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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기(時機)와 우연(偶然)
날짜 2012-04-23 13:16:09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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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時機)와 우연(偶然)

 

 

우리의 인생살이에서 다가오는 수많은 일들 가운데에서 별난 시기에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 생각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흔히들 운이 좋았다, 아니면 불운했다고들 말하는 일들이 벌어지곤 합니다. 이런 좋은 사례가 있어 아래에 소개드립니다.

 

1. 마스터스대회 우승~부바 왓슨

 

미국 프로골프경기(PGA) 중의 백미라 할 수 있는 2012 마스터스 골프토너먼트가 막을 막 내렸습니다. 로이 맥길로이가 당당하게 마지막 라운드에서 선두로 출발했지만 어린 나이에 맞게 된 이 엄청난 영광의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 대신 왼손잡이 부바 왓슨 (Bubba Watson, 1978~)이 올해의 승자로 등극했습니다.

 

그는 코치도 없이 혼자 배운 골프로 마스터스를 제패한 것입니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가장 시장성이 뛰어난 우즈가 추락한 이후 커다란 타격을 받았던 PGA투어의 간절한 기도에 부바 왓슨이라는 응답이 왔다'고 표현했습니다.

 

왓슨은 우승 직후 뉴욕, 뉴올리언스 지역의 TV 라디오 등으로부터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을 소화하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는 최고의 인기 토크쇼 중 하나인 CBS의 데이비드 레터맨 쇼에도 출연했습니다.

 

왓슨은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그저 상위권 선수 중 한 명 정도로만 평가됐었지만 마스터스 우승 이후 가치가 폭등했습니다. 닐슨과 E-폴마켓 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들의 선호도에서 왓슨은 68%의 지지를 얻어 필 미켈슨(52%), 프레드 커플스(57%)를 능가했습니다. 이에 따라 그를 후원하는 업체들도 지갑을 더 열어야 할 분위기입니다. 누가 말했듯이 바야흐로 왓슨의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미군 특수부대원이었던 부바 왓슨의 아버지는 골프 애호가였습니다. 그는 여섯 살 난 아들 왓슨에게 클럽을 쥐여 주며 솔방울부터 치게 하면서 골프의 재미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2010년 부바 왓슨이 PGA에서 처음 우승한 "아버지께 승리를 바친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힘겹게 암과 싸우다 왓슨이 첫 승을 거둔 지 넉 달 만에 숨졌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왓슨은 "신의 섭리는 늘 옳다"며 슬픔을 눌렀습니다.

 

왓슨은 아버지를 여읜 뒤 "골프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삶에는 그보다 중요한 것들이 있다"며 자선활동에 나섰습니다. 그가 핑크빛 드라이버로 공을 300야드 넘게 날릴 때마다 후원업체가 300달러씩 암환자 돕기 기부합니다. 지금까지 326차례 드라이버를 휘둘러 200차례를 모금했습니다.

 

왓슨이 2012 마스터스를 제패한 뒤 어머니를 껴안고 기뻐하며 울었습니다. 그가 결혼 전에 아내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뇌하수체 이상(異常)'이 있다"고 하자 "하나님이 우리에게 입양을 하라고 하시는 것"이라며 오히려 달랬습니다. 얼마 전 그는 생후 6주 된 사내아이를 입양하며 인터뷰에서 아들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왓슨은 "마스터스 우승보다 오늘이 부활절이라는 게 더 뜻깊다."고 말했습니다. 효심이 하늘에 닿고 믿음을 선행으로 옮기는 사람에게 마스터스의 그린 재킷이 돌아간 것은 하늘의 뜻이 아닐까요?

 

10번홀(파4)에서 치러진 연장 두 번째 홀 경기에서 왓슨의 볼은 깊은 숲속에 빠졌습니다. 위기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갭 웨지로 훅샷을 구사해 생애 첫 메이저타이틀을 안았습니다. 만일 왓슨이 친 볼이 나무에 맞았으면 어떤 결과가 나올 지 단정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왓슨의 승리는 신념과 과감한 도전이 빚어낸 결과이지만 승패는 우연과 시기에도 크게 의존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남산편지, 경북대 정충영 교수 <cyjung@knu.ac.kr> 2012. 4.20.)

