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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역경극복(逆境克服)의 능력
날짜 2012-07-05 14:31:29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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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극복(逆境克服)의 능력

 

요즘 유수기업 인사담당들의 말을 들어보면 회사가 요구하는 인재의 자질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올바른 인성(人性)과 함께 “문제해결력과 실행력”이라고 한다.

 

아울러 오늘날 일과 직장의 개념, 삶의 방식이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음에 비추어 다가오는 문제들의 해결력과 실행력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자손들에게 단순한 지능만이 아니라 어려운 일에 직면해 이를 이겨내고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이른바 역경극복능력을 길러주어야겠다는 생각이다.

 

삶의 현장에서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역경(逆境)과 고난(苦難)의 의미와 극복능력과 방안 등을 생각해본다.

 

1. 역경(逆境)의 의미

 

1-1. 유교적인 시각

 

孔子는 論語에서 이르기를 “양약(良藥)은 입에 쓰지만 질병에 이롭고 충언(忠言)은 귀에는 거슬리지만 행동에 이롭다”고 하여, 역경이나 고난이 가져다주는 이로움을 간파하였다.

 

또 菜根譚에서 홍자성은 말하기를 “하늘의 뜻은 예측하기 어렵다. 시련을 주는가하고 생각하면 영달(榮達)을 주기도 하고 영달을 주는가하고 생각하면 다음은 또 시련을 준다.” 라고 하여 우리 인생에 역경과 고난이 무시로 찾아옴을 일러주고 있으며, “逆境에 처한 때에는 신변의 모든 것이 양약(良藥)이 되어, 절조(節操)나 행동이 모두 저도 모르는 사이에 닦아진다. 順境에 있을 때는 눈앞의 모든 것이 흉기(凶器)로 화하여 몸 전체의 기운이 빠져 나가도 깨닫지 못한다.”고 하여 역경의 이로움을 말하였다.

 

1-2. 예수교의 시각

 

우리가 역경과 고난을 당할 때에 역경 그 자체보다도 우리를 더 괴롭게 하는 것은 그 역경의 의미를 모르고 당하는 것이다. 이를 알게 된다면 역경은 별로 두려워 할 것은 아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에게도 다가오는 역경, 고난의 의미를 살펴보자.

 

첫째 역경, 고난은 하나님의 시험이다.

 

야고보서 1장에 하나님은 아무도 사람들을 시험하지 아니하신다고 했는데, 여기서의 시험은 Temptation, 파괴적인 시험을 뜻하는 것으로 하나님은 파괴적인 의도를 가지고는 우리를 결코 시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교육적인 의도로는 얼마든지 우리를 시험할 수가 있다.

 

출애굽기 15장25절에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마라(Marah)의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test or proof)하실새”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하여 법도(Statute)와 율례(Regulation)를 정하시는데, 그 의도는 너희들이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말씀 그대로 살아가는 내백성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며 그리고 그런 의도로 살아가도록 교육적인 시험(test or proof)을 하셨다는 것이다.

 

모세를 통해 홍해가 갈라지는 사흘 전의 축복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을 찬양했는데, 이제 그런 기적은 계속되지 않고 메마른 광야와 마라의 쓴물만이 있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들이 계속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가 하는 교육적인 시험이었다.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가 말한 것처럼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가에 대한 시험이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고난이 다가올 때는 이것이 교육적인 시험이라는 것을 알고 계속 하나님을 사랑하여 이 시험에 합격하는 성도가 되도록 기도해가야 할 것이다.

 

둘째로 역경, 고난은 하나님의 축복이다.

 

대부분 역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반응할 때에 우리를 또 다른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인도하기 때문에 그렇다.

