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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警戒, 八項目 ~ 한포재 이건명 선생
날짜 2013-05-23 13:54:25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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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7년, 한포재 이건명 선생은 숙종대왕에게 나라의 안녕과 번영을 위한 여덟 가지의 경계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진달하였다.

 

숙종 31권, 23년(1697 정축) 4월 23일(임신) 응교(應敎) 이건명(李健命)이 상소하여 경계를 진달하였는데, 그 조목이 여덟 가지였다.

 

 

첫째는 성상의 뜻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며, 둘째는 상하(上下)가 성실하지 않다는 것이며, 셋째는 옳고 그름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며, 네째는 언로(言路)가 열려 있지 않다는 것이며, 다섯째는 염치(廉恥)가 날마다 상실되어 간다는 것이며, 여섯째는 기강(紀綱)이 날로 무너진다는 것이며, 일곱째는 폐단이 되는 정치를 제거하지 못한다는 것이며, 여덟째는 낭비를 줄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답하기를,

 

“참으로 근심하고 아끼는 마음이 절실하여, 내가 매우 가상(嘉尙)하게 여긴다. 조심하는 마음이 없을 수 있겠는가?”하였다.

 

應敎李健命上疏、陳戒, 其目有八。 一曰聖志不定, 二曰上下不孚, 三曰是非不明, 四曰言路不開, 五曰廉恥日喪, 六曰紀綱日頹, 七曰弊政未祛, 八曰浮費未省。 答曰: “誠切憂愛, 予甚嘉尙。 可不惕念焉?”

 

【조선왕조실록 태백산사고본】 33책 31권 24장 B면

【영인본】 39책 456면 【분류】 *정론-정론(政論)

 

 

위의 여덟 가지의 경계말씀이 헛되지 아니하도록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에 비추어 어제와 오늘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o 첫째 성상의 뜻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함에 대해;

 

숙종대왕 때에는 효종대왕이 품었던 北伐과 富國安民의 큰 비젼이 퇴색되고, 당쟁은 심화되며, 여색에 심취하여 장희빈과 그 일파의 국정농간이 있었고, 이에 신임사화의 참화까지 빗어지고 말았다.

 

나라든 어떤 조직체이든 가정이든 일개인이든 먼저 나아갈 바에 대한 명확한 비젼이 서야 할 것이며, 또한 이 비젼은 본인과 사회에 궁극적으로 유익한 건강한 비젼이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구성원 들이 올바른 가치관과 인생관을 세워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그러므로 우리들은 성경, 사서삼경, 불경 등 인류의 고전을 공부하며 심신을 연마 하여가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가정을 예로 들면 아직은 유소년인 자녀들이 어린나이에 인생의 비젼을 세우는 것은 사실상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이끄는 부모와 같은 리더들의 높은 식견과 도덕성과 인격, 솔선수범, 소통과 설득의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진정한 리더는 ‘섬김의 리더쉽’을 바탕으로 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군림하는 리더쉽은 결국 역기능을 낳아 무너져 내리게 마련이다. 세종대왕과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적인 사랑과 섬김의 리더쉽을 좋은 모델로 삼을 수가 있겠다.

 

한 개인을 예로 들자면 윤동주 시인의 작품 “序詩‘에서의 나아갈 바에 대한 고백은 매우 좋은 경종이 된다고 본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o 둘째 상하(上下)가 성실하지 않다는 것에 대해;

 

나라든 다른 조직이든 가정이든 上下간에는 믿음이 있고 이를 바탕으로 상호 성심성의를 다하는 태도를 가져야 소기의 목적을 효율적으로 이루어 갈 수 있다. 윗사람은 사랑과 관용으로 인도하며 아랫사람은 충성과 성실함으로 윗사람의 의도를 따라 주어야한다. 서로 탐욕으로 이용하려는 자세는 결국 조직의 와해를 부르게 되고 만다.

 

오늘날 많은 가정에서 부모 자식 간에 넘어서는 아니 될 도를 넘는 불륜으로 파멸로 치닫는 가정들을 자주 듣는다. 세종대왕이 ‘삼강오륜행실도’를 그리고 써서 모든 백성에게 널리 알린 바를 생각한다. 禮를 세우고 지킬 수 있는 도덕적 풍토의 진작이 너무나도 중요하다.

 

이에 대한 서하 이민서 선생의 아래의 말씀은 오늘날에도 매우 유용하다.