 

우리들의 삶에서 다가오는 이러한 시기와 우연의 섭리를 지혜의 대명사인 솔로몬(Solomon)왕은 아래와 같이 설파하였습니다.

 

“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時機)와 우연(偶然)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 I have seen something else under the sun: The race is not to the swift or the battle to the strong, nor does food come to the wise or wealth to the brilliant or favor to the learned; but time and chance happen to them all. NIV“ [전도서(Ecclesiastes) 9장11절]

 

솔로몬왕의 아버지인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칭송되는 다윗(David)왕은 이 시기와 우연의 이면에는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며 아래와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하나님)에게서로다 I lift up my eyes to the hills -- Where does my help come from? My help comes from the LORD, the Maker of heaven and earth. NIV"

[시편(Psalm) 121장 1-2절]

 

그리고 다윗왕은 하나님을 공경하여 그의 법도를 따를 것을 강조하여 아래와 같이 말하였습니다.

 

“내가 주의 법도를 택하였사오니 주의 손이 항상 나의 도움이 되게 하소서 May your hand be ready to help me, for I have chosen your precepts. NIV” [시편 119장173절]

 

그리고 나서 다윗왕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즐거워하였습니다.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거이 부르리이다 Because you are my help, I sing in the shadow of your wings. NIV”. [시편 63장7절]

 

 

 

2. 하늘을 공경하는 자세~백강 이경여 선생

 

위와 같은 맥락으로, 우리나라에도 다가오는 시기(時機)와 우연(偶然)을 미리 경계하고 대비하는 자세로 하늘을 늘 공경하고 그 뜻을 찾아 실천하라는 말씀 등이 조선왕조실록에 있으므로 이에 소개드립니다.

 

백강 이경여 선생은 늘 하늘을 공경하는 자세를 견지할 것과 그 뜻을 찾아 실천하여갈 것을 을 으뜸으로 말씀하였습니다.

 

아울러 임금은 신하들의 간하는 말을 경청하고 언로를 넓힐 것을 강력히 말씀하였는데, 이는 스스로 부족하여 하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함을 막는 좋은 방편으로 생각됩니다.

 

또 백강 선생은 스스로의 바른 삶과 능력을 극대화 하려함에 있어 늘 학문하는 자세를 강조하였습니다.

 

 

인조 25권, 9년(1631 신미년) 10월 3일

이경여·이경증·오전·강대수 등이 하늘을 공경할 것 등 8조목을 아뢰다

 

부제학 이경여(李敬輿), 교리 이경증(李景曾), 부교리 오전(吳竱), 수찬 강대수(姜大遂) 등이 상차하기를,

 

“신들이 삼가 보건대, 근래 대각(臺閣)의 신하가 상의 결점과 시정(時政)의 잘잘못을 가지고 전후에 걸쳐 진달해 아뢴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도 채택하여 받아들인 효과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한 상황에서 거의 미안스런 전교만 내리시어 멀리서부터 오는 사람까지도 막는 결과를 빚고 말았습니다. ~~~ 보잘것 없는 역량을 헤아리지 않고 아래에 조목별로 진달드리겠습니다.

 

첫째는 하늘을 공경하는 일입니다. 임금은 높은 지위에 있고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니, 두려워 할 것은 하늘뿐입니다. 하늘은 이치이니, 한 생각이 싹틀 때 이치에 합하지 않으면 이는 하늘을 어기는 것이고, 하나의 일을 행할 때 이치를 따르지 않으면 이는 하늘을 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옛적의 제왕이 매우 조심하며 상제(上帝)를 대한 듯 행동한 것은 진실로 이 때문입니다. 정성으로 하늘을 섬기면 천명(天命)이 계속 아름답게 내려지지만 하늘을 어기고 이치를 거스르면 그 천명이 영원히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의 마음은 인자하여 차마 갑자기 끊어버리지 못하니, 반드시 재이(災異)를 내려 견책한 뒤 흐리멍덩하게 깨닫지 못하여 끝내 고치지 않은 다음에야 크게 벌을 내리는 것입니다.

