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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지 않은 길
날짜 2013-02-04 13:50:16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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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

 

다가오는 인생의 길목 길목에서 어디로 나아가야할지 고민하는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詩를 소개한다.

 

두 갈래 길, 가지 않은 길

 

황금빛의 숲속에서 두 갈래의 길에 선 나,

유감스럽게도 홀로 길을 떠난 나그네는

두 길을 다 가볼 수가 없구나!

하나의 길이 덤불로 덮여서 굽어지는 지점까지

멀리 오래서서 나는 바라보았지.

 

그리고 나는 엇비슷하게 보이는 다른 길로 들어섰지,

아마도 풀이 보기 좋게 우거졌고

사람의 흔적이 적은 그 길이 내 마음에 들었나 보다.

하지만 두길 다 지나간 사람들의 잦은 발길로

비슷하게 밟힌 길이었으리라.

 

그날 아침엔 두길 다 똑같이 아직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낙엽으로 덮여있다.

아! 그날 나는 첫 번째 길은 후일에 가보기로 했지!

허나 한번 선택된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지기에

그 길로 다시 돌아오기란 불가능 하리라.

 

먼 훗날 나는 어디선가 깊은 한숨을 지으면서

이렇게 이야기하겠지:

숲속에서 두 갈래의 기로에 선 나는,

남들이 덜 지나간 길을 택했노라고,

그로 인해 내 인생의 아주 달라졌노라고.

 

The Road Not Taken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marked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선택을 연이어 하면서 나아가야한다. 이 선택들이 쌓여가며 우리들 각자의 인생의 모습이 결정되어 간다고 말할 수 있겠다.

 

위의 詩에서 작가는 남이 잘 가지 아니하는 힘들어 보이지만 가치 있고 보람 있는 길을 택하여 갈 것을 은연중에 선호하고 권유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백강 이경여 선생은 그의 맏아들 이민장 선생에게 모쪼록 육체의 욕망을 다스리고 心身을 닦아 君子의 길을 갈 것을 아래와 같이 간곡히 타일렀다.

 

“사람은 군자(君子)의 행동을 본받은 뒤에야 가위 사람이라 할 것이요 아들은 아들의 도리를 다한 뒤에야 가위 아들이라 할 것이다. 네 나이 열다섯이 지났는데도 학문(學文)이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니 아비의 가르침이 부족한 탓이니 너 역시 후회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없겠느냐? 지난 일은 말할 필요 없고 앞으로 오히려 따라갈 수 있으니 너는 지금부터 마음을 고쳐먹고,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고 의관(衣冠)을 정제하고 걸음걸이를 반듯이 하고 행동을 바르게 하고 손가짐을 단정히 하고 머리는 바르고 곱게 하며 앉음은 반듯이 앉으며 서있을 때는 꼿꼿이 하며 말은 적게 하며 예모(禮貌)는 반드시 공손해야 할 것이며 어버이를 섬기는 데는 반드시 그 정성을 다해야할 것이며 어른을 섬기는 데는 반드시 그 공경을 다해야 할 것이며 부인을 대할 때는 반드시 예(禮)로 대하고 실없는 행동을 보이지 말 것이며 아우를 사랑하기를 우애(友愛)로서 하고 다투지 말 것이며 일가 간에 돈독(敦篤), 화목(和睦)하되 내외(內外)를 잘 할 것이며 재물(財物)보다 의리(義理)를 좋아하고 남의 어려운 것을 잘 헤아리고 글을 읽으면 반드시 그 뜻을 궁구(窮究)하고 글자마다 강구(講究)해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아니하고 부지런히 꾸준히 이 계훈(戒訓)을 힘써 나아가면, 비록 옛 군자(君子)만은 못하여도 혹여 나쁜 일을 하지는 아나 할 것이다.

 

 

 

 

선(善)한 생각이 비록 낫다가도 의지(意志)가 굳지 못하면 마침내 이루게 되지 못하니 정신을 가다듬고 뜻의 기개(氣槪)를 정립(定立)하여, 이 훈계를 저버리지 말라. ~중략~ 원컨대 너는 마음을 굳게 먹고 기운을 내어 일어서서 우뚝 서고 깊이 반성(反省)하고 용감(勇敢)하게 나가서 전에 버릇을 일신(一新)하여 버리고 용렬(庸劣)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 내가 편히 눈을 감을 것이다.“

 

 

아울러 백강상국은 효종대왕에게도 스스로 삼가서 君子의 道, 聖人의 道를 이루어 나라를 바르게 이끌어 갈 것을 아래와 같이 간곡히 상차(上箚)하였다.

