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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양인재론[養人才論]
날짜 2012-09-06 16:39:53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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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인재론[養人才論]

 

한포재 이건명 선생은 귀양살이 중에도 나라의 발전에 역군이 될 人才像을 그리며 이를 찾을 방안을 생각하였다.

 

아래는 이건명 선생의 한포재집에 나오는 “그물손질과 정치”라는 글이다.

 

1. 그물손질과 정치 ~ 한포재 이건명 선생

 

이건명 지음

박소동 번역

 

정원홍(鄭元鴻)군은 내가 귀양살이할 때 같이 지낸 사람이다. 그는 그물 손질을 잘하였다. 해어진 그물을 잘 손질해서 날마다 고기를 잡았지만 언제나 성하여 새 그물 같았다. 그 덕에 나는 조석으로 생선을 먹을 수가 있었고, 따라서 반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정군은 매일같이 그물을 손질하고 고기를 잡곤 하였지만 힘들어하지 않았다. 나는 그 일을 다른 노비들에게 대신 시켜 보았다. 하지만 제대로 해내는 자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정군에게

 

"그물 손질은 아무나 해낼 수 없는 특별한 방도가 있는 것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정군은,

 

"미련한 노비는 해낼 수 없는 일입니다. 그물이란 본디 벼리〔網〕와 코〔目〕가 있는데, 벼리는 코가 없으면 쓸모가 없고, 코는 벼리가 있어야만 펼쳐지는 것입니다. 벼리와 코가 잘 엮어지고 가닥가닥이 엉키지 않아야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그물을 처음 만들 때에 맨먼저 벼리를 준비하고 거기에다 코를 엮는데, 가닥가닥이 정연하여 헝클어지지 않도록 합니다. 그러나 모든 물건은 오래되면 망가지게 마련인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게나 고기들이 물어뜯고, 좀이나 쥐가 갉아서, 처음에는 그물코가 터지고 나중에는 벼리까지 끓어지게 됩니다. 그러한 그물로 고기를 잡을라치면 마치 깨진 동이에 물붓기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그리고 여기저기 너덜너덜 해져서 손질을 하기가 어렵게 되지요.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통상 버릴 때가 되었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왜 손질할 수가 없겠습니까? 저는 그 해진 그물을 가지고 돌아와서 바닥에다 펄쳐 놓고 해어진 부분을 자세히 살펴봅니다. 조바심 내거나 신경질 부리지 않고 끈기를 가지고 부지런히 수선을 합니다. 제일 먼저 벼리를 손질하고, 그 다음 코를 손질합니다. 끊긴 벼리는 잇고, 터진 코는 깁는데, 며칠 안 돼서 새 그물 같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버리라고 말했던 사람들은 모두, 헌 것을 고쳐서 새롭게 만든 것인 줄은 알지만, 골똘한 생각과 매우 부지런한 노력이 필요하였다는 것까지는 모릅니다.

 

만일 버리라는 말을 듣고 손질하지 않았다면 이 그물은 이미 쓸모없이 버려졌을 것입니다. 아니면 설사 손질하고자 하더라도 미련한 종놈에게 맡긴다면, 벼리와 코의 순서가 뒤죽박죽 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손질하려다가 도리어 헝클어놓게 되는 것이니, 이익을 보려다가 도리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될 것이 뻔합니다. 이후로는 잘 사용하고 잘 간수해서, 해어진 곳이 생기면 바로바로 손질하고, 어리석은 종놈이 헝클어 놓는 일이 없게 한다면, 오래도록 성하게 사용할 수 있을 터이니 무슨 걱정할 일이 있겠습니까?"하였다.

 

나는 그의 말을 자세히 다 들은 뒤에 한숨을 쉬고 탄식하면서 이르기를, "자네의 그 말은 참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이가 알아야 할 내용이다."하였다.

 

아! 벼리는 끊기고 코는 엉키어서 온갖 것이 해이되어 해어진 그물과도 같은 이 말세임에랴!

 

끊기고 엉킨 벼리와 코를 보고 모른체 버려두고 어찌해 볼 수가 없다고 하지 않는 이가 몇이나 되며, 어리석은 종놈에게 맡겨 그르치게 하여 이익을 보려다가 도리어 손해를 당하지 않는 이가 몇이나 되던가?

 

아! 어떻게 하면, 정군과 같이 골똘한 연구와 여유 있고 침착한 손질로, 조바심 내거나 신경질 부리지 않고, 선후를 잘 알아 처리하여 간단하게 정돈해 내는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날마다 부지런히 일하면서도 힘들어하지 않고 언제나 완전함을 유지하여 망가지지 않도록 하는 그런 인물을 얻을 수가 있을까? 아!.....

 

(출처 : 한국민족문화추진위원회 국역연수원교양강좌 자료)

 

 

2. 백강 이경여 선생의 養人才論

 

백강 이경여 선생은 효종대왕에게 인재양성에 관하여 아래와 같이 상언하였다.

