구(章句)에만 전력하게 되므로, 최석정이 더욱 자신을 가지고 대항하게 되었고, 경연(經筵)에서 《예기(禮記)》를 계속 진강(進講)하기에 미쳐 옥당(玉堂) 관원 권상유(權尙游) 등이 이 책을 간행하여 참고에 대비하도록 주청(奏請)하니, 임금이 윤허하였고, 드디어 《유편》이 간행되니 식견있는 사람들이 저으기 우려하게 되고, 사림(士林)들의 논란이 차차 일어나게 되었다.

 

새로 중국 사람 이패림(李沛霖)이 저술한 《사서동이조변(四書同異條辨)》을 노중(虜中)14636) 에서 가져온 것이 있었는데, 《대학》의 강령(綱領)과 조목(條目)을 분변하여 놓은 것이 모두 주자(朱子)의 주(註)대로 했으므로, 처사(處士) 김창흡(金昌翕)이 한탄하기를, ‘어찌 예의를 지키는 우리 동방이 멸망해버린 고장만도 못한 것인가?’라고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40책 315면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상-유학(儒學) / *출판-서책(書冊) / *군사-관방(關防)

 

 

[註 14630]대씨(戴氏) : 전한(前漢) 시대 사람 대덕(戴德)과 대성(戴聖). 대덕은 85편의 예(禮)를 전승(傳承)하고, 대성은 49편의 예를 전승했음. ☞

[註 14631]간오(刊誤) : 교정(校正). ☞

[註 14632]무극(無極) : 한없음. ☞

[註 14633]낭묘(廊廟) : 조정. ☞

[註 14634]옥서(玉署) : 홍문관(弘文館). ☞

[註 14635]조락(凋落) : 죽음. ☞

[註 14636]노중(虜中) : 청나라를 뜻한 것. ☞

 

 

 

2. 경전해석의 중요성

 

 

결국 명곡 최석정 선생의 해석은 위의 사관의 언급이 암시하듯이 이후 그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는 패륜적 행동이 극심했던 장희빈 사사를 반대하고 소론의 영수가 되었는데, 결국 그의 추종자들이 신임사화를 일으키어 노론 사대신 등을 무고하여 사사하고 나라에 큰 화를 가져왔던 바, 끝내는 모두 역적으로 몰려 몰락하고 말았다. 반면 무고 당해 죽은 노론 사대신을 위해서는 나라에서 ‘사충서원’을 건립하여 그 충절을 영원히 기리고 있다. 이들 사충신은 충절의 죽음으로 영조 정조 시대의 조선 르네상스시대를 열어 놓은 것이다.

 

經典들을 성현들의 말씀에 따라 바르게 해석하고 공부하여 갈 때에 진정한 인격자요, 군자요, 충신이 배양될 수가 있을 것이다.

 

 

위의 이관명선생의 말씀에, “옛사람의 말이 ‘경서(經書)의 글은 글자 하나만 잘못 풀어도 천리(千里)가 피를 흘리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주자도 또한 일찍이 ‘무극(無極, 한없음) ’ 두 글자를 사책(史冊)에다 써 놓으려고 했었습니다.”라는 대목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들은 스스로 깊고 넓은 공부와 확신 없이는 성경, 불경, 사서삼경 등 경전들을 정통의 해석과 달리 해석하고 이를 펴는 것이 얼마나 이웃에게 해로울 수 있는가를 알 수가 있다.

 

 

촬스 다윈은 젊은 시절 성경의 ‘창조론’에 대항하여 ‘진화론’을 주창하였는데, 노년에 이르러서는 이를 입증할 수 없음을 알고, ‘진화론’을 이야기한 것을 매우 후회하며 생을 마감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촬스 다윈의 의도와 달리 이후 이‘진화론’은 지속적으로 세계문화에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미쳐왔다. 예컨대 만물의 영장, 인간이 원숭이의 후손이라는 증명되지 아니하는 가설을 계속 회자하게 하며 오늘날도 숭고한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있다.

 

 

2012. 3.26.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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