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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노(怒)함과 온유(溫柔)함
날짜 2013-03-25 17:06:46 작성자 이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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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怒)함과 온유(溫柔)함

 

 

명심보감(明心寶鑑) 정기편(正己篇)에 이르기를 “ 蔡伯皆(채백개) 曰(왈) 喜怒(희노)는 在心(재심)하고 言出於口(언출어구)하니 不可不愼(불가불신)이니라. 채백개가 말하기를, 기뻐하고 노여워하는 것은 마음속에 있고 말은 입에서 나오는 것이니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하루에도 열두 번 변하는 게 사람 마음이라고 한다. 회로애락의 감정이 없으면 인생은 매우 건조해질 것이다. 사랑을 속삭이고 불의에 분노하며 우정과 평화를 노래하게 하는 힘이 바로 감정이다. 그러나 감정은 불행과 혼란을 부르기도 한다. 사소한 일에서 비롯된 증오와 복수심이 상대방과 자신의 파멸을 가져오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동서고금을 통해 사람의 감정이 수행의 첫째 대상으로 꼽힌 이유가 이 때문일 것이다.

 

병중에 가장 큰 병이 화병(火病)이라고 한다. 가슴 속에서 불이 나고 화가 치미는 병으로 어떤 약으로도 치료가 쉽지 않은 병이다. 오직 치료약이 있다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밖에는 없다. 분노는 상대방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일 뿐이다. 내 가슴 안에서 폭발하는 분노는 오랫동안 나와 타인에게 상처를 입혀 회복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분노는 인생을 힘들게 만드는 가장 큰 고질병이다. (중국철학자 박재희)

 

백강 이경여 선생은 효종대왕에게 노(怒)한 감정을 절제할 것을 크게 강조하여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효종 8년(1657) 5월 5일에 백강상국이 상차(上箚)하기를 “전하께서는 노한 감정을 절제하지 않습니다. ~중략 ~ 노한 감정을 절제하지 않으면 罰에서 당연한 원칙을 잃게 됩니다. 이 때문에 아랫사람들이 기가 죽어 물러나 귀에 거슬리는 바른 말이 날로 전하에게서 멀어져 가는 것입니다. 이전에 죄를 지은 언관은 진실로 크게 거슬린 것도 없는데, 억측을 너무 심하게 하여 바람과 우레 같이 갑자기 진노하였으며, 한마디 말이 뜻에 거슬리자 형벌과 출척이 잇따랐던 것입니다. 대간의 직책은 우리 조종조로부터 예의로써 대우하여 왔습니다. 임금이 먼저 각별한 은혜와 예의로 대우하여 백관들이 모두 그 위세에 눌리므로써 공론(公論)를 주장하고 기강을 확립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찌 소나 말을 속박하듯이 자신의 귀와 눈을 못쓰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하략~”고 하였다.

 

백강상국은 죽음을 앞둔 효종 8년 8월8일 마지막 유차(遺箚)에서조차 강조하기를 “ ~ 오직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기뻐하거나 성내는 것을 경계하고 편견을 끊으시며 착한 사람을 가까이 하고 백성의 힘을 양성하여 원대한 업을 공고하게 다져 죽음을 눈앞에 둔 신하의 소원에 부응해 주소서.”하였다.

 

“小學”에는 갑작스런 분노에 대하여 이렇게 경계하고 있다. ‘관직에 있는 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갑작스런 분노다(當官者는 必以暴怒爲戒라!). 만약 아랫사람이 일처리 못마땅한 것이 있다면(事有不可어든), 마땅히 자세히 일을 살펴서 대처해야 한다(當詳處之라). 그러면 어떤 일이든 사리에 적중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必無不中이라!). 만약 책임자가 먼저 갑작스런 분노를 표출한다면(若先暴怒면) 이것은 다만 자신에게 손해가 될 뿐이다(只能自害라!).’

또한 붓다는 ‘화’에 대해 말하기를 “화를 벌컥 내는 건 불타는 석탄 한 덩이를 손에 꽉 쥐는 것과도 같다. 상대방에게 던지기 전 불에 데는 사람은 그 자신이다”라고 하였다 (틱닛한 스님의 저서 “화”중에서).

 

