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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즐거움(樂)
날짜 2012-05-31 15:51:17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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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樂)

 

백강 이경여 선생이 평소 즐기는 모습을 우암 송시열 선생이 백강공 신도비명(神道碑銘)에서 이르기를 공은 매양 여가에는 흥취(興趣)를 가져서 속세(俗世)를 벗어나는 고상한 생각이 있었고, 늘 독서하며, 마음을 깨끗이 하며 또 마음을 즐겁고 평온하게 가졌다고 하는 뜻으로 아래와 같이 기록하였다.

 

“~~~ 공은 매양 공무(公務)를 마친 여가에는 흥취(興趣)를 가져서 속세(俗世)를 벗어나는 고상한 생각이 있었다. ~~~공은 천품(天稟)이 청수하고 아름다우며 힘써 배워서 학문하는 요점을 알았다. 공이 일찍이 이르기를, “이 마음은 마치 광풍 제월(光風霽月 비가 갠 뒤의 깨끗한 바람과 달)과 같은 것이니, 야기(夜氣 밤의 깨끗하고 조용한 마음)에서 더욱 알 수 있다.” 하였다. 그러므로 독서(讀書)로써 물을 대듯하여 그 인격의 뿌리를 북돋았다. 이 때문에 글을 짓고 일을 처결하는데도 모두 본말(本末)이 있었다.~~~ 공은 항상 마음이 즐겁고 평온하여 간격이 없었고 또 일찍이 세속에 유동하지 않은 점이 있었다. 공은 내행(內行 집에 있을 때의 처신)이 매우 정직하였고 본디 효제(孝悌)로써 미루어 남에게 미쳤기 때문에, 비록 시론(時論)이 서로 엇갈려 조정에 완전한 사람이 없었지만 공에 대해서는 누구든지 그의 선(善)을 즐겨 이르지 않는 이가 없었다.“

 

백강공의 즐거움은 요약하면 높고 고상한 생각을 가지고, 여가에는 흥취(興趣)를 즐기며, 늘 독서하며, 마음을 평안하고 즐겁게 하며, 선(善)을 이루기를 좋아한 것이 핵심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우암 송선생은 위의 신도비명중 추모시(追慕詩)에서 백강공을 송나라의 名臣 사마광에 비유하였는데, 이에 사마광의 즐거움에 관한 글 “독락원기(獨樂園記)‘를 소개하면서 좀 더 이분들이 취하였던 즐거움을 가까이에서 음미해보고자 한다.

 

1. 사마광의 즐거움 : 독락원기(獨樂園記)

 

송나라 명신(名臣) 사마광이 은퇴후 향리에 은거하며 아래의 독락원기(獨樂園記)를 지었다.

 

맹자가 말하기를 ‘홀로 즐기는 즐거움보다 남과 함께 즐기는 즐거움이 낫고, 적은 사람들과 즐기는 즐거움보다 많은 사람들과 즐기는 즐거움이 낫다’고 했는데, 이는 왕공, 대인들이 즐기는 즐거움이지 빈천한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자께서는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팔베개하고 잠을 자더라도 그 안에 즐거움이 있다’고 말씀 하셨고,

안회는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도 즐거움을 찾아 끝내 즐거움을 바꾸지 않았는데, 이는 성현들이나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이지 우리와 같이 어리석은 자들은 도저히 미칠 수 없는 것이다.

 

무릇 뱁새가 숲에 보금자리를 만드는데 필요한 것은 나무 한 가지에 불과하고, 두더지가 강물을 아무리 마셔도 작은 배를 채우는 데에 불과한 것처럼 사람은 각기 타고난 분수에 맞게 그에 안주해야한다. 또한 이것으로 우수(사마광의 호)가 낙양에 살기 시작한지 5년에, 동산을 만들고 그곳에 당(堂)을 지어 책을 모으기 오천권, 그리고 그 당을 독서당이라 이름 지었다.

 

나 우수 사마광은 평소에 책을 읽으며 홀로 즐기는데, 위로는 요.순.우.탕.문무.주공.공자와 같은 여러 성인들을 스승으로 삼고, 아래로는 안자, 증자와 같은 공자의 수제자와 자사, 맹자 등의 많은 어진 이를 벗으로 삼는다. 또 인간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인간애의 근본인 인(仁)과 사물을 바르게 규정하는 이치의 근본인 의(義)를 살펴보고, 신분에 따른 도덕법칙과 풍속, 습관 등 사회기강을 확립하는 근본인 예(禮)와 사람들의 감정을 융화시키는 근본인 악(樂)의 실마리를 찾는다. 이렇게 옛 성현들의 글을 읽노라면, 아직 천지가 나뉘지 아니하고 만물 또한 형상을 이루지 아니한 혼돈의 아득한 옛날로부터 사방이 통하여 다함이 없는 무한 공간의 저쪽에 이르기 까지 천지자연의 무한한 도리와 인간세상의 온갖 이치가 눈앞에 밝게 모여든다.

