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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붕당(朋黨)의 現狀과 弊害의 克服
날짜 2013-06-27 17:13:36 작성자 이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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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당(朋黨)의 現狀과 弊害의 克服

 

어떤 사업이든 사업을 도모하는 사람들 사이에 긴밀한 공감, 유대와 협력은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중대한 요인 중의 하나이다.

 

반면 어느 조직이든 구성원 간의 다소간의 이견이 있음은 또한 당연하고 또 필요한 것이나, 그 度가 지나치면 그 폐해가 큰 것인데, 조선 중기 붕당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이에 대한 염려와 대책을 효종대왕과 백강 이경여 선생 간에 나눈 말씀들이 있어 이에 소개하며, 오늘날의 시각에서 살펴보고, 우리들의 유사한 문제들에 있어 교훈을 삼아 가고자한다.

 

효종 1년(1650 경인) 4월 3일에 상이 이르기를,

 

“우리 나라에 붕당으로 인한 해독이 오래되었다. 심지어 다른 나라 사람들도 우리 나라에 붕당이 있음을 말하니, 역시 부끄럽지 않은가.”하니,

 

영의정 이경여(李敬輿)가 아뢰기를, “전하께서 붕당으로 말씀하시나, 대체로 우리나라의 편당은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의 구별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대대로 내려오는 업(業)을 지키다 보니 각자 분열된 것입니다. 임금이 현사(賢邪)를 분별해서 쓴다면, 자연 청탁(淸濁)이 분간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너무 심하게 분별하면 탁한 자가 언제나 청한 자를 이기려 하니, 이 점도 염려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25장 B면

 

효종 1년(1650 경인) 6월 3일에 상이 이르기를,

 

“당론(黨論)의 해가 요즈음 심해지는 듯하다. 조정이 바르게 된 뒤에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법인데, 지금 이와 같으니 어떻게 구제해야 하겠는가?” 하니,

 

영의정 이경여(李敬輿)가 아뢰기를, “관학(館學)에서는 마치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피차 상대하고 있으니,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이이(李珥)와 성혼(成渾) 두 현신에 대해서 선묘조(宣廟朝) 임오·계미년 무렵에 한쪽 편의 사람들이 그들에게 큰 허물이 있다고 배척했는데, 그 뒤로, 그 문하생과 자손들은 기어코 종사(從祀)하려 하고 배척한 사람의 자손들은 한사코 깎아 내리려 하여 이 때문에 분당 현상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삼사의 논의라 하더라도 한쪽에 치우치는 때가 어찌 없겠습니까. 오직 성상께서 그 언론을 살피시어 만약 쓸 만하면 색목(色目)을 염두에 두지 마시고 쓰는 것이 옳습니다. 더구나 공론(公論)의 경우는 역시 편당 때문에 차이가 있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오늘날에는 당파 싸움이 점점 정밀해져서 그 형적을 없애고 하기 때문에 임금이 위에서 알 수 없는 점이 있으니, 오직 대신이 힘써 진정시키는 것이 좋겠다. 양현(兩賢)의 종사 문제도 부당한 점이 있다. 막중한 전례(典禮)를 경솔히 의논할 수 없는 만큼 의논이 정해지는 날을 서서히 기다렸어야 마땅한데, 마치 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서로들 배격하고 있다. 이런데도 종사를 허락한다면 이 풍조가 점차 자라날 것이니,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태백산사고본】 4책 4권 12장 A면

 

효종 1년(1650 경인) 7월 3일에 영의정 이경여(李敬輿)가 상차하기를,

 

