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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허주(虛舟)의 허상(虛想)
날짜 2013-02-21 15:55:15 작성자 이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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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주(虛舟)의 허상(虛想)

 

인생을 살아가면서 개인의 지나친 욕심은 궁극적으로 그의 삶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는 이미 동서양의 많은 성현(聖賢)들이 설파한 바이다. 여기에서는 이에 대한 동양의 성현들의 말과 예수 그리스도의 말을 같이 생각하여 봄으로 더욱 깊고 큰 뜻을 일깨우고자한다.

 

백강 이경여 선생은 “허형(許衡)이 이르기를 ‘천지간의 인물에는 저마다 분한(分限)이 있으니 분한 밖에 지나치게 바라서는 안 된다. 마구 써서 없애는 것이 많고 보면 하늘에 죄를 얻는다.’고 하였는데, 이는 대개 사치를 다하고 탐욕을 다하는 것은 실로 복을 꾀하는 방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1653년 효종4년 백강 이경여 선생의 ‘재난극복을 위한 上箚文’중에서) 라고 하였다. * 註 ~ 허형(許衡) :원(元) 나라 세조 때 집현대학사 겸 영태사원사(集賢大學士兼領太史院事)로서 수시력(授時曆) 편찬을 주도한 사람. 후에 공자(孔子)의 묘정(廟庭)에 종사되었고 세상에서 노재(魯齋) 선생으로 불림. 그의 학풍은 실천적인 성향의 것으로서 여말 선초(麗末鮮初) 신진 사대부들의 학문에 영향을 끼쳤음.

 

어떤 사람이 주옹(舟翁)에게 물었다. “그대는 배에서 사는데, 고기를 잡는다고 하자니 낚시가 없고, 장사를 한다고 하자니 재물이 없고, 나루의 관리(官吏) 노릇을 한다고 하자니 강물 가운데만 떠 있고 물가로 오가지 않습니다. 깊고 깊은 물 위에 일엽편주를 띄우고서 가없이 드넓은 만경창파(萬頃蒼波)를 건너갈 제 세찬 광풍(狂風)이 불고 거친 파도가 일어나 돛대가 기울고 노가 부러지면, 정신은 두려워 달아나고 자칫하면 생명을 잃을 수 있을 터이니, 위험을 무릅쓴 몹시 무모한 짓입니다. 그런데 그대는 도리어 이를 좋아하여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아주 떠나 돌아오지 않으니, 무슨 까닭입니까?”

 

주옹이 말하였다. “아아! 그대는 생각하지 못합니까. 사람의 마음은 잡으면 있고 놓으면 없어져 변화무쌍합니다. 그래서 평탄한 땅을 밟을 때는 편안하여 방자해지고, 위험한 곳에 있을 때는 떨면서 두려워합니다. 떨면서 두려워하면 조심하여 튼튼히 지킬 수 있고, 편안하여 방자하면 반드시 방탕하여 위망(危亡)해지게 마련이니, 나는 차라리 위험한 곳에 있으면서 항상 조심할지언정, 편안한 곳에 살면서 스스로 방종해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내 배는 고정되지 않은 채 물 위를 떠다니니 한쪽으로 편중되면 반드시 배가 기울어집니다. 따라서 좌로도 쏠리지 않고 우로도 쏠리지 않으며, 어느 쪽이 무겁지도 않고 어느 쪽이 가볍지도 않은 상태에서 내가 그 중심을 잡고 평형(平衡)을 지켜야만 내 배를 기울어지지 않고 평온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풍랑이 일어나도, 홀로 평안한 내 마음을 어찌 흔들어 어지럽힐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물결이요, 인심(人心)은 하나의 거대한 바람인데, 미미하기 이를 데 없는 나의 일신이 그 속에서 가물가물 흘러가는 것이 마치 작은 일엽편주가 드넓은 물결 위에 떠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배에서 산 뒤로부터 세상 사람을 보면 그저 편안한 것을 믿고 환란을 생각하지 않으며, 욕심을 맘껏 부리고 종말을 걱정하지 않다가 서로 풍랑 속에 빠지고 마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대는 어이하여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리어 나를 위태하다 합니까.”