 

효종 6년(1655 을미)5월 11일(갑오) 정언 이민서가 상소하여 말하기를,

 

~상략~ 또 생각하건대, 임금과 신하 사이가 현격하기는 하나 정의(情義)를 서로 보전하고 예법(禮法)을 서로 유지하는 것인데, 초개처럼 여기기만 한다면 어찌 국사(國士)로서 보답하기를 요구하겠습니까. 더구나 문사(文士)·대부(大夫)는 임금이 심복으로 의지하는 대상입니다. 조종조에서는 매우 가까이하는 예우를 하셨으니, 세종(世宗)·성종(成宗) 때의 옛일에서 징험할 수 있습니다. 선조(宣祖)께서 이어받아 배양에 더욱 힘쓰셨는데 나라를 재건한 공적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것에 힘입었습니다. 신은 오늘날 가까이하여 믿는 자가 과연 어느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랜 나라에 친신하는 신하가 없어 심복으로 의지할 데가 없고 일을 맡겨도 통괄함이 없습니다. 벌떼처럼 일어나는 젊은이만 취하여 모아내는 일을 구차히 쾌하게 여기어 조정의 대체를 무너뜨리고 국가의 원기를 해치니, 전하께서 취사를 그릇되게 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근일에는 신하를 대우하는 예가 더욱 박하여 가두고 매 때리는 것을 가벼운 벌로 여기고 차꼬가 관원에게 두루 미치고 오라가 고관에게까지 미칩니다. 사기가 꺾여 잡류가 횡행하고 염치가 아예 없어져 명절(名節)이 땅을 쓴 듯이 없으니, 국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언로(言路)가 통하지 않는 것은 괴이할 것도 못됩니다.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어질고 충실한 신하에게 심복을 맡기고 정직하고 간쟁하는 신하에게 이목을 붙여서 정성을 미루어 그들에게 맡기고 자기를 굽혀서 말을 들어 임금의 도리가 아래로 통하고 곧은 말이 날마다 들리게 하시지 않습니까. ~하략~

 

성경 에베소서 6장 2절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여라.’ 하신 계명은 약속이 붙어 있는 첫째 계명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는 모든 인간관계의 으뜸가는 윤리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인데, 부모 공경은 바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훈련의 장이요 통로가 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간혹 잘못된 부모를 만나는 경우도 있겠으나, 이 분들을 諫하며 至誠으로 섬길 때에 결국 하나님의 福이 이르고 스스로의 인격이 연마되는 놀라운 축복의 場이 된다는 의미이다.

 

 

o 셋째 옳고 그름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에 대해;

 

오늘날의 사회는 매우 복잡하고 다기한 사회인데 이를 효율적으로 규율할 우리들의 윤리 도덕의 질서가 매우 혼돈되어 있다. 윤리와 도덕이 경제적 부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나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아니하면 우리의 인생, 우리의 삶의 터전이 일순간에 무너지고 마는 것인데, 오늘날에 이를 너무 간과하고 있다. 인사청문회에 나아가 그동안 쌓아온 인생이 통째로 무너지는 사례들을 본다.

 

과거에는 유학적인 예의범절이 서 있었으나 오늘날은 이도 저버리고 그러타고 예수교의 윤리관 등 새로운 윤리 질서를 세운 것도 아닌 어정쩡하고 혼미한 상태로 온갖 범죄와 사회악 등을 양산하는 토양이 되고 있다. 조상님들이 “숭례문”을 세운 뜻을 잘 새기고 세종대왕이 삼강오륜을 그림으로 그려서까지 널리 배포하여 전 국민이 익히도록 하였던 깊은 뜻을 잘 새겨 이 시대에 맞게 옳고 그름에 대하여 만인이 쉽게 공감하는 좋은 윤리질서를 세워야만 한다.

 

우리정부의 교육부는 이런 중요한 일은 등한시 하고 잡다한 눈앞의 일들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어 참으로 한탄스럽다. 유대인들의 ‘탈무드’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교육정신이 배울 점이 많다고 본다.

 

o 넷째 언로(言路)가 열려 있지 않다는 것에 대해;

 

조선시대에도 언로가 막히는 것에 대한 경계에 말씀이 많았고, 세종대왕은 수시로 신하들을 불러 독대 하시어 견해를 나누고, 국민투표까지 실시하시며 민의를 수렴, 위대한 정치를 이루었다.

 

언로를 열어 가는 데에 가장 큰 걸림돌은 윗사람의 태도라고 보여 지는데 이에 대한 좋은 말씀들이 있다.