 

출애굽기 15장에 이스라엘 백성은 마라(Marah)의 쓴물을 경험하고 나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 그 쓴물이 변하여 단물이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거기 여호와께서 지시하신 나뭇가지하나를 모세가 마라의 쓴물에 던졌더니 쓴물이 변하여 단물이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또 우리 인생에서 쓴물의 그 쓰디씀을 먼저 체험하지 못한다면 단물의 그 기막힌 맛을 제대로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고통 저 건너편에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이 있다. 출애굽기 15장27절에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둘과 종려 칠십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고 하였다. 이스라엘백성들이 고난의 땅 마라를 지나 조금 더 가서(약11킬로미터) 엘림에 이르니 이제 풍성하고 황홀한 오아시스에 이른다.

 

그런데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라에서 고통스럽고 원망에 가득 차 있었는가하면 단지 엘림이 보이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엘림은 보이지 아니하여도 엘림은 존재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엘림을 준비하셨으므로, 우리는 고난의 세월 속에서도 앞길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엘림의 비젼을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가 끝내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

 

셋째로 역경, 고난은 하나님의 계시(啓示)이다. 이 역경의 장에서 하나님이 스스로를 계시하여 주신다는 것으로, 우리로서는 역경 속에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는 것이다. 15장26절에 이르기를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聽從)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하여 치료하시는 하나님임을 계시하고 있다. 하나님은 병만이 아니고 환경도 치료하시어서 마라의 쓴물에 개입하시고 이를 단물로 바꾸셨다. 우리의 가정과 사회도 치료하실 수 있다.

 

 

2. 역경극복의 능력 ~ 김영희 씨의 영어공부

 

금년 2월 KBS 아침마당 목요 특강에 캐나다에서 국제공인재무설계사로 일하고 있는 김영희 씨가 강사로 출연해 자신이 걸어온 인생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영희 씨는 어려서 부모님이 노점 과일장사와 떡장사를 했는데 집안이 매우 곤궁했고, 아버지와의 불화로 어머니는 여러 차례 삶을 포기하려 시도했다.

 

이런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김영희씨는 지금 캐나다에서 세 아이의 어머니로 다복한 가정을 꾸려 살고 있으며, 국제공인재무설계사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김영희 씨가 고교시절 영어를 배운 과정에 대한 이야기로 강연내용을 축약한 것이다.

 

“중학교 때부터 나는 집을 떠나 내 삶을 개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영어를 익혀야겠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동갑 미국아이와 펜팔을 했다.

 

내 꿈은 18세가 되면 독립하고, 장사를 해 전 세계를 누비는 사업가가 되는 것이었다. 때문에 중학교를 졸업 후 K 여상을 택했다.

 

그리고는 고등학교 졸업 시 독립을 위한 고지를 갖기 위해 대한민국에서 영어회화를 최고로 잘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지만 영어학원에 다닐 돈이 없었다.

마침 학교에서 담 하나 사이에 외국인 전용주택단지가 있어, 일을 해 주면서 영어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교복을 잘 빨아 입고 찾아갔다. 그런데 경비가 못 들어가게 했다. 영어를 배우고 싶은데 돈이 없어 학원에 갈 수 없다고 사정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풀이 죽어 고개를 숙이고 저벅 저벅 집에 까지 걸어왔다.

 

그러다 문득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앞 문이 닫히면 뒷 문으로 들어가라”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다행히 학교 옆 외국인 전용주택단지가 포화라 일부 외국인들이 그 옆에 있는 S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이 아파트에는 출입제재가 없었던 관계로 거주 외국인학생들 스쿨버스 도착을 기다려 따라 들어가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고는 “식모도 하고, 애도 봐줄 테니 영어를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모두 NO하는 거절이었다.

 

