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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忠告의 美學 ~ 충고를 위한 기도
날짜 2013-10-25 14:29:03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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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다 보면 누군가 나의 잘못을 꾸짖는 충고나 지적을 받을 때가 있다. 남의 충고를 잘 받아들이고 나의 잘못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은 무한 성장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 ‘나무가 목수의 먹줄을 받아들일 때 곧은 나무로 변신하듯이(木從繩則直) 사람도 다른 사람의 충고를 받아들일 때 반듯한 사람이 될 수 있다(人受諫則聖). 그런데 충고는 받아들이는 사람보다 하는 사람의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 비꼬듯이 하는 충고는 아무리 옳은 말이라 하더라도 상대방의 분노만 일으키기 때문이다. 동양 고전에서 말하는 충고의 5가지의 원칙, 기술을 정리 해본다.

 

첫째 충고는 따뜻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충고라도 상대방의 가슴을 도려낸다면 그 충고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북송(北宋)의 정치가 범충선공(范忠宣公)은 충고의 자세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세상에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남의 잘못을 따지고 지적하는 것은 명철하다. 반면 아무리 총명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은 관대하다. 그래서 충고는 나의 잘못을 용서하는 관대한 자세로 남에게 해야 한다.’ 자신에게 관대한 마음으로 상대방의 잘못을 바라본다면 그 충고는 따뜻할 수밖에 없다.

 

둘째 충고는 상황을 살펴서 해야 한다. 상대방의 감정이나 기분을 고려하지 않거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하는 충고는 독이 될 수 있다. 늘 버릇처럼 남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이 제 딴엔 남을 위해 충고한다고 하지만 준비 안 된 충고는 상대방의 마음만 상하게 할 뿐이다. 상황을 살펴 충고하는 것을 기간(幾諫)이라고 한다. 기미(幾微)를 살펴 충고한다는 뜻으로, 공자는 특히 옳은 이야기를 윗사람에게 진술할 때 기간(幾諫)의 방법을 써야 한다고 하였다. 부모든 상사든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말 반드시 지적하고 개진해야 할 말이 있다면 상대방의 감정과 상황을 살피는 것이 지혜로운 자의 충고 방식이다.

 

셋째 충고는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신뢰가 있은 후에 충고하라(信而後諫)! 신뢰가 없이 충고하는 것에 대하여 상대방은 자신을 비방한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未信則以爲謗己也). 나와 특별한 관계도 없고, 자주 만나거나 신뢰가 쌓인 사람이 아닌데 나에 대하여 던지는 충고는 제대로 받아들여 질 수가 없다. 그저 나를 욕하고 비방하는 이야기로만 들리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내가 하는 충고에 대하여 진심어린 마음을 받아 줄 수 있는 믿음 있는 관계야 말로 충고의 최소조건이다.

 

넷째 충고도 너무 자주하면 관계가 소원해진다. 같은 충고를 반복해서 상대방에게 하면 상대방은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게 된다. 이런 충고는 대부분 상대방이 인정하지 않는 나만의 생각일 수가 많다. 공자의 제자였던 자유(子游)는 신하가 임금에 대한 충고와 친구 사이의 충고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모시는 주군에 대하여 너무 자주 간언을 하고 충고를 하면 주군에게 욕을 먹거나 버림을 당할 것이다(事君數 斯辱矣). 친구사이에도 너무 자주 충고를 하면 그 친구관계는 소원해 질 수밖에 없다(朋友數 斯疏矣).’ 만나면 무조건 남의 잘못부터 따지는 사람을 계속 만나고 싶어 할 사람은 없다. 충고는 준비하고 계획해서 해야 하며, 충심(忠心)이 있어야 한다.

 

다섯째 충고도 한계가 있다.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친구와의 관계에 대하여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친구사이는 충고하여 좋은 길로 인도하는 사이다(忠告而善道之). 그러나 아무리 충고를 해도 상대방이 고치지 않으면 그 충고는 그쳐야 한다(不可則止). 이것이 스스로를 욕되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無自辱焉).’ 몇 번한 충고에 상대방이 그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미 그 문제에 대하여 생각이 다른 것이다. 이것을 고집하여 계속 충고한다면 그것은 충고가 아니라 강요가 될 수밖에 없다.