 

이른바 인재를 기른다[養人才]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기재예장(杞梓豫章)같은 훌륭한 재목들은 하루에 자라는 것이 아닌데 언덕에는 송백(松柏)이 없고 근교에는 미목(美木)이 없으니, 가꾸어 기르지 않으면 어떻게 동량(棟樑)이 될 만한 것을 성취하겠습니까. 천 그루 큰 재목은 갑자기 가져올 수 있는 것이 아닌데 큰 집이 무너지려 할 때에 버틸 만한 나무가 없어서 썩은 그루 약한 들보가 번번이 나라의 일을 망치니, 사직을 위하여 멀리 염려하는 자라면 어찌 인재를 미리 길러서 이 일을 담당하게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 문장은 하나의 작은 기예일 뿐이나, 선조(宣祖) 때에 뭇 인재를 미리 길러서 마침내 그 힘을 얻었는데, 중흥(中興)의 큰 공은 사명(辭命)이 그 반을 차지하였습니다. 전일과 같이 호당(湖堂)의 설치를 청하는 것은 본디 오늘날의 급선무가 아닌 줄 압니다마는, 문풍(文風)을 격려하여 일으키면 반드시 도움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석사(碩士)·굉유(宏儒)로 말하면 뒷날 장상(將相)이 될 그릇이니, 더욱 널리 찾아 두루 시험하여 과연 남들보다 나은 조행이 있고 월등한 재능이 있다면 기량이 빼어난 것을 깊이 인정하여 보전하여 기르고 완전하게 보호해야 할 것입니다. 선조 때의 이항복(李恒福)·이덕형(李德馨)·신흠(申欽)·이정귀(李廷龜) 등은 다 성상의 마음으로 간택하여 낭서(郞署)에 발탁하였습니다. 평소에 그 사람들을 알지 못했다면 변란에 임하여 어떻게 효용(効用)할 수 있었겠습니까. 또 선조 초년으로 말하면 김우옹(金宇顒)·유성룡(柳成龍)은 다 영남의 선비이고 박순(朴淳)·정철(鄭澈)은 다 호중(湖中)에서 나왔으며, 그 나머지는 이루 다 적을 수 없으나 모두 초야의 소원한 선비로서 모두 일대(一代)의 고관(高官)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호(湖) 령(嶺)의 선비가 조관(朝官) 명부의 높은 자리에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명문(名門) 우족(右族)이라고 하여 반드시 다 어질다고 할 수 없듯이 초야의 소원하고 미천한 자라고 하여 어찌 다 재능이 없겠습니까. 어진 자라면 누구든 벼슬시켜야 할 것인데, 어찌 원근을 가리겠습니까. 예전과 지금을 견주어 볼 때 그저 더욱 개탄할 따름입니다.

 

또, 신이 삼수(三水)에 있을 때에 육진(六鎭) 사람으로서 변장(邊將)이 된 자를 보니, 궁마(弓馬)에 익숙하고 기력이 씩씩하여 뇌물을 바쳐 선발된 장수와 같지 않았습니다. 신이 보지 못한 것이 또한 어찌 한정이 있겠습니까. 옛말에 산서(山西)에서 장수가 난다는 것이 거짓말이 아닐 듯합니다. 각도의 감사를 시켜 마음을 다하여 찾아서 아뢰게 하고 전선(銓選)을 맡은 관원이 듣고 본 바를 참고해서 등용하여 인재를 버려두었다는 한탄이 없게 하고 사방의 인심을 위로해야 할 것입니다. 서북(西北)의 무사(武士)는 본도(本道)를 시켜 먼저 궁마를 시험하고 다음에 인물을 보아 등급을 매겨 보고하며, 금려(禁旅)에 편성하여 예속시키고 재능에 따라 임용하였다가, 과연 특이한 재능이 무리에서 뛰어나면 곤수의 부월이나 변장의 병부를 맡긴들 어찌 안 될 것이 있겠습니까.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감사는 수령의 벼리[綱]이다.’ 하였습니다. 반드시 명성이 평소에 나타나고 재국(才局)이 남보다 뛰어난 자를 얻어야 이 직임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묘당(廟堂)과 전조(銓曹)가 함께 의논하여 팔도의 방백(方伯)을 크건 작건 마땅한 사람을 얻도록 힘쓰라고 거듭 밝혀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묘당이 한 감사를 택하여 한 도가 절로 맑아질 것입니다. 신은 본디 감식안이 없으므로 전후에 선비를 천거하라는 명이 있을 때에 한두 집안의 행실만으로 우러러 명지(明旨)에 답하였습니다. 삼가 살피건대 이응시(李應蓍)는 평소에 정직하다는 명성이 드러났으니, 한번의 과실이 어찌 방해되겠습니까. 윤문거(尹文擧)는 청렴을 스스로 지키며 일찍이 경력도 있는데 법을 지키고 굽히지 않습니다. 다만 고요한 것을 지키고 물러가기를 좋아하여 교유하지 않으므로 사람들이 절로 알지 못하는데, 그 알려지지 않은 것이 더욱 취할 만한 점입니다. 두 사람은 다 죄적(罪籍)에 들어 있으므로 쉽사리 의논하기는 어려울 듯하나 인재를 찾는 이때에 두 신하와 같은 자는 실로 얻기 쉽지 않기에 감히 이처럼 외람되게 아룁니다.

