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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죽을 때 후회하는 것들
날짜 2012-05-15 16:00:16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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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 후회하는 것들

 

아는 교수 한분이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가지”라는 제목으로 아래의 스물다섯가지를 열거하여 참고로 보내주었다.

 

죽 살펴보니 일반적으로 매우 공감이 가는 내용들로 누구든지 한번쯤은 돌아보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 그 내용들을 아래에 적는다.

 

 

1.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

2.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

3.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4. 친절을 베풀었더라면

5.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6.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더라면

7.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더라면

8.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더라면

9. 기억에 남는 연애를 했더라면

10. 죽도록 일만하지 않았더라면

11.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더라면

12. 내가 살아온 증거를 남겨 두었더라면

13.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14. 고향을 찾아가 보았더라면

15.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맛보았더라면

16. 결혼을 했더라면

17. 자식이 있었더라면

18. 자식을 혼인시켰더라면

19. 유산을 미리 염두에 두었더라면

20. 내 장례식을 생각했더라면

21. 건강을 소중히 여겼더라면

22. 좀 더 일찍 담배를 끊었더라면

23. 건강할때 마지막 의사를 밝혔더라면

24. 치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마지막 기차를 탈 시간만 남은 치료의 의미는 무엇인가!

25. 신의 가르침을 알았더라면......

 

위의 내용을 보고 불현듯 내 머리에 떠오르는 말은 미국의 저명한 목사 릭 워렌(Rick Warren)이 그의 묵상집에서 밝힌 “세상에서 사람들이 얻을 수 있다는 모든 것이 결국은 하나님 한분뿐이라는 것을 알게 될 그때까지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필요한 유일한 것이 하나님 한분뿐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라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이 말에 크게 공감한다. 내가 그동안 환갑이 넘도록 세상살이에 빠져 살아온 세월 속에서 남는 것이 결국은 이 말에 다 들어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기 때문이다. 또 위에 열거한 스물다섯가지의 후회할 일들에 대한 처방도 모두 그 안에 들어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은 “진리의 세계”정도로 널리 해석하여 예수교 신자가 아니라도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말로 바꾸어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고 본다.

 

공자는 육십에 ‘이순(耳順)’이란 말을 하였다. 환갑나이에 이르러서야 세상의 누가 무슨 억울하고 터무니없는 말을 하더라도 크게 노하거나 역겨워하지 아니하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이해력과 너그러운 마음이 길러진다는 뜻이리라! 살아보니 참으로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한계성과 진리 앞에는 인간 모두가 별 차이 없이 매우 미미한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교에서는 인간은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주신사명을 실천하는 것을 제하면 사실상 Nothing(무의미)이라는 것이다. 오로지 ‘진리의 세계’안에서만 인생의 참된 의미를 발견할 수가 있다는 뜻이리라.

 

나이 팔십쯤에 이르면 천하의 석학이라는 사람이나 일개 배운바 없는 필부나 같아지고, 절세의 미인이나 너무나도 평범한 여인이나 모두 모습이 같아지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사람들간에 본질에서의 차이가 없도록 하신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또 새삼 느낀다. 인간들 스스로가 부여하는 가치는 영원하지가 못한 것이다.

 

나는 나의19대조가 되시는 세종대왕께서 스스로 당대 최고의 유학자 이시어 유학의 가치를 잘 아시면서도, 영혼의 갈 바를 알지 못하시고 불교에 까지 심취하시고 백성들에게도 허락하신 바를 매우 높게 평가한다.

 

반면에 당대에 만인의 존경을 받던 나의 12대조이신 백강 이경여 선생은 효종대왕에게 올린 아래의 유언과 같은 말씀에서 밝은 세상을 떠나 땅속으로 들어가신다고 하신 것을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백강공께서는 조정에서 누누이 “하늘을 섬기는 도리”를 말씀하셨음에도 마지막 가시는 곳은 어두운 땅속으로 알고 떠나가신 것이다. 자손된 도리로서도 슬프지 않을 수 없다.

 

효종 8년(1657 정유 / 청 순치(順治) 14년) 8월 8일(무인)

영중추부사 이경여의 졸기 및 그의 유차(遺箚)

 

대광보국 숭록대부 영중추부사 이경여(李敬輿)가 죽었다. 그의 유차(遺箚)에,

 

“신이 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받았으나 티끌만큼의 도움도 드리지 못한 채 지금 미천한 신의 병세가 위독해져 하찮은 목숨이 곧 끊어지게 되어 다시금 상의 모습을 우러러 뵙지 못하고서 밝은 시대를 영원히 결별하게 되었으니 이 점을 땅속으로 들어가면서 구구하게 한하고 있습니다. 오직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기뻐하거나 성내는 것을 경계하고 편견을 끊으시며 착한 사람을 가까이 하고 백성의 힘을 양성하여 원대한 업을 공고하게 다져 죽음을 눈앞에 둔 신하의 소원에 부응해 주소서. 신의 정신이 이미 흩어져 직접 초안을 잡지 못하고 신의 자식에게 구두로 불러 주어 죽은 뒤에 올리도록 하였습니다.”