 

효종 6년(1655 을미) 5월 11일(갑오) 정언 이민서가 상소하여 납간(納諫)에 대해 말하였다.

 

정언 이민서(李敏敍)가 상소하였다. 그 대략에,

 

“나라의 일이 날로 위태해지고 백성이 날로 야위어 갑니다. 위태하여도 구제하지 않으면 망하게 되고, 야위어도 돌보지 않으면 흩어지게 될 것입니다. 납간(納諫)과 보민(保民)에 관한 말씀을 먼저 아뢰어 보겠습니다. 공론은 국가의 원기(元氣)이고 간쟁(諫諍)은 공론의 근본입니다. 대개 천하의 의리는 그지없고 한 사람의 재식(才識)은 한계가 있으니, 남과 나로 가르고 공과 사로 나눈다면 어찌 천하의 착한 사람을 오게 하여 천하의 일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무릇 사람이란 겁내는 자는 많으나 굳센 마음을 가진 자는 적고 무른 자는 편안하나 곧은 말을 하는 자는 위태합니다. 임금이 너그러이 용납하고 틔어 이끌어서 할 말을 다하는 기개를 기르고, 의심 없이 들어서 마음을 비우고 받아들이는 도량을 넓히지 않는다면, 누가 지극히 위험한 것을 범하고 지극히 어려운 것을 행하겠습니까. 이제 전하께서는 오만하게 스스로 거룩하게 여기고 홀로 총명을 행하며 한세상을 하찮게 여기고 뭇 신하를 깔보아 대신을 종처럼 기르고 대간을 개와 말처럼 대하십니다. 분주히 종사하되 뜻에 따를 뿐이고 어기지 못하니 종이 아니고 무엇이겠으며, 속박되어 달리되 울면 쫓겨나니 개와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얼굴에 잘난 체하는 기색이 나타나고 말이 편벽하여 남을 용납하지 않아 한 마디 말이라도 맞지 않으면 물리쳐 쫓는 일이 계속되므로, 대소 신하가 허물을 바로잡기에 겨를이 없고 머리를 감싸쥐고 발을 포개면서 두려워 삼가니,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략~

 

효종 8년(1657 정유14년) 5월 5일(정미) 영중추부사 이경여가 차자를 올려 간언의 수용 등을 청하였다.

 

영중추부사 이경여(李敬輿)가 상차하기를,

 

“조정에서 옳게 한 일을 백성들이 옳다고 하는 것은 치세(治世)이며, 조정에서 그르게 한 일을 백성들이 그르다고 하는 것도 치세입니다. 조정이 일을 하고서 스스로 옳다고 하면 백성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점이 자사(子思)가 위(衛)나라 임금을 위해 걱정하였던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남달리 총명하시며, 기쁘거나 노한 감정을 절제하지 않습니다. 남달리 총명하면 아랫사람을 경시하는 병통이 있으며, 기쁘거나 노한 감정을 절제하지 않으면 상벌에서 당연한 원칙을 잃게 됩니다. 이 때문에 아랫사람들이 기가 죽어 물러나 귀에 거슬리는 바른 말이 날로 전하에게서 멀어져 가는 것입니다. 이전에 죄를 지은 언관은 진실로 크게 거슬린 것도 없는데, 억측을 너무 심하게 하여 바람과 우레 같이 갑자기 진노하였으며, 한마디 말이 뜻에 거슬리자 형벌과 출척이 잇따랐던 것입니다. 대간의 직책은 우리 조종조로부터 예의로써 대우하여 왔습니다. 임금이 먼저 각별한 은혜와 예의로 대우하여 백관들이 모두 그 위세에 눌리므로써 공론(公論)를 주장하고 기강을 확립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찌 소나 말을 속박하듯이 자신의 귀와 눈을 못쓰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또 기세 등등한 연소배들의 말은 비록 과격한 것 같기는 하나 나라의 형세를 부축하고 쇠퇴함을 일으키는 데 있어 그 공 또한 적지 않습니다. 임금은 가상히 여겨 장려하여 그 기백을 길러주고, 채택하여 그 중도를 선택해야지 들뜨고 조급한 것으로 보아 싫어하고 박대하는 기색을 보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진실로 충고를 받아들이는 길을 넓히고자 한다면 잘 따르는 아름다움을 다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옛날의 잘못된 정신과 풍채가 크게 변해 지극한 말을 매일 듣게 되고 임금의 덕에 흠이 없게 될 것입니다. ~하략~

 

오늘날은 왕정을 넘어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으니 언로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그러나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분들은 매우 많은 것이 오늘날의 현실인데, 쉽게 간과되는 점은 먼저 상대방 인격과 견해를 존중할 줄 아는 양식 있는 시민들을 길러가야 한다는 점이다. 말은 잘하면 약이 되나 잘못하면 독이 되는 것으로 매우 경계해야 하는 것인데, 이는 근본적으로 대화하는 사람들의 인격적 수양의 정도에 달린 것으로 여겨진다.

