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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치관, 인생관의 정립(正立)
날짜 2012-07-25 13:47:39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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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관, 인생관의
정립(正立)




 

오늘날 우리 현대인들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점은 삶의 중심가치, 인생관을 바르게 정립하기 어려운 것, 달리 말하면
인격의 성숙을 이루는 기초를 다져 가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이다. 오늘날 우리는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복잡다기하고 급변하는 기능중심의 생활을
하기에 급급한 상태에서 벗어나기가 매우 힘든 것이다.


 

현대인들이 이렇게 삶의 중심가치, 인생관을 바르게 정립하지 못하면 다가오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올바른 분별력을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것이고 이는 결국 우리들을 실패한 인생으로 유도하여 나간다고 본다.


 


 

이에 관한 좋은 말씀들을 아래에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이를 위해서 우리들은 ‘입지(立志)’를 지향함이 중요하다고 보아 율곡 이이 선생의 立志論을 소개하고, 이어서
예수교적 관점에서 본 견해와 마지막으로 세종대왕, 백강 이경여 선생의 생각과 말씀들을 차례로 소개한다.


 


 

1. 율곡 이이 선생의 가치관, 인생관 정립의 길 ~
立志



 

율곡 이이선생의 “격몽요결[(擊蒙要訣) 1)]” 중 제1장 ‘立志’의 글을 아래로 소개한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먼저 율곡 선생이 성인(聖人)으로 바라보는 공맹 요순이나, 예수 그리스도나 석가모니나 우리민족의
사표이신 세종대왕이나 등 스스로 바라는 인간상으로 나아가기위한 입지가 꼭 필요하다고 본다.


 


 

*** 아 래 ***


 


 

처음 배우는 이는 먼저 뜻을 세우되 반드시 성인(聖人)이 될 것을 스스로 기약해야 하며, 조금이라도 자기 자신을 별 볼
일 없게 여겨 물러나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일반 사람[衆人]도 그 본성은 성인과 똑같다. 비록 기질에는 맑고 흐림과 순수하고 뒤섞인
차이가 없을 수 없으나 2), 참답게 알고 실천하여 젖어 온 구습(舊習)을 버리고, 그 본성(本性)을 되찾을 수 있다면, 털끝만큼도 더 보태지
않아도 온갖 선함을 다 갖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일반 사람이라 해서 성인이 될 것을 스스로 기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맹자가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하며 요순(堯舜)을 들어 실증하면서, “사람이면 누구나 요순처럼 될 수 있다.” 하였으니, 어찌 우리를 속인
것이겠는가.


 

항상 스스로 분발(奮發)해서, 사람의 본성은 본래 착하며 이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지혜로운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구별이 없다. 그런데 어찌하여 성인은 유독 성인이 되고, 나는 유독 평범한 사람이 되는가. 이는 진실로 뜻이 서지 못하고 앎이 분명치 못하고,
행함이 독실하지 못해서이다. 뜻을 세우는 것과 밝게 아는 것과 독실하게 행하는 것 모두가 나 자신에게 달려 있으니, 어찌 다른 데서 구하겠는가.
안연이 말하기를, “순(舜)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순처럼 행하면 순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였는데, 나도 안연이
순처럼 되기를 바란 것으로 법도로 삼아야겠다고 여겨야 한다.


 

사람의 용모는 추한 것을 예쁘게 바꿀 수 없고, 체력은 약한 것을 강하게 할 수 없고, 키가 작은 것을 크게 할 수
없으니, 이는 모두 정해진 분수로 고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심지(心志)는 어리석은 것을 지혜롭게 고칠 수 있고, 못난 것을 현명하게 고칠
수 있으니, 이것은 텅 비어 신령스러운 마음이 타고난 분수에 구애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것보다 아름다운 것이 없고 어진 것보다 귀한 것이
없는데, 어찌하여 어질고 지혜롭게 되지 못하여, 하늘이 부여한 본성(本性)을 망치는가. 사람이 이런 뜻을 가지고,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면
도(道)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이 스스로 뜻을 세웠다고(立志) 하면서도 노력하지 않고, 미적거리며 미루는 것은 뜻을 세웠노라고 말만 하지
실제로는 성의껏 배우겠다는 마음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진실로 내가 학문하는 데 뜻을 둔다면, 착한 일을 하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라서
하고자 하면 된다. 그러니 어찌 남에게서 얻으려 하며 후일을 기다릴 필요가 있겠는가. 뜻을 세우는 것이 귀한 이유는 공부에 착수해서는 혹시라도
미치지 못할까 염려하고 한 생각도 여기서 물러서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만일 뜻이 성실하지 못한 채로 그럭저럭 시일만 보낸다면 늙어 죽을 때가
된다 한들 무슨 성취가 있겠는가.


