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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人格의 涵養을 爲한 敎育
날짜 2013-01-17 15:38:37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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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格의 涵養을 爲한 敎育

 

후손들의 교육에 관련하여 가장 중요시해야 할 것은 건전한 시민으로서의 품성을 기르는 것 즉 바른 인격의 함양을 위한 교육이 세상살이가 요구하는 다른 기능적인 지식들의 축적에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는 우리 조상들이 추구해온 전래의 교육관과도 일치하는 것인데, 오늘날에 이르러 이점이 매우 경시되어 우리사회의 基底가 취약하게 되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 이러한 면을 잘 보여주는 白江 이경여 선생의 교육관을 소개하고 이어서 같은 맥락의 영국의 철학자 존 록크(John Locke)의 교육관을 아래에 소개하여 우리 스스로가 되새겨보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白江 선생은 1653. 7. 2.에 효종대왕에게 우리백성들의 교육의 진작을 위해 아래와 같은 말씀을 상차하였다.

 

이른바 교화를 밝힌다[明敎化]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전부터 나라를 세울 때에는 각각 한 나라의 규모가 있어서 조종(祖宗)이 이를 새로 세우고 자손이 이를 이어 지키는 법입니다. 하(夏)나라의 충(忠)과 상(商)나라의 질(質)과 주(周)나라의 문(文)과 서한(西漢)의 패도(霸道)와 동한(東漢)의 절의(節義)와 조송(趙宋)의 충후(忠厚)는 이것으로 비롯하여 이것으로 마쳤는데, 우리나라가 이제까지 유지한 까닭은 과연 어느 도(道)를 따라서 그런 것이겠습니까. 다만 명교(名敎)일 뿐입니다. 아, 천지가 크게 변하여 관상(冠裳)이 바뀌어 놓였으나 한 조각 우리 동방만이 의관(衣冠)을 보전하였으니, 어찌 관(冠)을 훼손하고 면(冕)을 찢어 구구한 명교를 아울러 못쓸 물건으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말하면 슬퍼서 다시 논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른바 교화라는 것은 인륜을 밝히기 위한 것입니다. 군신·부자·부부·붕우가 각각 그 도리를 다하면 망국(亡國)·패가(敗家)가 어디에서 생기겠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근년 이래로 가정의 더러운 일과 집안끼리 다투는 변과 상기(喪紀)의 문란이 이따금 사족(士族)에서 나온단 말입니까. 어찌 세교(世敎)가 쇠퇴하고 풍화(風化)가 밝지 않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너진 풍속을 새롭게 하는 것은 성명(聖明)께 달려 있으니, 예(禮)로 이끌고 형벌로 다스리는 일은 치우치거나 폐지할 수 없습니다. 또 학교의 정사(政事)는 소략하기가 또한 심하므로 동몽(童蒙)의 교양이 바르지 않아서 경박하고 사치한 것이 드디어 조장되고 세도(世道)가 점점 투박해져서 지도하는 방도를 잃었으니, 맑은 명망과 도타운 학문이 있는 선비를 얻어 성균(成均)의 직임을 맡겨 부박한 버릇을 통렬히 억제하고 오로지 실행을 숭상하게 하면 성취하는 보람이 반드시 적지 않을 것입니다.

 

 

