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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누구를 신뢰할 수 있나?
날짜 2012-04-27 15:58:17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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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신뢰할 수 있나?

 

조선 경종임금때 일어난 신임사화는 참혹한 비극이었다.

 

작게는 老論四忠臣 중에 나의 10대조이신 한포재 이건명 선생 그리고 방계 10대조이신 소재 이이명 선생과 그 자손들이 무고(誣告)를 당하여 역적으로 몰리시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역사의 눈은 속일 수 없는 것으로 결국 참화를 당한 노론4충신은 만고의 충신으로 복원되시었으며, 이분들의 죽음은 조선 르네상시시대로 일컫는 영조, 정조시대의 문을 열어놓으신 것이다.

 

정조대왕 즉위년에 대왕께서는 탕평(蕩平)을 강조하시는 과정에서 아래와 같이 老論은 본디 忠誠을 잡은 색목(色目)이라고 하시었는데, 그러나 이후 그 후배들 중에는 逆臣도 나왔다는 충격적인 말씀을 하시었다.

 

노론은 율곡이이, 사계 김장생, 우암 송시열 선생 등의 학통으로 청음 김상헌, 백강 이경여 선생, 그리고 신임사화의 노론 4충신 등 만고의 충신과 혁혁한 공로의 조상과 후손들을 배출한 가장 영향력이 컷던 색목이다.

 

그런데 그 후배들 중에는 영조대왕즉위 이후 사실상 집권세력으로 지내다 보니 정신이 해이해져 역신으로 불릴 만한 못된 자가 배출되고 말았다.

 

아! 누구를 신뢰할 수 있는가?

 

인간은 누구나 그 욕심을 절제할 수가 있어야하는데 이것이, 더욱이 좋은 여건에서는, 참으로 어렵고, 그리하여 인간은 生來的으로 罪性을 지니고 태어났다는 것이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마음은 생명의 근본이기 이를 잘 수양하고 다스리라함은 예수나 석가나 공자나 모두 한가지가르침이다.

 

우리 인간들은 잠시 한눈을 팔면 쉽게 罪惡된 길로 빠질 수 있는 나약한 존재이며 그러므로 뭇 인간을 영원히 신뢰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 같다.

 

결국, 허황된 세상의 안목과 욕심을 버리고, 늘 깨어서 진리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며 聖者의 道를 걷는 것이 가장 복된 인생인 것인데, 이를 배우고 실천하기는 참으로 쉽지 아니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리세계의 높은 이상과 가치를 바라보고, 늘 精進하며 이世上의 자랑과 眼目의 情欲과 肉身의 情欲들을 물리쳐 나아가야 하겠다.

 

화합과 단결을 위하여 역신의 무리도 괴수들만을 처단하시고 나머지는 용서하시며 蕩平策을 시행하신 영조, 정조대왕의 높은 뜻을 높이 기리는 바이나, 우리는 늘 마음을 바르게 닦고 인격을 수련하며 처신하는 인물들이 중용되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한다.

 

요즈음 이명박 정권도 말기가 되니 이전의 정권들처럼 정권 실세들의 상상외의 비리와 부패가 들어나고 있다. 이는 바로 이렇게 마음의 수양과 인격수련이 되어있지 않은 자들을 등용한데에 크게 기인하는 것이다. 노론은 역신이 나타난 것이 한세기 넘어 그 이후이나 오늘날은 불과 5년도 못되어 추악한 모습이 들어나고 있다. 오늘날은 더욱 믿을 사람이 없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교육을 세계의 聖人들과 세종대왕 같은 훌륭한 조상님들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人性敎育을 근본으로 하는 교육시스템으로 바꾸어야만 한다. 그 위에 세상의 전문지식을 배워가야만 바른 사람, 살맛나는 사회, 세계에 이바지하는 나라를 건설하여갈 수가 있다.

 

 

 

******** 아 래 ******************************************************

 

 

정조실록 > 정조 즉위년(1776년) > 정조 즉위년 9월 > 정조 즉위년 9월 22일

정조 2권, 즉위년(1776 병신 / 청 건륭(乾隆) 41년) 9월 22일(경인) 1번째기사

 

색목의 폐단을 논하고 색목의 분쟁을 금할 것을 하교하다

 

 

 

탄일(誕日)에 문안하는 경재(卿宰)를 소견하였다. 처음에 경재 가운데 소론 색목인(少論色目人)을 입시하라고 명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색목의 설(說)은 고 상신 이준경(李浚慶)이 말하기를, ‘당습(黨習)을 열어 놓은 것 같음이 있다.’고 하였는데 이 말은 이치가 있다. 내가 이를 헤아리지 않음이 아니라, 만약 지적하여 하교하지 않는다면 경 등이 쉽게 깨달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교가 있게 된 것이다. 대개 색목의 분쟁(分爭)이 회(懷)·니(尼)에서 비롯하여477) 한 번 바뀌고 두 번 바뀌어서 신축년478) ·임인년479)[신임사화] 에 이르렀는데, 처음에는 동료의 사이에서 항쟁(抗爭)하다가 마침내는 조정의 석상에서 공격하여 갈수록 점점 격렬하여져서 충성과 반역으로 나누어지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노론(老論)이 어찌 반드시 모두가 현인(賢人)일까마는 다만 잡은 바 의리가 충성이었고, 이른바 소론(少論)이 어찌 반드시 모두가 악인(惡人)일까마는 다만 잡은 바 의리가 반역이었다.

