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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물(水)이 주는 교훈
날짜 2013-11-29 18:12:43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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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는 교훈

 

우리 인체의 70% 가량이 물로 이루어져있고 우리는 음식보다도 우선 물을 먹어야만 존재할 수가 있으며, 또한 물은 우리들의 실생활에도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물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을 ‘자연계의 물’과 ‘영()의 세계의 물’로 나누어 살펴보자.

 

1. 자연계의 물

 

노자(老子)는 물을 통해 겸손과 무위(無爲)의 리더십을 설명하려 하였다.

‘세상에 어떤 것도 물보다 연약하고 부드러운 것은 없다. 그러나 단단하고 센 것을 뚫는데 있어서 물을 이길 자는 아무도 없다 (天下莫柔弱於水,而攻堅强者,莫之能勝).

노자는 물에서 겸손함을 보았던 것이다. 물은 모든 만물을 이롭게 적셔주며 키워주지만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기에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승자는 군림하고 누리려는 자가 아니라 낮추고 버리는 자의 모습이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서 낮은 자리에서 이웃에 사랑을 베푸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된다고 하였다.

 

천하를 돌며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펼칠 지위를 줄 제후를 찾아다니다 실패한 공자는 황하에 가서 이렇게 외쳤다. “아! 흘러가는 물이 이렇게 도도(滔滔)하구나! 밤낮을 쉬지 않고 흐르는 저 물을 보라 (逝者如斯夫 不舍晝夜)!” 그는 자신이 못 이룬 정치적 이상이 밀려오는 후학(後學)들에 의해 계승될 것임을 물을 통해서 확신하였다.

 

맹자(孟子)는 샘이 깊은 물에 대하여 세 가지 철학을 설파한다.

첫째는 지속성이다. ‘샘이 깊은 물은 밤낮을 쉬지 않고 흐른다(不舍晝夜).’ 맹자에게 위대함은 천재성이 아니라 지속성이다. 군자는 쉬지 않고 스스로를 강하게 만든다(自强不息). 날마다 새로운 나를 만들기에(日新)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존재로 남는 것이다.

둘째는 진정성이다. 물은 흐르다 웅덩이에 갇히면 그 웅덩이를 채우고 다시 흐른다(盈科後進). 샘이 깊은 물이기에 언젠가는 물이 웅덩이에 가득 찬다. 살다가 어려운 상황에서 불안하거나 당황하지 말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 뚝심과 근원만 깊다면 언젠가 기회는 온다. 물이 웅덩이를 비워놓고 흐르지 않는 것은 철저하게 쉼을 얻고 가겠다는 것이다. 인생도 때로 쉬었다 가야 더 멀리 갈 수 있는 것이다.

셋째는 영원성이다. ‘샘이 깊은 물은 흘러서 사해 바다로 흘러간다(放乎四海).’ 시간이 문제지 기초만 튼튼하면 결국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조급해야 할 일도 없고, 재촉해야 할 이유도 없다. 근원만 깊다면 물은 결국 바다로 흘러간다. 오뉴월에 내리는 장마 비는 잠깐 내려도 길을 삼키고 계곡에 넘친다. 그러나 해가 나면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근원이 없기 때문이다. 잠깐 반짝이며 사라지는 장맛비가 아니라 사해 넓은 바다로 흘러가는 샘이 깊은 물이 되어야 한다. ~~~ 박재희,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 넷향기 2013.10.14 중에서

 

2. 영()의 세계의 물 ~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

 

예수그리스도는 믿는 자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주겠다고 하였는데, 이는 물질로서의 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지칭하는 ‘영혼 구원(redemption)의 물’을 가리킨다. 이 영적인 물을 마시면 즉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이 세상의 일들로부터 전혀 목마르지 아니하게 된다는 것이다.

 

갈릴리로 가려고 사마리아를 지나던 예수 일행이 수가 성 야곱의 우물에 이르렀을 때 행로에 지친 예수는 우물곁에 앉아있고, 제자들은 음식을 사려고 마을에 들어갔다. 이때에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러 나왔고 예수는 그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말을 건넨다.

그런데 이 여인은 물 한 모금 청하는 나그네에게 야박하게 나온다. “당신은 유대인 이면서 왜 사마리아 여자인 내게 물을 달라고 합니까?

당시에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을 천대하여 상종하지 않았는데, 이 유대인은 사마리아인에게 물을 달라고 한 때문이나, 그것만은 아니다. 여느 가정의 여인 같으면 그가 유대인이든 누구든 물 한 모금 마시자는 것을 문제 삼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은 그 여인의 마음속에 아픔이 있기에 예수의 말을 순수하게 받지 못하고 튕기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이 여인의 타박을 우회적으로 받는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生水)를 네게 주었으리라.

이미 그녀의 아픔이 무엇이며 필요한 것이 무엇임을 아는 예수는 그 생수의 선물을 주려고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다.

여인은 어이가 없었다. 물을 길을 두레박도 없으면서 물을 줄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이 유대인이 보여주는 여유를 우월감으로 느낀 여인은 이 유대인의 콧대를 꺾어 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 수가 성 사람들에게 큰 긍지는 이 야곱의 우물이다. 이 우물은 유대인에게도 사마리아인에게도 조상인 야곱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당신이 야곱보다 큽니까?” 여인은 이 유대인이 당황해하는 모습을 그리며 말한다.