그러나 매도 맞으면 맷집이 생긴다고, 나는 굴하지 않고 집집을 찾아 다녔다. 다행히 마지막으로 간 집에서 받아주었다. 이 집은 대학생에서 4살배기 까지 8남매를 둔 Smith씨 가정이었는데, 나는 이 집에서 일을 하며 영어를 배웠다. 이 시절 나는 영어문장을 외우려 길을 걸으면서도 “Excuse me. If you don’t mind … “ 하고 중얼거렸다. 이런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이상한 아이였고, 훗날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영희야, 너 그때 왕따였는데 아니?” 하고 말해줘 내가 그 시절 친구들로부터 왕따 당했음을 알았다. (이때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왕따는 스스로 열정을 갖고 모든 것을 받쳐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하교시 학교에서 한 정거장 뒤로 가면 단지에 사는 외국인 학생들이 미8군으로 들어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는 이 아이들에게 “네 이름은 뭐니? 한국에 오기 전에는 어디에 살았니?”하고 말을 걸어 영어를 연습하곤 했다. 다행히 아이들이 나를 경계하지 않아 금새 이들과 친해졌고, 군목을 하는 한 아이 아버지가 말해 주어 그때부터 외국인 주택단지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친구가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유치부에 보조교사로 일하게 해주어 영어를 더 잘 익힐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소위 ‘빠다 바른’ 영어를 할 수 있었다.

 

그 시절 영어를 배우기 위해 무작정 외국인 가정을 방문해 수 없는 거절을 이겨내야 했던 일은 나의 인생에서 유사한 어려움이 있을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번에 국내에서 내가 삶의 역경을 극복하고 인생을 개척한 이야기를 쓴 책을 출간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42곳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했다. 그러나 나는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고, 43번째 찾은 출판사로부터 출판 승락을 받아 책을 출판할 수 있었다.

 

이후 학교를 졸업하고 19살에 캐나다에 건너오기 까지, 그리고 그 후 지금의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리기까지 좌절이 많았는데, 돌이켜 보면, 젊은 시절의 좌절은 나이 들어 이해의 폭이 넓은 사람으로 나를 키워주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용태씨의 “인성교실”에서]

 

3. 백강 이경여 선생의 역경극복 능력과 방안

 

우암 송시열 선생이 지은 아래의 백강 이경여 선생 ‘추모시’에는 백강공의 고난극복의 능력과 방안을 엿볼 수가 있다.

 

백강공은 병자호란 후 나라가 극도로 피폐한 상황에서 영의정을 역임하시며 이를 극복하며 북벌(北伐)을 도모하여 나갈 바에 몰두하였다.

 