아, 붕당(朋黨)이 나라를 병들게 한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지금의 사대부로서 그 누군들 붕당이 증오스럽다는 것을 모르겠습니까마는, 모두 색목(色目)으로 돌아감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 사람들 모두가 꼭 당론(黨論)을 숭상하여 스스로 편벽한 데에 빠져서가 아닙니다. 혹 부형(父兄) 때의 찌꺼기를 이어받거나 혹 벗들의 인정을 받다 보면 그렇게 되는 것인데, 한번 이렇게 구별이 되고 보면 그 구덩이에서 몸을 빼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드뭅니다. 그런데 남의 안색을 살펴보고 남에게 농락을 당하면서 진취(進取)를 꾀하는 자가 아니라면 시비(是非)를 구별하고 부끄럽게 느끼는 천심(天心)이 어찌 전혀 없겠습니까. 하지만 논의하는 사이에 한번 적치(赤幟)를 세우게 되면, 우뚝 서서 단독으로 행하는 선비가 아닌 이상, 바람에 쏠리듯 그림자가 따르듯이 하지 않는 자가 없이 피차간 모두들 그러합니다. 이는 대개 모두들 70년간 대대로 전해 온 여론(餘論)을 계승하고 있기 때문인데, 따라서 옛날의 붕당처럼, 군자는 붕(朋)을 만들고 소인은 당(黨)을 만들던 것과는 틀립니다.

 

부형과 자손에 있어 어질고 어질지 못함이 똑같지 않은데도 전후로 다투는 것은 한결같이 전철(前轍)을 따르고 있는데, 이점이 바로 인물의 현우(賢愚)가 그 사이에 서로 뒤섞여 있으면서 잘못된 논의가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는 이유인 것입니다. 붕(朋)을 대립하게 한 뒤부터는 표방(標榜)한 바가 매우 많아 그것을 하자면 또한 추해서 다시 거론하고 싶지도 않은데, 그 사이에 사대부 중에도 명목(名目)이 다름을 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계해년에는 명신(名臣)과 석사(碩士)들이 각자 영수(領袖)를 두어 선조(先朝)의 지극한 덕을 우러러 본받아서 논의가 서로 통하고 매우 밀접하게 합치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재주나 한 가지 예능을 가지고 있어도 모두 수록(收錄)되었으므로 진신들이 서로 기뻐하며 오래도록 보존될 수 있다고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둘 사이에 진출만을 꾀하는 부박(浮薄)한 무리들이 있어서 한편으로 시배(時輩)들에게 아부한다고 하고 한편으로 자기의 주장을 버리고 저편의 주장을 위해 나간다고 하면서 말을 만들어 내고 비방을 하며 서로 선동을 하였습니다. 다행히 노숙하고 명철한 제공(諸公)들이 진정시키고 억제한 덕택으로 궤멸되는 정도까지는 이르지 않았으나, 그 뒤로는 언론(言論)이 옳을 때도 있고 그를 때도 있었으며 용사(用舍)가 공적일 때도 있고 사적일 때도 있는 등 들쭉날쭉하여 가지런하지 못한 채 상호간에 득과 실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을해년에 이르러서는 종사(從祀)에 대한 주청이 관학(館學)에서 나옴으로 인하여 2, 3인의 제멋대로 구는 인사들이 현인을 무함하는 논의를 고무하고 선동하면서 붕류(朋類)를 앞장서서 거느리고 드러내놓고 배척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서로 공격하며 원수처럼 여기게 되었으니, 그 불행이야말로 이루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종사에 대한 시비를 다툰 것일 뿐으로서 사람마다 각자 소견이 있어서 계미년의 나머지 수법을 이은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소의 유생(儒生)들로서 듣고 아는 자가 백에 한둘이 있었을 정도였으니, 알지 못하고 망령되게 논의한 것에 대해서야 깊이 허물로 삼을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지금 유직의 경우는 또 이것과는 다릅니다. 선정(先正)의 깊은 학술의 조예와 강론한 이기(理氣)의 미지(微旨)와 출처(出處)의 시비(是非)에 대해서는 유직이 알 바가 아닌 만큼 그것은 우선 버려두고 논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두 신하가 명현(名賢)이며 대유(大儒)로서 회재(晦齋)와 퇴계(退溪) 뒤를 그들밖에 계승할 자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유직도 들었을 것입니다. 임금을 버려두고 어버이를 뒤로 미루는 것이야말로 인륜의 큰 악행인데, 유직은 시골의 후생으로서 인륜의 큰 악행을 거론하며 조금도 거리낌없이 감히 명현 대유에게 덮어 씌웠습니다. 가령 이런 큰 악행을 유직과 같은 자에게 조금 가했다 하더라도 그의 종족(宗族)이나 향당(鄕黨)에서 그와 교류하는 자들이 오히려 분연히 일어나 불평하면서 변명할 말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더구나 다사(多士)들이 존경하고 있는 두 신하와 같은 이가 터무니없는 망극한 무함으로 더럽힘을 당한 경우이겠습니까. 성균관 유생들이 그들의 이름을 유적(儒籍)에서 깎아낸 것이 어찌 당연하지 않다고 하겠습니까.