 

효종 7년(1656 병신)3월 7일 영중추부사 이경여(李敬輿)가 상차하기를,

 

“하늘이 재앙을 내리는 것은 그 이유가 심원하여 알기 어려우니 어찌 감히 아무 재앙은 아무 일의 반응이라고 하겠으며, 온갖 일이 지극히 번잡한 것이니 또 어찌 잘잘못에 따라 낱낱이 열거할 수 있겠습니까. 신이 지난번 탑전에서 망령되이 임금의 마음은 정치를 하는 근본이 된다고 논하였는데, 이는 실로 늘상 입에 오르내리는 말로 성상께서도 반드시 사정에 어두운 말이라고 여겨 유의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중략~

 

삼가 예로부터 지금까지의 제왕(帝王)들을 보건대 이 도를 편안히 행하면 당(唐)·우(虞)가 되고 힘써 행하면 삼대(三代)가 되며 빌려 행하더라도 또한 한(漢)·당(唐)의 훌륭한 임금 정도는 되었습니다. 이와 상반되게 다른 길에 종사하면 허명(虛明)한 본체(本體)가 날로 어두워지고 간사한 길이 날로 열려 그 마음에서 발하여 그 정사에 해를 끼쳤습니다. 이에 끝내는 전도되고 사리에 어긋나 하는 일마다 하늘의 법칙을 어기는 데까지 이르러, 백성들은 괴로움을 쌓아가고 곧은 선비는 자취를 감추며 상하가 서로 막혀 언로가 두절되고 호오(好惡)가 이미 나타나 사람마다 엿보아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마음을 좀먹는 해(害)와 나라를 병들게 하는 화(禍)는 고금이 똑같아 서로 잇따르니, 이것은 어찌 임금이 성의 정심(誠意正心)해야 한다는 것을 평범한 말처럼 보고서 사공(事功)을 급선무로 삼아, 근본을 바르게 하여 정치를 하지 못하고 스스로 건극(建極)의 근본을 잃음으로써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날의 일도 다른 곳에서 구할 것이 없고 오직 전하께서 마음에 돌이켜 구하고 남들이 알지 못하고 자신만 홀로 아는 은미한 바를 성찰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위로 성왕(聖王)으로부터 아래로 다소 정치를 잘한 임금과 나라를 망하게 한 임금에 이르기까지 마음속에 발하여 정사에 시행한 것 가운데 치도(治道)와 길을 함께 한 것이 얼마나 되며 혼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 얼마입니까. 내가 마음먹은 것이 어떠하기에 하늘의 노여움이 이와 같으며 내가 일을 처리한 것이 어떠하기에 백성의 노여움이 이와 같은가 하고 반성하고, 치도로 나아간 것에 대하여 내가 힘써 그것을 법으로 삼고 혼란시키는 방향으로 해 나간 것에 대해서 준엄히 배척하고 힘써 다스린다면, 수성(修省)하는 도에 어찌 조그마한 도움이 없다 하겠습니까.

 

지금 진언하는 자들은 모두 ‘희로(喜怒)가 중도에 맞지 않고 사기(辭氣)가 너무 드러나며, 언로가 막혔고 성의가 돈독하지 않으며, 의리(義利)의 분별이 정밀하지 않고 병민(兵民)의 본말(本末)이 도치되었으며, 백성들이 고달프고 어진 선비들이 날로 멀어지며, 궁장(宮庄)이 너무 넓은 땅을 차지하였고 공주의 저택이 제도를 넘으며, 형옥(刑獄)이 남용되고 법령이 번거롭다.’고 합니다. ~중략~

 