 

충고는 정말 어렵다. 남의 단점과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상대방의 마음과 기분을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충고를 안 할 수는 없다. 충고는 사람과 조직을 살리는 숭고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충고에도 원칙이 있고 기술이 있고, 진심어린 충고를 받아들이는 사람 역시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우(禹)왕은 좋은 충고를 들으면 그 충고를 한 사람에게 절을 했다고 한다. ~ 박재희,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 넷향기 2011.7.25.

 

 

성경 잠언(proverbs) 9장 7~10절에는 다음과 같이 충고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을 잡히느니라.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워질 것이요, 義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明哲이니라."

 

성경 잠언은 충고를 하고 또 받기 이전에 그 당사자들이 먼저 지혜로워져야하며 의로워져야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혜와 의의 바탕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즉 풀어 말하면 진리를 이해하고 따르는 바탕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성경의 가르침은 남에게 충고를 하기 전에 또는 충고를 하기 어려운 여건에 있는 이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그들이 깨우쳐 진리의 말씀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기도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기도의 과정을 통하여 충고하는 이의 心性이 확실히 겸손하고 진실하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다듬어짐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성경은 나아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데, 이는 원수를 위하여 하나님께 하나님의 피조물인 그 원수를 용서하고 모두가 같이 하나님의 義, 즉 사랑과 화평을 이루어 가도록 기도하라는 것을 내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임금들 중에 신하의 추상같은 질책, 간언을 너그럽게 받아드리고 마음에 새긴 임금의 예가 있어, 이 시대에 귀감이 되므로 이에 소개한다.

 

효종 14권, 6년(1655 을미) 5월 11일(갑오)

정언 이민서가 상소하여 간쟁을 너그럽게 포용하고 사기를 높이는 등의 일을 아뢰다

 

정언 이민서(李敏敍)가 상소하였다. 그 대략에,

“나라의 일이 날로 위태해지고 백성이 날로 야위어 갑니다. 위태하여도 구제하지 않으면 망하게 되고, 야위어도 돌보지 않으면 흩어지게 될 것입니다. 납간(納諫)과 보민(保民)에 관한 말씀을 먼저 아뢰어 보겠습니다. 공론은 국가의 원기(元氣)이고 간쟁(諫諍)은 공론의 근본입니다. 대개 천하의 의리는 그지없고 한 사람의 재식(才識)은 한계가 있으니, 남과 나로 가르고 공과 사로 나눈다면 어찌 천하의 착한 사람을 오게 하여 천하의 일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무릇 사람이란 겁내는 자는 많으나 굳센 마음을 가진 자는 적고 무른 자는 편안하나 곧은 말을 하는 자는 위태합니다. 임금이 너그러이 용납하고 틔어 이끌어서 할 말을 다하는 기개를 기르고, 의심 없이 들어서 마음을 비우고 받아들이는 도량을 넓히지 않는다면, 누가 지극히 위험한 것을 범하고 지극히 어려운 것을 행하겠습니까. 이제 전하께서는 오만하게 스스로 거룩하게 여기고 홀로 총명을 행하며 한세상을 하찮게 여기고 뭇 신하를 깔보아 대신을 종처럼 기르고 대간을 개와 말처럼 대하십니다. 분주히 종사하되 뜻에 따를 뿐이고 어기지 못하니 종이 아니고 무엇이겠으며, 속박되어 달리되 울면 쫓겨나니 개와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얼굴에 잘난 체하는 기색이 나타나고 말이 편벽하여 남을 용납하지 않아 한 마디 말이라도 맞지 않으면 물리쳐 쫓는 일이 계속되므로, 대소 신하가 허물을 바로잡기에 겨를이 없고 머리를 감싸 쥐고 발을 포개면서 두려워 삼가니,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생각하건대, 임금과 신하 사이가 현격하기는 하나 정의(情義)를 서로 보전하고 예법(禮法)을 서로 유지하는 것인데, 초개처럼 여기기만 한다면 어찌 국사(國士)로서 보답하기를 요구하겠습니까. 더구나 문사(文士)·대부(大夫)는 임금이 심복으로 의지하는 대상입니다. 조종조에서는 매우 가까이하는 예우를 하셨으니, 세종(世宗)·성종(成宗) 때의 옛일에서 징험할 수 있습니다. 선조(宣祖)께서 이어받아 배양에 더욱 힘쓰셨는데 나라를 재건한 공적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것에 힘입었습니다. 신은 오늘날 가까이하여 믿는 자가 과연 어느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랜 나라에 친신하는 신하가 없어 심복으로 의지할 데가 없고 일을 맡겨도 통괄함이 없습니다. 벌떼처럼 일어나는 젊은이만 취하여 모아내는 일을 구차히 쾌하게 여기어 조정의 대체를 무너뜨리고 국가의 원기를 해치니, 전하께서 취사를 그릇되게 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근일에는 신하를 대우하는 예가 더욱 박하여 가두고 매 때리는 것을 가벼운 벌로 여기고 차꼬가 관원에게 두루 미치고 오라가 고관에게까지 미칩니다. 사기가 꺾여 잡류가 횡행하고 염치가 아예 없어져 명절(名節)이 땅을 쓴 듯이 없으니, 국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언로(言路)가 통하지 않는 것은 괴이할 것도 못됩니다.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어질고 충실한 신하에게 심복을 맡기고 정직하고 간쟁하는 신하에게 이목을 붙여서 정성을 미루어 그들에게 맡기고 자기를 굽혀서 말을 들어 임금의 도리가 아래로 통하고 곧은 말이 날마다 들리게 하시지 않습니까.

