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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공(功)을 이루면 물러나야
날짜 2012-11-14 14:33:30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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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功)을 이루면 물러나야

 

노자의 ‘도덕경’ 九장에 “갖고 있는 것을 가득 채우려고 하는 것은 채우지 않음만 같지 못하고, 두들겨 날카롭게 간 칼은 오래 보존 할 수 없으며, 금과 옥이 집에 가득하면 능히 지킬 수 없고, 부(富)하고 귀(貴)하게 되면 허물을 스스로 끌어드리게 되는니, 功을 이루면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道)이다.”라고 하였다.

 

‘성경, 전도서’에 지혜의 왕 솔로몬이 이르기를 “사람이면 누구나 경쟁심이 있어서 남보다 더 얻으려고 기를 쓰는 것은 다 아는 바이나, 이 또한 바람을 잡듯 헛된 일이다. 한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양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으려는 것보다 낫다. (4장4,6절)”고 하였다.

 

공(功)을 세워 높은 지위에 오름에 있어 자의든 타의든 지나치게 빠르게 오르는 것은 오히려 나중에는 위해(危害)를 유발하곤 한다.

 

조선조 숙종대왕은 백강 이경여 선생의 손자요 功이 컷던 포암 이사명(李師命) 선생을 재주와 명망(名望)과 훈공(勳功)에서 현저하다고 보아 크게 사랑하시고 신하들의 말을 경청하기보다는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남달리 빠르게 두루 요직에 발탁하였다.

 

그러나 남의 눈에 두드러진 포암 선생은 제대로 성숙하기도 전에 병조판서 재직 중에 남인들이 책동한 기사환국의 피해자가 되어 너무 일찍 돌아가고 말았다. 물론 훗날 신원(伸寃) 되었으나, 당초에 서서히 승진하였더라면 더욱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기셨을 터이다.

 

이에 대해 우암 송시열 선생이 먼저 숙종대왕에게 유의하도록 말씀하고 숙종대왕이 답한 대목을 아래에 소개하는 바, 오늘날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되겠다.

 

숙종7년(1681년) 2월 20일, 송시열이 이사명의 녹훈(錄勳)에 관해 아뢰다.

 

영부사(領府事) 송시열(宋時烈)이 차자(箚子)를 올렸는데,

 

“신이 가만히 살펴보건대, 전하께서는 타고나신 성질(聖質)이 월등하게 총명(聰明)하시니 이와 같으면 반드시 남을 업신여기고 스스로 만족해 하는 병통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사명(李師命)의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스스로 전하께서 이사명(李師命)을 사랑하셔서 발탁하여 녹훈(錄勳)하신 이래 많은 사람의 비방이 산처럼 쌓여 그칠 때가 없었으나, 오로지 전하께서만 듣지 못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신이 일찍이 탑전(榻前)에서 청관(淸官)으로 제수하여 많은 사람의 분노를 격발(激發)시킬 필요가 없다고 하였는데, 이는 다만 이사명(李師命)을 불안(不安)하지 않게 할 뿐 아니라, 또한 사리(事理)로서도 마땅한 것이었습니다. 호서(湖西)의 감사(監司)로 제수하는 명(命)이 있었을 때에는 말하는 자들이 ‘감사(監司)는 바로 외대(外臺)이므로, 이러한 사람에게 맡길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신이 또 개차(改差)하여 군국(軍國)의 일로써 제수하도록 청하였던 것이니, 이는 그 재주를 두루 시험해 보고자 하는 것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의 의론을〉 진정(鎭定)시키고자 하는 방법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전하께서 기용해서 은대(銀臺)에 두시니, 말들이 분분함이 또 전보다 심해져서 너그럽게 논하던 사람들로 아울러 비방[譏謗]하고 있습니다. 신이 가만히 이로써 살펴보건대, 전하께서는 노신(老臣)의 말에 유의(留意)하지 아니하시니, 이는 대개 장차 여러 사람의 의론이 있을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고 힘써 이기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이사명(李師命)이 출사(出仕)하는 것이 비록 엄명(嚴命)에 핍박(逼迫)받았기 때문이라 하나, 또한 어떻게 스스로 그 마음에 편안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전하께서 부의(浮議)를 진정시키고자 한 것이었으나, 도리어 격화(激化)시킨 것이 되었으며, 이사명을 사랑하시고자 하신 것이 도리어 병들게 한 것입니다. 지금 군민(軍民)의 변통(變通)해야 할 일이 바야흐로 급하니, 우선 한가한 국(局)에 두어 계책[謨猷]를 다하게 한 후에 천천히 그 직임(職任)을 의논하게 하신다면, 전하의 건도(乾道)와 백성을 보살피는 도리에 만분의 일이나마 도움이 있을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답하기를,

 

“ ··· 이사명(李師命)의 일을 생각해 보건대, 오히려 그렇지 아니한 바가 있으니, 인재(人才)가 적은 것이 오늘날과 같음이 없었으므로, 비록 신분이 미천한 사람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진실로 재주에 따라 견발(甄拔)하는 데 겨를이 없어야 마땅한데, 하물며 이사명과 같이 재주·명망(名望)·훈공(勳功)이 현저한 자에 있어서이겠는가? 지금 만약 한산직(閑散職)에 두어 이사명으로 하여금 그 재주를 펴지 못하게 한다면, 장차 당초에 등용(登用)한 본의(本意)에도 어긋나는 바가 있으니, 경은 심사 숙고(深思熟考)하도록 하라. ··· ”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태백산사고본】 [註]은대(銀臺) : 승정원(承政院)

 

‘채근담’에도 이르기를 “일마다 다소 여유를 두어 다하지 않는 뜻을 지니면, 곧 조물주도 나를 꺼려하지 못할 것이고 귀신도 나를 해치지 못한다. 만약에 일이 꼭 가득차기를 바라고 공(功)이 꼭 채워지기를 구한다면, 안에서 변(變)이 일어나지 않으면 밖의 우환(憂患)을 부르게 된다.”고 하였다.

 

2012.11.14.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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