 

신들이 멀리 옛날의 일을 인용할 겨를이 없습니다만, 혼조(昏朝) 때에도 천재와 괴이한 일이 번갈아가며 나타났습니다. 그런데도 그만 밝은 천명을 높고 멀리 있는 것으로 치부하고 권계하는 말을 보통 이야기로 생각하여 미혹된 채 반성할 줄을 몰라 스스로 천명을 끊었으니, 당시의 일을 어찌 차마 말하겠습니까. 가령 그 때 두려워하여 덕을 닦았더라면, 하늘은 친한 사람이 없으니 어찌 꼭 광해를 가볍게 버리고 우리 전하에게 사정(私情)을 두어 임금으로 세웠겠습니까. 하늘이 멸망시키거나 사랑하여 돕는 것은 공경과 불경(不敬), 정성과 불성(不誠)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천명은 일정함이 없으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전하가 즉위한 이후로 천문 지리 곤충 초목의 재이를 실로 낱낱이 들기가 어렵습니다. 수 년 이래로 종묘의 나무에 벼락이 치고 진전(眞殿)에 불이 났는가 하면 반 년 동안 가뭄이 들고 8월에 큰물이 졌으며 벼가 쓰러지고 나무가 뽑히는 큰 바람이 불었으니, 이는 실로 근고에 없었던 변고입니다. 전하께서는 이를 기수(氣數)와 관계된 현상으로 여겨 스스로 합리화시키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어찌 크게 삼가고 두려워함이 없으며 크게 절약함이 없으며 크게 시행하고 조치함이 없습니까. 상선(常膳)을 감하고 정전(正殿)을 피하는 것으로 하늘의 노여움을 되돌릴 수 있다고 여기십니까. 옥에 가둔 약간의 죄인을 석방한 것으로 원통함과 억울함이 풀렸다고 생각하십니까. 좋은 말을 구하여 무슨 훌륭한 계책을 얻었으며 진언(進言)한 것 중에 어떤 말이 시행되었습니까. 구하기를 정성스럽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하는 자들이 말을 다하여 하지 않고, 듣기를 정성스럽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간곡히 말한 것이 채택되지 못한 것입니다. 전하가 그런대로 천심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천지 신명에게 제사를 올린 일에 불과합니다.

 

아, 재이는 옛날보다 심하게 발생하는데, 덕을 닦고 몸을 살피는 실상이 전일보다 크게 다름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경계해 드리는 말은 대부분 곧장 물리쳐버렸고 게다가 성상이 거만스럽게 스스로 거룩하게 여긴 나머지 임금의 도가 날로 지나쳐서 좋아하고 미워함을 사사로운 정에 따르므로 상하가 막혔으니, 하늘의 노여움이 그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게 없습니다. 태백이 낮에 나타나 한 달이 지나도록 없어지지 않고 우레와 우박의 변고가 또 8월에 발생하는 등 변괴가 갈수록 더 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홍수와 가뭄으로 이랑에 남은 화곡(禾穀)이 얼마 없으니, 백성들이 일년 내내 애써가며 목숨을 부지하려고 수확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던 것이 모두 손상되었습니다. 가련한 우리 백성들이 무엇을 가지고 세월을 연명하겠습니까. 안락한 태평 시대에도 이렇듯 거듭 변괴가 발생하면 국가가 보존되기만 해도 다행입니다. 더구나 오늘의 국세(國勢)와 오늘의 어려움과 오늘의 민심을 가지고 전하께서는 수 년간이라도 무사히 보존할 수 있으리라고 여기십니까. 어찌 크게 한심스럽지 않겠습니까.

 

재앙이나 복은 자신이 초래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잘못을 깊이 징계하고 스스로 장래의 복을 구하여 상림(桑林)의 육책(六責)916) 으로 몸을 살펴 반성하고 운한(雲漢)의 8장(八章)917) 으로 몸을 기울여 덕을 닦으소서. 심술(心術)의 은미한 곳으로부터 궁정의 사람없는 곳과 동작하고 이야기하는 사이에 이르기까지 삼가 공순하고 공경히 두려워하지 않음이 없게 하소서. 천명을 스스로 헤아려 천리(天理)로써 보존하고 자연의 법칙으로써 움직여, 공경하고 조심스럽게 하기를 마치 효자가 어버이를 섬길 때 힘써 성의를 쌓아 기필코 즐겁게 되시도록 하는 것과 같이 하소서. 그리고 애통스런 전교를 시원스럽게 발표하여 과거의 허물을 사과하고 널리 직언(直言)을 구하며 덕있는 사람을 모두 받아들여 적소에 앉혀 쓰되 전일처럼 형식적으로 끝나지 않게 하여 재이를 소멸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소서.

