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참여마당 > 참여게시판
 
 
 
제목  뜻을 세움(立志)과 기도(祈禱)
날짜 2012-12-17 17:19:48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170
첨부파일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뜻을 세움(立志)과 기도(祈禱)

 

백강 이경여 선생은 인조대왕에게 政事에 임함에 있어 먼저 뜻을 세우고 학문을 부지런히 하여 격물치지(格物致知)와 성의정심(誠意正心)의 근본을 실제로 깨닫고 이를 실천할 것을 아래와 같이 上言하였다.

 

“인조 36권, 16년(1638 무인) 5월 16일 ~ 주강에 《시전》을 강하고 뜻을 세우는 일을 논의하다

 

주강에 《시전》을 강하였다. 강이 끝나고 나서 참찬관 이경여(李敬輿)가 아뢰기를,

 

“오늘날의 급무는 오로지 요역(徭役)과 부세(賦稅)를 가볍게 하여 백성들을 쉬게 하는 데 있습니다. 반드시 성지(聖志)를 굳게 정하시어 밖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아야 만사의 근본이 세워질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뜻을 세우는 것이 물론 제일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범연히 뜻을 세우는 것으로 말해서는 안 될 듯하다.”

 

하자, 경여가 아뢰기를,

 

“아무리 평범한 일이라도 만약 뜻이 세워지지 않으면 끝내 이룰 수가 없습니다. 뜻을 세우는 요체는 학문을 부지런히 하는 데 있습니다. 전하께서 경연을 열고 강학(講學)하신 지 오래되었는데, 격물치지(格物致知)와 성의정심(誠意正心)의 근본을 실지로 깨닫지 못하신 듯합니다. 삼가 성상의 말씀과 하는 일을 보면 치우친 마음이 없지 않아 군신 사이에 성의가 서로 미덥지 못하니 모든 일이 번다해져 날로 망해가는 것은 괴이할 것이 없는 일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식견이 밝지 못해 그러한 것을 면치 못하니, 경의 말이 옳다. 마땅히 유념하겠다.”[조선왕조실록 태백산사고본]“

 

위에서 뜻을 세운다(立志)고 함은 스스로 성현들의 학문을 힘써 익혀서 성현들의 가르침인 격물치지(格物致知)와 성의정심(誠意正心)의 근본을 체득하게 되는 것을 말함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주목되는 것은, 예수교에서는 흔히 기도(Prayer)한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자기의 바라는 바를 전능자에게 아뢰는 것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으나, 본질적으로 기도는 스스로 精進하여 전능자인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체득하여 실천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그 본령이라는 것이다.

 

“기도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다. 기도는 Speaking이 아니라 Listening이다. 기도가 우리가 가지기를 원하고 누리기를 원하는 것들을 하나님께 주시라고 말하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니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듣는 것이 기도이다. 예수께서 기도의 이에 대하여 본을 보이신 부분이 있다. 감람산에서의 마지막 날 밤에 드린 기도의 경우이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랐더니...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누가복음 22장 39~42절)

 

물론 기도는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기도의 끝은 언제나 듣는 것으로 마쳐야 한다. “하나님이시여 나의 삶, 나의 직업, 나의 재능으로 무엇을 이루시기를 원하시나이까?”하고 하나님의 뜻하시는 바를 듣는 것으로 끝나는 기도여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에 자신의 삶을 헌신할 수 있는 기도로 나아가야 한다.

 

숱한 사람들이 기도생활을 하다가 기도를 그만두게 되는 것이 기도로부터 그릇된 기대를 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기도는 기도의 이러한 본질에 따라 우리들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듣는 데에 온 정성을 기울이는 기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 김진홍 목사. 2010. 9. 5.“

 

 

이렇게 놓고 보면, 백강 이경여 선생이 말한 “입지”라는 의미는 예수교에서 말하는 “기도”의 의미와 서로 상통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모두 읽고 듣고 묵상하고 깨우쳐서 진리의 길, 바른 길로 나아가라는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율곡 이이 선생은 그의 “격몽요결(擊蒙要訣)” 제1장 입지(立志)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처음 배우는 이는 먼저 뜻을 세우되 반드시 성인(聖人)이 될 것을 스스로 기약해야 하며, 조금이라도 자기 자신을 별 볼 일 없게 여겨 물러나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일반 사람[衆人]도 그 본성은 성인과 똑같다. ~ 중 략 ~

 

 

