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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커뮤니케이션 [백강 이경여 선생]
날짜 2010-01-07 14:16:42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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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사회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을 만큼 중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특히 상사의 위치에 있음으로 사실상의 커뮤니케이션을 저해하는 형편이 되기쉬운데, 이에 대한 백강 이경여 선생의 아래의 견해는 오늘날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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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8년(1657년) 5월5일          1영중추부사 이경여(李敬輿)가 상차하기를,

“조정에서 옳게 한 일을 백성들이 옳다고 하는 것은 치세(治世)이며, 조정에서 그르게 한 일을 백성들이 그르다고 하는 것도 치세입니다. 조정이 일을 하고서 스스로 옳다고 하면 백성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점이 자사(子思)위(衛)나라 임금을 위해 걱정하였던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남달리 총명하시며, 기쁘거나 노한 감정을 절제하지 않습니다. 남달리 총명하면 아랫사람을 경시하는 병통이 있으며, 기쁘거나 노한 감정을 절제하지 않으면 상벌에서 당연한 원칙을 잃게 됩니다. 이 때문에 아랫사람들이 기가 죽어 물러나 귀에 거슬리는 바른 말이 날로 전하에게서 멀어져 가는 것입니다. 이전에 죄를 지은 언관은 진실로 크게 거슬린 것도 없는데, 억측을 너무 심하게 하여 바람과 우레 같이 갑자기 진노하였으며, 한마디 말이 뜻에 거슬리자 형벌과 출척이 잇따랐던 것입니다. 대간의 직책은 우리 조종조로부터 예의로써 대우하여 왔습니다. 임금이 먼저 각별한 은혜와 예의로 대우하여 백관들이 모두 그 위세에 눌리므로써 공론(公論)를 주장하고 기강을 확립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찌 소나 말을 속박하듯이 자신의 귀와 눈을 못쓰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또 기세 등등한 연소배들의 말은 비록 과격한 것 같기는 하나 나라의 형세를 부축하고 쇠퇴함을 일으키는 데 있어 그 공 또한 적지 않습니다. 임금은 가상히 여겨 장려하여 그 기백을 길러주고, 채택하여 그 중도를 선택해야지 들뜨고 조급한 것으로 보아 싫어하고 박대하는 기색을 보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진실로 충고를 받아들이는 길을 넓히고자 한다면 잘 따르는 아름다움을 다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옛날의 잘못된 정신과 풍채가 크게 변해 지극한 말을 매일 듣게 되고 임금의 덕에 흠이 없게 될 것입니다.

지금 조정에서는 매양 인재가 없다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하늘이 일세의 인재를 탄생시키매 넉넉히 일세의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데, 어찌 세상을 크게 속여 좋은 사람이 없다고 해서야 되겠습니까. 다만 임금이 좋아할 것인가 싫어할 것인가, 쓸 것인가 버릴 것인가에 달렸을 뿐입니다. 시험삼아 오늘날을 보면 빽빽한 조정에 어찌 인재가 없겠습니까. 그런데 민첩한 인사가 노성한 사람보다 많고 재간있는 신하가 경학(經學)의 신하보다 우세하며, 기개있게 감히 말하는 자는 세상에 나타나지 않고 시세에 빌붙는 자만 조정의 자리에 많이 있습니다. 이는 성명께서 공을 세운 신하는 좋아하고 장려하면서 강직한 선비는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본받아 길들여져서 점점 이처럼 된 것이니, 의향이 한번 달라지는 데에 따라 어찌 그 관계된 바가 적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공정하고 충실한 선비를 힘써 발탁하여 자신의 덕을 돕게 하고, 임금의 비위를 거스리며 간쟁하는 선비를 장려하고 나오게 하여 자신의 허물을 고치소서.