 

~중략~

 

또 한 가지는 간하는 말을 듣는 것입니다. 임금은 많은 백성의 위에 군림하여 온갖 정무를 접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총명과 예지가 누구보다 으뜸간다 하더라도 분명히 보고 두루 듣지 않으면 보고 들을 때 편벽됨이 있게 되어 자신을 바루고 좋은 정치를 도모할 길이 없게 되는데, 이는 필연적인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순 임금 같은 성인도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랐으며 성탕(成湯) 같은 덕으로서도 간하는 말을 따르고 어기지 않았으니, 옛 성인이 어찌 성지(聖智)로 자처하면서 남은 모자라게 여겼겠습니까. 삼대(三代) 이후로 치세와 난세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마는, 간하는 말을 따르면 다스려지고 간하는 말을 막으면 어지러워 진 것이 역사책에 소상히 기록되어 있으니, 이는 속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후세의 임금들이 간하는 말을 따르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고 간하는 말을 막는 것이 나쁜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간하는 말을 따라 잘 다스린자는 적고 간하는 말을 막다가 망한 자가 많은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사람의 정이란 언제나 나에게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고 귀에 거슬리는 것은 언제나 기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혹 자신의 사사로움에 유혹되기도 하고 이해관계에 이끌리기도 하며 기뻐하고 성내는 감정에 좌우되기도 하니, 이것이 충신과 곧은 선비가 언제나 세상에 용납되지 못하고 따라서 나라가 망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우리 전하께서는 영특하고 총명함이 옛 제왕들 가운데 으뜸이시고 타고난 자질이 순수하고 아름다우나, 말을 듣고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도에 있어서는 한(漢)·당(唐)의 임금들에 미치지 못하십니다. 신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중외에서 함께 걱정하는 바를 모두 진달드리겠습니다.

 

 

오늘날 대각의 신하가 참으로 보잘것 없기는 합니다만, 어찌 모두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야 없겠습니까. 전하께서 이미 귀와 눈이 되는 직임과 정치의 득실을 논하고 생각하는 책무를 주신 이상, 일에 따라 논열(論列)하는 것이 그 직책이니, 채택할 만한 말이 있으면 곧바로 빨리 따르는 것이 옳고 혹 맞지 않는 말이 있더라도 넉넉하게 용납하여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자신을 비워 받아들이는 도량을 넓히지 않고 먼저 듣기 싫어하는 기색을 보입니다. 승여(乘輿)에 대해 언급하면 업신여기며 공경스럽지 못하다고 의심하고, 관원의 부정 행위를 조사하여 탄핵하면 알력하여 배격한다고 의심하고, 잘잘못에 대한 일을 의논하면 사실이 아닌 것을 거짓으로 꾸몄다고 하고, 각궁(各宮)에 속한 하례(下隷)에 관계되는 일이면 직접 배척한다고 성을 내고, 낭묘(廊廟)와 관련된 일은 동요시킨다고 염려하십니다.

 