삼가 살피건대, 오늘날의 풍류(風流)는 진대(晋代)와 같은 점이 있습니다. 술마시며 농담하고 다른 일은 다시 하지 않으며 예의 염치는 자신과 관계 없는 것으로 여기니, 표준을 세우는 임금의 자리에서 그 취향을 바로잡지 않으면 이미 대세가 글러진 것을 만회할 수 없을 듯합니다. 중외에 신칙하여 상중에 예를 다하게 하고, 효성 우애스럽고 화목하게 지내는 선비를 찾아 아뢰게 하여 특별히 장려하여 정표(旌表)하고 제직(除職)하며, 혹 슬픔을 잊고 풍속을 어겨 복상(服喪)을 삼가지 않고 더러운 짓을 하여 윤리를 어지럽히고 다투어서 우애하지 않는 무리가 있으면, 또한 적발하여 율문(律文)에 따라 처단해야 할 것입니다. ~중략~ 명관(名官)으로서 술에 빠져 직무를 폐기하거나 예법을 폐기하는 자는 타일러 경계하되 한결같이 세종(世宗) 때의 고사를 따라 두렵게 생각하고 고치게 한 뒤에 그래도 고치지 않는 자는 법사(法司)와 전조(銓曹)를 시켜 심한 자는 거론하여 탄핵하고 경한 자는 좌천시켜야 합니다. 수령(守令)으로서 읍비(邑婢)를 몰래 간통하고 이어서 데려온 자도 각도를 시켜 사실대로 아뢰게 하여 적당히 벌주어 선비의 풍습을 격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 풍속을 변화하는 데에 작은 보탬이 되지 않겠습니까.

 

 

위와 같이 교육이 인간들의 인격적 품성의 개발을 우선시해야한다는 영국의 철학자 존 록크(1632~1704)의 교육론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John Locke(1632~1704)는 영국 경험론 철학의 시조격인 사람이다. 그가 1695년에 교육에 관한 글을 출판하였다. ‘Some Thought about Education’란 제목의 이 책은 우리말로도 ‘존 로크의 교육론’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에 대하여 우리가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두 가지이다.

 

첫째는 300년 전에 써진 이 책이 아직도 영국교육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부 장관이 바뀔 때마다 변하는 오늘날 우리 교육 실정에 비하면 기적 같은 이야기이다.

 

둘째는 내용 중에 제1장의 제목이 체육에 관한 내용이다. 교육의 첫출발을 학생들의 체력증진에 두고 있다. 2장에서 19장까지는 人性교육에 관한 내용이다. 그리고 20장에 가서야 학습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런 순서가 중요한 것은 교육의 우선순위를 체, 덕, 지(體 德 知)에 두고 있는 점이다. 300년 전 로크가 주장한 순위를 따라 영국교육은 체육을 우선시하고 다음은 학생들의 인성을 높이는 덕육(德育)에 둔다. 그리고 공부는 세 번째 순위에 둔다. 지, 덕, 체의 순서로 교육하고 있는 우리와는 반대인 셈이다.

 

영국교육의 그런 순서의 대표적인 경우가 명문고교인 이튼스쿨의 경우이다. 이튼스쿨은 체육을 가장 중요시하고, 다음으로 학생들의 품성을 기르는 덕육에 이어 지식 교육은 맨 마지막에 둔다. 이튼스쿨은 고교임에도 지금도 군사교육시간을 정식과목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전쟁이 나면 이튼 출신들은 자원하여 최전선으로 출정하는 전통을 지키고 있다. 300여 년 전 로크에서 시작된 교육론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점을 우리가 깊이 되새겨 보아야 할 때이다 (2013-1-7 김진홍 목사).

 

오늘날에 이르러 인성교육의 컨텐츠(contents)는 위에서 白江 선생이 언급한 유교적 사상 일변도에서 더 나아가 더욱 심화 발전된 내용으로 진화되어 야할 것이나, 무엇보다 인격의 품성과 육체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했던 위의 말씀들에 더욱 깊이 통찰하여 우리들의 후손들에 대한 교육을 한 차원 높이 끌어올려야만 할 것이다.

 

성경(Bible)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成長에 관하여 유일하게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들의 후손에 대한 교육에 좋은 지침이 될 수가 있다. "예수는 몸과 지혜가 날로 자라면서 하느님과 사람의 총애를 더욱 많이 받게 되었다. And Jesus kept increasing in wisdom and stature, and in favor with God and men.~누가복음 2장52절" 즉, 예수 그리스도는 몸의 건강과 지혜 즉 훌륭한 인격적 품성이 날로 자라므로 하나님과 사람들의 총애를 더욱 많이 받게 되었다는 것으로, 이는 몸의 건강과 더불어 훌륭한 인격적 품성이 가장 중요한 교육방침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2013. 1.17.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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