 

내가 왕위를 이은 지 지금 5, 6개월에 이르렀으나 아직까지 정치와 교화에 드러난 것이 없었고 불행하게도 근일에는 흉역(凶逆)이 많이 나와서 징계하고 토벌하는 것을 엄격히 하느라 치도(治道)를 강구(講究)할 겨를이 없었다. 지금은 척리(戚里)의 권세와 간악함을 모두 이미 제거하였으니, 이에 바르게 정신을 가다듬어 정치를 도모할 때이다. 내가 다스려지기를 성급하게 구하여 열흘이나 한 달 이내에 한 번 변화시켜 도에 이르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돌아보건대 지금 조정에서는 오히려 한마디 말을 하거나 한 건의 일을 논하여 정치와 교화를 협찬(協贊)하는 사람이 없으니, 바로 이른바 하지 않는 것이지 능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마침 이에 여러 신하가 많이 모이는 것은 오늘과 같음이 없기 때문에 특명으로 불러들여 한번 직접 유시하려고 하는 것이니, 경 등은 내 말이 오활하다고 하지 말고 모두 모름지기 다 들으라.

 

회(懷)·니(尼)의 싸움은 우선 논할 것이 없고 신축년과 임인년[신임사화]의 의리에 이르러서는 곧 충성이냐 반역이냐에 관계된다. 저 이광좌·최석항·조태억 등 여러 적으로부터 무신년480) ·을해년481) 의 반역에 이르기까지 우리 선대왕께서 밝게 판단하여 흉악한 죄범을 제거하고 토벌함에 있어 그 큰 괴수만 죽이고, 그 사소한 자는 이루 다 주벌할 수 없으므로 관용으로 감싸주는 덕의와 살리기를 좋아하는 어진 마음으로써 숨기고 덮어주고는 인하여 탕평(蕩平)의 정치를 세워서 모두 피차에 구분없이 대일통(大一統)의 역내(域內)에서 살게 하였다. 저 을해년의 뒤로는 연석에서는 비록 혹 기피하여 숨겼지마는 외부에서는 오히려 다시 떠들썩하여 수십년의 고질적인 폐단이 되어왔으니, 당시 진신(搢紳)의 상소와 같은 것인들 과연 한결같이 성심에서 나왔겠는가?

 

경 등도 또한 색목이 소론인데 저 소론을 보건대 반드시 기려(羇旅)482) 의 신하로 자처하면서 국사를 담당하려 하지 않으니, 그 의도는 대개 굽히지 않는 사감(私感)에서 나온 것이다. 선대왕의 탕평 정치가 융성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당시에 받들어 보좌하는 신하가 능히 성의(誠意)를 우러러 체득하지 못하고 오직 미봉책(彌縫策)으로 일삼으며, 심지어는 하나의 정사와 하나의 의망(擬望)에도 비례하여 배치하고 교묘하게 대등(對等)을 하여 조정(調停)하는 계획을 삼으니 이 어찌 편당을 버리고 상대와 나를 없게 하는 방도이겠는가? 다만 척리와 권세가 있는 간신(奸臣)이 감제(鉗制)하는 기구의 자료가 되었던 것이다. 지금은 척리의 해독(害毒)이 영원히 제거되었으니 세도(世道)의 근심이 마땅히 풀릴 것이다. 협소한 우리 나라에서 어떻게 색목으로서 사람을 버리겠는가? 지금의 도리에 있어서는 오직 마땅히 구습을 혁신하고 함께 대도(大道)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경 등의 무리들이 비록 옛날에 이광좌·최석항의 무리에게 은혜를 받은 것이 있더라도 만약 선대왕께서 건져내주신 은혜를 생각하여 이것으로서 저것을 비교하여 본다면 어느 것이 경하고 어느 것이 중한가? 의리가 명백하고 취사(取捨)가 매우 쉬우니, 이제부터는 일체 옛날에 물든 습관을 씻어 버리고 모두가 대동(大同)의 지경으로 나오라. 지금 내가 한 이 말은 거의 다스리는 도에 만분의 일이라도 도움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경 등은 각각 마음에 품은 것을 진달하여 행여나 속이며 숨기지 말라. 만약 이론(異論)이 있으면 비록 등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또한 깊이 책망하지는 않을 것이니, 숨김 없이 다 진달하라. 만약 혹 말로는 그렇다고 하면서 마음으로는 그렇지 않게 여기며, 물러가서 뒷말이 있다면 밝게 유시한 본의(本意)가 아니다.” 하였다.