일전에 이조에서 죄적(罪籍)에 들어 있는 자를 서용하자고 청하였는데 진실로 좋은 뜻이었습니다. 부족한 자리를 구차하게 메꾸기보다는 차라리 죄과(罪過)를 용서하고 앞으로 잘 하도록 하는 것이 낫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정상과 죄를 참작하여 재주에 따라 쓰도록 하여 성명의 시대에 버려진 자가 없게 하소서. 그리고 서울 명문가의 후예라 하여 어찌 다 쓸 만한 자들이겠으며, 시골의 천한 자라 하여 어찌 다 쓰지 못할 자들이겠습니까. 우리 나라가 비록 문벌이 좋은 사람을 쓰기는 하였으나 수십 년전만 하여도 오늘날처럼 이들만을 등용하지는 않아 호남·경상도 선비들이 조정의 반이나 차지하였습니다. 인재의 많고 적음이 비록 고금(古今)이 다르기는 하나 어진이가 진출하는 길이 너무나 어렵습니다. 또 요즈음 주의(注擬)에 신진의 젊은이가 노성한 사람보다 많으며, 본디 명성과 기절이 드러난 사람이 한직에 있기도 하니 이 역시 인재 등용이 전도된 것입니다. 또 근일 문신(文臣)으로서 시골에 적체되어 벼슬길에 나가보지도 못한 사람이 거의 수백 명이나 되는데, 여기에도 기이한 재능을 가진 자가 있는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장구(章句)에 힘을 쏟아 각고의 노력으로 과거에 합격한 자를 권세 있는 집 자제 중 어리석어 분수넘게 벼슬하는 자에게 비해 볼 때 어찌 못하겠습니까. 그런데 안으로는 보통 관직이나 밖으로는 군수나 현령 같은 관직은 권세 있는 집 자제들이 땅에서 물건을 줍듯이 차지하는 것이나 이들은 감히 바라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전형관(銓衡官)들로 하여금 제도를 고쳐서 공정하게 듣고 모두 수렴하여 한갓 사람을 위해 관직을 설치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억울한 죄수를 심리하는 것은 한재를 막는 매우 시급한 일입니다. 그런데 전하께서 유사(有司)에게 억울한 죄수를 심리하라고 하시었지만 하늘이 응하지 않아 전과 마찬가지로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있으니, 이는 한갓 석방한다는 이름만 있을 뿐이지 억울함을 다스린 실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은 원컨대 대신과 금부 및 형부의 여러 신하가 죄수들의 명단을 모두 기록하여 탑전(榻前)에 모여 회의하되 죄명의 경중과 내외 원근에 대해 한 사람씩 심사하여, 만일 정상이 용서할 만하거나 법으로 볼 때 내보낼 만한 자가 있으면 비록 여러 해 동안 구금당해 원판결을 받지 못한 자라도 죄명이 너무 무겁다고 핑계대지 말고 반드시 정상을 따져 사실을 밝혀내 흔쾌히 용서하소서. 그러면 인심을 위로하고 원한의 기를 삭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근년 이래로 법의 뜻이 점점 무너져서 악을 징계하는 법은 너무 무겁고 생명을 중시하는 인애(仁愛)는 미덥지 못하여, 한 여름에 사람을 죽여도 유사는 왕명을 받들어 이행할 뿐 간쟁하지 않고 전하께서는 한 마디로 결단하고 의심이 없습니다. 공경이 삼복(三覆)968) 할 때 임금이 풍악을 듣지 않는 것은 선왕의 훌륭한 뜻인데 오늘에 이르러 실추될까 염려됩니다. 근래에 작상(爵賞)이 너무 지나치고 형벌이 공정하지 못합니다. 지금 제가 어떤 상이 너무 지나치고 어떤 형벌이 공정하지 못한지에 대해 열거할 필요는 없으나 성상의 명령과 토죄가 혹 일시의 기쁨이나 성냄에서 나온다면 유사와 법은 장차 무용지물이 될 것입니다. 대저 지나친 상은 권장하는 효과가 없고 남발하는 형벌은 징계하는 실효를 볼 수 없는 것이니 이는 작은 일이 아닙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아집이 없이 공평하게 하여 경중(輕重)을 대상에 따라 공정하게 함으로써 반드시 선행을 한 자는 모두 장려되고 악행을 한 자는 모두 징계되게 하소서.

