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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 敎育의 實狀과 改善方向
날짜 2012-08-07 17:22:33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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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敎育의 實狀과 改善方向

 

우리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가 되고, 계속 발전해나가기 위해서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바로 나라의 바탕이 되는 국민교육의 문제라는 것이 나의 오래된 생각이다.

 

우리는 조상님들로부터 물려받은 좋은 유산을 시대에 맞게 계승 발전시켜가기보다는 경솔하게 저버린 부분들이 너무 크다고 본다.

 

오늘날의 우리 교육의 현실, 특히 일생을 통하여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유아교육의 현상에 대한 글이 있어 아래로 소개한다.

 

1.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요? 

 

신상훈, 서울예술종합학교 교수

 

오늘은 굉장히 중요한 얘기를 해드리는 그런 날입니다.

오늘 저 각오 단단히 하고 왔습니다. 이 얘기는 여러분들이 꼭 기억해두셨다가 누군가에게 꼭 전해주셔야 됩니다.

 

저는 한 달에 한번 꼴로 중학교, 고등학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의 교장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유치원원장님들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유치원원장님들이시면 다른 선생님들에 비해서 웃음도 많고 재미있게 강의를 들어주실꺼야'

이런 부푼 기대를 안고 2시간동안 운전을 해서 청주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딱 강단에 섰는데 250명의 유치원 원장님중에 한200분이상은 다른 데를 보고 계세요. 옆 사람하고 떠들고 핸드폰 문자보내고 다른데 쳐다보고.

저는 이런 순간에 "여러분 강사를 주목해주세요. 자 박수 세번 시작"

이런 거 안합니다. 아직도 이런 거로 주목시키는 사람은 강사자격 없어요.

저는 '그냥 안 볼라면 안 봐라. 딴 데 신경 쓰려면 신경 써라.' 그런 투로 저 할일을 했어요.

조크를 막해서 웃겨줬어요.

그랬더니 사람들이 슬금슬금 '어 이거 웃기네'하면서 15분쯤 지났을

때 거의 모든 원장님이 저에게 주목을 하시더라고요.

 

그때 제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제가 다시 아이를 낳아서 유치원에 보내면 여러분이 계신 유치원에는 절대로 안 보냅니다.

애들 버려요 버려. 유치원에 아이가 오면 제일먼저 해야될 것이 무엇입니까?

아이와 눈을 마주쳐주셔야 됩니다. 눈을 마주쳐주셔야 되는데 원장님들이 저 쳐다보시는데 15분 걸렸습니다.

여러분들 원장자격 없습니다."

그 후로 강의는 잘 진행이 되었지만 몇몇 원장님은 이 말에 상처를 입으셨나봐요.

 

그런 분들이 어떻게 유치원 원장하시는지 답답했는데 나중에 알았어요. 뉴스 보다가.

아이가 어린이집 버스를 타고 왔는데 버스에서 아이가 안내려서 질식해서 죽었다면서요.

이게 무슨 아프리카 얘기가 아니라 우리나라 얘기입니다.

아이가 유치원에 오고 어린이집에 오면 선생님이 제일먼저 아이를 반갑게 맞아줘야 하는 데 애가 있는지도 모르고 땡볕에서 죽게 만들어야 하겠습니까? 이게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이런 불안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은 해결도 안하면서 정부에서는 애를 더 낳으라고요?

나 같아도 안낳습니다.

 

유모차를 끌고 나가 보세요.

보도블록은 왜 이렇게 울퉁불틍합니까? 미관 때문에 그렇게 해놓았습니까?

그래놓고 몇 달 후에는 뜯어서 다시하고.

 

근본적으로 유치원 원장님들은 애와 눈을 맞추어 주어야 하는데 그것도 안해요.

 

놀라운 것은 제 조카가 동네 유치원선생님한테 "언니 나 나중에 유치원선생님 될꺼다."

그랬더니 현직유치원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는지 아세요?

"절대로 하지마. 절대로. 너 유치원원장들이 누군지 알아? 도둑놈들이야 도둑놈들"

현직 유치원선생님이 자기 상관을 도둑놈이라고 말하는 데 꼭 이것이 일부유치원만의 이야기일까요?

일부 어린이집만의 문제일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우리의 큰 비극입니다.

자기를 바라봐주지 않는 선생님 밑에서 큰 아이들이 어떻게 나중에 사회에 나와서 사람을 쳐다보겠어요.

 

제가 얼마 전에도 모 대학에 가서 강의를 했는데 계속 졸고 있는 거예요.

아무리 얘기를 해도 듣지를 않아요.

