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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람직한 교우(交友)관계
날짜 2012-11-21 16:42:16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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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교우(交友)관계

 

“군자의 사귐은 물과 같이 담담하다.[君子之交淡如水]”라는 말이 있다. 《명심보감》에 나오는 말이다. “소인의 사귐은 단술과 같다.[小人之交甘若醴]”라는 말이 뒤에 이어져 대조를 이룬다. 즉, 벗을 물맛같이 담담하게 道를 추구하고 신뢰하며 사귀는 경우에는 좋은 교우관계를 오래 잘 이어가지만, 한때 달콤함을 추구하여 사귀는 경우에는 얼마 못가서 무너진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고 해석된다.

 

이러한 군자의 교우관계를 보여주는 예를 조선 중기의 碩學 서하 이민서 선생과 서포 김만중 선생의 사귐에서도 찾아 볼 수 있겠다.

 

두 분의 나이는 서하선생이 좀 많으나 두 분의 경연(經筵)에서 대화 중 의견이 달라 논쟁한 기록이 서하집, 서포집에 종종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詩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고시선(古詩選)>을 같이 엮어내기도 했다.

 

이후 서하선생은 지병을 앓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광주 목사로 부임하게 된다. 두 분은 서로 詩를 주고받으며 멀리 떨어져 있는 공간을 뛰어넘어 우정을 나누었다. 벗의 건강을 염려하고, 벗을 마주대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토로하면서도 한편으로 목민관의 의무를 강조해마지 않는 서포선생의 詩에 화답해, 서하선생은 답시(答詩)와 함께 부채 하나를 넣어 보낸다.

 

아래는 이에 대한 서포선생의 답시이다.

 

客從南海至 남해에서 온 손님

遺我一書札 서찰 한 통 남기네.

開緘讀未竟 봉함 뜯고 채 다 읽기도 전

已覺凉 發 벌써 느껴지네, 산들산들 부는 바람.

溪藤有秀色 부채종이는 고운 빛 띠었고

湘竹有苦節 부챗살 상죽은 굳은 절개 지녔네.

持之比故人 부채를 가지고 벗에 비기며

慰此心如渴 목마른 이 마음 위로하노라.

 

서하선생은 부채 하나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 보냈고, 서포선생은 부채를 벗인 듯 여기며 그가 부채를 보낸 까닭을 생각했을 터이다. 부채는 단순한 '서하선생'이 아니라, 두 사람이 같이 지낼 때 토론하던 그들의 '理想', 고결한 선비정신이 아니었을까?

 

서포선생이 받은 부챗살에서 서하 선생의 절개를 읽는 두 분의 사이는 같은 이상을 추구하고 신뢰하며 '토론'할 수 있는 '벗'이었다고 하겠다. 이는 두 분의 그 후의 생애에서 보여주는 忠節의 삶과 그 후대의 두터운 교분에서도 나타난다. 서하 선생은 백강 이경여 선생의 아드님이며 서포선생은 사계 김장생 선생의 손자로 양 가문은 조선의 대표적 명문을 이루는 충절의 집안을 이루어 갔고 많은 婚事도 이루었다.

 

오늘날 현대사회에서도 이러한 바람직한 理想의 공유와 신뢰의 벗을 그려보건만 이는 매우 드문 것 같다. 이를 묘사한 글이 있어 소개한다.

 

“우리의 현대사회는 그전에 그리도 중시하던 문벌과 협동의 소박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서 개인의 능력이나 창조력을 문벌보다 더 중요시하는 시대로 되어 버린 것이다. 따라서 친구나 다른 사회인들과의 교우관계도 도덕적인 연결로서 이루어지는 대신에 자기의 목적에 의해서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결합하게 되었다. ····· 친구란 무엇인가? 우정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이용과 착취의 대상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누구하나 진실한 의미에서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없구나 하는 고독감에 사로 잡혀서 무력감에 번민하는 존재로 변모 되어 버렸다.” (최신해, 청량리뇌병원장의 ‘불안’중에서)

 

다시 말하면 오늘날 우리들은 벗다운 벗은 존재하기 매우 어려운 삭막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개인 心性의 황폐화를 유발하고 나아가 사회악 내지는 사회범죄들을 촉발하는 動因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가끔 언론에 학교 동창을 이용한 범죄가 보도되곤 하는데, 과연 우리사회에 수많은 동창회, 친목회 등이 구성원과 사회에 順機能만을 하고 있는 것인가 회의감이 든다.

 

벗의 관계도 큰 테두리에서 역시 인간관계인 만큼,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는 관계를 회복해야만 하겠다는 생각이다.

 

맹자는 벗은 그 사람의 지위 등이 아닌 “德”을 사귀는 것이라고 했고, 성경에서는 ”변함없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 친구이며, (진실한)친구의 아픈 책망은 忠直으로 말미암은 것“(잠언 17:7, 27:6)“이라고 하였다. 한편, 佛家에는 “맹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악한 벗을 두려워하라. 맹수는 다만 몸을 상하게 하지만, 악한 벗은 마음을 파멸시키기 때문이다. (아함경)”라는 말이 있다. 즉, 친구는 일생에 걸쳐 道와 德을 나누고 서로 신뢰하고 사랑 할 수 있는 친구를 가려서 사귀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Karl Jaspers)는 “실존적 교제”라는 말을 하였는데 그 뜻은 ‘순수한 魂과 魂이 아무런 利權이나 거래관계 없이 깨끗하고 투명하게 만남’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무런 요구도 이권도 없이 마냥 순수한 혼과 혼의 만남은 서로를 치유하여주고 모두를 행복으로 이끌어준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交友關係도 이러한 진리의 틀 속으로 돌아가서 공자가 말한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論語“라는 경지에 이를 수 있어야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心性과 인격의 계발이 가장 주요한 교육의 목표로 돌아와 주어야만 하겠다는 생각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도 교육의 끝은 국민의 심성계발로, 이것이 이루어지면 우리나라가 크게 발전할 것이란 취지의 말을 하였는데, 매우 공감하는 바이다.

 

2012.11.21.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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