지금 흉년이 해마다 계속되어 전에 저축했던 것은 죄다 바닥이 난데다 햇보리 농사마저 이미 망쳤습니다. 애처로운 우리 백성들이 모두 성명께서 먹여주기를 바랄 것인데 모르겠습니다만 국가에서는 장차 어떻게 곤궁한 백성들을 먹여 죽음에서 구할 것입니까? 경기는 상평청에서 으레 지급한 것에 힘입어서 혹 조금은 지탱할 수 있겠지만 양서(兩西)는 초미(焦眉)의 위급한 형세입니다. 신은 두 도에 산재한 관향(管餉)의 원곡(元穀) 수가 막대하다고 들었는데 만일 상평청의 예에 따라 가격을 계산하여 나누어 준다면 어찌 한푼의 실질적인 혜택이 없겠습니까. 더욱이 역로(驛路)의 지탱키 어려움은 주(州)나 군(郡)보다도 심하니 역시 묘당으로 하여금 모두 헤아려 처리하여 혜택이 고르게 베풀어지도록 하소서. 또 서로(西路)의 원곡은 그 모곡(耗穀)을 해마다 늘려 받으므로 백성들이 조적곡의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고, 받지 못한 곡물을 이웃과 친족에게 대신 물게 하는데, 겨우 살아 남은 피폐한 백성이 사방으로 흩어져 떠나는 것은 태반이 이 때문입니다. 국가가 창름과 부고(府庫)를 세운 것은 본래 백성을 위한 것인데, 비록 낙구창(洛口倉)969) 과 같이 큰 창고가 천개 만개 있더라도 곡식은 있으나 백성이 없다면 나라가 무엇을 의지하겠습니까. 더구나 이미 지켜낼 수 있는 요새도 없는데 쌓아 놓기만 한들 훗날 위급할 때에 우리의 소유가 되지 않을 것이니, 이미 지난 일의 징험에서 훤히 알 수 있습니다. 앞으로 모곡은 도백으로 하여금 칙사(勅使) 행차 때의 수용에 헤아려 지급해주게 하되, 대략 상평청의 규례와 같이 하여 백성의 힘을 덜어 주게 하고 대농가에서 그 나머지를 취해 경상의 비용을 보태게 한다면 어찌 공(公)과 사(私)가 함께 구제되지 않겠습니까.

신은 듣건대, 육지(陸贄)가 ‘지금 급한 일은 여론을 자세히 살피는 데에 있습니다. 여론이 매우 갈망하는 것은 폐하께서 먼저 시행하시고, 여론이 심히 미워하는 것은 폐하께서 먼저 제거하십시오.’라는 말을 하였다 합니다. 신이 생각하기에 오늘날 여론이 심히 미워하는 것은 추쇄(推刷)만한 것이 없습니다. 백년간 폐지되었던 법을 거행하여 감춰지고 빠진 것을 수만 명이나 들추어내니 팔도가 소란한 지 지금 3년이 되었습니다. 혹은 여러 해 동안 사환 노릇을 하던 자나 여러 대 양민이 되었던 자들을 하루아침에 샅샅히 찾아 내어 관에서 모두 몰수하였는데 이미 입법이 엄한데다 위아래가 뜻이 맞으니 혹시라도 곡직(曲直)을 분명하게 처리하지 못하여 원통함이 있어도 풀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분주히 돌아다니며 관가에 호소하며, 가슴을 치고 울면서 살아 있는 것을 괴로워 합니다. 보고 듣는 것마다 놀랍지 않은 것이 없으니, 또한 위로 하늘의 화기를 거스릴 수 있습니다. 어찌 일체의 법만 고수한 채 상황에 따라 변통하는 도리를 생각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그 중에 더욱 변통해야 할 것은 도감이 송사를 판결할 때 오로지 양적(良籍)으로만 대조하고 있는 점입니다. 난리를 겪은 이후로 문서가 산실되었는데 만일 이 한 가지만 가지고 공사(公私)를 분변한다면 오늘날 노비를 거느린 자가 누군들 모면할 수 있겠습니까.