 


 

주1): 격몽요결(擊蒙要訣) ~ 이이 선생이 42세 때에 부제학을 사퇴하고 3월에 파주(坡州) 율곡(栗谷)에 돌아왔다가,
10월에 해주(海州) 석담(石潭)으로 가서 은병정사(隱屛精舍)를 짓고 제자를 가르칠 때에 지은 책으로 학자들에게 도학(道學)의 입문을 제시한
책이다. 격몽(擊蒙)은 몽매한 것을 물리친다는 뜻이다.


 

주2):기질에는 …… 없으나 : 성인은 기질이 맑은 데 반하여 중인(衆人)은 탁하고, 성인은 기질이 순수한 데 반하여
중인은 잡것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2. 예수교적 견해 ~ 세상을 분별한다는 것



 

세상을 살아가면서 분별력이 좋으면 그 사람은 수많은 좋은 선택을 통해 훌륭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이것이 옳고, 저것은 그르고, 이렇게 하는 것이 더 좋고, 저것은 힘들지만 좋은 것이다.’ 이렇게 분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상외로 사람들은 많은 일을 분별하지 못하고 바른 것에 대해 분별하지 못하며, 속고 산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맞는데’하는
것이 틀린 것이라면 정말 기가 막히지요.


 


 

히틀러의 후계자였던 헤르만 괴링은 전범으로 체포되어 재판받고 사형대에 오르기 전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히틀러처럼
미술품 수집가였는데 자기가 가지고 있던 회화 137점과 바꾼 한 점의 그림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가 가지고 있었던 그림들은 모두 강탈해 온
것이었습니다. 1천만 달러에 호가하는 그림들을 주고 그에 상당한 그림 한 점을 받았는데 그것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그리스도와 간음한
여인’이라는 제목의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가짜임이 밝혀진 것이었습니다. 그는 어차피 사형을 당할 사람이고, 그 그림을 이제는 자기가 소유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듣자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괴링은 세상에 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사람 같았다.’고 합니다.
그를 속인 사람은 네덜란드 사람인 판 메헤렌이었습니다. 연합군이 수사를 해서 누가 괴링에게 이 그림을 팔았는지를 찾아냈습니다. 그림을 판 사람이
판 메헤렌이라는 것이 드러났고, 그는 죄인의 괴수에게 그림을 팔았다는 것과 동시에 여러 가지 죄목으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6주 동안 감옥에 있다
그가 자백한 것은 그것은 자신이 모방해서 그렸다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수사하는 쪽에서 정말 판 메헤렌이 그렸는지 다시 그려보라고 했습니다. 장장
6주 동안 판 메헤렌은 그려냈고, 결국 그 그림은 원본이 아니라 메헤렌이 그려서 사기 쳐서 팔았다는 것을 증명이 되었습니다. 메헤렌은 원작가인
베르메르보다 더 잘 그렸다는 평을 받았죠.


 

괴링은 ‘속았다’는 데 큰 충격을 받고,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베르메르의 작품이
엉터리였다니...그는 자살해버렸습니다. 반면에 메헤렌은 사기죄로 1년 선고를 받았지만 형기를 마치지 못하고 풀려났고, 네덜란드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악한 자를 골려줬다는 것이지요.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이처럼 세상은 속고, 속이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집니다. 내가 생명처럼
믿고 있는 것이라든지, 자존심이 걸려 있는 것들이 엉터리이며 나를 속인 것이라면 우리 자신도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빠질 것입니다.