항상 스스로 분발(奮發)해서, 사람의 본성은 지혜로운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구별이 없다. 그런데 어찌하여 성인은 유독 성인이 되고, 나는 유독 평범한 사람이 되는가. 이는 진실로 뜻이 서지 못하고 앎이 분명치 못하고, 행함이 독실하지 못해서이다. 뜻을 세우는 것과 밝게 아는 것과 독실하게 행하는 것 모두가 나 자신에게 달려 있으니, 어찌 다른 데서 구하겠는가. 안연이 말하기를, “순(舜)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순처럼 행하면 순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였는데, 나도 안연이 순처럼 되기를 바란 것으로 법도로 삼아야겠다고 여겨야 한다.

 

사람의 용모는 추한 것을 예쁘게 바꿀 수 없고, 체력은 약한 것을 강하게 할 수 없고, 키가 작은 것을 크게 할 수 없으니, 이는 모두 정해진 분수로 고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심지(心志)는 어리석은 것을 지혜롭게 고칠 수 있고, 못난 것을 현명하게 고칠 수 있으니, 이것은 텅 비어 신령스러운 마음이 타고난 분수에 구애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것보다 아름다운 것이 없고 어진 것보다 귀한 것이 없는데, 어찌하여 어질고 지혜롭게 되지 못하여, 하늘이 부여한 본성(本性)을 망치는가. 사람이 이런 뜻을 가지고,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면 도(道)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이 스스로 뜻을 세웠다고[立志] 하면서도 노력하지 않고, 미적거리며 미루는 것은 뜻을 세웠노라고 말만 하지 실제로는 성의껏 배우겠다는 마음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진실로 내가 학문하는 데 뜻을 둔다면, 착한 일을 하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라서 하고자 하면 된다. 그러니 어찌 남에게서 얻으려 하며 후일을 기다릴 필요가 있겠는가. 뜻을 세우는 것이 귀한 이유는 공부에 착수해서는 혹시라도 미치지 못할까 염려하고 한 생각도 여기서 물러서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만일 뜻이 성실하지 못한 채로 그럭저럭 시일만 보낸다면 늙어 죽을 때가 된다 한들 무슨 성취가 있겠는가.“

 

오늘날 우리들은 성현들의 경전과 말씀을 배우고 익혀 立志의 길로 나아가든, 또한 성경이 알려주는 진리를 배우며 기도하며 이를 심화시켜 나아가든, 여하튼 부지런히 진리를 듣고 배우고 실천하여 참되고 바른 인간의 길로 나아가 진정한 福을 누리고 이웃에도 그 福을 나누는 공부에 진력하여 나가야겠다.

 

그리하지 못한다면,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없고 늙어 후회할 뿐이라는 말이며, 특히 성경에서는 來世에 천국에 이르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지고 만다는 말이다.

 

이러한 연유로, 나는 ‘세종대왕의 사상과 정신’ 그리고 ‘청교도 정신(protestantism)’을 내가 본 받아야할 근본으로 놓고 함께 배워 나아가 시너지 효과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2012.12.17. 이 주 관

 
번호 작성자 제목 등록일 조회수
212 이주관 하늘이 내리는 재앙(災殃) 2013-04-03 1055
211 이주관 노(怒)함과 온유(溫柔)함 2013-03-25 1200
210 이주관 원대(遠大)한 꿈 2013-03-11 1153
209 이주관 허주(虛舟)의 허상(虛想) 2013-02-21 1212
208 이주관 세종대왕 정신과 국민정신 계발(啓發) 2013-02-07 955
207 이주관 가지 않은 길 2013-02-04 1057
206 이주관 탐심(貪心)의 극복(克服) 2013-01-24 941
205 이주관 安分樂道 (안분낙도) 2013-01-21 1226
204 이주관 人格의 涵養을 爲한 敎育 2013-01-17 1093
203 이주관 공경(恭敬)함으로 살아가기 2013-01-12 1206
202 이주관 낙(樂)과 우(憂)를 넘어서려면 2012-12-27 1093
201 이주관 뜻을 세움(立志)과 기도(祈禱) 2012-12-17 1171
200 이주관 동학운동(東學運動)과 백성사랑 2012-12-04 1055
199 이주관 덕(德)의 적(賊)” ~ 僞善者, 향원(鄕愿)에... 2012-11-27 1367
198 이주관 바람직한 교우(交友)관계 2012-11-21 15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