내가 좀 세게 야단을 쳤더니 강의 끝나고 와서 나한테

"사과하세요. 사과하세요. 개인적으로 아이들 앞에서 욕먹었잖아요. 창피하잖아요."

이러면서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보는 데 욱하다가도 유머를 발휘해서

"그래 미안해 네가 교수해 내가 학생할께" 그렇게 사과하고 끝냈어요.

왜 사과했는지 아세요? 말해봤자 못알아들을 애이더라고요.

 

과연 이게 누구의 잘못일까요?

제 생각입니다만 이것은 부모잘못입니다.

부모가 잘 키워야 됩니다.

여러분도 저도 부모이기도 하고 부모가 되실 분도 있으시니까 유머를 통해 아이들의 눈을 먼저 바라보는 거, 여기에서 우리 해답을 한번 찾아봅시다. (2012. 7. 20. ‘넷향기’에서)

 

2. 우리교육의 개선에 대한 생각

 

위의 글은 내가 평소에 느끼고 있던 바를 실감나게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참담한 바탕의 우리교육의 현상 앞에서 이제 溫故而知新의 견지에서 우리 선조님들의 생각, 성경말씀 등을 가다듬어본다. 그리고 우리가 개선해 가야할 방향을 가늠해 본다.

 

1) 세종대왕과 공자의 교육관

 

교육에 관하여, 세종대왕은 성현(聖賢)들의 말씀과 행동들을 어릴 적부터 이야기 식으로 아이들에게 자주 들려주는 것, 또 어려서부터 주변의 훌륭한 사람들과 가까이 하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였다.

 

세종실록에 기록된 이야기를 읽다보면, 사람들의 태도를 바꾸는 데 이야기 들려주기가 효과적이라는 것이 세종대왕의 생각임을 알게 된다. “무릇 세자를 교양하는 방법은, 반드시 훌륭한 사람을 가까이 하고, 아름다운 일을 들려주는 데 있다. 그것은 마치 초나라에서 생장하면 초나라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라고 세종대왕은 말했다. 좋은 사람을 가까이 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자주 들으면 자연스럽게 좋은 말을 하게 되고, 그러면 좋은 생각 좋은 행동이 따라 나온다는 얘기였다.

 

공자가 말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세 단계’는 이른바 스토리텔링(story telling)을 통한 인재양성법과 흡사하다. 공자는 사람을 변화시키려면 먼저 이야기가 재미있어야한다고 하였다. ‘그림을 그리려면 앞서 흰 비단을 먼저 준비해야하는 것처럼(繪事後素), 상대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일단 흥기(興起)시켜야 한다는 것이다’[제1단계 흥기].

 

듣는 사람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다음에는 여러 가지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어 마음에 스며들게 해야 한다[제2단계 협흡(浹洽)]. 논어의 첫 구절인 “배우고 그것을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 하겠는가”라는 유명한 말에 내포되어 있는 뜻은 과거 성현들의 언행을 배우라는 것이다.

 

“이미 배우고 또 때때로 그것을 익힌다면 배운 것이 익숙해져서 마음 중심에 기쁜 이야기가 느껴져서 그 진전을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주희(朱子)의 해석처럼 ‘협흡어중(浹洽於中)’의 효과, 즉 가랑비에 옷 젖듯 좋은 이야기가 알게 모르게 마음속에 촉촉이 스며드는 단계가 되면, 누가 못하게 막아도 기쁜 마음으로 성현들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이 정도가 되면 이미 마지막 단계인 체화(體化), 즉 습관화되어 완전히 내 것이 된 상태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공자는 이 단계를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상태라고 말한다[제3단계 체화(體化)].

 

요약하자면, 좋은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가 내 생각에 깊숙이 스며들면 자연 행동이 바뀌게 되는데, 이 단계에 이르면 어떤 생각, 어떤 일을 하더라도 좋은 언행에서 벋어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훌륭한 사람들의 정신을 자기도 모르게 드러내는 ‘과화존신(過化存神)’의 효과를 발휘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 유학 전통시대 인재양성의 과정이었다.

 

세종대왕 시대에 스토리텔링을 통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생각은 정책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1428년(세종10년)에 발생한 한 필부가 아버지를 죽인 사건에 대한 대응책이 그렇다. 경상도의 김화라는 자가 부친을 살해한 사건을 보고 받은 세종대왕은 신하들을 불러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 때 처벌 수위를 높이자는 주장이 있었지만, 변계량은 ‘이런 등류의 일은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청컨대 <효행록>등의 서적을 널리 반포하여, 항간의 백성들로 하여금 이를 항상 읽고 외우게 하여 점차로 효제(孝悌)와 예의의 마당으로 들어오게 하소서” 하였다.