그러나 이 여인의 기대는 좌절된다. “이 물은 먹어도 목마르지만,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으리니, 그 속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되기 때문이다.” 목마르지 않는 물이라니? 여인은 납득할 수 없는 말을 하는 이 유대인을 보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헛소리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신비한 느낌을 받는다. 여인은 어느새 이 유대인의 믿기지 않는 말에 이끌려 진지하게 대꾸한다. “그런 물을 내게 주셔서 목마르지도 않고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해주세요.” 그녀는 이 유대인이 어떤 말을 할까 기대를 하면서 그를 바라본다.

“네 남편을 불러오라.” 여인은 큰 충격을 받고 당황하여 엉겁결에 대답한다.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아픔이나 부끄러운 것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 여인에게 남편은 그런 존재이다. 어느새 신비스런 친밀감 같은 것을 느끼면서 얼핏 마음을 열고 실토할 것 같기도 한 분이나, 어떻게 이 아프고 부끄러운 이야기를 할 수 있겠나? 여인은 자기도 모르게 단호히 부정하였다.

“네가 남편이 없다하는 말이 옳도다.” 유대인의 이 말을 들으면서 여인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거짓말을 하면 심장박동이 자동적으로 올라간다고 한다. 여인은 충격적인 질문과 거짓말로 인한 당황한 마음을 안정시키면서, 유대인이 자기 말을 순수하게 받아들인 것 같아 적당히 이 자리를 모면하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순간, 그녀는 얼어붙는 것 같은 큰 충격을 받는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다.” 자신의 삶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이 유대인은 도대체 누구인가? 여인은 당황스럽고 부끄러운 중에도 그에게서 자기를 부끄럽게 하지 않으려는 따뜻함을 느끼면서, 달아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이 분은 선지자가 분명하구나! 그렇지 않고서 어찌 나의 삶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 수 있단 말인가? 이분은 나의 부끄러운 사실을 알고도 비난하지도 무시하지도 않으시고, 또 나의 거짓말을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감싸주시는구나.

“주여 내가 보니 당신은 선지자이십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 유대인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합니다.

여인은 이분 앞에 자신을 무너뜨리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면서 딴 곳으로 도망을 간다. “그렇습니다. 나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던 한 많은 여자입니다. 얼마나 팔자가 드세면 남편을 다섯이나 두었겠습니까? 이제는 남편 없이 살아보겠다고 수없이 다짐 했었지만, 나의 목마름을 채울 길 없어 다시 지금 남자를 만났습니다. 당신 말씀대로 나는 목마른 여인입니다. 지금도 남자와 같이 지내지만, 그렇다고 나의 목마름이 해갈되는 것은 아닙니다. 선지자님! 내가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길을 일러 주소서!” 여인은 이 분에게서 어떤 해답을 얻을 수 있으리란 기대가 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도망칠 곳을 찾아 예배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이스라엘백성은 오직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서만 예배하도록 되어있지만, 솔로몬 왕 이후 나라가 남북으로 나뉘면서 북 왕조 이스라엘의 왕이 된 여로보암이 예루살렘으로 내려가는 길목 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섬기게 하였다. 백성들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예배하러 갔다가 남쪽 유다 왕에게 포섭당하여 자기를 배반할까 두려워 여로보암이 꾸민 짓이다. 이후로 북왕조 이스라엘에서는 벧엘과 산당에서 예배 드렸는데, 이 여인이 그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예수는 꽁무니를 빼는 여인을 탓하지 않고 그 여인이 가는 곳에서 다시 만나준다. 그리고 예배에 대해 설명한다. “예루살렘 또는 이 산, 즉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의 대상인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내용이 없는 예배를 드렸다면 유대인은 예배의 내용을 이어 왔고 구원의 약속을 간직하고 있다. 이제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배 할 때가 왔는데 예배의 내용 즉 영()으로 예배하고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찾으신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

설명을 들은 여인은 이렇게 말한다. “메시야(구세주) 즉 그리스도가 오시면 모든 것을 알게 해주실 것입니다.

남편을 다섯이나 두었던, 지금도 다른 남자와 사는, 하나님 나라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줄 알았던 이 여인은 뜻밖에도 메시야를 기다리는 하는 나라에 소망을 둔 하나님의 딸이었다.

예수는 기쁘게 자기를 소개한다. “네가 말하는 그 메시야가 바로 나로다.

이때 제자들은 음식을 마련하여 돌아와 여인과의 대화는 끝이 났다.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그대로 마을로 달려간다. 그녀는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의 행한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분이 그리스도가 아이냐?

이 여인에게 가장 큰 아픔이었던 그 부끄러운 과거가 어느새 조금도 부끄럽지가 않다. 자랑일 수는 없지만, 이제는 그것이 아픔도 부끄러움도 아닌 자신의 일부분이 되었다. 아니 부러졌다가 붙은 뼈가 더 견고해지는 것처럼, 아프고 부끄러워 씻어내고만 싶었던 과거이지만, 이제는 그 아픔으로 인하여 그리스도를 만났고 이제 당당히 마을의 일원이 되어 오히려 그 아픔을 자랑처럼 말하는 여인이 된 것이다. ~ 요한복음 4 9~30

이 여인의 목마름은 어느새 사라졌다. 그녀는 예수로부터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받아 마셨기 때문이다. 예수가 주겠다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은 ’구원의 물‘이다. 우리 인간들의 갈증은 마시고 마셔도 목마른 ’세상의 물‘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리로 돌아와 그 말씀을 듣고 따를 때 즉 영혼의 물을 마실 때 진정으로 목마름을 해갈(解渴)할 수 있으며, 그 영혼의 만족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2013.11.29.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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