즉위하신 이래로 지금 여러 해가 되었는데 예전의 병폐가 제거되지 않고 새로운 걱정이 더 생기니, 비유하자면 마치 병든 사람에게 원래의 증상이 남아 있는데 다른 병이 다시 더해지고 계속 심해져 오한과 고열이 번갈아 일어나는 것과 같으니, 어찌 전하께서 본원을 바루고 맑게 함에 있어 지극하지 않음이 있어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진실로 이 마음을 정일(精一)하게 하고 사욕을 제거하여 광대한 지역에 두고 날로 고명한 곳에 나아간다면, 이치를 살펴 시비를 판단함에 사사로움은 관여함이 없을 것이니 어찌 희로(喜怒)가 중도에 맞지 않음이 있겠으며, 독실히 공경하고 말하지 않아도 백성들이 부월처럼 두려워할 것이니 어찌 사기(辭氣)가 너무 드러남이 있겠습니까. 또 남의 좋은 점을 취해 자신도 그렇게 하려고 하여 간하지 않아도 본받으려 할 것이니 어찌 언로가 막힘이 있겠으며, 마음을 미루어 아랫사람을 살펴 신의로 선비를 대할 것이니 어찌 성의가 돈독하지 않음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당연히 의(義)를 취하기를 실로 여색을 좋아하는 것처럼 하고 당연히 이(利)를 버리기를 실로 악취를 싫어하는 것처럼 할 것이니 어찌 의리의 분별이 정밀하지 않음이 있겠으며, 백성의 농사철을 빼앗지 않아 백성으로 하여금 항산(恒産)이 있게 하고 전리(田里)에 편히 살아 근심과 원망이 없게 할 것이니 어찌 병민(兵民)의 본말(本末)이 도치됨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어린아이를 보호하듯 하는 인(仁)을 체득한다면 백성들이 자연 고달프지 않을 것이고, 목이 말라 물을 구하듯 하는 성의를 가진다면 어진 선비가 자연 멀리하지 않을 것입니다. 기산(岐山)의 연못과 주(周)나라의 동산도 오히려 백성들과 함께 즐겼는데 더구나 궁장(宮庄)을 넓게 점거할 수 있겠습니까. 또 낮은 궁궐과 헤어진 옷도 오히려 만족하게 여겼는데 더구나 공주의 저택을 제도에 지나치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살리기 좋아하는 덕을 한껏 지니고 의심스러운 죄는 경한 벌을 주면 형벌이 남용되지 않을 것이며, 근거없는 말을 듣지 말고 의논하지 않은 계책을 사용하지 말며 선왕(先王)을 따르고 세세한 법령들을 번거롭게 고치지 말면 법령이 번거롭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모두 마음을 바루는 데에서 미루어 나간 것이고 성인이 여가에 하는 일이므로 굳이 굽은 길에서 어려움을 겪지 않더라도 치도(治道)가 저절로 이루어짐을 볼 수 있을 것이니, 어찌 상께서 수고롭게도 거듭 생각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옛날 주 선왕(周宣王)은 가뭄의 재앙을 만났을 때에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며 수행하였고 중종(中宗)은 요망한 뽕나무가 생겨난 이변이 있었을 때에 덕을 닦아 불길한 징조를 이겨냈으니, 두 임금이 행한 일을 우리 임금도 행하기를 마음속 깊이 바랍니다.“ 하였다.

 

 

또 효종 8년(1657) 5월 5일에 영중추부사 이경여(李敬輿)가 상차하기를,

 

“~~~신의 생각으로는 정전을 피해 거처하는 것이 궁궐의 출입을 통제하여 청탁하는 길을 막는 것만 못하며, 수라의 찬수를 줄이는 것이 검소한 덕을 숭상하여 낭비를 줄이는 것만 못하며, 해마다 좋은 말을 구하는 것이 한 가지 일을 실행하는 것만 못하며, 조정에 임하여 애통해 하시는 것이 밤낮으로 삼가고 두려워하는 것만 못하다고 여깁니다. 삼가 원하건대 성명께서는 하늘이 내게 경고한 것은 왜 그런 것이며 내가 하늘을 받드는 것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반드시 살펴서 어떤 일이나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강구하여 체득하고 힘써 행하되, 오랫동안 유지하고 일관성 있게 해 나가 반드시 감응하는 실적이 있게 하고 형식적인 것이 되지 않게 하소서.~~~” 하였다.

 

또 효종 8년(1657 정유) 8월 8일 백강상국의 유차(遺箚)에서 말하기를,

 

“~~~ 오직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기뻐하거나 성내는 것을 경계하고 편견을 끊으시며 착한 사람을 가까이 하고 백성의 힘을 양성하여 원대한 업을 공고하게 다져 죽음을 눈앞에 둔 신하의 소원에 부응해 주소서. ~~~” 하였다.

 

같은 맥락으로, 위대한 사도 바울(St. Paul)은 손쉬운 육체의 所欲을 따르는 길이 아닌 진리의 길인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갈 때에 참 평안과 기쁨과 永生이 있다고 하며, 성경의 말씀에 따라 성령(聖靈 Holy Spirit)이 인도하는 길로 갈 것을 아래와 같이 권유하였다.

 

‘여러분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십시오. 그러면 육체의 소망을 채우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16절)

 

‘육체의 행위는 명백하게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이것은 음행과 방탕함과 우상숭배와 마술(witchcraft)과 원수 맺는 것과 다툼과 시기와 화내는 것과 당파심과 분열과 이단과 질투와 술주정과 흥청대며 먹고 마사는 것과 그리고 이와 같은 것들입니다. 내가 전에도 경고 했지만 다시 경고 합니다. 이런 생활을 일삼는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지배하는 생활에는 사랑과 기쁨과 평안과 인내와 친절과 선(goodness)과 신실함과 온유(gentleness)와 절제(self control)의 열매가 맺힙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23절)

 

우리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려면, 수시로 다가오는 선택의 기로에서 육체의 소욕을 따르는 손쉬운 길을 선택하기보다는 눈앞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가치 있고 보람을 낳는 길들을 택해 나가야할 것이다. 이것이 우선은 힘들어 보이나, 결국 위의 말씀들에서 열거 된 바와 같이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보람과 기쁨과 평안과 소망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2013. 2. 4.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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