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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패륜에 항거함 [동고 이수록 선생]
날짜 2010-01-22 13:56:21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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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강 이경여 선생의 부친이신 동고 이수록 선생은 당대에 명망이 있는 선비 임에도, 광해군이 인륜에 어긋나게 인목대비 페모론을 시도함에 반대하여, 이후 일체의 공직에 나서지 아니하였다. 

 

바른 길이 아니면 가지 아니하는 고고한 선비정신을 엿볼 수 있는데, 인간은 금수와 달라 하늘의 도리를 따르는 양심과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예전의 현인들은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처럼 바른길이 아니면 낙향하여 농사일을 할 수가 있었으나, 오늘날의 산업사회에는 이것이 여의치 못하다. (동고 이수록 선생의 신도비명에 따르면 선생은 도연명의 "귀거래사"을 애송하였다고 한다)

 

성경(New Testament)에 당대 최고의 학자요 사도인 사도 바울(Saint Paul)이 텐트를 만드는 기술(Tent Maker)을 생업의 기술로 익혀서 텐트 만들기로 생계를 해결하면서 스스로의 영혼의 인도함에 따라  삶을 영위하여 나아가 인류역사에 불후의 인물이 된 점이 생각난다.

 

군자(君子)는 의호중용(依乎中庸)하야 돈세불견지이불회(豚世不見知而不悔)하나니 유성자능지(唯聖者能之)니라. (중용(中庸) 2편 10장 군자의 道 중에서)

 

군자는 중용에 의지하여 세상에서 숨어있어 알려지지 않아도 후회하지 않으니 이는 오직 성자라야 그렇게 할 수 있다.

 

 

◈ 이수록 선생 신도비(향토사적 제 1호)

이수록(1564∼1620) 선생은 조선중기(朝鮮中期)의 문신으로 자는 유지(游之), 호는 동고(東皐), 본관은 전주(全州), 첨정(僉正)극강(克綱)의 아들이다.

 

선조(宣祖)18년(1585) 진사, 이듬해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한 뒤 병조좌랑(兵曹佐郞), 사예(司藝).정언(正言).문학(文學)을 역임했고, 서북면체찰사 이원익(西北面體察使 李元翼)의 중사관으로 활약했다. 이어 교리(校理).응교(應敎)·대동도찰방(大同道察訪)을 거쳐 선조38년(1605)내자시정(內資時正), 이후 광주목사(光州牧使)·봉산군수(鳳山郡守).상주목사(尙州牧使) 등을 역임하며 백성들의 구휼(救恤)에 힘썼다. 광해군(光海君)때 수찬(修撰). 장령(掌令).사인(舍人)을 거쳐 봉상시정(奉常侍正)으로 있다가 광해군9년(1617) 폐모론(廢母論)에 반대, 사직하고 고향으로 은퇴하여 이원익.정엽(李元翼.鄭燁)등과 교류했다.

 

뒤에 여주목사(驪州牧使)에 임명되었으나 칭병(稱病)하고 취임하지 않았다. 영의정에 추증(追贈)되었다.

 

신도비(神道碑)는 장방형의 비좌(碑座)를 갖추었으며, 특히 는 쌍용(雙龍)이 어우러진 가운데 운문(雲文)이 중심부위 여러 곳에 정교하게 조각(彫刻)되어 있으며, 용비늘과 발의 표현은 사실적이다. 비는 전후면 각자(刻字)로서 앞면은 전자(篆字)로 증영의정이공신도비명(贈領義政李公神道碑銘)] 이라 횡서(橫書)했고, 비제(碑題)는 [유명조선국증영의정신도비명병서(有明朝鮮國贈領義政神道碑銘幷序)]라 음각되어 있다. 비문은 김상헌(金尙憲)이 글을 짓고, 윤문학(尹文學)이 글씨를 허목(許穆)이 전(篆)을 맡았다.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양근리 192 소재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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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록(綏祿) [1564(명종 19)∼1620(광해군 12)]
 자는 유지(綏之), 호는 동고(東皐). 극강(克綱)의 3남이다.
 1586년(선조 19)에 별시문과에 급제한 후 광주목사와 상주목사를 역임하다가 1617년(광해군 9)에 폐모론에 반대하여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리원익(李元翼) · 정엽(鄭曄) 등과 교유하다가 여주목사에 임명되었으나 신병을 이유로 거절하였다. 1620년(광해군 12) 통정대부에 올랐고 사후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묘소는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양근리 간좌이다. 양평군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되었으며, 1992년 양평군 용문면 조현리 산48의 13으로 이장하였다. 비문은 좌의정 김상헌(金尙憲)이 찬하였다. 문집에 <동고문집>이 있다.
 배위는 정경부인 진천송씨이며 묘소는 합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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