 

‘논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아홉 가지 생각해야 할 것[九思]이 있다 했는데 이중 의사소통과 관계된 것들이 무려 다섯 가지이다. 즉, 들을 때는 분명히 들을 것을 생각하고[聽思聰], 낯빛은 온순하게 할 것을 생각하며[色思溫], 용모는 공손하게 할 것을 생각하며[貌思恭], 말은 진실하게 할 것을 생각하며[言思忠], 의문스러우면 물을 것을 생각하며[疑思問], 분(忿)해지면 어려워질 일을 생각하며[忿思難]이 그 것들이다.

 

o 다섯째는 염치(廉恥)가 날마다 상실되어 간다는 것에 대해;

 

염치란 체면을 생각하고 부끄러워 할 줄 아는 마음, 태도라고 하겠다. 조선시대에도 세종대왕 시대를 정점으로 도덕과 윤리가 잡혀있었으나, 그 후 점점 쇠퇴하여 한포재공이 이글을 쓰신 숙종임금 대에 이르러서는 벌써 예의범절이 매우 쇠퇴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날도 사회에 비리가 많으므로 비리를 저지르고도 부끄러워할 줄을 모르는 사회풍토가 만연하다. 최근 대통령 미국 수행 중 공직자인 대변인이 만취하여 성추행을 저질러 전 세계에 나라망신을 시키고도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변명만을 늘어놓으니 참으로 염치를 모르는 한심한 작태라고 아니할 수 없다..

 

사실상 이러한 그릇된 풍토는 우리의 가정교육으로부터 다양한 교육시스템이 같이 개선해 나가야할 점이다. 그리하여 사회풍토가 개선되어야만 한다. 국민 모두가 솔선수범의 자세로 모범을 보여 어린 사람들이 그러하지 아니하면 부끄러운 줄을 알게 하여야한다.

 

나의 경험으로는, 오늘날도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의 사람들 중에는 고지식하게 보일 정도로 정직하고 잘못된 경우에 대하여는 변명에 앞서 사과하고 감사하고 부끄러워 할 줄을 아는 경우가 매우 많은 것을 체험해왔다. 우리가 개선해야할 근본적인 문제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사회적 분위기를 진작시키고 능률을 높여 진정한 선진사회로 가는 주요한 동력이 되는 것이다.

 

o 여섯째는 기강(紀綱)이 날로 무너진다는 것에 대해;

 

기강은 법의 집행으로 만 세워지는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조직 내의 질서의식이 바로 잡혀 있어야 한다.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 귀감이 되어 조직 내에서 질서유지를 위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원로들이 필요한데, 요즈음 우리사회에는 존경받는 원로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인간은 누구나 약점이 있는 것이나, 선진국일수록 사람들의 장점을 높이 사며 사회의 분야별 원로들을 세워나가 이들을 하나의 후세인들의 모범으로 삼아 나아가며 질서를 갖춘다.

 

또한 법의 집행은 公明正大해야한다. 이를 위해 백강 이경여 선생이 한 말씀은 다음과 같으며, 집행자의 본심을 보존하는 공부, 학문을 통한 인격의 수양을 기본으로 말씀하였다.

 

.효종 4권, 1년(1650 경인) 6월 4일(병술) 조강에서 영의정 이경여가 형벌의 공정을 아뢰다

상이 조강에 나아가 《서전》 순전을 강하였다.

