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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여성 상소문-하늘이 내린 인명(인명재천)
날짜 2009-11-19 09:40:02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2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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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신임사화때 역적들의 모략으로 화를 당한 4충신중 한분인 소재 이이명 선생의 부인 광산김씨(서포 김만중 선생의 따님)가   후일 영조께서  등극하시고  4충신이 모두 만고의 충신으로 복원되면서 올린 상소문임니다.

 

충신의 집안이 생명을 잃는 등 격은 고초는 이루 형언할 수 없었으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함니다. 

 

특히 생각나는 것은 인명중시의 사상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명은 하나님이 그의 목적을 위하여 유일하게 그의 형상을 닮게하여 주신 것으로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데, 우리 성리학에서도 "인명은 재천"으로 여김니다.

 

이에 우리는 생명이 세상의 최고가치임을 밝혀나가서 모든 이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려가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람니다.

 

적어도 앞으로는 사육신과 4충신의 경우에서 보이듯이 무엇보다 정치적인 목적달성을 위하여 가장 소중한 인명을 해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이 여성 상소문은, 공주, 옹주 등이 올리는 문안 편지류를 제외하고, 조선조에서 임금에게 올린 유일한 여성의 상소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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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1년 5월 9일 (1725년)

 

고(故) 영부사(領府事) 이이명(李頤命)의 처 김씨(金氏)가 상언(上言)하였는데, 그 대략에 말하기를,

“신의 손자 이봉상(李鳳祥)은 생명을 위해 도피하느라 미처 자수(自首)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삼가 남편의 아우인 신 이익명(李益命)의 보고에 의하면 성상께서 죄를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해조(該曹)로 하여금 녹용(錄用)하게까지 하셨다 하니, 이제는 이봉상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천지(天地)같은 인자하심과 하해(河海)같은 큰 것으로도 이 일에 비유할 수 없겠습니다. 그러나 신이 어떻게 감히 은수(恩數)가 특이하다는 것 때문에 참수(斬首)하는 형벌을 청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청컨대 한마디 진달하고 죽겠습니다.

망부(亡夫)는 단지 아들 하나 이기지(李器之)를 두었습니다. 이기지는 아들 둘을 두었는데, 하나는 장님이어서 폐인이 되었고 유독 이봉상이 후사(後嗣)를 이을 수 있었습니다. 화란(禍亂)이 일어날 때에는 나이 겨우 16세였는데, 이기지(李器之)를 고장(藁葬)한 뒤 왕부(王府)1156) 에서 가산을 몰수하고 처자는 노예를 만들도록 했다는 소식이 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신이 어떻게 일신(一身)에 닥칠 엄주(嚴誅)를 두려워하여 두 세대에 걸쳐 하나 남은 핏줄을 보존시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자부(子婦)에게 말하기를, ‘이 아이가 이미 이곳을 떠났으니 이로 인하여 목숨을 도모할 수 있다면 어찌 천명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조씨(趙氏)의 거짓 고아(孤兒)1157) 가 된 사람이 없으니 어찌하면 좋겠는가?’ 하였는데, 마침 가동(家僮) 가운데 나이와 용모가 이봉상과 비슷한 아이가 있었으므로 신이 대신 죽어줄 수 있겠느냐는 뜻으로 말하였더니, 그 가동이 비분 강개한 마음으로 사양하지 않고 강에 몸을 던져 죽어서 이봉상을 도망하여 갈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가동의 시체를 염(斂)하고 관(棺)에 넣어 관부(官府)의 부검(剖檢)을 거친 다음 무덤을 쓰고 신주(神主)를 만들었습니다. 이봉상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한번 떠나간 뒤에 소식이 없었는데, 금년 2월에야 비로소 살아 있다는 것을 알고 즉시 찾아서 자수(自首)하게 하려 하였었습니다.

삼가 듣건대 이봉상이 이미 참봉(參奉)에 임명되었다고 하니, 진실로 성상께서 끊어진 세대를 이어주고 망한 것을 다시 보존시켜 주시는 은혜가 백왕(百王)들보다 뛰어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천지 사이에 전복(顚覆)된 집안의 아들을 보존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에 감히 일의 정상을 다아뢰고 석고 사주(席藁俟誅)1158) 합니다.”

하니, 임금이 분부하기를,

“이제 김씨(金氏)의 상언(上言)을 보니, 나도 모르게 비통(悲痛)한 마음이 든다. 가동(家僮)이 주인을 위해 목숨을 대신 바친 일은 실로 전고(前古)에도 드문 일이다. 이에 중관(中官)을 보내어 대명(待命)하지 말라는 일로 전유(傳諭)하고 주인을 위하여 대신 목숨을 바친 가동에 대해서도 전례를 상고하여 포상(褒賞)하도록 하라.”

하였다. 임금이 이봉상을 진수당(進修堂)에서 인견(引見)하고 유시(諭示)하기를,

“영부사(領府事)의 나라를 위한 일편단심은 내가 이미 알고 있었다. 지난번 봉인(鋒刃)의 화(禍)가 있고 나서 혈족(血族)이 없으리라고 여겼는데, 지난번 그대 종조(從祖)의 상소를 보고서야 비로소 그대가 생존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는 실로 근래에 드문 일로, 그 전말(顚末)을 알고 싶어서 일부러 인견(引見)한 것이다.”

하니, 이봉상이 당초 화란이 있었던 가운데 달아나 자취를 감추었던 정상을 모두 진달하였다. 임금이 이르기를,

경자년1159) 에 그대의 조부(祖父)를 만나보았었는데 6년 뒤에 또 그대를 만나보니, 마치 그대의 조부를 만난 것 같다.”

하고, 누누이 위유(慰諭)하였다.

사신은 말한다. “이봉상(李鳳祥)이 목숨을 보존하기 위하여 도망쳤을 적에 흉당(凶黨)들이 그를 거짓으로 죽었다고 하는가 의심하여 이삼(李森)의 기포(譏捕)가 영남(嶺南)·호남(湖南)에 거의 두루 깔렸었으나 끝내 자취를 찾을 수가 없었으니, 어찌 하늘이 도운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가동(家僮)이 주인을 위하여 대신 죽은 것은 실로 만고에 걸쳐 높이 뛰어난 절개이니, 어찌 말세(末世)의 일개 동노(僮奴)가 쉽사리 처리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그때 이봉상의 가노(家努)가운데 나이와 용모가 대략 비슷한 자가 있었는데 마침 그 집에서 죽었으므로, 이내 이봉상이 익사(溺死)했다고 하고 드디어 상례(喪禮)를 치르고 성빈(成殯)했다’고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41책 513면

【분류】 *사법(司法) / *인사(人事) / *신분-천인(賤人) / *역사(歷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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