 

한마디로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한 이야기들을 편집하여 자주 들려주고 외게 하면 자기도 모르게 효제하고 예의바른 지경으로 들어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 진 책이 <삼강행실도>이다. 부모에 효도한 사례 등 100여 가지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림을 곁들여 전국에 배포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한국학중앙연구원 온라인소식지 2012.1 박현모 세종리더십연구소 선임연구원 글에서)

 

2) 백강 이경여 선생의 교육 컨텐츠에 대한 견해

 

위에서 세종대왕과 공자의 교육에 대한 생각을 살펴보았는데, 나아가 교육의 컨텐츠(Contents)에 대한 백강 이경여 선생의 견해를 아래로 소개한다.

 

************* 아 래 *******************************

 

교화를 밝힌다[이른바 明敎化]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전부터 나라를 세울 때에는 각각 한 나라의 규모가 있어서 조종(祖宗)이 이를 새로 세우고 자손이 이를 이어 지키는 법입니다. 하(夏)나라의 충(忠)과 상(商)나라의 질(質)과 주(周)나라의 문(文)과 서한(西漢)의 패도(霸道)와 동한(東漢)의 절의(節義)와 조송(趙宋)의 충후(忠厚)는 이것으로 비롯하여 이것으로 마쳤는데, 우리 나라가 이제까지 유지한 까닭은 과연 어느 도(道)를 따라서 그런 것이겠습니까. 다만 명교(名敎)일 뿐입니다. 아, 천지가 크게 변하여 관상(冠裳)이 바뀌어 놓였으나 한 조각 우리 동방만이 의관(衣冠)을 보전하였으니, 어찌 관(冠)을 훼손하고 면(冕)을 찢어 구구한 명교를 아울러 못쓸 물건으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말하면 슬퍼서 다시 논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른바 교화라는 것은 인륜을 밝히기 위한 것입니다. 군신·부자·부부·붕우가 각각 그 도리를 다하면 망국(亡國)·패가(敗家)가 어디에서 생기겠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근년 이래로 가정의 더러운 일과 집안끼리 다투는 변과 상기(喪紀)의 문란이 이따금 사족(士族)에서 나온단 말입니까. 어찌 세교(世敎)가 쇠퇴하고 풍화(風化)가 밝지 않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너진 풍속을 새롭게 하는 것은 성명(聖明)께 달려 있으니, 예(禮)로 이끌고 형벌로 다스리는 일은 치우치거나 폐지할 수 없습니다. 또 학교의 정사(政事)는 소략하기가 또한 심하므로 동몽(童蒙)의 교양이 바르지 않아서 경박하고 사치한 것이 드디어 조장되고 세도(世道)가 점점 투박해져서 지도하는 방도를 잃었으니, 맑은 명망과 도타운 학문이 있는 선비를 얻어 성균(成均)의 직임을 맡겨 부박한 버릇을 통렬히 억제하고 오로지 실행을 숭상하게 하면 성취하는 보람이 반드시 적지 않을 것입니다.

삼가 살피건대, 오늘날의 풍류(風流)는 진대(晋代)와 같은 점이 있습니다. 술마시며 농담하고 다른 일은 다시 하지 않으며 예의 염치는 자신과 관계 없는 것으로 여기니, 표준을 세우는 임금의 자리에서 그 취향을 바로잡지 않으면 이미 대세가 글러진 것을 만회할 수 없을 듯합니다. 중외에 신칙하여 상중에 예를 다하게 하고, 효성 우애스럽고 화목하게 지내는 선비를 찾아 아뢰게 하여 특별히 장려하여 정표(旌表)하고 제직(除職)하며, 혹 슬픔을 잊고 풍속을 어겨 복상(服喪)을 삼가지 않고 더러운 짓을 하여 윤리를 어지럽히고 다투어서 우애하지 않는 무리가 있으면, 또한 적발하여 율문(律文)에 따라 처단해야 할 것입니다. 1년상을 입을 자가 장사지내기 전에 과거에 응시하거나 가장(家長)으로서 3년상 안에 혼인하는 자도 법을 세워 금단해야 합니다. 명관(名官)으로서 술에 빠져 직무를 폐기하거나 예법을 폐기하는 자는 타일러 경계하되 한결같이 세종(世宗) 때의 고사를 따라 두렵게 생각하고 고치게 한 뒤에 그래도 고치지 않는 자는 법사(法司)와 전조(銓曹)를 시켜 심한 자는 거론하여 탄핵하고 경한 자는 좌천시켜야 합니다. 수령(守令)으로서 읍비(邑婢)를 몰래 간통하고 이어서 데려온 자도 각도를 시켜 사실대로 아뢰게 하여 적당히 벌주어 선비의 풍습을 격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 풍속을 변화하는 데에 작은 보탬이 되지 않겠습니까. (효종4년(1653년) 7월 2일 백강 이경여 선생의 재변극복을 위한 상차문 중에서)