그리하여 언론의 옳고 그름을 살피지 않고 본심에 다른 의도가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않은 채 그 말을 채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엄히 꾸짖어 책망하기도 하고, 특명으로 체직시키기도 하고, 어거지로 전교를 내리기도 하고, 지방 고을로 내쫓기도 하고, 허술한 지위에 놔두기도 하고, 임명할 때 좋아하고 미워하는 사심(私心)을 나타내 보이시기도 합니다. 심지어 옥당의 다섯 신하를 귀양보낸 일이 이미 잘못된 조치였다는 것을 깨달으셨다면 그 뒤에 당연히 얼음이 풀리듯 명백하게 처리해 주셨어야 하는데, 아직 한산한 곳에 두고 거두어 쓰지 않고 계십니다. 삼사가 서로 바로잡는 것은 본디 상례(常例)인데 무슨 깊은 죄가 있습니까. 이 때문에 조금 굳세고 방정하다는 이름이 있는 선비는 거의 모두 조정에서 떠나가고, 녹봉이나 유지하며 몸을 보전하려는 사람이나 겨우 구차하게 용납받고 있으니, 대각이 쓸쓸하여 곧은 기상이 떨쳐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관례에 따라 아뢰는 것이나 그저 책임이나 메우려는 논을 잇따라 여러 차례 올려도 채택되지 않으므로 이럭저럭 세월이나 보내면서 날로 분위기가 오염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입을 다물고 잠자코 있는 풍습이 이루어져 상하가 서로 덮어주며 무기력하게 처신하는 것만을 숭상하여 맑은 의논은 날마다 고립되고 있으니, 언로(言路)가 막힌 것이 지난날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위로 상의 잘못으로부터 아래로 백성의 이롭고 해로움에 이르기까지 누가 전하를 위하여 기꺼이 말하려 하겠습니까. 만일 전하가 대각을 꺾어 스스로 귀와 눈을 제거하면, 용방(龍逢)이나 비간(比干) 같은 충신이 대각에 늘어서 있고 정자(程子)·주자(朱子)·범중엄(范仲淹)·진덕수(眞德秀) 같은 현신이 날마다 경연에서 모신다 하더라도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인데, 어떻게 성상의 덕을 도와 무너진 기강을 진작시켜 엄숙하게 하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스스로 잘난 체하는 병통을 제거하고 즐거이 남의 의견을 취하소서. 그리하여 비근한 말이라도 반드시 살피고 귀에 거슬리는 말이라도 도를 구하여 잘못한 것을 듣지 못하고 할 말을 다하지 못하지나 않을까 걱정하소서. 대간을 책망하고 격려하여 마음을 다해 바로잡고 숨김없이 논의를 다하게 하여 은화한 얼굴로 대접하고 마음을 비워 받아들이소서. 공경(公卿)의 계차(啓箚)와 초야의 상소도 모두 거두어 불러서 다시 근신(近臣)의 반열에 두고, 양사가 간쟁하여 아뢰는 것은 모두 윤허하여 언로를 활짝 여는 동시에 뭇 사람의 정이 막힘없이 통하게 하소서. 성덕(聖德)을 날로 새롭게 하여 근본을 세우고 사업에 이를 시행하여 시대의 어려운 점을 크게 구제하소서. 백성을 도와 천도(天道)가 빛나고 비색(否塞)한 운수를 돌려 태평을 이루는 것은 단지 전하께서 한 번 자세를 바꾸시는 사이에 달려 있습니다.

 

~중략~

 

또 한 가지는 학문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제왕의 학문하는 도는 궁리(窮理)보다 앞서는 것이 없고, 궁리의 요체는 독서 이외에 있지 않으며, 독서하는 방법은 차례를 따라 정밀함을 이루며 거경(居敬)으로 뜻을 견지하여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근본이 되게 하는 것을 중하게 여깁니다. 생각건대 우리 전하께서는 성학(聖學)이 이미 감반(甘盤)921) 에 나아갔는데도 경연에서 더욱 독실하게 강론하시며 섭렵하지 않은 경서(經書)와 사책(史冊)이 없습니다. 따라서 학문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진보되고 도가 몸에 쌓여 천하 사물의 이치를 속속들이 찾아내고,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의 공부를 다하며,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근본을 세우고, 중화(中和)의 경지에서 천지를 돕는 공을 이루셔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말씀하시는 것과 정령(政令)으로 시행되는 것 사이에 경서의 훈계와 서로 크게 배치되는 것이 많습니까. 시험삼아 한두 가지의 일을 가지고 말씀드릴까 합니다.