 

영경연 이경여(李敬輿)가 아뢰기를,

 

“순전 가운데 ‘사람들에게 상형(常刑)을 보여주되[象以典刑]’ 등의 장구(章句)는 더욱 유의하셔야 합니다. 상(象)이란 상위(象魏)274)의 상과 같은 말입니다. 형(刑)을 적용할 때는 《등록(謄錄)》처럼 준용(遵用)만 해서는 안 되고 마치 무게를 재는 권형(權衡)처럼 반드시 법과 정상을 참작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법은 아주 가벼운 죄라도 금부와 형조가 반드시 먼저 형신(刑訊)을 청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는 일개 서리(胥吏)나 하는 일이니, 관직을 설치한 의도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데 이는 중대한 관계가 있는 일로서 아랫사람들이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흉(四兇)도 요임금 시대에 군신이 문답하는 자리에 참여했지만 어찌 감히 요임금의 성덕을 해칠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죄가 아직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요임금이 미처 죄를 주지 못했던 것인데, 순임금이 정사를 이어 받은 뒤에는 죄가 비로소 드러났기 때문에 죄를 준 것입니다. 법을 적용하는 도리는 반드시 그 죄상이 뚜렷이 드러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을 죄주었을 때 백성이 원통하다고 하면 이는 인심이 흡족하게 여기지 않은 것입니다.”하니,

 

상이 이르기를,

“송 태조(宋太祖)가 ‘어찌 후세에는 법망이 이렇게도 치밀한가.’ 하였는데, 후세의 법망이 치밀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다.”하였다.

 

경여가 아뢰기를,

“마치 거울에 물건이 비치면 아름답고 추한 모습이 스스로 드러나듯 그렇게 노여워할 일에 노여워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본심을 보존하는 공부가 필수적인데, 그렇게 된 뒤에야 무턱대고 노여워하는 잘못을 없앨 수 있습니다. 고 상신(相臣) 완평 부원군(完平府院君) 이원익(李元翼)은 간혹 관청에서 종일토록 형벌을 시행할 때에도 목소리나 안색에 감정을 드러낸 적이 없었습니다. 원익에게 학문의 공부가 있다는 말을 듣지는 못하였습니다만, 대체로 그의 자품(資稟)이 본래 고상해서 그런 것일 것입니다. 더구나 학문이 고명하신 성상께서 이 점에 유의하여 함양하신다면 어찌 도움이 적겠습니까.”하니,

 

상이 이르기를,“옛사람도 ‘학문을 쌓으면 기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하였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하였다.

 

경여가 아뢰기를,

“임금은 보통 사람들과는 더욱 달라 성색(聲色)이나 공리(功利) 때문에 공격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그 의욕(意慾)을 제어하려면, 마치 병장기를 가지고 도둑을 막아내듯 반드시 학문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하였다.

 

[註 274]상위(象魏) : 대궐의 문으로서 법령을 게시하는 곳. 본보기의 뜻임. ☞

 

 

o 일곱째는 폐단이 되는 정치를 제거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숙종조에는 이미 당파가 만연해 가고 있었고 이것이 숙종대왕 사후 바로 신임사화로 이어져 참혹한 정치 테러를 자행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것은 자기들의 주의, 주장과 이익만을 대변할 뿐 상대방을 사랑하는 정신 포용하는 정신이 고갈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나의 소견으로는 이것이 儒學의 많은 좋은 점에도 불구하고 그 취약점으로 지적하고 싶다. 자연의 섭리와 이치를 기본 틀로 하는 유학으로서는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헌신적인 사랑, 아가페의 사랑으로 까지 나아가기에는 힘들어 보인다.

 

이것이 미국, 영국, 독일 등 서구 선진국가들, 예수교를 정신적 뿌리로 하는 나라들의 경우보다, 우리국민들이 큰 틀에서 보아 화합하기보다는 서로 내부에서 반목하기 쉬운 우리들의 정서의 뿌리가 아닌가도 생각된다.

 

오늘날도 말로는 사랑을 많이 이야기하나 아가페의 사랑을 실천하는 이는 드물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들의 앞으로의 국민정신은 유학을 근본으로 하는 세종대왕의 훌륭한 정신을 기본 틀로 하면서도 청교도 정신을 과감히 수용하여 이 양대 정신적 줄기가 서로 상승작용을 하여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데, 이것이 그 배경 중 에 하나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리더들이 私心을 철저히 버리고 참으로 옳고 공공에 유익한 길을 연구하고 실천하여 나아갈 때에 저절로 파벌과 당파는 약해지고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o 여덟째는 낭비를 줄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조선시대에 절검(節儉)을 얼마나 중시했는지는 다음의 백강 이경여 선생의 말씀에 잘 들어나 있다. 효종 4년(1653 계사) 7월 2일(을축) 영중추부사 이경여가 올린 재변을 이겨내는데 힘써야할 21항의 상차문에서 이르기를,

 

이른바 절검을 숭상해야 한다[崇節儉]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땅이 물건을 만드는 데에 정해진 액수가 있고 사람이 물건을 만드는 데에 정해진 한도가 있으니, 가져다 쓰는 데에 절도가 있으면 늘 넉넉하겠으나 가져다 쓰는 데에 절도가 없으면 늘 모자랄 것입니다. 아무리 적은 재물도 우리 백성의 고혈(膏血) 아닌 것이 없는데, 어찌 천물(天物)을 마구 써 없애서 백성의 생업을 끊을 수 있겠습니까.