 

다사(多士)들이 모인 뒤에 두루 물어 보지 않고 갑자기 그 이름을 유적에서 지운 것은 근거없는 처사로서 사람들의 말이 있게 된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악을 미워하다가 지나치게 된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먼저 나간 유생들은 이미 유직을 비난하는 상소가 내려졌는데도 억지로 의견을 달리하여 서로 앞장서서 돌아가면서 유직의 논의에 붙는 것처럼 하였으니, 또한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는 유생들이 헤아려 생각했거나 계교한 것이 아니라 다만 분위기와 기습(氣習)에 이끌리게 되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먼저 나간 자가 이미 갔고 보면 뒤에 나가는 자가 편히 있을 수 없는 것은 이치와 형세상 당연한 것입니다. 이는 중도에 어긋난 망령된 행동입니다만, 유생이라고 자처한 나머지 과격하게 행동하다 나온 광망(狂妄)된 행동이었으니, 어찌 꼭 심각하게 책망할 것까지 있겠습니까.

 

다만 유직의 일은 사문(斯文)에 관계된 것인 만큼 감히 경솔하게 논의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밖의 제생들에게는 특별히 예관(禮官)을 보내어 성지(聖旨)로 돈유함으로써 유감의 뜻과 분한 마음을 풀고 속히 함장(函丈)의 자리로 나와 다같이 경사를 함께하는 과거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그렇게 하면 유생도 신하인데 어찌 감히 미혹된 마음을 다시 돌리지 않고 강하게 성상의 분부를 어기며 처음 즉위하신 해에 직접 치루는 큰 과거에 스스로 생경한 짓을 하겠습니까. 이상진(李象震) 등 3, 4명의 경우는 괴상하고 망령된 행동이 가증스럽기 짝이 없지만 상소 속에 유직처럼 욕한 것은 없으니, 의당 유생들에게 전유(傳諭)하여 세척해 주게 함으로써 스스로 새롭게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것도 한 방법이겠습니다.

 

대개 선비들의 논의가 정해지지 않고 지금까지 시끄러운 것은 또한 성상의 넓은 도량으로 모두 받아들여 용인해 준 나머지 시비를 분명하게 가리려 하지 않은 데에 연유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이미 두 신하의 어짐을 아시고 전교에 드러내셨으니, 유직처럼 현인을 미워하고 투기하며 욕하는 사람에게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분명하게 보이셔야 합니다. 그리하여 학교(學校)의 극벌(極罰)로 다스려 사방의 선비들에게 성상께서 어진 이를 본받으시는 뜻을 환히 알게 하신다면, 어찌 오늘날과 같은 분란이 있겠습니까. 이미 그렇게도 하지 못한 채 도리어 유직을 공격하는 자를 잘못이라 하고 유직의 편이 되는 자를 옳다고 하면서 그를 엄폐하는 전교까지 내리셨습니다. 이것이 비록 더러움까지도 용납하시는 성대한 덕이라 하더라도 임금으로서의 과단성 있는 정치에는 결함이 있는 듯합니다.