 

책을 읽어 좋은 것은 이러하나 책을 읽어 내 것으로 하고자 힘써 배워도 다 배울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책을 읽는 즐거움이 이토록 진진(津津)한데, 독서 이외의 것에서 그 무엇을 남에게서 구하며 밖에서 얻기를 기대하겠는가. 혹, 마음이 권태로워지고 몸이 나른해지면, 물가에 나아가 낚시대 드리워 물고기를 잡기도 하고 동산에 올라 옷자락 거머쥐고 약초를 캐기도 하며 도랑을 터 꽃나무에 물을 주기도 하고 도끼를 휘둘러 대나무를 쪼개기도 하고 높은 데 올라가서 눈가는 대로 마음껏 경치를 바라보기도 한다. 일없이 이리저리 거닐며, 오직 마음가는대로 따라 할 뿐이다.

 

밝은 달은 때 맞춰 나타나 나를 비추고 맑은 바람은 조용히 찾아와 나와 노닌다. 가도 잡는 것이 없고, 멈추어도 막는 것이 없다. 이목구비, 오장육부 온몸이 모두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의 소유라 보고 듣고 마음대로 생각하는데 아무런 속박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보고 마음대로 듣고 마음대로 생각한다. 한없는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혼자 걸어가니 내 마음은 항상 양양(洋洋)한 저 바다와 같다.

 

하늘과 땅 사이, 그 어디에 이만한 즐거움이 또 있어 나만이 아는 이 즐거움을 대신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까닭으로 책을 읽는 즐거움과 동산에 노니는 즐거움을 합하여 “독락(獨樂)”이라 이름 짓고, 내가 노니는 동산을 “독락원(獨樂園)”이라 이름 짓는다.

 

여러사람들이 나 우수를 비난하여 말하기를 “나는 이렇게 들었다. ‘군자는 반드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어 가진다’고, 그런데 지금 그대는 혼자서만 즐거움을 위하고 남에게 나누어 주지 않으니, 어찌 옳은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에 우수는 사죄하여 말했다. “우수는 어리석습니다. 어찌 군자와 그 덕을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혼자서 즐기기에도 부족한 작은 것입니다. 어찌 남에 까지 그 즐거움을 미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우수의 즐거움은 박루비야(薄陋鄙野)하여, 세상 사람들이 하나 같이 버리는 것입니다. 남과 더불어 즐기려 하여도 남들이 취하지 않을 것이니 어찌 나누어 갖자고 권할 수 있겠습니까. 누구든지 이 즐거움에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곧 재배(再拜)하고 이를 바칠 것입니다. 어찌 감히 이것을 혼자 갖고자 하겠습니까”.

 

* 여기에서의 獨樂은 혼자만 즐기고 남을 돌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겸손히 자기에만 허용된 즐거움을 의미한다고 본다. (원전 : 고문진보~성문사, 박일봉 역)

 

 

2. 또 다른 즐거움

 

위의 백강 이경여 선생이나 사마광 선생의 즐기는 모습에서 오늘날에도 우리도 배울 바가 매우 크다고 생각된다. 특히 지나치게 바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현대생활 속에서도 일부러라도 한가로운 시간을 만들어 스스로를 돌아보고 내면세계로부터 충전(充塡)하는 시간은 꼭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이 분들에게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분들에게는 주변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 곁에 그냥 머물면서 그들의 위안이 되어줌으로 갖게 되는 보람이요 즐거움은 없다는 것이다. 이는 내가 실천 하고자 하나 아직도 매우 미흡하게 생각하는 점이기도 하다.

 

우리 인생의 목적이 진리를 찾아가고 또 찾은 바를 실천하는 것으로 볼 것인데, 진리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빠질 수 없으니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 가장 중요한데,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의 출발점은 어려운 이웃들과 그저 말없이 같이 있어 주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가장 귀중한 존재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였지만, 이는 부족하고 이기적인 범인(凡人)들로서는 매우 이르기 어려운 경지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 경지를 향한 출발은 어려운 이웃들 곁을 묵묵히 지켜주며 고난을 같이 나누는 데에서 부터 시작한다고 본다.

 

나아가 각자 태어나면서 부여받은 남다른 재능과 경험들을 잘 활용하여 이러한 이웃사랑의 실천을 더하여 간다면 이야말로 큰 즐거움이요 보람인 것이다.

 

성경(베드로전서4:10)에서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각기 남다른 특별한 능력(은총의 선물)을 주셨는데 이를 이웃들을 돕는데 사용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널리 전하라고 하였다. “God has given each of you some special abilities(gifts). Be sure to use them to help each other, passing on God’s many kind of blessing” (1 Peter 4:10 LB).

 

이렇게 하는 것은 내세(來世)에 까지도 축복을 받을 일이니 우리 영혼으로부터 기뻐하고 즐거워하여야할 일이다.

 

2012. 5.31.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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