 

삼가 듣건대 세종(世宗) 때에는 궁인(宮人)이 1백 인이 못되고 구마(廐馬)가 수십 필에 지나지 않고 복어(服御)·기용(器用)도 되도록 검소하기를 힘쓰셨으므로 열성(列聖)께서 대대로 지켜서 가법(家法)으로 삼으셨다 합니다. 신이 일찍이 목릉(穆陵) 터를 고쳐 잡을 때에 삼가 유의(遺衣)를 보건대, 다 무명 옷과 두꺼운 명주였고 비단으로 된 것이 없었으니, 예전에 비의(菲衣)773) 라 한 것이라도 어떻게 이보다 더하였겠습니까. 궁액(宮掖)이 좋은 옷을 입는 폐단은 광해(光海) 때에 비롯하였는데, 선조(先朝)에 더러운 풍습을 고쳤으나 끼친 해독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전하께서 만약 한가하실 때에 조종 때의 정간(井間)을 상고하시면 전성(前聖)께서 사욕을 누르고 백성을 사랑하신 지극한 뜻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궁중의 용도는 긴급하지 않은 비용을 덜고 몸소 검약으로 이끌어 사치한 버릇을 크게 바꾸고 법관에게 명백히 경계하여 분수를 넘는 것을 금지하여 위로 사대부로부터 아래로 서민에 이르기까지 분수를 무릅쓰고 제도를 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어찌 옳지 않겠습니까.

 

[註 773]비의(菲衣) : 너절한 옷. ☞

 

효종 6년(1655 을미) 5월 11일(갑오) 서하 이민서 선생의 상소에는 아래와 같이 절용(節用)이 강조되었다.

 

~상략~ 신은 원하건대 전하께서 근본을 맑히고 악의 근원을 막되 백성을 아끼는 것은 절용(節用)에서 시작하고 절용은 생약(省約)에서 시작하여 궁중의 용도(用度)와 군국(軍國)의 모든 수용(需用)을 다 조종 때의 옛 규례와 같이 하소서. 재물이 한없이 들어가는 것을 조금 멈추고 국가의 정항(正項)인 공납(供納)만으로 쓰시기 바랍니다. 더구나 사치의 해독은 천재(天災)보다 심한데, 말속(末俗)이 이미 투박해져서 참람하여도 금하지 않으니, 몸소 거친 옷을 입는 교화를 숭상하여 사치한 풍속을 고쳐야 하겠습니다. ~하략~

 

오늘날에 이르러 우리들은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게 되었으나, 절검이 국민적 풍토로 자리 잡은 독일이 가장 모법적인 나라가 되고 있는 데에서도 불 수 있듯이 절검의 유용함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낭비하고 화려한 물건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신상태부터가 방만, 방종에 흐르기 쉬워 도모하는 바를 그르치기 쉬우며, 검소 절검하는 태도를 지닌 사람들은 매사에 신중, 사려가 깊고, 계획성이 있으며, 근면하여 나아가 훌륭한 일을 이루어 가기 쉽다.

 

2013. 5.23.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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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이주관 참 자유인(自由人)~만화(萬化)의 주재자 2013-07-07 1033
220 이주관 붕당(朋黨)의 現狀과 弊害의 克服 2013-06-27 1210
219 이주관 婦德의 전범(典範)~정경부인 윤씨 行狀 2013-06-17 1424
218 조원섭 조선왕조의 맥 2013-06-13 903
217 이주관 삶의 智慧 ~ 백강 이경여 선생 2013-06-04 1152
216 이주관 나아갈 길 2013-05-29 851
215 이주관 警戒, 八項目 ~ 한포재 이건명 선생 2013-05-23 1024
214 이주관 수인지모(受人之侮) 부동어색(不動於色) 2013-05-10 1129
213 이주관 世上의 名利와 溫柔한 人格 2013-04-30 1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