 

옛날 적신(賊臣) 정인홍(鄭仁弘)이 선정신 이언적(李彦迪)과 이황(李滉)을 추악하게 헐뜯었기 때문에 당시 성균관 유생들이 그의 이름을 유적(儒籍)에서 지우고 부황(付黃)하여 그 죄상을 선포했습니다. 인홍은 그 뒤 윤기(倫紀)에 죄를 얻어 마침내는 방형(邦刑)에 복주(伏誅)되었습니다만, 당시의 명성과 지위는 유직에게 비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류(士類)가 일제히 분개하여 이런 극벌(極罰)을 베풀자 온 세상 사람들이 통쾌하게 여겼는데, 그것을 그르게 여긴 자가 있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유직을 부황하여 그 죄를 선포한 것이 어찌 유독 성균관 유생들의 깊은 죄가 된단 말입니까. 다만 그때가 적당한 시기가 아니었고 당초에 작정하지 않은 채 갑자기 죄의 등급을 더한 것이 지나쳤을 뿐인데, 유적(儒籍)에서 깎아내는 이외에 오직 부황이 있었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좨주(祭酒)의 계사(啓辭)에 ‘벌을 더했다.’ 한 것은 엄폐하려는 뜻이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닌 듯합니다.

~중략~

 

신이 붕당(朋黨)에 대한 이야기를 앞서 대략 말씀드렸으니, 붕당을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을 다 드릴까 합니다. 붕당의 화(禍)에 대한 처방은 투기하는 아내가 있는 집안을 바르게 해 나가는 방법과 같습니다. 수신(修身)·제가(齊家)의 근본 원리를 극진히 실천해 나가면 관저(關雎)298) 와 교목(喬木)299) 과 같은 교화를 앉아서 오게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하를 부리는 도에 있어서도 모범적으로 이끌어 가는 방도를 극진히 하면 서로들 귀감이 되어 공경하고 사양하는 풍조가 자연적으로 발생할 것인데, 따라서 옳은 것을 옳게 여기고 그른 것은 그르게 여기며 어진 이를 어질게 여기고 악한 이를 악하게 여기게 되어 성(誠)과 명(明) 양쪽이 모두 이루어질 것입니다.

 

어진 이를 올려 주고 악한 이를 내쫓음에 있어 한결같이 하늘의 법칙을 따르고 좋아하고 싫어하며 주고 빼앗음에 있어 자기의 사심을 참여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당을 만들고 붕을 만드는 일을 다 잊어버리는 것만한 것이 없는데, 양쪽을 다 잊으면 마음에 누(累)되는 바가 없게 됩니다. 그리고 기뻐하고 노여워할 때 거울에 비치는 물건처럼 대상에 따라 발하는 것이 최상이니, 그렇게 하면 나의 선입관이 개입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어진 이를 천거하면 당(黨)이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 아닌가 의심을 가지게 되고, 악한 이를 탄핵하면 자기와 당을 달리하기 때문에 공격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속이고 있지나 않나 하는 생각이 미리부터 성상의 마음을 얽매어 놓게 되는데, 마음속의 본체(本體)가 일단 가리워지게 되면 어떻게 툭 터진 마음으로 재결하고 처리하여 과(過)와 불급(不及)의 차이가 없을 수 있겠으며 거조마다 마땅함을 얻어 사방 백성의 마음을 열복시킬 수 있겠습니까.