 

 

 

~중략~

 

 

다음날 이어 윤음(綸音)을 내려 말하기를,

 

“아! 선대왕 50년 탕평(蕩平)의 정치와 교화가 융성하고 지극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아! 저 이른바 소론이란 자들은 과연 그 심지(心志)를 한결같이 하고 정신을 모아서 조금도 속이고 은폐하는 일이 없다는 것인가? 회(懷)·니(尼)의 싸움은 비록 사문(斯文)에 관계되나 오히려 조정에 추상(推上)할 필요가 없는 뜻으로서 덮어두고 논하지 않는 것이 옳다.

 

신축년·임인년[신임사화]의 의리에 이르러서는 곧 이 충·역(忠逆)이 관계되는데 인심이 각각 다르고 갈라진 의논이 일치되지 아니하여 을해년 이후로는 무릇 그 조정의 신하가 비록 연석(延席)에서는 꺼리고 숨기면서도 오히려 다시 조정에서 비등(沸騰)하여 수십년 동안 고질적인 폐단이 되어 와서 구제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등극한 이후로 새로운 역신이 연달아 나오게 되어 엄격히 징토(懲討)하느라 다른 데에 미칠 겨를이 없었다. 때문에 조정의 신하들은 반드시 말하기를, ‘신축년·임인년의 지나간 일은 이미 선천(先天)에 속했으니 비록 색목에서 파탈(擺脫)되지 않았다 한들 무엇을 논할 것이 있느냐?’고 하는데, 이는 크게 그렇지가 않다. 선대왕께서 정무에 시달릴 때부터 지난 겨울에 이르기까지 어찌 일찍이 노론과 소론으로 권병(權柄)을 잡게 하지 않았던가? 윤양후(尹養厚)가 온 세상을 마음대로 농락하여 온 것이 그것이고 정후겸(鄭厚謙)이 사학(肆虐)한 것에 착수한 것도 또한 그것이다. 만약 한결같이 번지도록 버려둔다면 또한 어찌 벌판을 불태우는 지경에 이르지 않겠는가?

 

대저 탕평의 한 가지 일은 선대왕께서 고심하여 왔던 본의인데 어찌 일찍이 지난 때의 규모와 거의 비슷한 점이 있겠는가? 특히 당시에 받들어 돕던 신하들이 실로 성의(聖意)를 우러러 체득하지 못하고 오직 미봉책으로만 일을 삼아서 심지어 하나의 통망(通望)하는 것에도 저쪽과 이쪽을 참작하여 조정(調停)하는 계획을 삼아왔다. 때문에 행하여 온 지 오래지 않아서 차츰 더욱 폐단이 생기고 다만 족히 척리와 권간(權奸)이 정치를 혼란시키고 사람을 구속시키는 바탕으로 삼아 왔다. 아! 탕평이란 곧 편당(偏黨)을 버리고 상대와 나를 잊는 이름인데, 세상에서 전하는 바 ‘탕평의 당이 옛날 당보다 심하다.’는 말이 불행하게도 가까웠다. 혹은 선대왕의 성지(聖志)가 성대하여 오랠수록 더욱 굳건히 한 것이 아니었다면 그 흐르는 폐해가 어찌 한정이 있었겠는가?

 

대개 충·역(忠逆)이 이미 나누어지고 시비(是非)가 크게 정하여진 뒤에는 이른바 노론도 또한 나의 신자(臣子)이고 이른바 소론도 또한 나의 신자이다. 위에서 본다면 균등한 한 집안의 사람이고 다같은 한 동포이다. 착한 사람은 상을 주고 죄가 있으면 벌을 주는 것에 어찌 사랑하고 미워하는 구별이 있겠는가? 그 경색(景色)을 살펴보건대 자못 진(秦)나라와 월(越)나라가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이 하고서 나라가 능히 나라답게 되겠는가? 옛날 제갈량(諸葛亮)은 오히려 말하기를, ‘궁중(宮中)·부중(府中)이 함께 일체(一體)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더구나 한 하늘 아래와 한 나라 안에서 함께 한 사람을 높이며 같이 한 임금을 섬기는 경우이겠는가? 더구나 이제 세월이 이미 오래 되었고 의리가 더욱 굳어졌으니, 어찌 털끝만큼의 앙금이라도 그 사이에 낄 수 있겠는가?