사실 분노를 포함한 인간의 감정 그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기에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이 있을 수 있다. 다만 그것이 때를 잃고 명분을 잃었을 때 중용의 원칙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중국 자금성이나 덕수궁에는 중화전(中和殿)이 있다. 중화(中和)는 군왕이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는 경계의 뜻을 갖고 있다. 다음은 중용에 나오는 중화(中和)의 의미이다. ‘희노애락의 감정이 가슴 속에서 표출 되지 않았을 때를 중(中)의 상태라 한다(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그것이 밖으로 적절히 표출되어 원칙에 맞을 때를 화(和)의 상태라고 한다(發而皆中節 謂之和). 중화(中和)는 군왕이 천하를 다스리는 대본(大本)이며 천하를 통치하는 달도(達道)인 것이다(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니라).’ 기쁨과 분노, 슬픔과 즐거움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적절히 표출되었을 때 오히려 중화(中和)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기쁨과 즐거움이 지나치면 음란해지고, 슬픔과 분노가 지나치면 상처가 난다. 그래서 너무 기쁜 것이나, 너무 슬픈 것이나 인간에게는 씻을 수 없는 후유증을 남긴다. 적절한 분노는 오히려 조직을 긴장시키고 자신을 생존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제임스 도브슨(James Dobson)은 성공적인 결혼이란 충돌이나 분노가 없는 결혼이 아니며, 이러한 분노나 충돌을 어떻게 잘 풀어가는 가를 익힐 수 있는 결혼이라고 하였다. “채근담”에 기억할 만한 구절이 있다. 즉 “남의 거짓을 알아도 말하지 않고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해도 얼굴빛을 움직이지 않으면 그 속에 깊은 뜻이 있고 또한 끝없는 수용(受用)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분노를 스스로 다스리고 절제하여 나아가 극복 할 수가 있을까?

 

송(宋)나라 정이(程頤)가 말하기를 ‘사람의 감정 중에 쉽게 폭발하여 가장 억누르기 어려운 것은 성내는 것이다. 그러나 화가 날 때에 문득 그 노여움을 잊고 이치의 옳고 그름을 관찰하면, 밖에서의 유혹은 두려울 것이 없게 된다. 이쯤 되면 도(道)의 경지가 반절은 넘어간 것이다.’ 하였고, 사양좌(謝良佐)는 말하기를 ‘극기(克己) 공부는 모쪼록 성품이 편벽되어 이기기 어려운 곳을 향해 이겨 나가야 된다.’ 하였습니다. 여조겸(呂祖謙)은 젊었을 때 성품이 거칠고 사나웠는데, 《논어(論語)》를 보다가 ‘자신의 잘못은 스스로 두텁게 책망하고 남에게는 적게 책망한다.’는 데에 이르러 홀연히 깨달음을 얻어 생각이 일시에 평탄해져서 죽을 때까지 이런 병통이 없었습니다. 다시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분한 생각을 징계하는 데 더욱 뜻을 두소서.”-인조 9년, 1631.10. 3. 백강 이경여 선생 上箚文 중에서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BC 4 ~ AD 65)는 그의 저서 ‘화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화를 어떻게 가라 앉힐까에 대한 최고의 치료법은 “화가 치솟을 때 당신의 험한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라”라고 조언하였다. 이는 스스로에게 잠시 멈추라고 타이를 수 있는 절제의 힘이다. 플라톤이 그렇게 했다. 플라톤은 자신의 노예 한명이 큰 실수를 저지르자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당장 윗옷을 벗고 등짝을 대라고 명했다. 직접 채찍질을 하려고 채찍을 번쩍 치켜든 순간, 플라톤은 자신의 흉한 모습을 깨달았다. 후려치지도 않고, 내리지도 않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한참 서있었다. 지나가던 친구가 “당신 뭐해?”라고 물어봤다. 플라톤의 답이 걸작이다. “화를 내고 있는 나 스스로를 벌주는 거라네“. 세네카는 또 조언하기를 화가 나면 ’그저 조금 뒤로 물러나 껄껄 웃어라‘고도 하였다. ~ 중앙일보 2013.1.5일자

 

웃음전도사 신상훈 교수는 화도 웃으며 낸다고 말한다.

 

저(신교수) 같은 경우는 화를 많이 내는편인데 웃으면서 화를 냅니다.

 

밥을 먹을때 머리카락이 나오면 소리지르면서 화를 내지 않고 그냥 웃으면서

"주인아저씨 이리 와보세요. 머리카락이 들어있어요."

"어머 죄송해요"

"괜찮아요. 주방장님이 탈모가 시작되셨나봐요. 하하하 좀 바꿔주세요."

이렇게하면 주인아저씨가 새밥으로 가져다 주잖아요.

화가 날때는 화를 내세요. 하지만 웃으면서 화를 내세요.

 

버스나 지하철 탈때 사람에 끼이고 앞사람이 잘 비켜주지도 않고 그럽니다.

그럴 때 전 조용히 얘기합니다. 죄송합니다. 실례합니다.

이러면 왠만한 사람들 다 비켜줍니다.

 

화가 날 때는 웃으면서 화를 내세요. 화를 참으면 화병이 됩니다.

 

이에 대한 성경의 처방은 溫柔(온유, gentle)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는 자기 스스로의 힘만으로 화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되는 성령(Holy Spirit)충만을 받게 됨으로부터 이루어가는 것이다. 동행하는 친구인 예수그리스도와의 만남과 대화로 하나님의 성품(character)을 닮아가는 과정에서 그 길을 발견한다고 말할 수 있다. 나 스스로의 힘과 노력만으로는 이 높은 경지에 온전히 이를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오랜 경험의 결론이다.