 

틈을 엿보는 자들이 기교를 부리고 임금의 뜻에 영합(迎合)하는 자들이 자기의 편리를 도모하려고 하여 조용히 하려고 해도 더욱 시끄럽고 제거하려 해도 더욱 치성하게 되는 것이 요즘에 이미 나타난 현상이니, 뱃머리를 돌리고 수레바퀴를 돌리는 일이 있지 않으면 시끄러움을 그치게 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것 역시 전하께서 삼무사(三無私)300) 의 공심(公心)을 받들어 궁궐에서부터 먼저 시행하여 친소(親疏)에게 한결같이 베풀어 안과 밖의 차이가 없게 한 다음에야 비로소 외정(外庭)을 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 천도(天道)가 지극히 참되기 때문에 만물이 모두 번성하고, 인주가 지극히 공평하게 하기 때문에 만민이 법으로 삼는 것입니다. 《서경(書經)》에 ‘서민(庶民)들이 사당(邪黨)을 두지 않고 관원들이 빌붙지 않는 것은 오직 임금이 표준을 세우기 때문이다.’고 하였는데,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전(傳)에 이르기를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이 나타나지 않은 것을 중(中)이라 하고 그 감정이 나타나되 모두 절도(節度)에 맞는 것을 화(和)라고 한다.’고 하였고, ‘중화(中和)에 이르면 천지가 제 자리를 잡고 만물이 발육된다.’고 하였습니다. 항상 경외(敬畏)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남모르는 깊고 은미한 곳에서의 행동을 두렵게 여기고 경계하여 천리(天理)를 확충하고 덕성(德性)을 함양해 가는 이것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중[未發之中]이요, 안도 없고 바깥도 없으며 보내는 것도 없고 맞아들이는 것도 없이 확연 대공(廓然大公)하여 사물(事物)이 닥쳐오면 순리대로 응하는 이것이 이미 나타난 화[已發之和]입니다.

 

하늘과 사람은 한 가지 이치로서 위와 아래가 간격이 없는 것이므로 나의 마음이 올바르면 천지(天地)의 마음도 올바른 것이며, 나의 기운이 순하면 천지의 기운도 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마음을 바루지도 못하고 또 기운을 순히 하지도 못하고서 천지의 마음을 돌려 중화(中和)의 복(福)을 이르게 하고자 한다면 이미 어렵지 않겠습니까. 하늘의 비가 내리려면 반드시 음양(陰陽)이 서로 조화되고 천택(川澤)의 수증기가 올라가서 더운 기운과 찬 기운이 서로 잘 화합하여야 단비가 쏟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라가 장차 다스려지게 하려면 반드시 군신(君臣)의 뜻이 서로 합치되어 태평하고 융화하며 큰 공도(公道)를 넓히고 지극한 이치를 잘 형성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서쪽 교외 하늘의 얇은 구름이 흡족한 비를 내린 적이 있지 않았으며, 교만하게 스스로 성인인 체하는 임금이 치도(治道)를 달성한 경우는 있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의 형세는 바로 추위에 엉겨 얼음이 얼고 바람이 차고 매서워서, 풀을 말리고 뿌리를 썩혀 살리려는 뜻을 볼 수 없게 된 것과 같습니다. 하늘에 대해 잘 말하는 자는 반드시 사람에게서 본받는 것인데, 항양(恒暘)의 허물이 어찌 그 조짐 없이 있게 된 것이겠습니까.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천지의 상도(常道)는 그 마음으로 운용되지만 만물(萬物)에 두루 미치는 데는 사심이 없으며, 성인의 상도도 그 정으로 이루어내지만 만사(萬事)에 순응하는 데는 사정(私情)이 없다.’ 하고, 또 말하기를 ‘천하에서 한 나라에 이르고 한 집에서 만사에 이르기까지 화합하지 못하는 이유는 모두 틈이 있기 때문이니, 틈이 없으면 화합하게 된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전하께서는 마음을 비워 상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줌이 없으면서 신하들의 편벽됨이 없기를 바라시고, 큰 도량을 넓히지 못하고 의혹된 부분을 끊어버리지 못하면서 신하들에게 틈이 없기를 바라시니, 이는 선왕(先王)께서 평평탕탕(平平蕩蕩)한 왕도 정치를 펴시어 신민이 표준에 모이고[會極] 표준으로 돌아가게[歸極] 하던 방도가 아닌 것 같습니다.~하략~【조선왕조실록 태백산사고본】 4책 4권 27장 B면