 


 

버트란트 러셀이 자주 인용했던 글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나는 1820년 무렵 뉴욕 주 북부에 있는 한 호숫가에 살았던 어느 여성 예언자를 특히 높이 평가한다. 그녀는 무수한
추종자들에게 자신에게는 물 위를 걷는 능력이 있다고 천명하고 어느 날 오전 11시에 그 능력을 실제로 보여주겠노라고 제안했다. 정해진 시각이
되자 信心이 깊은 지지자 수천 명이 호숫가에 운집했다.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물 위를 걸을 수 있으리라고 여러분 모두 굳게 믿습니까?”
그들은 한 목소리로 응답했다. “믿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선언했다. “그렇다면 굳이 내가 물 위를 걸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그들
모두는 더욱 믿음이 깊어져서 집으로 돌아갔다.’


 

이것은 러셀이 인간이란 얼마나 불안한 존재이며 잘 속는가를 소개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말장난이라는 것을 알면 그런
일에 속아 넘어가지 않겠죠. 인간은 말장난에 잘 속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지적한 러셀도 말장난을 한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러셀이 잘 지적했다고
받아들입니다. 행위를 보여주겠다고 했으면 행위를 보여줘야 믿음의 근거가 생깁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행위를 생략할 수 있다고 본다는 그것은 올바른
논리가 아닙니다. 수학자이며 철학자요, 논리가로 알려진 사람이 이런 예를 들어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쪽으로 사용했다는 것이 웃기는 일입니다.
그 여자는 속임수였지 그가 말한 대로 ‘높이 평가할 사람’이 아닙니다.


 

여인의 속임수를 안다면, 그리고 러셀의 모순을 안다면 당신은 아마 분별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에 고통이 있습니다. 뻔한 것을 속고, 속지 말아야 할 것을 속고, 그것은 속임수라고 고발하는 다른 속임수에
넘어갑니다. 이런 위험에서 분별력을 가지려면 중심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말하기 어렵겠지만 나름대로 가치관이 뚜렷하고, 도덕적
기준이 명확할수록 분별력이 좋아진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인성에 대한 훈련을 너무 게을리 합니다.


 

기능주의 사회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봐야겠죠. 무엇이든지 다른 누구보다 잘해야 살아남는다는 강박관념이 인격
훈련할 시간을 빼앗아 가버립니다. 오늘 사회의 ‘正義’라는 단어가 계속 언급이 되는 것은 바로 우리 모두가 그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해줍니다. 문제는 언급은 하지만 그 정의를 구축하려고 희생의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그럴 마음의 여력이 없고, 이것 하나에 책임감 있게
나서줄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정의의 중심에는 도덕이 있고, 도덕 중심에는 종교가 있고, 종교 중심에는 예수교가 있습니다.


 

왜 이렇게 말하느냐 하면, 예수교만큼 유일신, 그의 말씀이라는 잣대를 정확하게 가진 데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것이
옳고, 도덕적이냐?’ 이것을 물으면 예수교는 이렇게 답을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라고. 저는 세상이 망한다면 전쟁으로 망할 것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사람 때문에 망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 속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도 하나님의 기뻐하는 일도 없기 때문이지요. 제가 안타깝고
불안스럽기까지 한 것은 기능주의에 빠져 끌려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입니다.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게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오늘 가정이 깨어지는 것은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이 무너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바로 분별해 볼 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반대로 당신의 마음에 중심이 바르게 서있고 이를 바탕으로 여러 기능들을 이루어 간다면 당신은 점점 좋아집니다. ~~~
2011-06-15 박광석 목사


 


 

 

3. 세종대왕의 정신, 백강 이경여 선생
말씀



 

인생관, 가치관을 세우는 일과 관련하여, 율곡 선생의 입지론과 예수교적인 생각을 위에 소개하였다.


 


 

이에 덧붙여 우리나라 전래의 유산의 중심에는 무엇보다 백성을 하늘처럼 받들고 지극히 사랑함으로부터 시작되는 세종대왕의
가치관, 인생관이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우리에게는 우리 전래의 유산을 이 시대, 미래의 시대를 위해 잘 개발하고, 세계 인류의 삶의 개선을 위하여 봉사하여야 할
하늘이 주신 사명이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남다른 역사적 배경을 주시고, 그를 잘 활용하여 세계인류를 향해서
기여(寄與)해가야 할 사명을 부여하신 것이다.