 

말을 마친 주옹은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아득히 펼쳐진 강과 바다, 그 물 위에 빈 배를 띄우노라. 밝은 달빛을 싣고 나 홀로 가노니, 한가로이 노닐며 평생을 마치리라.” 하고는 그 사람과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떠났다.

 

[客有問舟翁曰: “子之居舟也, 以爲漁也則無鉤, 以爲商也則無貨, 以爲津之吏也則中流而無所往來, 泛一葉於不測, 凌萬頃之無涯, 風狂浪駭, 檣傾楫摧, 神魂飄慄, 命在咫尺之間, 蹈至險而冒至危. 子乃樂是, 長往而不回, 何說歟?” 翁曰: “噫噫! 客不之思耶? 夫人之心, 操舍無常, 履平陸則泰以肆, 處險境則慄以惶; 慄以惶, 可儆而固存也, 泰以肆, 必蕩而危亡也. 吾寧蹈險而常儆, 不欲居泰以自荒. 况吾舟也, 浮游無定形, 苟有偏重, 其勢必傾; 不左不右, 無重無輕, 吾守其滿, 中持其衡, 然後不欹不側, 以守吾舟之平. 縱風浪之震蕩, 詎能撩吾心之獨寧者乎? 且夫人世一巨浸也, 人心一大風也; 而吾一身之微, 渺然漂溺於其中, 猶一葉之扁舟, 泛萬里之空濛. 盖自吾之居于舟也, 祗見一世之人恃其安而不思其患, 肆其欲而不圖其終, 以至胥淪而覆沒者多矣. 客何不是之爲懼, 而反以危吾也耶?”翁扣舷而歌之曰: “渺江海兮悠悠, 泛虛舟兮中流. 載明月兮獨往, 聊卒歲以優游.” 謝客而去, 不復與言.] - 권근(權近 1352~1409),〈주옹설(舟翁說)〉,《양촌집(陽村集)》

 

이 글의 체제는 유명한 초(楚)나라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詞)〉를 그대로 본뜬 것이다.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은 작자인 양촌(陽村) 권근(權近)이 가설하였다.

 

주옹(舟翁)은 그 이름이 말해주듯이 늘 배 위에서 사는 사람이다. 그는 풍랑이 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배 위에 살지언정 사람들이 모여 사는 뭍에는 오르지 않는다. 그는 그 까닭을 ‘편안해 보이는 세상에선 방종하기 쉬워 더 위험하고, 물 위에서는 조심하여 더 안전하다.’고 하고, 또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물결이요, 인심은 하나의 거대한 바람인데, 미미하기 이를 데 없는 나의 일신이 그 속에서 가물가물 흘러가는 것이 마치 작은 일엽편주가 드넓은 물결 위에 떠다니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순자(荀子)》에는 “임금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고 하였다. 조선의 숙종(肅宗)은 14세의 나이로 즉위하자 이 물과 배의 관계를 〈주수도(舟水圖)〉란 그림으로 그리게 하여 자신의 경계로 삼았다. 오늘날에서 보면 국민은 물이요 권력은 물 위에 뜬 배와 같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장자(莊子)》에는 “배를 타고 황하를 건너다가 사람이 타지 않은 빈 배[虛舟]가 와서 부딪치면 아무리 마음이 좁은 사람일지라도 성내지 않는다.”고 하였다. 마음을 비우고 무심히 세상을 살아가는, 유유자적한 삶을 비유한 것이다. 그래서 허주(虛舟)라는 호(號)를 쓴 사람이 많다. 주옹이 노래로 읊은 것이 바로 이 허주의 삶이다. [이상하, 한국고전번역원 2012.12.24. ‘고전의 향기’ 중에서]

 