위의 백강 선생의 말씀은 요약하면 국민교육의 핵심 컨텐트는 충효정신함양, 예절과 윤리의 준수 등을 통하여 인륜을 밝혀나가는 데 있다고 한 것이라 하겠다.

 

3) 성경(Bible)이 가르치는 교육관

 

성경이 가르치는 핵심은 모든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인격을 닮아가도록 지속적으로 노력, 훈련하여 나아가서, 이후에 천국에 이를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면 예수그리스도의 성품과 인격은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예수는 스스로의 성품에 대해 온유(溫柔, Gentleness)하고 겸손(Humility)한 사람이라 말 하였으며, 또 아홉 가지의 성령(Holy Spirit)의 열매를 맺도록 부단히 노력하여 갈 것을 말하고 있다.

 

아홉 가지의 성령의 열매란 사랑(Love), 喜樂(Joy), 화평(Peace), 오래참음(Patience), 자비(Kindness), 養善(Goodness), 충성(Faithfulness), 온유(Gentleness) 와 절제(Self-control) 이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이를 기르기 위한 조기교육을 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언 22장6절)

 

교육은 이를수록 좋다. 어린 시절의 영향은 문자 그대로 평생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날 여러 형태의 조기 교육이 여러 영역에서 시도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외국어 교육도, 예능 교육도 어린 시절에 시작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기 위해 어린 자녀들의 적성을 조기에 발견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여러 교육들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조기 신앙(인격형성)교육이다. 비록 어린 시절의 신앙(인격형성)교육을 받은 이들이 성장 과정에서 잠시 이에서 떠나는 일이 있어도 그들 대부분은 반드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조기 신앙(인격형성)교육은 바르게 인생을 산다는 의미, 성공의 참 뜻을 알게 하는 일이다. 단순히 출세하는 자로 자녀를 키우는 것은 마땅히 행할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 원문의 아이들에게 가르칠 <마땅하게 행할 길>은 바로 성경이 가르치는 義의 길을 지향하는 삶의 교육이다. 그것은 곧 바르게 잘 사는 길이다. 그러면 늙어도 그런 삶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성경은 약속한다. (이동원 목사 2010.1.14. “조기 신앙교육의 중요성” 중에서)

 

 

3. 벤자민 프랭크린(Benjamin Franklin)의 例 : 교육 컨텐츠와 조기교육의 중요성

 

벤자민 프랭크린(Benjamin Franklin, 1706~1790)은 미국 건국 초기에 활약하였던 인물이다. 그는 당대에 대통령직 외에는 국가의 중요한 직책을 골고루 맡았던 사람이었다. 그의 부모는 철저한 청교도(淸敎徒 Puritans) 신도들이었다. 그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이주하여 양초와 비누를 만들어 팔며 가난하게 살았다. 가난하여 아들을 학교라고는 일년 밖에 보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자녀를 기를 때에 청교도의 신앙원리에 따라 철저히 가르쳤다.

 

프랭크린의 자서전에는 다음의 기록이 있다.

“나는 부모님이 가난하여 학교라고는 일년 밖에 다니지 못하였다. 그러나 오늘의 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부모님들이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잠언 22장 29절을 체득(體得)시켰기 때문이다.”

여기서 체득시켰다는 말은 입으로나, 지식으로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익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쳤다는 뜻이다.

그가 부모님들로부터 체득하여 배웠다는 잠언의 말씀이 다음의 말씀이다.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勤實) 한 사람을 보았느냐? 그는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잠언 22장 29절)

이 말씀에서 ‘근실하다’는 말의 뜻은 정직함과 부지런함과 검소함을 합친 말이다. 젊어서부터 근실함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에나 성공에 이를 수밖에 없다.