말씀생각건대 성고께서는 / 恭惟聖考

천명으로 왕위에 올랐네 / 九五元亨

그 누가 제세(濟世)의 인재였던가 / 誰其在田

대인 선생이었지 / 大人先生

때는 잘 다스려진 시대인데 / 時維上治

서로가 잘도 만났구려 / 蓋相利見

남다른 공을 잘 알아보아 / 識公于異

베푸신 은혜 더할 수 없었네 / 莫尙其眷

공이 북으로 귀양 가 있을 땐 / 昔公在北

모두들 야위었다 하였지만 / 人謂枯槁

공이 돌아와 빙그레 웃으니 / 公歸羑爾

그 옛날의 모습일세 / 昔時氣貌

만인이 이마에 손을 얹으니 / 萬人手額

사마광과 같았네 / 如宋司馬

난봉이 사납지 않으니 / 鸞鳳不鷙

악한 새도 그를 보호하네 / 鴟鴉護邏

성고께서 말씀하되 / 聖考曰咨

공은 나의 시귀로다 / 公我蓍蔡

나의 진취가 부합되지 못하니 / 予就判渙

어찌 다스려지지 못함뿐이랴 / 豈惟未艾

공이 말하되 우리의 일은 / 公曰我事

그 욕망 빨리 성취하기 어려우니 / 難棘其欲

우리 백성들과 화합하고 / 諴我小民

우리 국가 튼튼하게 만들며 / 固我邦國

조정에서 화협하여 / 協和在庭

우리의 힘을 기르되 / 以飽我氣

겉으로는 나타남이 없게 하고 / 泯於無形

마음으론 각오를 단단히 하여 / 內則盡死

원망과 감정을 깊이 쌓았다가 / 蓄憾積怨

적당한 시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 持以有待

이는 대개 근본이 있으니 / 此蓋有本

곧 성상의 마음입니다 / 聖上之心

옛날 주 부자는 / 昔朱夫子

송 나라가 망할 때를 당해 / 際宋陸沈

임금에게 진계한 것이 / 其所進戒

가장 은미한 것이었습니다 / 屋漏之微

사욕을 잘 이긴다면 / 我私能克

무슨 일이든 쉽게 성취될 것입니다 / 事無足爲

상이 말씀하되 그러하다 / 上曰兪哉

나는 오직 성공을 바랄 뿐이다 / 我惟仰成

내가 삼가거니 / 予其毖而

공이 어찌 모범을 잃을쏘냐 / 公豈替刑

이 마음으로 서로 도우면 / 以是相濟

일이 아주 안전하리라 하셨네 / 事將萬全

공을 모르는 자는 / 不知公者

공더러 용기 없다 하였지 / 謂公無拳

적은 문득 우리를 해코자 하는데 / 敵忽惎我

하늘은 공을 기어이 남겨 두지 않았네 / 天不憖遺

그러나 전형이 있어 / 尙有典刑

기록이 사씨에게 있으니 / 書在史氏

뒷날 글 짓는 이 있으면 / 後有作者

공의 사적 밝히지 않으랴 / 不其就止

내 공의 묘에 명하면서 / 我銘公墓

이어 성고를 서술하였네 / 仍敍聖考

고요(皐陶)와 후직(后稷)의 모훈처럼 / 比皐稷謨

제덕을 정성껏 훈도했으니 / 帝德是詔

훌륭도 하다 성현들이여 / 休哉聖賢

고금에 길이 빛나리 / 光耀今古

 

위의 시에서 백강공이 제시한 국난 극복의 능력과 방안은 이렇게 요약 표현될 수 있겠다.

 

우리 백성들과 화합하고(諴我小民) 우리 국가를 튼튼하게 만들며(固我邦國) 조정에서 화협하여(協和在庭) 우리의 힘을 기르되(以飽我氣) 겉으로는 나타남이 없게 하고(泯於無形) 마음으론 각오를 단단히 하여(內則盡死) 원망과 감정을 깊이 쌓았다가(蓄憾積怨) 적당한 시기를 기다려야 합니다(持以有待) ~~~ 사욕을 잘 이긴다면(我私能克) 무슨 일이든 쉽게 성취될 것입니다(事無足爲)

 

또한 백강선생은 병자호란 이전 1638년(인조 16년)에는 당시 나라의 정치 경제 등 어려운 형편의 극복 방안으로 다음의 말씀을 인조임금에게 하였다.

 

“봉공(奉供)하는 외물을 염두에 두지 마시고 거처와 의복 및 거마는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마소서. 매우 공정하게 삼가 살피시어 상벌을 내리시되 사욕을 따르지 말고 한결같이 공의(公議)를 들어 덕 있는 이를 명하고 죄 있는 이는 벌주는 하늘의 뜻을 받들며, 마음에 안 드는 말이나 뜻에 맞는 말이 있으면 반드시 도(道)에 맞는지 어긋나는지를 헤아려보아 물 흐르듯 따르는 도량을 넓히고, 호오의 편벽된 마음에 얽매이지 말아서 충직한 이들이 권장되게 하소서. 용렬하고 구차하게 비위 맞추는 것을 후중(厚重)하다 하지 말고, 강개(慷慨)하게 나라를 근심하는 것을 지나치게 과격하다 하지 말고, 아첨하고 순종하는 것을 임금을 사랑하는 것이라 하지 말고, 직언으로 과감히 간하는 것을 정직을 파는 것이라 하지 말고, 대열을 뒤쫓아 가는 것을 안정된 것이라 하지 말고, 탁한 것을 배격하고 맑은 것을 앙양하는 것을 부박한 짓이라 하지 말고, 능력을 자랑하고 원망을 전가하는 것을 국사에 마음을 다한다고 하지 말고, 백성을 사랑하고 근본을 굳건히 하는 것을 명예를 구하는 것이라 하지 마소서. 그리하여 한 시대의 사대부(士大夫)로서 직분을 다하는 자들이 뜻을 펼 수 있는 자리를 얻어 제각기 몸과 마음을 다하여 국난을 극복해 나가게 한다면 인심이 결속되고 나라의 기강이 점차 확립되어 장차 반드시 천하에 대의를 펼치게 될 것입니다.” (백강공 상차문 중 인조16년, 1638. 5. 1)

 

 

4. 역경극복 능력에 대한 예수교의 시각

 

“치유하시기 전에 먼저 상처를 주심도 은혜입니다(Grace must wound before it can heal. Flannery O'Conner)”라는 말이 있다.