 

 

 

우리민족의 세계인류를 향한 기여(寄與)의 뿌리 먼저 세종대왕의 가치관, 인생관, 생애와 업적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세종대왕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의 탁월한 성취는 여기에서 길게 이야기하지 아니하여도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나는 세종대왕이 우리에게 주신 많은 유산은 그 뿌리가 백성을 사랑하며 그 실천에 헌신적인 노력을 한 것으로,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본정신 즉 ‘아가페(Agape)의 사랑’에도 궁극적으로 잘 부합 된다고 생각한다. 세종대왕은 유교의 仁의 정신과 더불어 불교의
慈悲의 정신, 영생불멸의 정신도 배우고 따르고자 무던히 노력하시었다.


 


 

세종대왕의 7대손이신 백강이경여 선생은 이러한 세종대왕의 정신을 현실정치 및 생활에 적용 되도록 상세히 풀어 말씀한 바가
아래에 소개한다. 그 핵심은 하늘의 도(道)를 배워 따르고 백성(인간)을 존중, 사랑할 것을 강조하신 말씀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들의 가치관 인생관의 정립에 유익한 말씀으로, 오늘날의 정치는 물론 모든 조직체에나 가정과 개인에게도
활용 될 수 있는 말씀들로 생각되어 줄이지 아니하고 가급적 그대로 적는다.


 


 

*** 아 래 ***


 


 

1631년(인조 신미년) 부제학이 된 이경여(당시 나이 47세)가 상차하여 인조임금의 잘못을 지적한 글이다.


 


 

10월 부제학 이경여가 상차하기를,


 


 

“신들이 삼가 보건대, 근래 대각(臺閣)의 신하가 상의 결점과 시정의 잘잘못을 가지고 전후에 걸쳐 진달해 아뢴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도 채택하여 받아들인 효과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한 상황에서 거의 미안스런 전교만 내리시어 멀리서부터 오는 사람까지도 막는 결과를
빚고 말았습니다. ~중략~


 

첫째는 하늘을 공경하는 일입니다. 임금은 높은 지위에 있고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니, 두려워 할 것은
하늘뿐입니다. 하늘은 이치이니, 한 생각이 싹틀 때 이치에 합하지 않으면 이는 하늘을 어기는 것이고, 하나의 일을 행할 때 이치를 따르지 않으면
이는 하늘을 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옛적의 제왕이 매우 조심하며 상제上帝를 대한 듯 행동한 것은 진실로 이 때문입니다. 정성으로 하늘을 섬기면
천명天命이 계속 아름답게 내려지지만 하늘을 어기고 이치를 거스르면 그 천명이 영원히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의 마음은 인자하여 차마 갑자기
끊어버리지 못하니, 반드시 재이(災異)를 내려 견책한 뒤 흐리멍덩하게 깨닫지 못하여 끝내 고치지 않은 다음에야 크게 벌을 내리는 것입니다.
~중략~


 

하늘이 멸망시키거나 사랑하여 돕는 것은 공경과 불경(不敬), 정성과 불성(不誠)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천명은 일정함이
없으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전하가 즉위한 이후로 천문 지리 곤충 초목의 재이를 실로 낱낱이 들기가 어렵습니다. 수 년 이래로 종묘의 나무에 벼락이
치고 진전(眞殿)에 불이 났는가 하면 반 년 동안 가뭄이 들고 8월에 큰물이 졌으며 벼가 쓰러지고 나무가 뽑히는 큰 바람이 불었으니, 이는 실로
근고에 없었던 변고입니다. 전하께서는 이를 기수(氣數)와 관계된 현상으로 여겨 스스로 합리화시키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어찌 크게 삼가고
두려워함이 없으며 크게 절약함이 없으며 크게 시행하고 조치함이 없습니까. 상선(常膳)을 감하고 정전(正殿)을 피하는 것으로 하늘의 노여움을
되돌릴 수 있다고 여기십니까. 미워함을 사사로운 정에 따르므로 상하가 막혔으니, 하늘의 노여움이 그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게 없습니다.
~중략~


