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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선비의 예술혼
날짜 2010-01-23 07:12:07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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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가 얼어 죽을까봐

 

이인상은 조선조 영조 때 선비다. 호는 능호관(凌壺觀), 자는 원령(元靈)이다. 그는 매우 가난했지만 평생 동안 풍류를 잊지 않고 아름다운 삶을 살다 간 사람이다. 그는 무주택자로 떠돌이 신세였다. 서른세 살 때 친구인 송문흠과 신소가 3천 냥을 주고 남산 기슭에 아주 작은 초옥을 마련해주었다. 드나들 때 문설주에 이마가 받힐 정도였다.

 

이인상은 생전 처음 갖는 집이어서 감회가 남달랐다. 이 집은 남쪽의 작은 창을 열면 남산의 중봉이 보이고 북창으로는 한양의 등줄기가 보였다. 그는 이 집의 훌륭함을 ‘삼신산의 하나인 방호산을 능가하는 경관’이란 뜻으로 능호지관(凌壺之觀)이라 했고 이때부터 자신의 호를 능호관으로 불렀다.

 

능호관은 삼절이라 불리울 만큼 시 서 화에 능했고 품성은 맑고 강직했다. 살 집은 가까스로 마련 됐지만 땔나무가 없었다. 그 해 겨울 단 한 분뿐인 매화나무가 얼어 죽기에 이르렀다.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릴 때까지 송문흠의 집에 겨울나기로 보냈다가 이듬해 정월 송오도(松梧圖) 한 폭을 사례로 그려주고 찾아와 책으로 둘러싸 추위를 막아주었다.

 

그의 나이 48세 때 부인 장씨가 별세하자 애도사에서 “숙인은 애써 나를 도우셨습니다. 굶주렸지만 내 책을 팔지 않았으며 아무리 추워도 책을 불 때지 않았습니다.”라면서 슬퍼했다. 책과 난을 사랑한 능호관의 선비 정신은 후학들에게 능히 모범이 될만하다.

능호관은 서울에 살면서 무려 1백여 명의 인사들과 글과 그림으로 친분을 쌓았다. 그의 벗 중에는 서대문 반송지 옆에 살았던 이윤영이 첫 손가락에 꼽힌다. 이윤영 외에도 벼슬을 멀리하고 학문에만 힘쓴 송문흠 김무택 그리고 신소 등과 열심히 어울렸다. 이들은 한결같이 시 서 화에 능한 문장가 또는 서예가들이었다.

 

특히 이윤영은 서지(西池)로 통칭되던 반송지 부근에 정자를 짓고 이인상 김상묵 등 가까운 문사들과 글모임을 만들었다. 여름에는 서지의 연꽃을 꽃병에 꽂아 완상했고 겨울엔 잘라낸 얼음 덩어리 가운데 촛불을 밝혀두고 이를 ‘빙등조빈연’(氷燈照賓筵)이라 불렀다. 선비들의 이런 풍류와 낭만은 어디서 오는 걸까. 타고 났을까, 아니면 어릴 적부터 길렀을까.

 

“맑은 달이 구름 끝에 나오니

밝은 빛이 높은 누각에 가득 차네

누웠다 일어나 발을 걷고 앉으니

바람은 조용한데 꽃은 저절로 떨어지네“

 

이 시는 능호관이 17세 때 지은 야좌(夜坐)라는 시다. 아주 옅지만 염세적 기운을 풍기는 시적 이미지나 살 속의 뼈가 훤히 비치는 그림 속 문기(文氣)는 가난과 서출이란 그의 태생과 상당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는 인조 효종때 영의정을 지낸 백강 이경여선생의 현손(고손자)로 태어났지만 증조부가 백강의 서자였기에 그도 서출이란 멍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당대가 아닌 원대서출인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병약한 몸으로 태어난 능호관은 신분상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오로지 시 서 화에만 매달렸다. 그의 그림과 글씨 수준은 진경산수에서 겸재 정선, 풍속화의 단원 김홍도, 문인화에서 능호관 이인상이라 할 정도로 높은 경지에 올랐다. 성질이 괴팍하고 감식안이 까다로워 특히 서화에서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를 최고의 덕목으로 치던 추사 김정희도 스승인 중국의 옥방강에게 능호관의 그림을 선물로 보낼 정도였다.

 

그의 그림은 “그윽하면서도 깎아지른 듯 삼엄하며 화법은 독특하면서 막힘이 없어 산뜻하고 시원하다. 그의 작품 앞에 서면 이마에 일진광풍이 스치고 지나는 듯 청량하고 고담하면서도 맑고 스산스러운 문기 때문에 마음이 조촐하게 가다듬어 진다”는 게 후세 미술사가들의 평이다.

 

능호관은 38세 때 요즘 우체국장 격인 사근역(지금 함양)의 찰방이 되어 만 2년 동안 근무한 적이 있다. 그는 공직에 충실하기 위해 부임하면서 그려두었던 산수화를 모두 불 질러버렸다. 그러나 임기를 마친 후 음죽(지금 장호원)현감으로 부임할 때 까지 1년이란 공백기간 중에는 쓸쓸한 강변 풍경을 많이 그렸다.

 

“가을에 이르도록 찾아오는 벗도 없고/ 청소해 놓은 깨끗한 방만 바라본다네/ 게으른 구름은 늙은이의 흥을 씻어가고/ 떨어진 낙엽은 허명을 쓸어가네”    

 

능호관은 음죽 현감직 2년을 마친 후 친구인 이윤영이 은거하고 있던 단양으로 내려가 만년을 의탁하려 했으나 그것마저 쉽지 않았다. 결국 음죽현에서 5리 떨어진 설성에 은거처를 마련하여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우다 51세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임종은 ‘병국(病菊)’이란 제목의 고개 떨구고 서있는 국화가 “남계에서 어느 겨울날 병든 국화를 우연히 그리다”란 능호관이 직접 쓴 관지를 달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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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호관 이인상 선생의 치열한 선비 정신과 붙타는 예술혼을 바라보며, 이시대를 사는 우리는 어떠한 삶의 목적을 정립하고 정진할 것인지 다시한 번 되뭇게 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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