 

《서경(書經)》에 ‘하늘의 경계를 삼가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전하는 하늘을 공경하는 정성을 제대로 다하지 못하여 천심이 즐겁지 않게 하였습니까. 《서경》에 ‘어린아이를 보호하듯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전하는 백성을 사랑하는 어진 마음을 제대로 다하지 못하여 나라의 근본이 날마다 흔들리게 하십니까. ‘간하는 말을 따르면 성인 된다.’는 것이 《서경》의 가르침인데, 어찌하여 전하는 이토록까지 간하는 말을 막고 자신의 지혜를 쓰십니까. ‘관원은 어진이를 임용하라.’는 것이 《서경》의 가르침인데, 어찌하여 전하는 사람을 알아서 잘 임용하기를 미진하게 합니까. 《서경》에 ‘집안에서 씀씀이를 검소하게 하라.’ 하였는데, 어찌하여 전하께서 검소하고 소박함을 보이는 것이 옛날 제왕에 미치지 못합니까. 《서경》에 ‘사랑은 친한 친척에서부터 베풀어라.’ 하였는데, 어찌하여 전하께서는 은혜와 정의의 두 가지를 다함이 우리 조종에 미치지 못합니까. 《서경》에 ‘집안과 나라에서 시작한다.’ 하였는데, 어찌하여 전하께서는 궁중의 엄밀함이 차츰 당초와 같지 않습니까.

 

선유(先儒)가 말하기를, ‘이 책을 읽지 않았을 때나 읽고 난 뒤나 똑같은 사람이면 책을 잘 읽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전하의 9년 강학이 잘 읽지 못한 데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이는 다른 까닭이 없습니다. 전하께서 성현이 서로 전해 준 심법(心法)을 높고 멀어서 배울 수 없다고 여긴 나머지 그 근본은 탐구하지 않은 채 한갓 그 말단만을 일삼고 그 본지는 궁구하지 않은 채 그저 그 글만을 취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경연을 열어 책을 펴놓고 읽은 것은 한 때의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여 상자만 사고 구슬은 되돌려 주듯 실제로 얻은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잠자코 있는 것을 숭상하여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차리는 예가 너무 엄격하여 정의(情意)가 도탑지 못하니, 경연의 신하가 강독을 권한 것도 한갓 고사(故事)에 따라 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 경연도 하루 걸러 열기도 하고 수개월 동안 폐하기도 하여 어진 사대부를 접하는 날은 적고 궁첩과 환관을 가까이하는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은 도를 떠나고 정(情)은 사사롭게 움직여서 맑고 밝은 심성이 날로 떠나가고 뜻과 기상이 날로 소멸되니, 의리의 귀추를 끝까지 구명하지 못하고 공사(公私)의 나뉨을 가리지 못합니다. 영합하는 말이 쉽게 틈을 비집고 들어오고 격동시켜 목적을 이루려는 말이 마치 물에 돌을 던져 파문을 일으키듯 하는데, 현란하게 핍박하는 의논이 날마다 앞에 나오고 위엄으로 제재하여 독단하는 조짐이 위에서 이미 드러났습니다. 기쁨과 성냄을 표출하는 것이 중화(中和)의 올바름을 얻지 못하여 응대하는 말 사이에 거의 성내는 쪽으로 돌아가고 말았으니, 송(宋)나라의 신하 주희(朱熹)가 말한 ‘우레와 같은 위엄을 끼고서 사람의 위에 멋대로 군림하여 감히 가까이하지 못한다.’는 것에 불행하게도 가깝습니다.

 

~중략~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크게 경각심을 가지고 거경(居敬) 궁리(窮理)의 학술로써 몸에 증험하고 인심(人心) 도심(道心)의 싹으로써 더욱 그 기미를 살펴, 마치 샘물이 흘러가고 불이 타들어가듯 확충하고 마치 싸움에 이기고 공격하여 탈취하듯 제대로 제거하심으로써 의리가 항상 밝아 물욕(物慾)이 물러가 그 명을 듣게 하소서. 또 자주 유신(儒臣)을 접하여 조용히 강마(講磨)하고 말을 주고 받으며 토론하는 한편, 치도(治道)의 잘잘못과 사방의 이해도 다 말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임금과 신하 사이에 위아래가 마치 일반 가정의 부자간의 정처럼 통하게 하되, 만일 올바른 이치를 어기고 임금의 뜻에 영합하거나 이익을 앞세워 백성을 병들게 하는 말이 있거든, 통렬히 제재를 가하고 장황하게 하지 못하게 하여 국체(國體)를 높이고 다스리는 법을 바루소서.

