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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堅固한 內面世界의 開發
날짜 2013-10-29 14:42:25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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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한 내면세계의 개발 (堅固한 內面世界의 開發)

 

참으로 가치 있는 인생을 이루려면 진리에 바탕을 둔 견고한 내면세계를 개발하고 확고하게 하여 실천해가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것들은 예외 없이, 장미꽃이 가시를 가지고 있듯이, 운용하기에 따라서는 큰 해독이 될 수가 있다.

 

미국 작가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세상에서 세상의 의견을 좇아 사는 것은 쉽다. 홀로 살면서 스스로의 의견을 좇는 것도 쉽다. 그러나 위대한 사람은 군중의 한복판에서 고독 가운데 독자성을 완벽하게 유지하는 자이다" 라고 말하여 견고한 내면세계의 개발의 중요성을 극명하게 밝혔는데, 이것이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어야 하리라는 생각이다.

 

세상의 수많은 철학, 사상들을 섭렵해 보기도하지만 그것들 자체만으로는 인생의 나아갈 길에 대한 확실한 답이 나오지를 아니한다.

 

견고한 내면세계의 개발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진리를 경외하고 세상의 평가와 가치관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하겠다.

 

“하나님(진리)을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112:1). 고귀한 이상이 순응(順應)과 대중의 인기라는 제단에 제물로 바쳐지면 항상 그의 인격은 결국 사라지고 만다.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 않아도 홀로 설 수 있는 사람은 강하나 일단 다른 사람들의 칭찬에 길들여지면 그 인격은 항상 타협하게 된다. 공자도 세상이 알아주지 못해도 바른 길로 기쁜 마음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라야 군자라고 하였다.

 

법구경(法句徑)에는 “여기 두 길이 있으니 하나는 이익을 추구하는 길이요 하나는 대자유에 이르는 길이다. 부처의 제자인 수행자들은 이 이치를 깨달아 남의 존경을 기뻐하지 말라. 오직 외로운 길, 대자유의 길 가기에 전념하라”라고 하였다.

 

견고한 내면세계의 개발을 위해 또한 꼭 필요한 것은 신독(愼獨 또는 謹獨)이라는 생각이다.

 

스스로의 마음을 지켜 홀로 있을 때 삼가하라는 신독(愼獨 또는 謹獨)의 가르침은 유교, 불교, 예수교 등에서도 두루 가장 중하게 여기는 덕목이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righteousness)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마태복음 6장 1절). 신실함이란 구석에 혼자 있을 때에도 마치 온 세상이 볼 때와 마찬가지로 똑같다는 것이다. 진실한 인격은 누가 보고 있든지, 무엇이 걸려 있든지 상관이 없이 똑같아야한다.

 

사람이 홀로 있을 때에 어떻게 처신하느냐가 그 사람의 진가라 한다. 사람들은 외로움을 견디기를 힘들어 한다. 그래서 조금만 적적하여지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거나 TV를 켜거나 전화기를 들곤 한다. 그러나 정신적인 세계, 영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홀로 있는 시간을 즐긴다. 사색하며 묵상하는 중에 자기만의 세계, 내면의 세계를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누가복음 5장 16절). 예수는 틈만 나면 홀로 한적한 곳을 찾았다. 군중으로부터 인기가 오르면 오를수록 더욱 혼자만의 시간과 장소를 찾았다. 홀로 있는 시간 자기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은 신앙인들에게나 수행자들에게 필수적인 시간이다. 혼자만의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고 군중 속에 휩쓸리면 휩쓸릴수록 하나님의 은혜와는 멀어진다.

 

이와 관련하여 백강 이경여 선생의 성심(聖心)과 성학(聖學)에 관한 말씀을 소개한다.

 