 

하였는데, 상이 정원에 하교하기를,

 

“막 원로를 잃고 내 몹시 슬퍼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이어 유소를 받아 보니 경계해 가르침이 더없이 절실하고 내용이 깊고 멀어 간절한 충성과 연연해 하는 정성이 말에 넘쳐 흘렀으므로 더욱 슬퍼서 마음을 진정할 수 없다. 띠에다 써서 가슴에 새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경여는 인품이 단아하고 몸가짐이 맑고 간결하였으며 문학에도 뛰어난데다 정사의 재능도 있어서 사림들에게 존중받았다. 젊은 시절부터 벼슬에 나오고 물러가는 것을 구차하게 하지 않았고 혼조(昏朝)1005) 에 있으면서도 정도를 지켜 굽히지 않았다. 계해 반정(癸亥反正)1006) 에 맨 먼저 옥당에 뽑혀 들어가 화평하고 조용하게 간하니 사랑과 대우가 특별히 높았다. 고 정승 장유(張維)가 일찍이 한 시대의 인물을 평론하면서 말하기를 “이경여는 경악(經幄)에 있을 때에는 마음을 쏟아 임금을 인도하는 책임을 다했고 지방에 있을 때에는 임금의 뜻을 받들어 펴는 임무를 다했으니 지금에 있어서 재능을 두루 갖춘 자이다”고 하였다. 병자년 이후로 벼슬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으나 인조가 그를 소중하게 여기고 신임하였으므로 발탁해 우상에 제수하였다. 그런데 이계(李烓)가, 경여가 명나라에 뜻을 두고서 청나라의 연호를 쓰지 않는다고 청나라 사람에게 고하여 두 번이나 심양에 잡혀갔었으나 몸과 마음가짐이 더욱 굳건하였다. 을유년 세자를 세울 때 자기의 소견을 변동하지 않았는데1007) 이로 인해서 남북으로 귀양살이를 다녔으나 상이 즉위하자 방면하고 수상에 제수하였다. 이 때 선비들의 의논이 매우 격렬하였으나 경여가 화평한 의논으로 견지하면서 이들을 조화시키는 데 온 힘을 기울였는데 혹 이를 그의 단점으로 여기기도 했다. 얼마 안되어 청나라에서 경여가 정승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힐책하자 이 때부터 정승의 자리에서 물러나 묻혀 살았다. 그러나 나라에 일이 있을 때마다 말씀을 올려 건의한 바가 많았었다. 이 때에 이르러 죽으니 나이 73세이다.

 

【조선왕조실록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36책 105면 【분류】 *인물(人物)

[註 1005]혼조(昏朝) : 광해군.☞

 

 

 

 

한편 나의 10대조이신 한포재 이건명 선생은 신임사화때 무고로 누명을 쓰고 참혹한 죽음을 맞으시면서 남긴 아래의 절명시(絶命詩)에서 죽어 먼저 돌아가신 先王인 숙종대왕을 만나 면목이 없을 일을 걱정하시었다. 나라에 대한 충성에 모든 것을 걸으신 것이다.

 

허국단심재 (許國丹心在) 나라를 위한 일편단심은 여전하니

사생임피창 (死生任彼蒼) 죽고 사는 것은 저 하늘에 맡기노라

고신금일통 (孤臣今日慟) 외로운 신하가 오늘도 애통하니

무면배선왕 (無面拜先王) 선왕을 뵈올 면목이 없네

 

한포재공의 죽음이 더 숭고한 하늘의 道를 펴는 일과도 부합되어 돌아가신 것이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한포재공의 죽음은 나라와 백성을 위해 바친 것으로 하늘의 道와도 일치한다고 해석할 수 있겠으나, 하여튼 한포재공께서는 돌아가시며 선왕을 뵈올 면목이 없음만을 걱정하시고 나머지는 모두 저 하늘에 맡기셨다.

 

나는 이러한 선조님들에 비하면 참으로 부족하고 한일도 없어 매우 부끄러운 형편이나, 그러나 나는 나름대로 진리의 세계, 하나님을 알아보고 실천해보려고 애를 쓰고 있다는 작은 생각은 가지고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부질없는 속세의 평가가 아니며, 영원한 진리, 하나님의 평가만이 절대적이 될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2010. 5. 15.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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