 

재앙이나 복은 자신이 초래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잘못을 깊이 징계하고 스스로 장래의 복을
구하여 상림(桑林)의 육책(六責)으로 몸을 살펴 반성하고 운한(雲漢)의 8장으로 몸을 기울여 덕을 닦으소서. 심술(心術)의 은미한 곳으로부터
궁정의 사람 없는 곳과 동작하고 이야기하는 사이에 이르기까지 삼가 공순하고 공경히 두려워하지 않음이 없게 하소서. 천명을 스스로 헤아려 천리로써
보존하고 자연의 법칙으로써 움직여, 공경하고 조심스럽게 하기를 마치 효자가 어버이를 섬길 때 힘써 성의를 쌓아 기필코 즐겁게 되시도록 하는 것과
같이 하소서. 그리고 애통스런 전교를 시원스럽게 발표하여 과거의 허물을 사과하고 널리 직언(直言)을 구하며 덕 있는 사람을 모두 받아들여 적소에
앉혀 쓰되 전일처럼 형식적으로 끝나지 않게 하여 재이를 소멸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소서.


 

또 한 가지는 백성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늘이 임금을 세우는 목적은 진실로 이 백성을 돕기 위함이지 한 사람의
편안함만을 도모해 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랑하면 임금이고 학대하면 원수이니, 민심의 향배에 따라 나라가 보존되거나 망하거나 하는 것입니다.
명철한 임금과 훌륭한 제왕이 백성들의 뜻이 험악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썩은 새끼줄로 6마를 모는 것처럼 조심하며 경계하지 않은 경우가 없었던
것은 실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이 백성들은 지난번에 이르러 극도의 도탄에 빠졌습니다. 백성은 일정하게 사모하는 일이 없어서 인덕이 있는 이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니, 심산궁곡에서도 기뻐 춤을 추지 않는 사람이 없어서 마치 호랑이의 입을 벗어나 자애로운 어머니에게 돌아가는 것과 같은 것인데,
이런 때에 백성을 보호하여 왕이 되는 것은 마치 손을 뒤집는 것과 같이 쉬운 일입니다.


 

그런데 유사(有司)가 위로 상의 뜻을 체득하지 못하고 시정(施政)을 잘못하여 작은 비용을 아끼다가 큰 신의를 잊는가 하면
작은 사무를 먼저하고 원대한 계획은 뒤로 돌리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죄를 씻어준다는 은혜가 도리어 신의를 잃는 결과가 되고 변통(變通)한다는
정사가 끝내 분란의 단서만 조성하게끔 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훈신이 간혹 조정의 처치를 기다리지도 않고 자신의 토지를 넓히려는 욕심을 다투어
채우고 있습니다. 지난 시절 농민들이 권간(權奸)에게 탈취당한 것들을 문서가 있는지도 묻지 않고 옳고 그름이 어떤지를 따지지도 않은 채 돈에
눈이 먼 사람들처럼 서로들 점유하여 한량없이 욕심을 채운 뒤에야 그만둡니다.


 

예로부터 봉지(封地)를 정하여 상을 시행할 때는 각각 제한을 두어 공의 경중에 따라 천 호(戶)나 만 호를 주었으니,
오늘날처럼 문란해져 질서도 없고 제한도 두지 않음으로써 듣고 보는 대로 스스로 취하도록 한 일은 있지 않았습니다. 10년간 탈취당하여 원망을
품은 채 때를 기다리던 자들의 시름과 원망이 정반대로 바뀌어 얼굴 펴며 기뻐하던 것이 도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걱정거리로 변하였고 보면 지금도
그대로 전철을 밟는 꼴이 되어 주인만 바뀌었을 뿐 탈취당하는 것은 매한가지이니, 백성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이것이 처음에 잘못하여
백성들의 원망이 일어나게 된 까닭인 것입니다.