“이른바 성심(聖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대개 본심이 지켜지지 않으면 덥지 않아도 답답하고 춥지 않아도 떨리며 미워할 것이 없어도 노엽고 좋아할 것이 없어도 기쁜 법이니, 이 때문에 군자에게는 그 마음을 바루는 것보다 중대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바로 잡히고 나면 덥더라도 답답하지 않고 춥더라도 떨리지 않으며 기뻐할 만해야 기뻐하고 노여울 만해야 노여우니, 주자(朱子)가 이른바 대근본(大根本)이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함양하는 방도도 불씨(佛氏)처럼 면벽(面壁)하거나 도가(道家)처럼 청정(淸淨)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발동되기 전에 지키고 발동된 뒤에 살피며 미리 기필하지 말고 잊지도 말아 보존해 마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밝은 한 조각 마음이 그 속에 거두어져 있어 북돋는 것이 깊고 두터우며 이(理)가 밝고 의(義)가 정(精)하여 경계하고 삼가고 두렵게 여기는 것이 잠시도 떠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근본이 이미 굳어져서 어느 것을 취하여도 본원(本源)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지키고 버리는 사이에서 주재(主宰)하는 것이 없으면 마음이 이미 없는 것이니, 어찌 외물(外物)에 대응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인(仁)을 숙련하는 공부가 어찌 일조일석에 되는 것이겠습니까.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천덕(天德)·왕도(王道)는 그 요체가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데에 있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홀로 있을 때를 삼가지 않아서 유암(幽暗)하고 은미(隱微)한 데에 문득 간단(間斷)되는 곳이 있다면 어떻게 날로 고명(高明)한 데에 오르겠습니까. 당 태종(唐太宗)이 일찍이 ‘임금의 한 마음은 공격받는 것이 많다. 조금이라도 게을리하여 그 하나만 받아들이는 날이면 위망(危亡)이 따른다.’ 하였는데, 이는 대개 그 자성(資性)이 밝고 트여 이 마음이 희미한 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인(聖人)의 극치(極治)라는 것도 결국은 이 길 외에 따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중주(中主)의 소강(小康)도 이를 빌려서 다스렸을 것이니, 다니기가 험한 산길에서 애쓰고 초목이 무성한 곳에서 배회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이른바 성학(聖學)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덕을 밝히려는 옛사람이 마음을 바루는 것을 근본으로 삼기는 하였으나, 본심의 착함은 그 체가 지극히 작은 반면 이욕(利欲)이 공격하는 것은 번잡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성색(聲色) 취미(臭味)와 완호(玩好) 복용(服用)과 토목(土木)을 화려하게 하고 화리(貨利)를 불리는 일이 잡다하게 앞에 나와 거기에 빠지는 것이 날로 심해집니다. 그 사이에 착한 꼬투리가 드러나 마음과 몸이 고요한 때는 대개 열흘 추운 중에 하루 볕 쬐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 학문을 강명(講明)하여 이 마음을 개발(開發)하지 않으면, 또한 어떻게 이 마음의 바른 것을 회복하고 이욕의 사사로운 것을 이겨 만화(萬化)의 주재가 되고 끝이 없는 사변(事變)에 대응하겠습니까.“

 

領中樞府事李敬輿上箚曰: ~上略~ 所謂聖心, 蓋心不存, 則不熱而煩, 不寒而慄, 無所惡而怒, 無所悅而喜。 是以, 君子莫大於正其心。 此心旣正, 則雖熱而不煩, 雖寒而不慄, 當喜而喜, 當怒而怒, 朱子所謂大根本者是也。 涵養之道, 亦非如佛氏面壁, 道家淸淨而已, 必操存於未發之前, 省察於已發之後, 勿正勿忘, 存存不已。 常使一片虛明, 斂在這裏, 裁培深厚, 理明義精, 戒愼恐懼, 無須臾離, 則根本已固, 左右逢源矣。 苟於操舍存亡之間, 無所主宰, 則心旣不存, 何能應物? 雖然, 仁熟之功, 豈一朝一夕之所致哉? 程子以爲: “天德、王道, 其要只在謹獨。” 若不謹獨, 幽暗隱微, 便有間斷之處, 何以日躋高明也? 唐太宗嘗謂: “人主一心, 攻之者衆, 少懈而受其一, 則危亡隨之。” 蓋其資性明達, 有以識此心之依俙矣。 然則聖人極治, 終不外此而他求, 中主少康, 亦必假此而爲治, 孰如役志崎嶇之境, 徘徊蓁蕪之域也哉? 所謂聖學, 古之欲明其德者, 雖以正心爲本, 而本心之善, 其體至微, 利慾之攻, 不勝其煩。 聲色、臭味、玩好、服用、土木之華、貨利之殖, 雜進於前, 陷溺日甚。 其間善端呈露, 心體湛然之時, 蓋十寒之一曝耳。 苟非講明此學, 開發是心, 亦何以復此心之正, 勝利欲之私, 爲萬化之主宰, 應無窮之事變哉? ~下略~ ··· 효종 4년(1653 계사) 7월 2일 영중추부사 이경여가 올린 "재변을 이겨내는데 힘써야할 21항의 상차문" 중에서

 

2013.10.29.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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