《서경(書經)》에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굳어야 나라가 편안하다.’ 하였고 전(傳)에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서 왕이 되는 것은 아무도 막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예전부터 이제까지 백성이 편안하지 않고도 나라를 보전할 수 있는 자가 없었습니다. 신이 오늘날의 조정을 보면 이렇습니다. 정령(政令)과 베푸는 일에 조금이라도 백성을 편안하게 할 마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교명(敎命)이 내려질 때에 조금이라도 홀아비나 홀어미를 가엾이 여기는 뜻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전하의 뭇 신하 중에 남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에 관한 말을 어전에서 아뢰는 자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경외(京外)의 신하 중에 전하의 백성이 유랑하여 시달리는 정상을 대궐에 아뢰는 자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슬픈 우리 백성이 한 해동안 내내 고생하며 근력을 다하여 조세를 바쳐도 힘이 모자라므로 몹시 근심하면서 오히려 전하께서 조금이라도 덕의(德意)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이를 돌보지 않고 바야흐로 무익한 일에 뜻을 기울이시니, 독책(督責)하는 자는 잔혹한 짓을 자행하고 재능을 뽐내는 자는 남보다 더하여 귀염을 사려고 힘씁니다.

추쇄(推刷)는 작은 일인데 거조(擧措)가 너무 엄중하고 과조(科條)가 너무 엄밀하며, 염초(焰硝)를 굽는 것은 말단의 일인데 나라의 반이 소요하고 갇힌 사람이 옥에 가득합니다. 서울 군사가 먹는 것은 날로 늘어 가고 경창(京倉)의 곡식이 축나는 것은 날로 많아집니다. 나라의 큰일이라면 오히려 핑계할 수 있겠으나, 한 궁가에서 쓰는 것이 수 백만금이나 되고 사사로운 자봉(自奉) 또한 한 두 가지가 아니므로 고혈은 이미 다 짜냈고 잗단 이익까지 죄다 다툽니다. 법을 세워 넌지시 빼앗고 판매에 세를 매겨 교묘히 거두어 들이니, 전하께서 재능과 심산(心算)이 있는 신하를 얻으시더라도 눈앞의 일만 처리한다면 또한 임금이 재물을 다스려 풍족하게 하는 도리가 아닐 것입니다.