 

내수사에 투속하는 폐단에 대해서는 전하께서 왕위에 오르시기 전에도 필시 들어 아셨을 것입니다. 중흥한 뒤에 발본색원은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 폐단이 조금 단속되었는데, 요즈음에는 전일의 습관이 차츰 자라나 혐의 때문에 고발하기도 하고 그 주인에게 죄를 얻어
죽게 되자 도망하여 의탁하기도 하며 고역을 피해 편한 곳에 가려고 연줄을 대어 소속되기를 도모하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수령이 겁을 먹고
두려워하여 감히 밝게 변별하지 못한 채 본사로 귀속시키니, 먼 시골의 곤궁한 백성으로서 억울함을 제대로 해소한 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또
내사內司에 관계되는 일은 전하께서 마음을 비워 처리하지 못하시고 법대로 한 담당 낭청을 추고하라는 명을 내리기까지 하였습니다. 성상의 마음이 한
편에 치우친 바가 있어서 폐단이 이 때문에 점차 일어나는데, 유사의 법 집행이 그 사이에 시행되지 못하고 액정(掖庭)의 세력 또한 당초와
다르니, 하층민들만 탄식할 뿐 아니라 실로 식자들의 근심거리가 되었습니다.


 

각 아문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폐단에 대해서는 지난번 본관의 논차(論箚)에서 이미 다 말씀드렸기에 신들이 감히 다시
번거롭게 하지 않겠습니다마는, 오늘날 백성의 피해로 이보다 더 큰 것이 없는데, 지방 사람도 물론 감당하지 못하나 서울의 백성들은 더욱 심한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그 이웃과 종족까지 불법으로 탈취를 당하여 파산하고 떠돌아다니며 길거리에서 원망하고 울부짖는 모습을 전하께서는 필시 듣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전하는 백성의 부모이니, 그들의 가렵고 아픈 것을 마치 내 몸에 있는 것처럼 보아야 하는데, 어찌 백성에게 차마 못할 짓을
하십니까. 어찌 강한 의지를 분발하여 이 좋지 않은 풍습과 고질적인 폐단을 말끔히 씻어버리지 않으십니까. 차라리 도둑질하는 신하를 두겠다는 말을
신 등은 성인의 훈계로서 너무 지나치다고 마음속에 의심하였는데, 지금의 일로 보면 자못 더 심한 바가 있습니다.


 

궁가(宮家)에서 빚을 징수하는 폐단은 각 아문보다도 심합니다. 오랫동안 받지 못한 빚이라며 문서를 가져다 바치게도 하고
아무 근거도 없이 몰래 청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무뢰한 종들을 풀어서 부유한 사람을 골라 누구에게 빚이 있는데 바로 채무자와 같은 친족이라고
하면서 결박을 지워 거꾸로 매달아 사제에 가둔 뒤 온갖 방법으로 학대하여 하루 사이에 수백 냥의 은자를 징수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명나라 서울에
가는 역관들에게 억지로 헐값을 대어주고는 돌아왔을 적에 그 열 배나 불법으로 탈취하므로 집을 기울여 파산하고서도 제대로 상환하지 못하여 원근에
사는 족속들이 모두 피해를 당합니다. 심지어는 사방 주현의 아전들이 일 때문에 서울에 올 경우 끝까지 찾아내어 그 고을 사람이 진 빚을 모두
책임지기를 요구하면서 가두어놓고 탈취하기를 끝없이 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지방 사람들이 한번 도성 문에 들어가는 것을 마치 죽을 곳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여기고 있으니, 고금 천하에 나라를 세워 법을 설치한 뒤로 어찌 이와 같은 시대가 있었겠습니까. 대간이 이를 논하여도 죄를
가하지 못하시는 성상의 의도를 신들도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법은 조종의 법이니, 전하께서 어떻게 사사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백성을 괴롭히고 나라를 해치며 법을 뛰어넘고 죄를 범하는 것이 이와 같이 심한데도 죄벌이 미치지 않고 관작이 그대로
있습니다. 궁노와 부속(府屬)까지도 사주를 받아 악행을 저지르면서 모두 태연하고 의기양양하게 거리를 누비면서 말하기를 ‘누가 감히 나를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데, 평민들이 이들을 보면 마치 사나운 귀신을 만난 것처럼 놀라고 두려워하여 피해 숨으니, 그 기상이 참담합니다.