 

[註 298]관저(關雎) : 《시경》 주남(周南) 편명. ☞

[註 299]교목(喬木) : 《시경》 주남 편명. ☞

[註 300]삼무사(三無私) : 천무사부(天無私覆)·지무사재(地無私載)·일월무사조(日月無私照)로서, 바로 임금의 마음은 백성에 대해 차별이 없어야 함을 말함. ☞

[註 301]노공(潞公) : 문언박(文彦博). ☞

 

붕당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위의 백강 이경여 선생과 효종대왕의 말씀은 매우 깊고 설득력 있으며 간곡하다. 그러나 임금이 갖추어야할 덕목에 치중하여 말씀하고 붕당에 속한 사람들 상호간의 자발적인 화합의 노력에 대해서는 비교적 등한히 된 바가 있다고 본다.

 

오늘날에도 우리나라는 ,미국 영국 독일 등과 비추어 볼 때, 나라 안에서 서로 심하게 반목하여 나라에 위해를 끼치는 경향이 심하다고 본다. 우리의 적은 밖에 있기보다는 오히려 국론을 분열시키는 내부에 있다는 우려를 종종 금할 수 없다.

 

위의 선진제국들이 내부적으로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가도 토론과 투표 등을 통하여 큰 틀 안에서 결국 잘 융화하여 나가게 되는 데에는 그들의 기본 정신의 토양인 예수교(Protestantism) 에서 오는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고 보며, 이에 서로 다툼의 해결에 관해 세계적 영적리더인 미국의 릭 워렌 (Rick Warren) 목사의 견해를 소개하여 위의 백강 이경여 선생과 효종대왕의 견해의 미진한 부분을 보완해보고자 한다.

 

릭워렌 목사는 붕당의 폐해, 즉 깨어진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에 7가지의 구체적 단계적 노력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大前提로 인생의 의미와 가치는 궁극적으로 어떻게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가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면서, 먼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서로 간에 단절과 충돌 그리고 상처가 있을 때에 그 관계의 개선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기를 바라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이다. “···서로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사랑을 나누며 마음을 합쳐 하나가 되십시오. ··· 무슨 일에나 이기적인 야심이나 허영을 버리고 다만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자기보다 남을 중히 여기십시오. 저마다 제 실속만 차리지 말고 남의 이익을 돌보십시오(빌립보서 2장 2-4절)”. 다른 이들과 서로 화합하는 능력이 바로 영적인 성숙의 증거이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화평을 조성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 마태복음 5장9절)”라고 하였다. 단지 화평을 사랑하는 사람 또는 화평한 사람이 아니고 적극적으로 분쟁을 해결하고 화평을 조성해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다툼을 해결하고 화평을 조성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은 매우 귀중한 일인데, 이는 매우 어려운 일로 이를 잘 배운 사람들을 찾아보기 또한 매우 힘들다.

 

 

화평케 하는 것은 다툼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니며, 다툼이 존재하지 않는 척 하는 것도 아니며, 이에 대한 대화를 두려워한 것도 아니다. 평화의 왕인 예수는 다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때때로 그는 만인을 위해 분쟁을 야기하기도 하였다. 때에 따라 다툼을 피하기도 하며 야기하기도 하며 해결하기도 하여 가는 것이므로 우리는 기도함을 통해 성령(Holy Spirit)의 인도함을 받아 가야만 한다. 화평케 하는 것은 상대방을 늘 달래는 것도 아니며, 항상 상대를 수용하기만 하는 것도 아니며, 잘못된 곳, 악한 곳에서는 당당히 이에 맞서 나가는 것이다.