 

송(宋)나라 신하 정이(程頤)가 말하기를 ‘사람의 감정 중에 쉽게 폭발하여 가장 억누르기 어려운 것은 성내는 것이다. 그러나 화가 날 때에 문득 그 노여움을 잊고 이치의 옳고 그름을 관찰하면, 밖에서의 유혹은 두려울 것이 없게 된다. 이쯤 되면 도(道)의 경지가 반절은 넘어간 것이다.’ 하였고, 사양좌(謝良佐)는 말하기를 ‘극기(克己) 공부는 모쪼록 성품이 편벽되어 이기기 어려운 곳을 향해 이겨 나가야 된다.’ 하였습니다. 여조겸(呂祖謙)은 젊었을 때 성품이 거칠고 사나웠는데, 《논어(論語)》를 보다가 ‘자신의 잘못은 스스로 두텁게 책망하고 남에게는 적게 책망한다.’는 데에 이르러 홀연히 깨달음을 얻어 생각이 일시에 평탄해져서 죽을 때까지 이런 병통이 없었습니다. 다시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분한 생각을 징계하는 데 더욱 뜻을 두소서. 신들은 전하의 결점이 무엇보다도 여기에 있다고 망령되이 여겨지는 까닭에 거듭거듭 말씀드리면서 감히 번거로움을 피하지 않는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34책 445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왕실-국왕(國王) / *구휼(救恤)

 

 

[註 916]상림(桑林)의 육책(六責) : 은(殷)나라 시조 성탕(成湯)이 7년 동안 가뭄이 계속되자 상림에서 비를 빌며 자책한 여섯 가지. 곧 정치가 잘 조절되지 않았는지, 백성을 병들게 하지 않았는지, 궁실이 지나치게 화려하지나 않았는지, 여자의 청탁이 성행하지 않았는지, 뇌물이 공공연히 행해지지 않았는지, 참소하는 사람은 없었는지 한 것이다. 《순자(荀子)》 27 대략(大略).☞

 

[註 917]운한(雲漢)의 8장(八章) : 운한은 가뭄을 하늘에 하소연한 《시경》 대아(大雅)의 편명(篇名)으로, 주 선왕(周宣王)이 여왕(厲王)의 폭정을 이어 받아 잘 다스리려는 뜻이 있었으나 한발을 만나자 두려워하면서 하늘에 하소연한 내용이다.☞

 

[註 921]감반(甘盤) : 은(殷)나라 고종(高宗)의 스승.☞

 

 

3. 우리들의 자세와 비젼(Vision)

 

위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솔로몬왕과 다윗왕 그리고 백강 이경여 선생 등 모두 인간의 통제능력을 넘어서는 시기(時機)와 우연(偶然)이 우리들의 삶에 찾아와 작용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이들 모두를 주재하시는 초월자인 하나님 또는 하늘을 늘 공경하고 그 이치를 따르는 겸손한 자세를 주문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철학들이 아무리 절대자를 부인하고 인간의 능력으로 모든 문제를 풀어보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 부작용만 낳을 뿐 해답을 전혀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인간능력으로 이해되지 아니하는 기적의 연속인 성경(Testament)속의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첨단 과학을 더 잘 이해하는 선진국들 지식인들 사이에서 더욱 널리 퍼지고 있는 것입니다.

 

겸손은 만고의 덕목입니다. 우리들은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우리자신을 아는 일에 가장 집중하여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인간의 유한(有限)함속에 다가오는 이 시기와 우연의 작용들을 극복하여가기 위하여 하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그 이치(理致)를 배우고 실천하며, 언로를 넓혀 널리 듣고 적용하며 바른 삶을 인도하는 성현들의 학문에 정진하면서 배운 바를 실천하여 나가야할 것입니다.

 

무릇 우리 인간들에게는 이세상이 끝이 아니며 내세(來世)가 다가온다는 것은 역사상 많은 성자(聖者)들의 가르침입니다. 내세의 비젼을 위해서도 하늘의 노여움을 사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2012. 4.23.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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