 

성경에서는 화를 잘 내는 성질을 극복하는 길로 제시하는 것이 溫柔(온유, gentle)한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며, 이는 성령(Holy Spirit)이 충만하여짐이 가져오는 주요한 열매이다. 온유함은 하나님의 말씀, 진리의 靈으로 충만하여 자신의 내부로부터 분출하는 힘, 에너지를 통제하고 조절하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온유한 사람들은 겸손하고 부드러울 뿐 아니라 인내한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그들은 길이 참는다. 그들은 일곱 번 용서할 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한다 (마태복음 18장22절). 온유한 사람은 다른 누가 그들에게 잘못하였을 때 종종 그 사람이 용서가 필요한 만행을 저지른 것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그 사람의 잘못된 행동을 그들에 대한 모욕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그 사람이 잘 모르고 실수한 것이므로 그것에 대해 화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온유한 사람은 그들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대할 때 마치 그 사람이 그들에게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것처럼 기꺼이 친절하게 대한다.

 

물론 온유한 사람들도 잠시 화를 낼 수 있겠지만, 그들은 화를 내어도 죄를 짓지 않는다. 그들은 악령(惡靈)를 향해 전적으로 화를 내지, 그들에게 잘못을 한 사람을 대상으로 화를 내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상상할 수없는 십자가 고통을 우리에 대한 아가페의 사랑으로 이겨내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평안을 얻으리니 Take My yoke upon you, and learn from Me, for I am gentle and humble in heart; and YOU SHALL FIND REST FOR YOUR SOULS. (마태복음 11장 29절).“ 이러한 예수도 하나님의 성전에서 상행위를 하여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에게 화를 낸 적이 있으며, 우리들도 사랑하기 때문에 오히려 깊은 관심에서 화를 낼 수도 있다. 화를 내는 것 그 자체는 죄가 아니다. 다만 화가 우리를 파괴적인 행동으로 몰아갈 때에 죄가 되는 것이다.

 

온유한 심령을 가진 사람들도 천성적으로 불같이 격한 성격을 가지고 태어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들의 성급한 기질을 계속 죽이며 살아간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체질 자체가 원래 그렇게 생겨먹어서 어쩔 수 없어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가 악한 체질을 교정하고 타락한 본성을 죽일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기 때문이다. ~~ C.H.Spulgeon의 “내가 너를 축복한다”, 중에서

 

우리는 화를 조정하고 절제하여 극복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 우리들이 다른 사람과 심히 다투어 언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전화가 오면 우리는 분노를 절제하고 전화를 받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분노를 절제할 수가 있다. (Rick Warren)

 

성경은 급히 화를 내지 말라고 말한다. "Do not be quickly provoked in your spirit, for anger resides in the lap of fools. 급하게 화내지 말라. 분노는 어리석은 사람의 품에 머무는 것이다 ~ 전도서 7장9절“ "Love . . . is not easily angered 사랑은 쉽게 화를 내지 아니 합니다 ~ 고린도 전서 13장5절.” 일단 물러서서 돌아보자. "A rebel shouts in anger; a wise man holds his temper in and cools it 미련한 사람은 화를 있는 대로 다 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화가 나도 참는다 ~ 잠언 29장11절.” 화가 났을 때 즉각 충동적인 반응은 자제하기 바란다. 하루 종일 자제하라는 것이 아니라 한 5분정도 시간을 가지고 한발자국 물러서서 두루 돌아보기 바란다. 미국독립선언서의 작가인 Thomas Jefferson은 말하기를 화가 나면 말하기 전에 열을 세고, 매우 화가 나면 말하기 전에 백을 세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시간동안에 내가 왜 화가 났는지, 내가 정말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또 그를 얻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바란다. 이를 통하여 화를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화를 잘 절제하는 사람들과 가까이 하자. "Don't hang out with angry people; don't keep company with hotheads. Bad temper is contagious - don't get infected 성급한 사람과 사귀지 말고, 성을 잘 내는 사람과 함께 다니지 마라. 네가 그 행위를 본받아서 그 올무에 걸려들까 염려된다. ~ 잠언 22장24~25절.“ 화를 내는 것도 전염성이 있다. 큰 소리로 떠드는 자 들같이 있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목소리도 커지게 된다. 그러므로 분노를 잘 다루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습관이 필요한 것이다.

 

"If you become angry, do not let your anger lead you into sin 화가 나면, 이로 인하여 죄악으로 빠지지 말도록 하라 ~ 에베소서 4장26절.” 화가 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며, 화가 난 것을 인정하지 아니하는 것이 죄이다. 문제는 이를 잘 풀어내어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아니하도록 하는 것이다. 화가 나는 것 자체가 근본적인 문제는 아니며, 그 이면에는 상처, 두려움, 좌절감등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좀 시간을 가지고 돌아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원인을 스스로 이해하게 될 때에 우리는 화로 인하여 파괴적인 행태를 일으켜 결국은 죄에 이르지 않게 하는 방법들을 찾아 갈 수가 있을 것이다. 예수가 인간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한 사랑으로 십자가의 극심한 고난의 길을 택한 바를 생각하며 우리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고자 할 때에, 사사롭게 분노하여 파괴적으로 나가 죄악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2013. 3.25.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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