 

릭 워렌 목사가 해석하는 예수교의 교리는 인생의 의미와 가치는 궁극적으로 어떻게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가에 있다고 보는 것으로, 서로 화합하고 화평함은 가장 중요한 일이며 하나님은 화평하게 하는 자를 자기의 아들로 여기신다고 까지 하였는데 즉 이것이 내세에 천국에 이르는 길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화평함의 우선순위는 가장 높은 가치에 속하므로 모든 노력과 희생을 다하여서 반드시 이루어 나가서 이 땅에서도 낙원을 이루어 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점에서 남을 높이고 서로 사랑하고 헌신하고 화평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주의, 주장, 이론을 앞세워 시시비비를 먼저 가리는 세상의 제반 철학들의 입장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나의 견해로는 유학도 사실상 이러한 철학적인 범주를 완전히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며, 불교도 자비를 강조하나 적극적으로 상대방을 높이고 사랑하고 희생하고 화합하여 이 세상에서도 낙원을 이루는 일에는 등한히 하는 바가 있어 왔으므로, 이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상대방을 사랑하고 헌신하여 화평을 이루어 가기보다는 쉽게 붕당을 짓고 서로 반목하는 경향이 심화되어 온 현상에 일조를 한 것이 아닌가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면 릭 워렌 목사가 제시하는 붕당의 폐해, 즉 깨어진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의 구체적 실천적인 7가지의 단계적 노력을 살펴보자.

 

화평을 조성하는 일에 1단계는 다음과 같다.

 

먼저 상대방과 대화하고 험담하기 이전에 하나님과 다툼에 대해 대화하고 기도하라. 하나님이 너의 마음을 바꾸거나 또는 상대방을 변화시키는 경우가 있다. 하나님에게 상세하게 문제점과 너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답을 물어라. 다툼은 욕구가 충족되지 못함에서 일어나는데, 하나님 이외에는 우리 또는 상대방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는 경우가 많이 있다. 상호 하나님과의 교통인 기도가 부족함에서 많은 다툼이 야기되곤 한다.

 

화평을 조성하는 일에 2단계는 다음과 같다.

 

다툼의 해결에 항상 먼저 내가 주도적으로 나가라. 이는 매우 중요한 일이며, 이를 미루는 것은 다만 더욱 분개함과 오해를 깊게 만들 뿐이다. 속히 다툼의 해결에 나서는 것은 스스로의 영적인 손상을 막는 것이기도 하다. 다툼을 방치하는 것은 하나의 죄로 우리를 불행하게 할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손상하여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을 수 없도록 한다. 그러나 우리와 상대가 모두 최상의 컨디션일 때와 장소를 택하도록 노력하자. 피로하고 나쁜 분위기에서는 이로 인한 악영향을 피할 수 없다. 예수는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에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그를 찾아가 화해하고 나서 돌아와 예물을 드려라.~마태복음 5장 23~24절”고 까지 말했다.

 

화평을 조성하는 3단계는 다음과 같다.

 

이견을 조정하려고 시도하기 전에, 먼저 상대방의 감정을 듣고 공감하도록 노력 하라. 말하기보다 먼저 듣기에 치중하라. 사실관계를 따지기 이전에 상대방의 감정을 먼저 살펴라. 먼저 듣고 동의할 수 없더라도 이해가 되면 머리를 끄덕여 주어라. 감정이 항상 바른 것은 아니지만, 분개한 감정은 일을 그르치기 쉽다. “내 마음이 괴롭고 아플 때, 내가 어리석고 무지하여 내가 짐승과 같이 되었나이다.~시편 73편21-22절”

 

상대방은 우리가 그들을 깊이 배려하여 듣고 있음을 알 때까지는 우리의 이야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나아가 우리는 저마다, 한때의 오해나 화를 감내하면서도, 자기 이웃의 마음에 합하게 행동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바르게 세워 상대에게 유익을 주고 덕을 세워나가야 한다 (로마서 15장2절).

 

화평을 조성하는 4단계는 다음과 같다.