 

【조선왕조실록, 태백산사고본】~ 효종 11권, 4년(1653) 7월 2일(을축) 영중추부사 이경여가 올린 ‘재변을 이겨내는데 힘써야할 21항의 상차문’ 중에서

 

3. 영적빈곤을 극복해갈 인재

 

오늘날 우리들은 물질적으로는 지난날과는 비교할 수 없는 풍요로운 시대라고 할 수 있게 되었으나, 마음이 황폐화된 국민들의 실질적인 행복지수는 매우 낮고, 쾌락과 탐욕에 쉽게 물들며 온갖 사회악과 범죄가 난무하고 있다.

 

이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영적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는 ‘영적 상실의 시대’, ‘영혼이 굶주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데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연유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간과되기 쉬운 “영적빈곤을 벗어날 프로그램 개발과 실천해갈 인재”의 육성에 특히 힘써 나가야할 때라는 생각이다.

 

 

1) 靈的喪失의 시대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요한계시록 3장 17절)

 

오늘의 시대는 요한계시록 3장에 등장하는 라오디게아 교회와 닮은 점이 많다. 이 시대가 화려한 미래를 꿈꾸며 스스로 부요하다고 여기고 있지만 사람들의 내면의 세계는 곤고하고 헐벗고 가난하고 눈멀어 있다. 바로 영적인 빈곤의 상태이다. 모두가 영적인 상실로 인하여 고통당하고 있다.

 

지난 20세기에는 지구의 반쪽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세계의 대안(代案 Alternative),이라 여기고 찬양하였다. 그런 시대에 분명한 목소리로 “아니요”하며 살았던 사람으로 러시아의 반체제 인사 솔제니친이 있다. 그가 1978년 하버드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다음같이 말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희망을 정치적인 사회적인 개혁에 두어왔다. 그러나 결국 깨달은 것은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 즉 영적인 생활을 상실하였다는 것이다.”

 

20세기에 사람들이 정치와 사회의 변화에 희망을 걸고 답을 찾아 노력하였다면 지금 21세기에 들어와서는 기술과 정보혁명에 희망을 걸고 그 속에서 답을 찾고 있다. 그래서 솔제니친 식으로 표현하자면 다음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희망을 기술의 발전과 정보혁명의 미래에 두고 있다. 그러나 결국 깨닫게 될 것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 즉 우리의 영적인 생활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다.”

 

2) 靈魂이 굶주린 시대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아모스 8장 11절)

 

문명이 발전하고 기술이 발전하여 나갈수록 사람들의 내면세계가 날로 텅 비어 간다는 사실이다. 현대 문화의 모습이 이를 입증하여 준다. 영화 노래 드라마 같은 현대예술들이 공허하고 텅빈 내면세계를 드러내 주고 있다. 이점에 대하여 마더 테레사가 『일일 묵상집』에서 다음같이 썼다.

 

“서방 세계의 정신적 빈곤은 인도 국민의 물질적 빈곤보다 훨씬 더 심합니다. 서방 세계에는 지독한 고립감과 자신의 무가치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수백만 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아무도 사랑해 줄 사람이 없는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물질적인 의미에서 굶주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의미로 굶주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들이 잃어버린 것은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입니다.”

 

우리들이 다시 되새겨 볼 필요가 있는 마더 테레사의 말이다. 성경이 일러 주는 대로 백성들의 굶주림이 배고픈 굶주림이 아니라 ‘영혼고픔’이요 ‘사랑고픔’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굶주림이다. 오늘날 서구사회든 동양사회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든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의 근본 원인은 영혼이 굶주리고 진리의 말씀의 굶주림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이다. (김 진 홍 목사)

 

위에서 백강 이경여 선생이 효종대왕에게 “문풍(文風)”을 격려해 나갈 것은 말씀한 것은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된다.

 

또 백강 선생은 “기재예장(杞梓豫章)같은 훌륭한 재목들은 하루에 자라는 것이 아닌데 언덕에는 송백(松柏)이 없고 근교에는 미목(美木)이 없으니, 가꾸어 기르지 않으면 어떻게 동량(棟樑)이 될 만한 것을 성취하겠습니까.”라고 말씀하여, 인재들을 미리 준비하여 기를 것을 말하였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국민일반의 정신을 高揚시켜갈 프로그램을 세우고 실천해갈 인재들을 양성해 가야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천박하고 물질만능의 정신문화의 토양에서는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실질적인 선진국을 이룰 수는 없기 때문이다.

 

2012. 9. 6.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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