 

고통이 우리에게 다가오면 2가지형태의 태도를 발견한다. 하나는 “때때로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우리의 믿음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고 고생 끝에는 좋은 일이 온다고 믿는 것입니다. 어려운 시절은 곧 지나간다고 기대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 고난에 익숙하여져라. 성장을 위하여 고난과 고통과 어려움은 필요하다. 이들은 하나님을 깊이 알고 깊이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같이하는 동료이다. 긴 역경의 시절에 대비하라. 인생에 별로 어려움을 모른다면 그것은 정상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고난의 때를 기대할 것은 아니지만 즐겨라”(John Fischer).

 

이들 두 견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전자의 견해에서 보면 고난은 우리 영(靈)의 지도(地圖)에 생긴 상처(glitch of spiritual map), 견딜만한 폭풍, 주의하고 결행하면 고칠 수 있는 역기능 정도이다. 믿는 자들 에게는 매우 안락하고 위험이 전혀 없는 정상의 상태(normal state)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비성경적(unbiblical)이고 역경도 우리노력으로 면할 수 있다는 일종의 인본주의적인 문화(culture)와 맥(脈)을 같이 하는 것이다. 엄청난 투자와 산업들이 이런 종류의 문화 사업에 투자되고 있으며, 훌륭한 삶이 이들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잘못된 환상을 갖고 있는 것이다.

 

후자의 견해는 고난과 고통은 우리들의 매일 매일의 일과의 한 부분으로 보고 있다. 우리가 고대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영생을 기다리는 것이지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이 잘될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이세상의 시련(trials)들은 예수 안에서 성장하는 삶에서 중요한 부분(integral part)이 되며 따라서 시련이 우리에게 닥칠 때에는 이들을 반갑게 마지 한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야고보서1장2-3절).“ 인내는 우리가 성장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람은 자신이 성장하므로 만들어 놓은 잣대만큼만 세상을 잴 수 있으며, 살아 있어 힘든 만큼 깨침을 얻을 수가 있으므로 또한 행복하다.

 

이러한 후자의 자세는 비관적인 삶의 자세가 아니라 실제적이며 가장 어려운 일들 속에서도 어떻게 기쁨을 찾는가를 주제로 하는 것으로 성경적인 자세이다.

 

욥기 42장 5절에 욥이 큰 역경 후에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리면서 고백하기를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하였다. 욥은 여기서 고난 속에서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고난 중에 만난 그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 이렇게 확인된다면 욥처럼 우리도 어떤 고난이라도 이겨낼 수가 있을 것이다.

 

역경과 고난의 언덕은 성도로 하여금 자기를 부정하게 만든다. 자기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붙잡도록 만든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함이라 (빌립보서1;29)“ [죤 번연의 ‘천로역정’중에서]

 

 

역경과 고난극복의 능력의 뿌리는 무엇일까?

 

예수는 요한복음 15;16에서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말씀하였다. 베드로는 자신이 갈대처럼 약할 때, 예수가 자신을 선택하셔서 반석처럼 강한 사도로 만들어 주셨다고 감격해 하였으며, 바울은 자신이 죄인 되었을 때 예수가 자신을 택하여 이방인의 사도가 되게 하셨다고 눈물겨워 하였다. 그러나 가롯 유다는 끝까지 자기가 하나님을 선택했다고 생각하며 파멸의 길로 갔다.