 

다툼에 대한 우리 쪽 입장을 솔직히 고백하라. 중요한 관계를 회복하려면 스스로의 잘못과 실수를 먼저 말하라. 예수는 네 눈에 있는 통나무를 먼저 제거하고 나면 상대방 눈에 있는 작은 조각은 쉽게 보고 제거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마태복음 7장5절).

 

우리 모두는 죄인 아닌 자가 없는데, 누구나 스스로 죄가 없다고 말한다면 이는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다. 고백은 화해를 향해서 엄청난 힘을 가진다. 겸손히 자기의 잘못과 죄를 고백할 때에 상대방은 더 이상 화를 내며 공격할 마음을 버리게 된다. 자기 잘못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라.

 

화평을 조성하는 5단계는 다음과 같다.

 

사람을 공격하지 말고 문제를 공격하라. 상대에 대한 책망을 늘어놓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부드러운 응대는 화를 잠재우나 날카로운 말은 화를 불러일으킨다. (잠언 15장1절). 우리가 먼저 주관적인 말로 결론을 낸다면 문제는 해결되지 아니한다. 부드러운 말은 냉소적인 말보다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오며, 끊임없이 상대를 괴롭히는 말은 효과가 없다.

 

‘무엇을 말하는가’ 만큼이나 ‘어떻게 말하는가’가 문제 해결에 중요하다. “나쁜 말은 입 밖에 내지 말고, 덕을 세우는 데에 필요한 말이 있으면, 적절한 때에 해서, 듣는 사람에게 은혜가 되게 하라.~에베소서 4장29절” 듣기 좋은 표현이 더욱 큰 설득력을 가진다. 상대를 비난하기, 경시하기, 모욕적인 언사, 비웃음, 낙인찍기, 친절을 베푸는 듯 모양내기 등은 금물이다.

 

화평을 조성하는 6단계는 다음과 같다.

 

가능한 한 상대방에 협조적인 자세로 나가라. 너희가 세상 모든 이들과 화평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여라(로마서 12장18절). 화평을 이루는 것은 늘 대가를 필요로 하는 데,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하기도 하며 자기중심적인 자세를 버려야하기도 한다. 상대방과 조정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상대가 필요로 하는 바에 최대한의 성의를 보여라.

 

화평을 조성하는 7단계는 다음과 같다.

 

결론내기에 치중하기보다 서로 화해하기에 초점을 두어라. 현실적으로 모든 사안에 대해서 서로 동의할 수는 없는 것이다. 화해는 상호관계를 중시하는 것이고 결론내기는 일 자체를 중시하는 것이다. 화해에 집중할 때에 다툼은 어려움이 덜해지고 또 나아가 크게 문제됨이 없게 되기도 한다.

 

우리는 상호 입장이 다른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지 아니하고도 좋은 관계를 회복할 수가 있으며, 모든 문제에 다 합의를 이룰 수는 없고, 타당한 이견은 자주 있을 수가 있다. 하나님의 섭리는 통일화가 아니고 각기 개성을 가진 가운데 서로 조화를 이루며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결책 도출하기를 그만 두라는 의미는 아니며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토론해 나가라는 것이다. ( 출처 : 첨부의 "Seven biblical steps to restoring a broken relationship" By Rick Warren )

 

붕당의 폐해와 국론분열이 과거 우리역사에서 얼마나 큰 해악을 끼쳤는지는 새삼 여기서 언급할 필요조차도 없다. 다만 이러한 쓴 경험들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우리들은 앞으로 위의 백강 이경여 선생과 효종대왕의 말씀을 깊이 새겨듣고 실천하며, 또 나아가 위의 예수교리적 측면에서의 탁월한 말씀도 깊이 새겨 실천해 나가는 국민적 풍토를 이루어 나가야만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이들은 나라의 일이 아닌 조직체, 가정, 개인의 사사로운 인간관계의 어려움들을 극복하는 좋은 방책이 되기도 할 것이다.

 

2013. 6.27.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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