 

대저 노론의 조수(操守)하는 바는 곧 충성이라 하나 사람이 예전과 같지 않고 세상에 변괴가 겹쳐 생겨나 노론 가운데에도 근래 역적이 있으니, 또한 어찌 한결같이 조수하여 ‘저 노론은 모두가 충신이 되고 저 소론은 모두가 역론(逆論)을 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지금은 노론과 소론을 물론하고 각자 먼저 그 당의 역적을 공격할 뿐이니 그러면 저 당과 이 당에서 토역(討逆)하는 데에 엄격히 하여 곧 왕실(王室)에 마음쓰는 사람이 될 것이고, 나라에 충성하는 사람이 될 것이며, 또한 오당(吾黨)488) 의 선비가 될 것이다. 취사(取捨)가 어렵지 않고 거취(去就)가 몹시 쉬우니 진실로 지혜로운 자를 기다리지 않아도 가슴 속이 환히 밝아질 것이다. 과인(寡人)은 춘궁(春宮)에 있을 때부터 깊이 이 폐단을 알았으니 그윽이 생각하기를, ‘결코 선악을 혼합하고 시비를 같이하는 것이 탕평의 결과가 될 수 없다.’고 여겨왔던 것이다. 근래에 척리의 해가 영원히 제거되었으니 세도의 근심이 의당 풀릴 것인데 오직 이 한 가지 일만 아직 끝을 맺지 못한 안건이 되었다.

 

지금 이후로 무릇 나를 섬기는 조정 신하는 노론이나 소론할 것 없이 모두 대도(大道)에 나오도록 하라. 어제 통유(洞諭)한 천만가지 단서를 경 등은 거의 모두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변론하여 마지 않는 것은 진실로 국가 흥망의 기회가 이 한 가지 일에 달려 있으며, 그 힘을 써서 효과를 만드는 것도 또 근일이 전보다는 쉽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내가 마땅히 용사(用捨)하는 즈음에 ‘노·소(老少)’ 두 글자를 먼저 마음 속에 두지 않을 것이고 오직 그 사람을 보아서 어진이를 등용하고 불초한 사람은 버릴 것이다. 아! 그대 대소 신료들은 또한 ‘노·소’ 두 글자를 마음에 싹틔우거나 입에서 꺼내지 말 것이며, 다시 바라건대 여러 신하는 내가 한 말이 오활하여 사정에 절실하지 않다고 하지 말라. 경 등이 협력하여 돕고 효과를 이루는 것은 마땅히 먼저 정사의 주의(注擬)한 것을 보면 알 것이다. 치도(治道)의 요점은 심정을 펼쳐 유시하며 내가 두 번 말하지 않을 것이니, 경 등은 모두 알라.”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44책 626면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정론-간쟁(諫諍)

 

 

[註 477]회(懷)·니(尼)에서 비롯하여 : 이는 회니(懷尼) 사생(師生)의 논변(論辯), 회니 시비(懷尼是非)라고도 함. 송시열(宋時烈)과 윤증(尹拯) 사이에 일어난 논변으로 송시열은 회덕(懷德)에, 윤증은 이산(尼山)에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부름. 현종 14년(1673) 윤증이 자신의 아버지인 윤선거(尹宣擧)의 묘갈명(墓碣銘)을 송시열에게 부탁했는데, 송시열이 박세채(朴世采)가 지은 행장(行狀)을 그대로 인용하고 야유하는 뜻으로 내비치자 이에 불만을 품고 있던 중 숙종 7년(1681) 송시열의 학문과 덕행의 결함을 지적해 썼던 서신이 송시열에게 전해짐으로써 스승 송시열과 관계가 끊어졌음. 이에 송시열을 옹호하는 부류는 노론(老論)으로, 윤증을 편드는 부류는 소론(少論)으로 갈려 논란을 벌이게 되었음. ☞

[註 478]신축년 : 1721 경종 원년. ☞

[註 479]임인년 : 1722 경종 2년. ☞

[註 480]무신년 : 1728 영조 4년. ☞

[註 481]을해년 : 1755 영조 31년. ☞

[註 482]기려(羇旅) : 타국살이 하는 나그네. ☞

[註 483]경신년 : 1680 숙종 6년. ☞

[註 484]발계(發啓) : 의금부(義禁府)에서 처결한 죄인에 대해 미심한 점이 있을 적에 사간원과 사헌부에서 이를 다시 조사하여 아뢰는 것. ☞

[註 485]신사년 : 1761 영조 37년. ☞

[註 486]경신년 : 1680 숙종 6년. ☞

[註 487]빙탄(氷炭)과 훈유(薰蕕) : 빙탄은 얼음과 숯으로 성질이 정반대여서 서로 용납되지 않고, 훈은 향기나는 풀이고 유는 악취가 나는 풀이어서 서로 조화되지 못함. 곧 선(善)과 악(惡),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을 비유한 것임. ☞

[註 488]오당(吾黨) : 유교(儒敎)를 말함. ☞

 

2012. 4.27.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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