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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형제우애 [죽서 이민적 선생]
날짜 2010-01-13 15:22:04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2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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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의 시대는 물질문화의 팽배등으로 인정이 메마르고 개인주의가 심하여 형제간의 우애조차도 믿기어려운 지경에 이르러 서로 송사하기 조차도 서슴치 아니한다.

 

이는 성리학의 "측은지심"이나 예수님의 "네이웃을 네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이렇게 "천도"를 지켜가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스스로 본인에게 큰 덕이 되는 것으로 삶의 목적이요 보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백강 이경여 선생의 자제이신 죽서 이민적 선생이 암행어사로 나가 청한 내용이 오늘날 우리들이 다시 돌아보아야할 사례이므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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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2년(1661년) 7월1일 암행어사 이민적의 요청으로 윤삼을 영릉참봉으로 삼았는데 그연유는 아래와 같다.

 

윤삼은 호서사람이다.  병자호란때 온가족이 포로가 되어 끌려 갔는데, 후에 돈을 마련하여 속을 바치고 돌아올 무렵에 윤삼이 그 노복에게 말하기를 '내 자식놈이야 지금 속바치지 못하더라도 내가 죽지만 않는다면 후일에 내가 속을 바차고 귀환시킬 수가 있다. 그러나 내조카의 경우는 이미 부모가 없으니 지금 속바치지 아니하면 돌아올 기약이 없을 것이다. 모두 속을 바칠수가 있게되면 다행이지만, 만약에 돈이 부족하거든 조카를 우선하도록하라' 고 하였다.

 

그의 노복이 윤삼의 말대로하여 조카에 대한 속을 바치고 조카를 고국으로 귀환시키었는데, 그 다음해에 다시 가보니 그의 아들은 이미 죽고 말았다. 윤삼은 아들이 없게되자 그 조카를 아들로 삼았고, 마을 사람들은 이를 '등백도의 고사'에 견주어 말하곤 하였다.

 

죽서 이민적 선생은 암행어사로 나가 염찰한 뒤에 그를 수용할 것을 계청한 뒤에 윤삼이 관직에 보임된 것이다.

 

[현종실록]

 

 

이민적(李敏迪)
1625(인조 3)∼1673(현종 14).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혜중(惠仲), 호는 죽서(竹西).
아버지는 영의정 경여(敬輿)이며, 어머니는 풍천임씨(豊川任氏)로 별좌(別坐) 경신(景莘)의 딸이다. 작은아버지 정여(正輿)에게 입양되었는데, 양모는 파평윤씨(坡平尹氏)로 대사간 황(榥)의 딸이다. 윤문거(尹文擧)의 문인이다.
1646년(인조 24)진사가 되었고, 1656년(효종 7)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한 뒤 정언·교리·암행어사·관찰사·대사성을 거쳐 한성부우윤·도승지, 이조·호조의 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사간과 응교로 있을 때에는 국사 논의에 참여하여 언사가 쟁쟁하였으며, 현종은 그의 문학적 소질이 탁월함을 알고 측근에서 보필하게 하였다.
정치·경제에 관한 많은 소차(疏箚)가운데 〈옥당조진시폐차 玉堂條陳時弊箚〉는 특히 명문이다. 전라남도 진도의 봉암사(鳳巖祠)에 봉안되었으며, 저서로는 《죽서집》 4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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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의 자로(子路)편의 글에 “君者는 和而不同하고 小人은 同而不和한다”는 말이 나온다. 화이부동이란 말에 담겨진 의미는 남들과 사이좋게 지내되 무턱대고 사이좋게만 지나자는 것이 아니다. 서로간의 다름과 차이점을 분명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바탕 위에서 조화를 이루어 화합을 이루어 나가자는 말이다. 우리 나라의 지형지세가 산이 많고 땅이 척박하여서 그런지 우리는 서로 다른 점들을 들추어 갈등을 빚고 다툼을 일삼는 일에 몰두하여 많은 세월을 지내왔는데,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자면 우선 가장 가까운 형제로부터 우애가 있도록 해가야 할 것이다.

 

성경에도 이르기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태복음 5장 23, 24절)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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而況兄弟는 同氣之人이며 骨肉至親이라. 尤當友愛요 不可藏怒宿怨하여 以敗天常也니라.

이황형제는 동기지인이며 골육지친이라. 우당애인요 불가장노숙원하여 이패천상야니라.

[하물며, 형제는 동기(同氣)의 사람이고, 뼈와 살을 같이한 지극히 가까운 친족이니 더욱 마땅히 우애(友愛)하여야 하고, 노여움을 마음에 품고 원망하여서 하늘의 바른 뜻을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童蒙先習(동몽선습) 長幼有序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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