그러나 인생의 참된 길은 스스로를 일컫는 배를 비우는 것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며, 스스로 진리(사사로운 욕심을 버림도 내포되는)를 체득하고 이를 실행하여 나가 사랑과 덕(德)을 쌓아가야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각자에게 주어진 재물과 능력 등을 포함한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으로 일시 개인에게 주어진 소명(召命)을 실천하도록 개인에게 맡긴 것으로, 각자는 개인의 사사로운 욕심을 비우고 하나님의 소명 즉 하나님과 이웃들에 대한 사랑의 일들에 모두 사용하라는 것이다. 각 개인은 하나님이 부여한 모든 것의 단지 선량한 관리자(steward)가 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 살피고 관리하여갈 것으로 믿고, 우리에게 시간과 에너지와 지능과 많은 기회들(opportunities)과 다양한 관계들 그리고 많은 자원들(resources)을 우리에게 허락하시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이 모든 것들의 청지기들(stewards)이다. 이러한 청지기정신(stewardship)은 하나님이 이 세상의 모든 것들과 모든 이들의 소유주라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 시편 24장1절에 이르기를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중에 거하는 자가 다 하나님의 것이로다. The world and all that is in it belong to the Lord; the earth and all who live on it are his.(TEV)"라고 하였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잠시 체류하는 동안에 참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단지 하나님이 잠시 우리에게 빌려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죽고 나면 여러분의 소유물들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여러분은 잠시 동안 그 소유를 즐길 뿐이다.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시었을 때, 하나님은 이들에게 그의 모든 창조물들을 돌볼 것을 위탁하시었고 나아가 관리자로 지명하셨다. 이런 맥락으로 창세기 1장28절에는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God blessed them, and said, 'Have many children, so that your descendants will live all over the earth and bring it under their control. I am putting you in charge'(TEV) "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주신 최초의 과업은 이세상의 모든 하나님의 소유물을 잘 돌보라고 하는 것이었으며, 이는 철회되어진 적이 없다. 그러므로 이는 우리 삶의 목적 중에 하나가 된다. 이런 맥락으로 고린도 전서 4장7절에는 “네가 가진 것 중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네스스로 이룬 것같이 자랑하느냐?” 라고 하였다.

 

우리의 생활문화의식은 "우리가 소유하지 못한 것들에 대하여는 우리는 특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우리는 이보다 더 높은 기준으로 즉 하나님이 소유하신 것이니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이들을 보살피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4장2절에 “맡은 사람들에게 더없이 요구되는 것은 충성(trustworthiness)이다.”라고 기록되어있다. 예수는 종종 인생을 하나님을 향한 믿음(trust)으로 언급하며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책임을 보여주는 여러 이야기들을 하였다. 마태복음 25장14-29절에는 한 사업가가 먼 길을 떠나며 그의 재산을 그의 종들에게 나누어 맡기는 대목이 나온다. 그가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각 종들의 책임이행을 살펴보고 합당하게 보상을 준다. 그는 말하기를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지어다 (마태복음 25장21절)”라고 하였다.

 

이 세상에서 마지막 날에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맡긴 것들을 어떻게 잘 다루어 갔는지에 따라서 평가되고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여 여러분이 행하는 일들은, 아주 작은 일상적인 일일지라도 영원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모든 일을 대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로 할 때에는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영원 속에서 세가지의 보상을 이루어 주신다. 첫째로는 하나님이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하시며 여러분을 인정하신다. 둘째로는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리니”라고 하시며 여러분을 높이시고 영광스런 일들을 더 맡기신다. 셋째로는 “네 주인(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시며 여러분을 영원히 축복하신다.

 

많은 이들이 재물은 하나님의 시험이기도하며 또한 신뢰이기도한 것을 잘 모른다. 하나님은 재물을 사용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가르치며, 많은 이들에게 재물은 또한 최대의 시험이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신실한가를 시험하고자 우리가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살피신다. 누가복음 16장11절에 이르기를“너희가 세속의 재물(worldly wealth)을 다루는 데에 충실하지 못하다면, 누가 참된 재물(true riches)을 너희에게 맡기겠느냐”라고 하였다.

 

이는 매우 중요한 진리이다. 하나님은 내가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와 나의 영적생활의 질(quality) 간에는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하신다. 내가 어떻게 세상의 재물(worldly wealth)을 다루어 가는가하는 것이 하나님이 얼마나 영적인 축복(true riches)을 줌과 함께 나를 신뢰할 수 있는가를 결정한다.

 

누가복음 12장:48b절에 이르기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라고 하였다. 인생은 하나님(진리)에 대한 믿음(trust)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더 많이 주시면, 우리의 더 많은 책임을 기대하시는 것이다. (2005. 7.13. Money & the Spiritual Liife, Rick Warren 중에서)

 

2013. 2.21.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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