 

하나님이 우리의 조국과 부모를 선택하셨듯이 예수가 제자들을 선택하신 것은 다음에 연유한다. 첫째는 ‘내 기쁨을 너희에게 주어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고 선택했다’는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택한 것은 사랑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의 파트너로 선택하셨으며 우리가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 이유도 이 사랑 때문이다. 셋째로 하나님은 우리를 친구로 선택하여주셨다. 예수는 말하기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요한복음15:15).”고 하였다.

 

인생길에서 우리가 아무리 힘들어도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자라는 것을, 하나님이 당신의 기쁨을 나에게 충만케 하시려고 나를 사랑의 파트너로 선택하여 주셨다는 것을, 나에게 가장 큰사랑을 베풀어주시기 위하여 친구로 선택하셨다는 것을 안다면 능히 이겨낼 수 있겠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것이 소중한 것은 선택받은 자의 인생은 선택하신분의 목적대로 되기 때문이다. 선택받은 자는 더 이상 자기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신 분의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역경을 극복하는 능력의 조건은 하나님의 선택에 따른 다음과 같이 바른 충성과 인내와 결의로 설명된다.

 

o 바른 충성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요한계시록 2:10)”

 

忠誠이란 ‘진정에서 우러나는 정성’ 으로 ‘자신이 한말(言)을 이루는(成)일에 마음(心)이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中)것’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좋은 의미의 충성이 방향이 잘못되면 나라를 망치게도 하고 크게 지탄을 받기도 한다.

 

충성은 필요하고 소중하나, 무엇보다도 무엇에 충성하라는 것인지를 바르게 하여야할 것이다.

 

예수가 서머나교회에 준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은 ‘믿음을 지키는 일’에 충성하라는 말이다. 즉 하나님의 교훈을 지키며 사는 일에 충성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이루는데 충성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교리에 매여 충성하며 사랑을 잃는 사람이 있다. 독재자에 충성하면서 국가를 위해 큰 공헌을 했다고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교역자에게 충성하는 오도된 교인도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信念에 충성하기도 한다.

 

o 忍耐와 決意

 

세상에서 인내를 당하기는 어렵다. 재능이 인내를 당할 수가 없다. 재능은 있으나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많다. 천재성도 당하지 못한다. 값을 못하는 천재가 대부분이다. 교육도 당하지 못한다. 세상에는 교육받은 낙오자가 차고 넘친다. 인내함과 결의에 차는 것만이 끝내는 위대한 힘을 발휘 한다.

 

위대한 사람이란 남달리 결의에 차있는 단지 평범한 사람인 것이다. 그들은 중도포기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인간의 위대함은 그의 명성이나 지위, 부 등에 의하여 결정 되는 것이 아니며 무엇이 그 사람을 좌절시키는가에 달렸다고 본다 (Rick Warren 목사). 사람이 그에 대한 비평이나 실패에 어떻게 반응 하느냐는 그의 사람됨을 알려준다.

 

무엇이 당신을 좌절시키나요? 갈라디아서6장9절은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나하면 때가 이르매 (영원한 생명을)거두리라 (Let us not get tired of doing what is right, for after a while we will reap a harvest of blessing, if we don't get discouraged and give up. Gal.6:9)"고 말하고 있다.

 

생명이 긴 것들은 남다른 시간과 결의를 요구한다. 참나무(oak tree)가 되기 위해서는 60년의 세월을 기다려야하지만 버섯은 6시간이면 된다. 참나무가 되기 원하는 우리는 긴 세월의 인내와 결의를 가져야한다.

 

2012. 7. 5.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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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이주관 人生은 ‘解釋’이다 2012-05-24 1186
174 이주관 죽을 때 후회하는 것들 2012-05-15 1303
173 이주관 사치의 폐해 2012-05-11 1185
172 이주관 누구를 신뢰할 수 있나? 2012-04-27 1113
171 이주관 시기(時機)와 우연(偶然) 2012-04-23 1289
170 이주관 나라경영~權限委任과 信賴의 원리 2012-04-16 1115
169 이주관 보수(保守)와 진보(進步) 2012-04-06 1169
168 이주관 포용과 사랑의 정치 2012-04-03 17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