벤자민 프랭크린은 부모님들의 가르침을 따라 낮이면 노동하고 밤이면 독서하였다. 날 좋은 날은 노동하고 비 오는 날이면 독서하였다. 그래서 그는 쓰기를 “내가 평생에 행하였던 두 가지는 노동과 독서이다. 그 두 가지를 열심히 행한 결과 이 나라에 유익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부모님들로부터 청교도의 신앙생활의 원리를 체득하였던 벤자민 프랭크린은 그 생활원리가 평생을 지배하였다. 그 생활원리를 실천하였기에 그는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는 바른 습관이 바른 행동을 낳고 바른 행동이 성품을 지배함을 알았다. 그는 소년 시절에 자신이 평생토록 간직하여야 할 성품을 13가지로 뽑았다. 그들 13가지 덕목(Moral Virtues)을 날마다 실천하고 그 실천 사항을 점검하여 습관이 되도록 하였다.

벤자민 프랭크린을 일컬어 미국의 산업사회를 일으킨 원조라 한다. 그의 평생에 걸친 근검절약과 근면절제의 정신이 미국을 선진사회로 일으킨 정신적인 기본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삶에는 부모님들로부터 물려받은 청교도적인 생활방식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그가 남긴 자서전에 자신이 젊은 때로부터 실천하였던 13가지 덕목이 소개되어 있다. 이 덕목들을 벽에 붙여두고 날마다 하루 일과를 마칠 때에 그 실천여부를 점검하였다고 하였다.

1, 절제(Temperance) - 과음, 과식을 하지 않는다.

2, 침묵(Silence) -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는다.

3, 질서(Order) - 모든 것을 제자리에 두고 주어진 일을 제때에 한다.

4, 결단(Resolution) - 내가 하여야 할 일은 반드시 실천한다.

5, 절약(Frugality) - 다른 사람이나 나에게 유익한 일 외에는 돈을 쓰지 않는다.

6, 근면(Industry) -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유익한 일만 하며 불필요한 행동을 삼간다.

7, 진실(Sincerity) - 남을 속이지 않으며 순수하고 정당하게 생각한다.

8, 정의(Justice) -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고 나의 유약함도 놓치지 않는다.

9, 온유(Moderation) - 극단적인 것을 피한다.

10, 청결(Cleanliness) -몸, 의복, 생활을 깨끗이 한다.

11, 평정(Tranguility) - 사소한 일로 마음을 흩트리지 않는다.

12, 순결(Chastity) - 건강한 후손을 두는 목적 이외의 성생활은 절제하며 자신과 상대방의 인격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유지한다.

13, 겸손(Humility) - 예수와 소크라테스를 본받는다.

영국의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샬(Alfred Marshall, 1842~1924)은 인류의 길고 긴 역사에서 가장 영향을 끼쳤던 두 분야를 거론하면서 ‘종교와 경제’라 하였다. 그래서 건전한 종교와 건강한 경제가 합하여 질 때에는 국민들의 삶이 윤택하였으나 종교가 사이비로 흐르고 경제가 흔들렸을 때는 국민들의 삶이 어려움에 빠졌다고 하였다.

그런데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는 그렇게 건전한 종교윤리와 건강한 경제원리가 합하여져 바람직한 경제제도를 이룬 대표적인 경우로 자본주의를 들었다. 베버 교수는 “자본주의는 개신교(청교도) 신앙윤리가 낳은 자식이다”고 하였다. 개신교 신앙인들의 바른 직업관과 바른 재물관 그리고 성경적인 생활 윤리가 합하여져 자본주의를 발전시켰다고 한다.

베버가 주목한 개신교의 생활윤리는 정직과 근면, 검소와 절약, 저축과 투자로 이어지는 생활정신이다. 개신교 신도들이 성경을 공부하고 경건한 생활을 훈련하는 내용이 바로 정직하게 살기, 근면하게 일하기, 검소한 마음가짐, 그리고 저축하며 투자하는 생활습관이라 하였다. 이런 생활윤리가 기초가 되어 자본주의라는 경제제도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베버 교수는 자신의 저서 “청교도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청교도의 이런 생활윤리를 어려서부터 실천하여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대표적인 실례로 벤자민 프랭크린을 들었다. 벤자민은 집안이 가난하여 학교라고는 일년 밖에 다니지 못하였다. 그러나 철저한 개신교 신도였던 부모가 성경적인 생활윤리를 어린 시절부터 몸에 익히게 하였다. 그러한 생활윤리가 몸으로 체득(體得)되어 프랭크린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2009.12.14. 김진홍 목사 묵상집에서)

지금 우리들에게도 핵심적인 삶의 문제는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 어떤 배경을 지녔느냐”가 아니다. “어떤 가치관과 인생관을 세우고 어떻게 이를 실천하며 살았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이는 본인의 인생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에 좋은 영향을 준다. 이를 향한 바른 조기교육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2012. 8. 7.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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