 

전하께서 일찍 조치하여 특별히 엄금하지 않으면, 제멋대로 방자하게 구는 걱정거리가 여기에 그치지 않아 원근의 원망이 모두
전하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조종의 법이 이로부터 폐지될 것이며 조정의 기강이 이로부터 떨어질 것이며 전하의 백성들이 이로부터 수족을 놀리지 못할
것입니다. 법을 지키는 책임은 오로지 헌부에 있는데도 사사로운 위엄이 매우 왕성하므로 하리들이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두려워하여 차라리 본부의
형벌을 받을지언정 감히 궁가에 거스름을 당하려 하지 않습니다. 아, 임금의 기강이 해이해지지 않고 국가의 법이 없어지지 않았는데, 헌부가 법관의
몸이 되어 어찌 하리가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을 그대로 놔둔 채 기강을 진작시켜 백성을 구할 방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재이로 인하여 백성을 구휼하라는 명이 이미 내렸으니 해조는 받들어 주선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유사의 뜻은 항상 경비를
걱정하여 궁한 백성에게 베푸는 은택이 아래에까지 내려가지 않으니, 전하께서 진정으로 측은히 여기시어 단연코 시행하지 않는 한 반드시 정체되는
폐단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공부(貢賦)의 역이 지난 시절에 비해 반감(半减)되기는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비유하면, 혈기가 왕성할 때에는
고질적인 중병이라도 지탱해 나갈 수가 있으나 노쇠하게 되면 아주 작은 병이라도 제대로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민역(民役)이 조금
가벼워졌는데도 원망이 전과 다름이 없는 것 역시 이와 같은 것입니다. 지금은 백성이 곤궁하고 재물이 고갈되었으니, 마치 큰 병을 이제 막 앓고
난 사람에게는 반드시 미음과 죽을 먹이고 좋은 곡식과 고기로 영양을 취하게 하며 편안한 자리에 뉘여 기혈(氣血)이 정상화되기를 기다려야 비로소
완전하게 되는 것과 같은 점이 있습니다. ~중략~


 

또 한 가지 의논이 있으니, 국사와 민사를 갈라서 두 가지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상(慈詳)하고 개제(愷悌)한 사람에
대해서는 백성들을 기쁘게 하여 칭찬을 받으려 한다고 하고, 일을 잘 주선하여 능력을 자랑하는 무리에 대해서는 마음을 다하여 공무를 집행한다고
하여, 이를 기준으로 축출하고 승진시키며 헐뜯고 칭찬합니다. 조정이 어떤 기품을 숭상하면 원근이 그 영향을 받게 마련인데, 임금의 명을 받들어
선포하는 승지가 거꾸로 독촉하며 채근하는 행정을 하고 죄인을 매질하는 형벌이 끝내 목민관에게까지 미쳤습니다. 이미 작상(爵賞)을 주어 권장하고서
또 형벌을 내려 문책한다면 방백과 수령이 자신을 구원하기에도 겨를이 없을 텐데, 관대한 법규를 펴며 어루만져 사랑하는 방도를 다할 여유가
있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오늘부터 백성들과 더불어 낡은 것을 고쳐 새로 시작하소서. 훈신에게 하사한 문서와 당초 관청에서
적몰한 명부를 해사로 하여금 자세히 조사하여 서계(書啓)하도록 하고, 동시에 제도(諸道)의 방백으로 하여금 수령 중에서 억센 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강명한 사람을 따로 정해 죄인에게 적몰한 전민(田民)이 있는 곳에 가서 직접 부정을 적발하도록 하여, 아무 죄인의 전지는 몇 결(結) 몇
구역이며, 아무 고인은 하사받은 것이 얼마이며, 아무개는 탈취당한 곳이 몇 군데인지 낱낱이 기록을 작성하여 올려 보내게 한 뒤에 해조의 기록과
서로 대조토록 하소서. 그리하여 적몰한 것 중에 들어 있지 않은데도 불법으로 점유한 것과 지난번에 탈취당한 것을 그대로 빼앗아 점유하고 있는
것은 그 곳의 관원으로 하여금 본 주인에게 되돌려 주게 하고, 정수 이외에 많은 양을 외람되게 점유한 것은 다른 공신에게 옮겨주도록 하여 고르지
않게 불법으로 점유하는 폐단이 없도록 하는 동시에 탈취당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원망을 누그러뜨리도록 하소서.