신은 원하건대 전하께서 근본을 맑히고 악의 근원을 막되 백성을 아끼는 것은 절용(節用)에서 시작하고 절용은 생약(省約)에서 시작하여 궁중의 용도(用度)와 군국(軍國)의 모든 수용(需用)을 다 조종 때의 옛 규례와 같이 하소서. 재물이 한없이 들어가는 것을 조금 멈추고 국가의 정항(正項)인 공납(供納)만으로 쓰시기 바랍니다. 더구나 사치의 해독은 천재(天災)보다 심한데, 말속(末俗)이 이미 투박해져서 참람하여도 금하지 않으니, 몸소 거친 옷을 입는 교화를 숭상하여 사치한 풍속을 고쳐야 하겠습니다. 대저 오래 쇠퇴한 데에서 약세를 만회하여 중흥의 큰 공적을 세우는 것이 어떠한 사업인데 터덜터덜 느릿이 걸어서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전하께서는 사의(私意)를 구차히 쾌하게 하고 대계(大計)에 소홀히 하여, 본심을 간직하는 데 있어서는 자기 허물을 듣기 싫어하고 일을 하는 데에는 먼저 백성의 재물을 다 씁니다. 잗단 오락에 빠져 금원(禁苑)이 놀이를 구경하는 마당이 되고 사화(私貨)를 불려 내사(內司)가 도피하는 자를 모이게 하는 수풀이 됩니다. 인척을 높여서 관방(官方)이 어지럽고 희노(喜怒)를 경솔히 써서 상벌이 어지러우며, 아첨이 풍속이 되어 사신(私臣)이 등용되고 이익을 일으키는 것이 날로 성하여 덕을 숭상하는 것이 쇠퇴합니다. 깊은 궁중에서 한가히 계시는 동안을 신이 아는 바가 아니나 가무와 여색, 술이 또한 어찌 반드시 없으리라고 보증하겠습니까. 뵙건대, 전하께서는 불세출의 자질로 큰일을 할 때가 되었고 만승(萬乘)의 자질을 가지고 여러 대를 이어온 기업(基業)을 이어 받으셨으므로 비상한 공적을 머지않아 기대할 수 있는데, 지(志)가 기(氣)에 빼앗기고 의(義)가 이(利)에 가리워서 지사(志士)가 해체되고 백성이 실망하게 하십니다. 전국 때 말세의 임금이 단단히 마음먹고 오래 생각하여 세운 것이 있었던 것만 못하시니, 신의 어리석은 생각에는 전하를 위하여 애석하게 여깁니다.”하였는데,

상이 아름답게 여겨 받아들였다.

 

○正言李敏叙上疏。 其略曰:

國事日危, 民生日悴。 危而不救, 則至於亡, 悴而不恤, 則至於散。 請以納諫保民之說, 先試陳之。 公論者, 國家之元氣, 諫諍者, 公論之主。 蓋天下之義理無窮, 一人之才識有限, 若物我而間之, 公私而別之, 何足以來天下之善, 而辦天下之事哉? 凡人劫懦者多, 而剛腸少, 軟熟者安, 而讜言〔者〕危。 若非人君優容開導, 養其敢言之氣, 聽納不疑, 恢其虛受之量, 誰肯犯其至危, 行其至難乎? 今殿下傲然自聖, 獨運聰明, 眇視一世, 輕忽群臣, 以僕隷畜大臣, 犬馬待臺諫, 奔走服役, 有順無違, 非僕隷而何, 束縛馳驟, 有鳴則逐, 非犬馬而何? 訑訑見於顔貌, 落落發於辭令, 一言不合, 斥逐相繼, 大臣小臣, 救過不贍, 奉頭累足, 何事可爲。 且念君臣之際, 雖甚懸絶, 情義相保, 禮法相持, 若但視猶草芥, 何責報以國士。 況文士大夫, 爲人主腹心之寄, 祖宗之世, 甚加親禮, 英、宣二廟, 故事可徵。 穆陵承之, 培養尤勤, 再造之烈, 終始賴焉。 臣未知今日所親信者, 果何人哉, 百年喬木, 國無親臣, 心腸無寄, 事任無統。 只取一切蠭壯, 苟快辦集之功, 破壞朝廷之大體, 戕賊國家之元氣, 殿下之取舍, 不以誤乎? 近日待臣之禮尤薄, 拘囚笞杖, 視爲輕典, 桁楊遍於冠紳, 纏繳及於金貂。 士氣摧沮, 雜類橫行, 廉恥都喪, 名節掃地, 國事之無成, 言路之不通, 不足怪也。 殿下何不以心腹, 托良實之臣, 耳目寄正諫之士, 推誠而任之, 屈己而聽之, 使君道不濟, 讜言日聞乎。 《書》曰: “民惟邦本, 本固邦寧。” 《傳》曰: “保民而王, 莫之能禦。” 自古及今, 未有民不安, 而國可保者也。 臣竊觀今日朝廷, 政令施設, 有一毫保民之心乎? 無矣。 綸綍之下, 有一髮哀矜鱞寡之意乎? 無矣。 殿下之群臣, 有以不忍人之說, 陳於前者乎? 無矣。 甸外之臣, 有以殿下赤子, 流離憔悴之狀, 聞於九重者乎? 無矣。 哀我蒼生, 窮年作苦, 竭其筯力, 納租輸賦, 力猶不(瞻)〔贍〕, 仰首疾心, 猶望殿下一分之德意。 殿下不此之恤, 方盛意於無益之事, 督責者恣行其殘酷, 眩能者務勝而求媚。 推刷, 小事也, 而擧措太重, 科條太密, 煮焇。 末務也, 而國半騷然, 囚繫滿圄。 京師之軍竈日增, 太倉之雀鼠日繁。 國之大事, 猶有可諉, 至於一宮之費, 累百巨萬, 私邪之奉, 非一二計, 膏血已浚, 錐刀盡爭。 設法而陰取, 征販而巧斂, 殿下雖得才能心計之臣, 苟取辦於目前, 亦非王者均財足國之道也。 臣願殿下, 淸其本而塞其源, 愛民自節用始, 節用自省約始, 宮中用度, 軍國諸需, 一視祖宗故規。 少止尾閭之泄, 只以惟正之供也。 況奢侈之害, 甚於天災, 末俗已偸, 僭踰不禁, 宜崇弋綈之化, 以革高䯻之風也。 夫挽弱勢於積衰, 建中興之大烈, 此何等事業, 而獨可逶迤平步, 乃能成功耶? 今殿下苟快私意, 忽於大計, 存心則惡聞己過, 作事則先竭民財。 耽細娛, 而禁苑爲觀戲之場; 殖私貨, 而內司爲萃逃之藪。 姻戚是崇, 官方亂矣, 喜怒輕肆, 賞刑紊矣, 諛侫成風, 私臣進矣, 興利日盛, 尙德替矣。 至於深宮燕閑之中, 非臣所知, 而聲色麴蘗, 亦安保其必無也。 伏覩殿下, 以不世出之姿, 當大有爲之時, 據萬乘之資, 而承累世之基, 非常之烈, 指日可待, 而志爲氣奪, 義爲利蔽, 使志士解體, 生民失望。 曾不若戰國末辟。 處心積慮, 能有所立, 臣愚竊爲殿下惜之。

上嘉納之。

【조선왕조실록 태백산사고본】 14책 14권 【영인본】 36책 13면

 

이렇게 서하 이민서 선생은 임금을 향해 추상같은 바른 말들을 하고 또 이를 아름답게 여겨 받아드렸던 효종대왕, 이 두 선조님의 선례를 우리들이 본받아 생활 속에 실천하는 사회풍토를 우리가 이루어 나아간다면 우리나라도 선진사회가 되어 가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의 건강하고 품격 있는 인격적 성숙을 도모하고 重히 여기는 사회적 풍토의 조성이 절실하다. 오늘날의 우리의 현실은 목전의 이익에 급급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풍토로 이에서는 너무 멀어서, 이를 향한 유아교육 초등교육의 중요성은 강조하여 지나침이 없으며, 기성사회도 목전의 이익을 넘어서서 이렇게 변화되도록 노력해가야 할 것이다.

 

2013.10.25.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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