요즈음 성명께서 병사(兵事)에 유의하여 군영을 두고 단속하고 계시므로 이미 규율이 성립되어 군정(軍政)이 펼쳐지고 있는데 신료들로서 누가 전하의 뜻을 우러러 도우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오늘날 군졸은 모두 농사짓던 백성들입니다. 한창 김매고 거름 주는 시기에 양식을 싸가지고 병기를 들고 매일 관문 앞에 모입니다. 대저 조그만 농토에서 농사를 지어서 어버이를 섬기고 자식을 기르고 있는데 이미 그 때를 놓쳤으니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만일 모든 군영으로 하여금 겨울에만 훈련하고 그 이외는 모두 농사를 짓게 한다면 병사의 훈련도 미비되지 않고 백성도 다소 소생할 것입니다. 또 군사를 다스리는 방도는 관할권을 서로 이어지게 하되 책임의 한계가 분명해야만 위급할 때 힘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영장(營將)은 위세와 기력이 두 영과 비슷하여 위를 능멸하고 아래를 짓밟고 있으나 감히 말 한마디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조정의 주장이 너무 지나치고 사목이 너무 중대해 일군(一軍)에 장수를 세 명이나 둔 데에 말미암은 것인데 주현(州縣)이 어느 곳을 따라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이러하니 나중 일은 알 만합니다. 여러 해 동안 경영하여 조금 질서가 잡혔으므로 갑자기 혁파하는 것을 비록 어렵게 여기고 있으나 그 절목을 가감하는 것은 또 시의를 따르기에 달렸습니다. 만약 도백은 상벌권만 갖게 하고, 또 병사(兵使)는 지휘권만 갖게 하되 단지 훈련하는 책임만 맡기어 서울의 장관(將官)이 하는 것처럼 하게 하고, 선발하는 일들은 주현(州縣)에 일임한다면 지위의 서열과 권한의 기강이 도치되는 데 이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병사는 정예화에 힘쓰고 다량화에는 힘쓰지 않는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백 명의 농부가 한 명의 전사를 기르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옛날 목릉(穆陵)970) 께서 국난을 당했지만 구병력을 훈련시켰는데 그 수가 3천 명에 지나지 않았으니, 어찌 군량을 걱정해 정예화에 힘쓴 것이 아니겠습니까. 근일 늘린 병력수가 6천 명에 이르는데도 여전히 마지 않고 늘리고 있는데 삼수미(三手米)는 겨우 반년 정도 지급할 수 있고, 포보(砲保)의 요역은 그 해독이 팔도에 퍼졌으며, 둔전의 설치로 인해 공세(公稅)는 날로 감축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의 생각으로는 구병력의 수를 그대로 두는 게 낫다고 여겨지는데 그래도 넉넉히 안으로는 궁궐을 호위할 수 있고 밖으로는 국가의 위용을 갖출 수 있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정전을 피해 거처하는 것이 궁궐의 출입을 통제하여 청탁하는 길을 막는 것만 못하며, 수라의 찬수를 줄이는 것이 검소한 덕을 숭상하여 낭비를 줄이는 것만 못하며, 해마다 좋은 말을 구하는 것이 한 가지 일을 실행하는 것만 못하며, 조정에 임하여 애통해 하시는 것이 밤낮으로 삼가고 두려워하는 것만 못하다고 여깁니다. 삼가 원하건대 성명께서는 하늘이 내게 경고한 것은 왜 그런 것이며 내가 하늘을 받드는 것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반드시 살펴서 어떤 일이나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강구하여 체득하고 힘써 행하되, 오랫동안 유지하고 일관성 있게 해 나가 반드시 감응하는 실적이 있게 하고 형식적인 것이 되지 않게 하소서. 신이 스스로 헤아려 보건대 기력이 얼마나 되기에 밝은 세상을 영원히 하직하는 말씀을 드리지 않겠습니까. 오늘의 이 상소는 곧 유표(遺表)와 같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성명께서는 장차 죽을 자의 구구한 성의를 살피어 불쌍히 여기소서.”

하니, 답하기를,

“차자에서 논의한 것은 흉금에서 우러나온 말이 아닌 것이 없으니 만약 임금을 사랑하는 경의 충심이 아니면 어찌 이에 이르렀겠는가. 아, 과인이 좋아하는 것을 끊고 밤낮으로 몸달아 하면서 조그마한 효과라도 보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 말단적인 일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진실로 가슴에 심한 한이 서려 있는데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먼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이다.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과인이 어리석어 어긋난 일이 많으니, 대인 선생들이 우려해 잊지 못할 만도 하다. 스스로 반성하여 가슴에 새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차자 중에 재간있는 신하가 경학이 있는 신하보다 많다고 한 말이 있는데, 언제 재간있는 신하가 있었는가. 진실로 아직 보지 못했다. 근래 대각의 신하가 매양 당론을 가지고 서로 싸우고 있으므로 과인이 심히 미워하고 있는데, 점점 격동되어 혹 지나친 거조를 면치 못하기도 하니 자못 한탄스럽다. 선생이나 어른들이 이끌고 권면하여 이 악습을 없앨 수 없겠는가. 폐단을 구제할 대책을 대신과 비국의 여러 신하와 매일 서로 강구하여 노경(老卿)의 지극한 뜻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고 몸조리를 잘하여 아름다운 말과 직언을 매일 들려주기 바란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36책 90면

【분류】 *군사-군정(軍政) / *신분-천인(賤人) / *호구-호구(戶口) / *정론-정론(政論) / *과학-천기(天氣) / *인사(人事) / *사법-행형(行刑) / *구휼(救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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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백강 선생의 견해로부터 참된 민주주의의 씨가 우리나라에도 오래 전에 이미  뿌려지고 있었음을 알게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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