 

내수사에 투속한 자는 해사로 하여금 문권(文券)을 조사하여 되돌려 주도록 하고, 서로 송사 중에 있거든 유사와 수령에게
맡겨서 법에 따라 처결하도록 하되 본사로 하여금 그 사이에 간여하지 못하게 하소서. 고발하는 사람이 있으면 역시 해도와 해조로 하여금 상세히
증거를 조사하게 하여 혹시 무고일 경우에는 중한 형벌로 다스리소서. 액정서의 관원과 하인들은 외방에 심부름 보내지 못하도록 하고, 이조에
신칙하여 내수사의 모든 관유(關由)와 문이(文移)는 반드시 그 가부를 살펴서 쓸 것은 취하고 못 쓸 것은 버려 구차스럽게 따르지 않게 함으로써
조종의 옛 제도를 회복하소서. 각 아문을 담당하는 사람에게 이익을 취하지 말도록 분명히 훈계를 내려 일체 폐지시킴으로써 그 근원을
막으소서.


 

그리고 헌신(憲臣)에게 명하여 연줄을 대어 폐단을 만드는 사람을 적발해서 무거운 벌로 논죄하고 용서하지 말도록 하소서.
제 궁가에서 법을 어기고 백성을 해치는 것은 탑전(榻前)에 나오게 하여 간곡하게 타이르고, 헌부에게도 단단히 일러서 궁노(宮奴)와 부(府)에
딸린 자 중에 함부로 소란을 일으키는 자나 채권(債券)을 바치거나 몰래 청탁하여 백성을 침해하는 자는 구속하여 중한 형벌을 내리고 떳떳한 법으로
다스리게 하소서. 그리고 중외에 깨우쳐서 침해를 당한 사람으로 하여금 법부(法府)와 해조에 일제히 소송을 내게 하고 빼앗긴 물건을 낱낱이 찾아
주어 거꾸로 매달린 것 같은 백성들의 급박한 상황을 풀어 주소서. 명나라 서울에 갈 때 사사로운 물품의 무역을 허락하지 말고 이를 범한 자도
무겁게 죄를 물으소서.


 

재이를 구휼하는 일은 보통의 예를 따르지 말고, 임금 자신의 봉양에 대해서는 통렬히 삭감하고 특별히 면제해 주어 오직
어루만져 기르는 데 뜻을 두소서. 어사의 고강(考講)이나 점마 별감(點馬別監)의 지방 파견도 정지하고 조금 풍년이 드는 해를 기다려 하도록
하소서. 각 고을의 유망(流亡)과 절호(絶戶)에 대해서는 해도(該道)로 하여금 분명히 조사해 선처하도록 함으로써 이웃과 종족의 폐단을
제거하소서. 응당 바쳐야 할 각종 포목의 곱고 거칠며 길고 짧은 품질도 당초의 재생청(裁省廳) 사목대로 하고 그 규정을 넘지 못하게 하소서.
이번에 재이를 입은 곳은 자세히 현장 조사하여 재이에 대한 보상을 지급하고, 다시 애처롭게 여기어 돌보아주는 은전을 실시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하소서.


 

그리하면 절목 사이의 일은 자연 유사(有司)가 처리할 텐데 그 큰 근본은 오직 전하께서 크게 뉘우치고 깨달아서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차마 하지 못하는 정치를 행하여 덕을 우선으로 삼고 이(利)를 뒤로 하며 위를 삭감하여 아래를 더해주는 데 달려 있습니다. 일을
잘 주선하는 신하를 지나치게 장려하지 말고 선량한 관리들을 지나치게 깎아내리지 마소서. 가혹한 정치는 눌러서 행하지 못하게 하고 인서(仁恕)의
도를 확대 적용하소서. 그리하여 온 나라의 백성들을 모두 널리 사랑과 은혜를 베푸는 인덕(仁德)의 지역에 살게 하며 한 사람도 제 살 곳을 얻지
못하는 이가 없게 함으로써 임금의 도리를 다하소서. <‘조선왕조실록’ 에서>


 


 

2012. 7. 25. 이 주 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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